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어디 있을 텐데…….”
출국장을 나온 진하는 주변을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분명 송하나의 말 대로라면 그를 마중 나온 조직원이 분명 있을 테니까.
한참을 둘러보던 진하는 이내 한국말로 써져 있는 하나의 피켓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김진하.]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진하를 찾기 위해서인지 주변을 연신 둘러보고 있었고, 진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아! 안녕하십니까!”
진하를 알아보자마자 90도로 인사를 하는 조직원, 그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공항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 아니! 일어나!”
“아, 죄송합니다.”
당황한 진하가 재빠르게 말하자 그제야 뭔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남자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뭐지?’
순간 진하는 송하나가 자신을 엿 먹이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지금 진하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완전 신입 조직원이었다.
진하가 하려는 일이 뭔질 아는 송하나가 이런 신입을 자신의 안내자로 내정했을 리는 없었다.
“이름이 뭐죠?”
“아, 제 이름은 윤휘성이라고 합니다.”
“네가 안내자야? 아니, 그전에 다른 조직원은 없어?”
진하의 물음에 윤휘성은 아차 하는 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 위에 선배님들은 모두 정보 수집을 위해 나가 있습니다. 이곳은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숙소까지의 안내는 제가 맞게 되었습니다.”
“아…….”
진하는 윤휘성 한 명이 자신의 안내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한편으로는 이곳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신입이 자신을 안내하러 온 걸까 싶기도 했다.
‘아니, 내가 너무 익숙해진 건가?’
평소에 자신을 찾아오는 놈들은 하나같이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났기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고작 숙소 안내 정도면 신입이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안내하는 동안 다른 조직원이 정보를 얻어 온다면 그게 더 진하에게는 이득이었으니까.
“그럼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응, 안내해 줘.”
진하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휘성은 앞장서서 목적지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공항으로 나온 진하는 차에 타자마자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윤휘성이라고 했나?”
“네.”
“미안하지만 지금 여기에 정보 길드 소속 인원이 총 몇 명이지?”
“총 3명이고, 최근에 2명이 추가로 잠시 지원 왔습니다.”
“추가로 지원 온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아니, 다른 사람들 모두 다 뭐 하는 중이지?”
추가로 온 사람은 아마도 송하나가 미리 보내 놓은 사람일 것이다. 그들까지 나서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일 테니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아, 다른 선배들은 현재 타 세력의 간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타 세력?”
“네, 미국에 존재하는 블랙 길드와 협상을 하러 갔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블랙 길드의 힘이 큰 편이다보니까. 기반을 다지는 것 하나조차 협상의 연속이거든요.”
“흐음…… 그래? 그럼 아직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는 거네?”
“예, 솔직히 말해서 저희 5명이 여기 머무르는 것도 겨우 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타국의 블랙 길드 조직원이라 하면 더 배척하거든요. 사실, 김진하 님 같은 분이 오는 날에는 습격이 있을 수도 있어 제가 나온 거기도 합니다.”
그제야 진하는 이해가 갔다. 불안한 기반,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온 귀빈, 습격당할 수 있으니 가장 감시가 덜한 막내를 통해 나를 안내하고 다른 조직원은 이참에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 같았다.
‘근데 그 정도로 심하다고?’
타국이라고 하지만 일단 송하나는 한국을 거의 잡아먹은 정보 길드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무리 멀다고 하지만 기반하나 잡는 게 힘들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가지시고 계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제가 생각해도 들인 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건 압니다.”
“그럼 그 이유가 뭐지? 아무리 미국의 블랙 길드가 많고 크다고 해서 이렇게 정보 길드가 밀릴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데?”
“네, 보통은 그게 맞습니다. 이렇게 기반을 제대로 잡지 못한 이유는 시간 부족도 있지만 협회와 기업의 유착이 큽니다.”
“협회와 기업?”
진하의 물음에 윤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미국은 한국과도 유럽과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럽의 경우 협회와 기업, 블랙 길드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형태였다. 협회가 전체적인 헌터를 모조리 관리하고 기업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그들을 피해 숨어서 블랙 길드가 연명하는 형태였다.
한국의 경우는 그와 비슷하나 조금은 다른 형태.
겉으로는 유럽과 비슷한 형태로 길드와 기업, 블랙 길드, 협회로 세분화되어 모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협회와 블랙 길드 2강 체제이며, 둘 역시 어느 정도 협조를 하는 형태였다.
“미국의 경우는 기업과 협회, 길드, 블랙 길드가 완전히 하나로 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로?”
“네, 알아보니 초기에는 한국과 비슷했지만 기업과 길드에 의해 협회가 잡아먹히더니 이내 블랙 길드까지 통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협회가 먹혔다?”
“먹혔다기보단 정확히는 하나로 통합된 거죠. 실제로 협회의 역할도 잘하고 있고요. 다만 타국 세력에 대한 배척이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잡으려면 실제로는 협회의 눈치도 많이 봐야 하고요.”
윤휘성의 말에 진하가 혀를 찼다. 어쩐지 이상하게도 미국 쪽 공략권의 발급이 너무할 정도로 안 된다 싶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협회가 기업과 길드에 먹혔다며 당연히 어떤 대의명분을 내걸어도 그쪽에서는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가질 테니까.
“다 왔습니다.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진하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건물들로 가득한 도심지 한가운데에 있는 호텔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긴 게이트 피해가 없었어?”
그가 알기론 호텔의 위치는 게이트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멀긴 해서 게이트가 건물들 사이에 가려지다시피 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근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운 곳 치고는 1차 게이트 폭주 사태를 겪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잘 막았다 하더라도 전투가 벌어진 흔적은 남았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기 전에는 그 어떤 사람도 눈치를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저도 그 부분이 궁금해서 따로 찾아봤는데 게이트 폭주는 거의 피해 없이 막아 냈다고 들었습니다.”
“피해 없이?”
“네, 미국에 속한 SS급 헌터들의 활약으로 몬스터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더군요. 그로 인해서 건물의 피해도 전혀 없었고요.”
“그래?”
진하는 회귀 전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 미국은 SS급 헌터끼리의 단합이 잘 안 됐던 거로 유명했었데?
그래서 진하가 회귀 전에만 해도 1차 게이트 폭주를 가장 늦게 막은 곳이 미국이었고.
‘미래가 바뀌어서 바뀐 건가?’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이미 미국의 협회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되긴 했다.
다만 얼마나 잘 막았기에 1년 만에 아예 흔적조차 없이 막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유럽은 물론 정말로 잘 막았다고 평가받는 한국조차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찾아보면 흔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미국은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흐음…… 일단 알겠어.”
진하는 아무래도 당장은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이라 어느 정도 생소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완전히 다를 줄이야…….
‘일단은 조직원이 물어다 주는 정보를 확인하고 움직여야겠네.’
그것과는 별개로 진하 역시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기도 했다. 그걸 위해서 수많은 아티팩트를 가져왔으니까.
* * *
3일 뒤.
“저기 다른 조직원은?”
진하는 지난 3일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조직원들을 생각하며 윤휘성에게 물었다. 아, 물론 완전히 아무도 안 보인 것은 아니고 한 명은 잠시 이곳에 들렀다가 가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3명은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게…… 원래는 간단한 협상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상대가 계속 물고 늘어져서 움직이기 쉽지 않답니다.”
“그래?”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한데….’
고작 5명밖에 없다니까 바쁜 건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바쁜 것 치곤 정보 수집률도 최악이었다.
지난 3일간 이들이 그동안 수집한 정보들을 모조리 읽어보았지만 그리 중요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S급 이상의 헌터 숫자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A급 조직원들로 보냈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더디지?’
전날 통화한 송하나는 분명 5명의 조직원 모두 엘리트급으로 보냈다고 그랬다. 심지어 신입에 속하는 윤휘성조차 이곳에 올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다고 했고.
그런데 그것치곤 정보 수집이 더디기도 했고, 눈앞에 윤휘성이 뛰어난 게 맞는 건지 아리송하기도 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총 3가지인데 말이야.’
정말로 미국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상태라서 정보를 거의 얻기 힘들다시피 하던가.
아니면 지금 눈앞에 가끔씩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윤휘성이 가짜라던가.
마지막으로 눈앞의 윤휘성이 진짜는 맞지만 다른 곳에 매수된 상태라서 이러고 있다던가.
‘일단 2번은 아니고.’
송하나가 보내준 신상 정보와 완전히 일치했기에 가짜라는 선택지는 지웠다. 변신이 가능한 아티팩트가 있긴 했지만 고작 신입 조직원 하나로 변신하자고 그런 아티팩트나 인챈트 물품을 사용했다기엔 타산이 안 맞았다.
그렇다면 결국 1번 아니면 3번이라는 건데. 진하는 3번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 길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보가 너무 없어서 1번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진하 님, 혹시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어딜 가는데?”
“심어둔 세작이 정보를 물어 왔다고 해서 확인하려 합니다.”
“다녀와.”
진하가 오케이하자 윤휘성은 곧바로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진하는 가방에서 돋보기 아티팩트를 꺼내 미리 준비한 윤휘성의 머리카락을 인식시켰다.
<100% 검색 완료.>
곧이어 핸드폰을 켜고 돋보기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지도 위로 아로히 새겨지는 윤휘성의 흔적들.
“이게 뭐야?”
진하는 돋보기에 나타난 흔적을 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윤휘성이 갔던 지역들을 살펴봤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가 행동한 위치들이 너무나 인위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로 잰 듯이 그가 갔던 모든 위치들이 동일했다. 숙소, 호텔, 음식점까지. 무슨 NPC라도 되는 마냥 항상 같은 곳과 같은 위치를 돌아다녔다.
심지어 날짜를 살펴보면 진하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러한 행동은 진행하고 있었다.
“왜 이리 규칙적이지?”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가능은 했다. 그런데 정보 길드에 속한 조직원이 이렇게 규칙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건 오히려 약간 수상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그가 간 곳의 위치는 전혀 수상할 게 없는 곳들이라서 뭔가 단서를 잡기도 애매했다.
“흠…… 내가 직접 뛰어야겠네.”
돋보기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알아봐야 될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진하는 몸을 일으켰다. 미국에 와서는 그래도 처음 며칠은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예상이 빗나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