#170
3일 후,
똑똑
“윤휘성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어, 들어와.”
진하의 허락에 윤휘성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진하를 보고 간단히 묵례를 한 뒤 입을 열었다.
“다른 조직원들은 아마 이틀 뒤에 모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 그래요? 그거 좋은 소식이네.”
“너무 기다리게 하셔서 죄송합니다. 다른 조직원이 돌아오는 대로 가져온 정보를 추리고 정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뭐, 일부로 안 온 게 아니니까. 괜찮아. 그리고 너무 조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좋으니까 정확하게만 가져와.”
“네.”
“그럼 나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비켜 줄 수 있나?”
“네.”
말을 마친 윤휘성은 다시 한번 묵례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 진하는 방을 나간 윤휘성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틀 후라…….”
아마도 진하를 처리하기로 결정한 게 이틀 후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 3일간 가만히 있기만 하지 않았을 테니까.
‘도대체 어떻게 지령을 받은거지?’
지난 3일간 봉인이 해제된 아티팩트인 마법의 망토를 이용해 윤휘성을 추적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그가 지령을 받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진하가 관여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일정 시간 일정 공간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뿐.
스마트폰 역시 송하나 길드에서 보급하는 GPS 겸 도청 장치가 있는 걸 생각하면 도대체 그런 지령을 어디서,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 덕분에 매수됐다는 건 알았지만. 아니, 거의 다른 사람이란 걸.’
지난 3일간 관찰한 결과 정말 우습게도 가장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던 2번인 가짜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바로 어제, 전화를 통해 송하나에게 전달받은 윤휘성의 습관은 3일간 관찰한 습관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심증이고, 물증은 없었다.
사소한 개인사마저 모두 알고 있고, 외적인 모습은 완벽히 윤휘성과 똑같았으니까. 다른 점은 오로지 하나, 습관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하는 그가 가짜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습관이 180도 바뀐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뭔 목적일까.’
가짜라고 판단을 내린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세심하게 관찰도 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 미상의 단체가 진하에게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호텔을 수색해 봐도 그 흔한 도청 장치 하나 없었고, 정보를 캐내려는 유도 질문조차 없었다.
가짜를 넣은 것 치고는 너무 하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습격을 한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습격을 할거면 이렇게 질질 끌리도 없으니 그냥 이건 방치라고 봐야 했다.
‘미행이 들킨 건 절대 아냐.’
혹여나 미행이 들킨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대충 행동하지도 않았고, 아티팩트가 그렇게 허술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로 진하를 일주일간 방치만 했다는 건데…….
“아, 모르겠다.”
심증뿐인 추측, 알 수 없는 목적, 그리고 연락 수단까지. 진하가 알 수 있는 게 너무 한정적이었다.
“하아, 뭐 어쩔 수 없지.”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진하는 몸을 일으켜 방 한쪽에 고이 모셔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미국에 도착하면 주변 상황과 세력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한 후 움직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았다.
짐을 챙긴 진하는 빼먹은 게 있는지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가짜는 송하나에게 맡기고….’
곧 있으면 다른 조직원들을 많이 보낸다고 했으니 여긴 그냥 맡기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진하는 게이트로 들어가 정찰을 하고.
“오케이 됐다.”
모든 준비가 완료됐음을 확인한 진하는 바로 앞에 있는 종이에 간단하게 글씨를 휘갈겼다.
<개인적으로 정보 조사를 하러 다녀옴. 이틀 뒤에 돌아올게.>
이렇게 써 놓으면 상대들의 시선은 죄다 위쪽을 향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사이 진하는 유유히 게이트로 내려가면 되는 거고.
준비를 모두 마친 진하는 마법의 망토를 이용해 완벽한 은신을 한 후 호텔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 되어서 그런지 점차 한산한 느낌을 주는 거리.
진하는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다시 한번 계획을 체크했다.
게이트 몰래 진입.
약 일주일간 게이트에서 정찰 및 공략 계획 세우기.
그 사이 송하나가 보낸 조직원들이 다른 조직원을 제압하면 신호주기.
위로 올라가서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다시 공략하기.
간단히 계획을 늘어놓은 진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이렇게만 두고 보면 계획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의 허술한 계획.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하게 세운 계획이고, 그나마 단순하더라도 이게 가장 효과가 좋으니까.
초반에는 그가 직접 정체 미상의 단체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렇게 단서도 안 잡히고 이틀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고 빠지는 게 나았다.
생각을 마친 진하는 호텔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음을 깨닫고는 골목으로 들어가 마법의 망토를 제거한 후 근처에 있는 택시를 잡았다.
“Where do you want to go?”
“Go to the gate.”
“OK.”
간단한 대화가 끝나고 택시가 스르륵 게이트 쪽을 향해 움직였다.
* * *
게이트에 도착한 진하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침음성을 흘렸다. 검문이 빡빡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빡빡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본적으로 검문대를 통과하는 것은 물론, 헌터증 확인과 다시 한 번의 검문까지. 단 한 번에 검사를 마치는 한국과는 달리 총 3번의 단계를 마쳐야 했다.
‘게이트 입장이 왜 이렇게 빡빡해?’
혀를 찬 진하는 뒤집어쓰고 있는 망토를 더욱 꽉 쥐었다.
빡빡하기는 해도 아마 이 망토라면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완벽한 은신을 제공하는 아티팩트가 되었으니까.
스륵, 스르륵.
진하는 헌터들 사이로 아주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검문대와 신분증 확인, 다시 검문대를 뱀처럼 스르륵 넘어갔다.
‘오, 생각보다 쉽네?’
은신을 하더라도 조금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통과했다는 사실에 진하는 의아함을 느끼며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저벅, 저벅, 저벅
안으로 들어서자 던전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1층은 한국에 있는 곳과 크게 구조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야.’
빠르게 3층까지 가야했기에 망토는 2층에서 풀기로 결정한 진하는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순식간에 2층으로 내려가는 통로에 도착한 진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눈을 깜빡였다.
‘왜 아무도 들어가지 않지?’
통로에 도착하고 보니, 근처에 있는 헌터들 그 누구도 2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냥 없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분명 눈앞에 B급 이상의 헌터도 지나가는 데 그도 역시나 2층으로는 전혀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순간 뭔가 기분 나쁜 불쾌함을 느낀 진하는 불쾌함을 없애기 위해 빠르게 2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불쾌감은 2층에 도착해 공간을 살펴본 순간 더욱 강해졌다.
“이게 뭐야.”
진하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어이없게 바라봤다. 그만큼 지금 그가 보는 모습은 뭔가 말이 되지 않았다.
스르륵.
진하가 망토를 벗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모르게 벗어야 했던 망토,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그의 앞에서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무도 없는 게 말이 돼?”
바글바글했던 1층과 달리 2층은 개미 새끼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협회에서 통제를 하나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통제를 할 거면 다 하지 왜 1층은 남겨 둔단 말인가?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그제서야 진하는 게이트를 들어설 때, 그리고 1층에서 느껴진 불쾌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왜 다들 조용했지?”
단순히 아무런 말도 없었다는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바로 눈치챘을 테니까. 1층에서 그들은 분명 대화를 나눴고 얘기를 했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정말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며 던전을 들어가는 모습,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 중에는 B급 이상의 헌터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1층을 돌아다닌다?
“절대로 말이 안 되지.”
헌터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를 잡는 건 곧 살기 위한 수입으로 직결된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로 불평불만이 없을 리 없었다.
그건 단순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애초에 불가능했다. 만약 정부에서 진짜 완벽하게 통제를 해서 2층에 헌터가 없다 하더라도 불만이 튀어나오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진하는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조직원들이 이상하더니 이번에는 게이트 안의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다.
마치 잘 짜여진 연극에 그만 툭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연극?”
혹시 이게 다 연극은 아닐까? 순간 진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신분을 속여 미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미국 협회에서 그걸 완전히 몰랐을 거라고 장담하긴 어려웠다.
어찌 됐든 그의 신분은 S급 헌터이니 예의 주시했을 거고, 그가 들어온 걸 알고 이렇게 연극을 꾸몄을지도 몰랐다…….
“라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아무리 S급이 귀하다지만 S급 헌터 한 명을 속여먹으려고 미국 협회에서 이렇게 공들일 리가 없었다. 그냥 잡아서 내쫓으면 모를까.
그리고 그렇다고 한들 이렇게 아무도 2층에 없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진하가 언제 올 줄 알고 2층을 비운단 말인가.
“근데 몬스터는 또 왜 한 마리도 안 보이지?”
미국도 게이트 폭주를 겪었으니 새로운 몬스터들이 충원됐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했어도 2층에는 아직 몬스터가 남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진짜 뭔가 이상한데.”
더욱 이상함을 느낀 진하는 빠르게 내달려 3층 통로 쪽으로 가 봤다. 그러는 동시에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몬스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2층 끝에 도착한 진하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3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이는 풍경.
“환상에 빠진 건가?”
순간 진하는 자신도 모르게 실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그저 길과 땅만 있고 몬스터도 사람도 없는 그러한 공간이 진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도대체 몇 번씩이나 스스로 되물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말로 말이 안 되는 풍경을 보며 진하는 그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음?”
서류를 정리하던 남자는 자신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위치는 게이트 3층…… 침입자인가?”
정말 오랜만의 침입자였다. 침입자가 그동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헌터들을 완벽히 통제한 이후로는 거의 없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침입한 존재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헌터였다.
“간도 크네.”
게이트를 몰래 침입할 생각을 하다니, 미국 소속 헌터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짓을 했다.
“처리해.”
남자, 아니 신지하는 허공에 짧게 말한 후 다시 눈을 떠, 밀린 서류를 하나둘 씩 처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