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67화 (167/202)

#167

작은 소리였다.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상황이었는데 정작 상황이 닥치니 들리는 소리는 겨우 작은 소리 하나.

실 하나가 끊어진다고 해서 이 상황이 겉으로 뭔가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정말 변한 것은 단 하나. 줄이 끊어지고, 소리치던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멈춘 것뿐.

“끝난 건가?”

누군가가 긴장감을 담아 말했고, 그와 동시에 헤르메스의 몸이 천천히 기울더니 이내 털썩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끝’이라는 단어가 진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 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하…….”

한 명이 너무 지쳤던 건지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몸을 지탱하던 힘을 뺐다.

털썩!

마찬가지로 완전히 힘을 빼 버려 땅바닥에 누운 진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긴 건가?’

이겼다고 말하기에는 처참한 상황, 그렇다고 졌다고 말하기도 뭐한 상황.

그런 애매한 상황 속에서 진하는 씁쓸함을 느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뭔가 허무하게 끝난 것 같아서.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허탈함에 사로잡혔던 진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허탈함이 몸에 내려앉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전투 지역을 벗어나야 했으니까. 끝을 내야 하니까.

* * *

2일 뒤, 협회장실에서 레이나와 진하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피해 상황은 이렇게가 끝이에요.”

할 말을 마친 레이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진하 역시 그녀를 힐끗 한 번 보고는 마찬가지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 않네요.”

“그러게요.”

전투가 끝난 직후에도 느꼈지만 결과는 승리였지만 내용은 패배였다.

수많은 일반인들이 죽은 것은 물론, 헌터들의 피해도 상당했고, 그날 결전을 치렀던 사람들 역시 제 상태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요?”

“게이트로 들어갔어요.”

“게이트?”

“친우들의 묵념을 하겠다고요.”

레이나는 그 말과 함께 게이트 앞에서 헤라클레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앞으로 인간 세상에 나타날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아라.

―그걸 어떻게 믿지?

―안 믿어도 좋다. 어차피 더 이상 나에게 이곳에 올라올 이유는 없어. 올림포스로 돌아가도 그냥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할 생각이다.

그렇게 말하는 헤라클레스의 말투에는 씁쓸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의외네요. 헤라클레스 역시 죽일 줄 알았는데.”

막판에 그들의 곁에서 같이 싸웠을 뿐이지. 사실 헤라클레스 역시 그들과 적이었다. 몬스터였고 협회를 습격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순순히 보내줄 줄이야…….

“아직도 죽이고 싶은 건 마찬가지예요.”

“그럼 어째서…….”

“그렇게 되면 독일의 피해가 커지니까요.”

상대는 거의 레이나 급의 몬스터였다. 이기려 하면 못 이길 것은 없으나 헤라클레스는 개인이었고 레이나는 단체였다.

만약 그가 작정하고 숨는다면 찾기 힘든 것은 물론, 그를 견제하기 위해서 레이나는 언제나 불안함과 함께 독일에 묶여 있게 되어 버린다.

“그건 상대가 게이트 밖을 나와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싸울 순 없었잖아요. 그냥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죠. 다만, 게이트 보안에 더 힘을 쓰려고요.”

말을 마친 레이나는 진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괜찮죠?”

“뭐가?”

“동료분들이요.”

레이나의 말에 진하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가 왜 이리 조심스러운지 이해가 됐으니까.

“괜찮아. 뭐가 어찌 됐든 거의 다 살아있잖아? 그거면 된 거야.”

죽는 것보단 살아남은 게 낫다. 그렇기에 진하는 상황이 개떡 같을지언정 많은 팀원들이 살아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 * *

“후우…….”

로비로 나온 진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연기를 하던 몸에서 힘을 뺐다.

“개 같네.”

레이나에게 말한 것처럼 괜찮을 리 없었다. 어찌 됐든 그의 팀원 이전에 그의 친구들이었다.

아무리 죽은 것보단 살아 있는 게 낫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의 상태가 마냥 좋다고 느낀 건 아니었다.

―이기수 씨는 팔을 달 순 있는데 아마 재활률이 50%가 끝일 것 같습니다.

―엘리사 씨는 헌터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안 죽은 게 더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다친 둘, 이기수는 팔의 접합률이 떨어져 전투력이 떨어졌고 엘리사는 더 이상 헌터를 해서는 안 된다는 통보를 들었다.

‘아니, 그래도 둘은 나은 건가?’

이기수는 전투력에 지장이 있긴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능력은 팔을 중요하게 쓰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엘리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리사 역시 어찌 됐든 일상생활은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헌터가 힘든 것뿐 일반적인 생활은 가능했고, 그건 어쩌면 그녀에게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의 비해 단 한 사람은 희망도 대체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이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완전히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길어야 1, 2년이겠는데요?

처음 의사에게 그 소리를 듣고 진하는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다. 진하의 그런 반응에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한번 하예진의 수명이 1, 2년 남았다고 했고, 진하는 그제서야 그게 거짓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아니, 그걸 몰랐던 내가 더 바보지.’

생명 공유, 그런 부작용이 있을 만한 스킬이긴 했다. 아니, 그런 부작용이 오히려 당연한 스킬이었다.

그럼에도 진하가 몰랐던 건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반성은 끝났어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진하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로비에 있는 한 소파에 사서가 앉아 있었다.

“뭔가 반성 중인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더 필요하나요?”

“당신…….”

사서를 보자마자 뭐라고 쏘아붙이려고 했던 진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됐든 사서는 그들의 편이었고 마지막에 큰 도움을 준 존재였다.

사서의 말과 달리 관리자가 개입한 것 같았던 사건은 큰 문제였지만 그걸 그의 탓으로 돌리긴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 붕대들은 뭡니까?”

“이거요? 그냥 환자 코스프레?”

딱 봐도 중상으로 보이는 그의 상태를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역시 어디선가 싸우고 있었다는 거니까.

“그래서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거예요?”

사서가 건너편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하는 그의 말에 순순히 발걸음을 옮겨 사서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뭐랄까…… 너무 잘해 줘서 고맙네요.”

“갑자기?”

“갑자기라기보단 솔직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전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갑작스런 사서의 칭찬에 진하는 황당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사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이라는 듯 진하를 바라봤다.

“그래서 뭐 때문에 온 거죠?”

진하가 주제를 돌려 본론을 물어봤다. 자기 스스로 여유로운 직업은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왔을 리는 없고 뭔가를 얘기하기 위해서 온 거겠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옵니까?”

“그래서 목적은요?”

“에휴, 말을 말아야지. 알았어요. 얘기할게요. 관리자 이번에는 진짜로 못 움직일 거예요.”

사서의 말에 진하의 눈썹이 꿈틀했다. 분명 이 말은 처음 할머니와 있었을 때도 그가 했던 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진짜예요.”

“그걸 어떻게 믿죠?”

“이번에는 못 움직이는 이유가 다르거든요.”

원래 사서가 관리자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한 이유가 인과율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소모한 인과율이 높고, 더 이상 잘못 소모했다가는 진짜로 아바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관리자는 사서의 예상을 깨고 움직였다. 사실 직접적으로 움직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움직인 것은 사실, 그 부분은 그의 예상을 깬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라요. 왜냐하면, 저랑 싸워서 실제로 못 움직이는 거니까.”

사서와 붙은 관리자가 멀쩡할 리 없었다. 아무리 홈그라운드라지만 어쨌든 그는 신입 관리자. 사서를 그 정도로 만든 대가로 아마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다.

“그럼 이참에 죽이지 그랬어요.”

“말했다시피 그 부분은 제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관리자를 그렇게 상처입힐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사서가 정당한 일을 하는 중이었고 관리자가 그걸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관리자와 싸울 상황이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관리자가 못 움직인다 그걸 말해 주려고 온 건가요?”

“뭐 그것도 있고, 아마 아바타도 많이 약해졌을 거라는 걸 말하려고요.”

확실히 사서가 가져온 사실은 완전히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앞으로는 더욱 쉬워질 거고, 관리자 여기 약해졌으니까.

“근데 상황을 보아하니 여기도 완전히 나가리 같네요?”

사서는 모든 상황을 안다는 듯 말했다. 진하는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여기도 완전히 나가리죠.”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희생은 언제나 생기는 거니까.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언제 갈 건가요?”

“안 가요.”

“네?”

“지금은 절대로 안 간다고요.”

이 상태로 가 봤자 모두 개죽음일 게 분명한데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 사태도 죽을 것 같았는데 여기서 강행군으로 가면 진짜 모두 죽는 거나 다름없었다.

“뭐, 시간은 여유가 생겼으니 천천히 준비를 하시고 가셔도 되긴 하죠.”

“이제 할 말은 다 한 건가요?”

“아뇨. 더 있어요.”

“뭐죠?”

“잠시 말 상대 좀 해 주시죠? 그리도 돈도 빌려주세요. 저 지금 완전히 거지거든요.”

사서가 배시시 웃으며 진하에게 말했다.

* * *

일주일 뒤.

“1년.”

진하가 자신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팀원들은 진하가 말한 1년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은 절대로 못 이겨. 딱 1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해.”

“재정비라…… 확실히 나쁠 건 없지.”

“그러게요. 사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긴 하네요.”

하준수와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얘기했다.

“다음 지역은 아마 이번처럼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측이야. 그래서 우리는 1년간 재정비 후 미국으로 갈 겁니다.”

“저기…….”

“그리고.”

진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려던 팀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1년 뒤에 같이 가지 않을 사람은 같이 안 가도 돼요.”

진하의 말에 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하는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아까 질문을 하려던 사람들도 진하가 하려는 말을 질문하려던 거였겠지.

‘하긴 어쩔 수 없지.’

그들이 목숨을 걸었다고는 말해도 실제를 겪고 나선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에 맞닥뜨린 적은 정말로 개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1년간 재정비할 거예요. 그리고 그때, 다시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할 거예요. 이의 있습니까?”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진하는 모두 다 수긍했다고 판단하고는 팀원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진하, 그리고 때마침 진하의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진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뒤 전화를 받았다.

“진행한 일은 잘했어?”

[받자마자 본론이네.]

“그래서 부탁한 건?”

[거의 다 처리했어. 아마 바로 될 거야.]

“고맙다.”

[근데 정말…… 하아, 아니다. 나중에 얘기하자.]

“그래.”

용건을 마친 진하가 전화를 끊고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천장.

“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진하는 눈을 감은 채 계속 기도했다. 모두 잘 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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