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66화 (166/202)

#166

‘아냐. 정신 차려야 해.’

절망스러운 상황에 넋이 나가있던 진하가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절망스러운 상황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헤르메스의 거짓말에 모두 속아 넘어가선 안 됐다.

‘저 모습도 거짓말이야.’

마치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겠는 듯 말하는 상황도 거짓이었다.

만약 자신이 헤르메스였다면 이렇게 상태 유지를 하는 것보단 모두 굴복시켜서 더 절망스럽게 할 테니까.

‘분명 남은 신력은 별로없어.’

아티팩트로 인해 낮아진 신체 능력, 그리고 올라간 진하의 능력치까지 버티느라 신력이 거의 바닥이 났을 게 분명했다.

물론 아까처럼 이것조차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기만일 수도 있지만…….

‘굳이?’

더 이상 볼 게 있다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것보다 더 그가 재밌어할 상황은 없었다.

시간을 끌어 조금씩 절망에 물들어 가는 걸 보고 싶은 걸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노렸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극단적인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나도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이미 현장에서 짜낼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짜낸 상태였다. 여기서 뭘 더 할 만한 수단은 없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거라곤…….

“예진아! 이기수!”

진하의 외침에 숨어있던 하예진이 재빠르게 이기수가 있던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흐음…… 그분을 회복시키려고요? 시간이 되려나?”

진하 역시 이기수가 기절한 것은 확인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 중 지금 이 대치 상황에서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도 그밖에 없었다.

“일단은 버틴다.”

진하의 말에 헤르메스를 옥죄고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이것도 재밌긴 하겠네요. 타임 어택이라…….”

헤르메스가 즐겁다는 듯 진하에게 말했다. 그를 구속하고 있는 상황 중 하나가 먼저 풀려나느냐, 아니면 이기수가 그를 공격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해서 돌아오느냐의 싸움.

메인 디쉬 같이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무리로 완벽한 절망에 빠지게 하는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뭐, 디저트 정돈 되겠네요.”

* * *

“하아…… 죽겠네.”

한숨을 내쉰 사서는 낑낑대며 가까스로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몸을 기댔다.

“쫓아낸 건 좋은데 이제 어쩐다…….”

관리자를 쫓아낸 것까진 좋았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한쪽 팔은 뜯긴 상태고 기력 또한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헤르메스를 쫓아낼 수도 없는 상황.

‘하기야 그러니까 도망간 거겠지.’

아무리 서로가 죽일 수 없다는 규칙이 있다지만 그것도 편법을 쓰면 넘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관리자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사서가 개입할 수 없도록 막아선 거였었다.

목표를 이뤘으니 도망가는 게 당연한 거기도 하고…….

“아, 그냥 몰래 올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런 행위는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저번처럼 그냥 몰래 왔다간 자칫 잘못했다간 헤르메스랑 관리자 둘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당당하게 온 거였다. 어차피 그가 하려 했던 일은 차원에 간섭을 하려는 헤르메스를 막으려는 거였고, 이건 그의 공적인 일 중 하나였으니까.

“죽일 놈…….”

그런데 설마 그걸 정말 죽일 듯이 막아설 줄은 몰랐다. 아니, 도대체 왜 그리 인간을 미워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질투하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다니…….

“라기엔 그런 놈들이 많구나.”

사서는 혀를 찬 뒤 정신을 집중해 헤르메스가 떨어진 곳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와…… 근데 이거 어떻게 하냐.”

상황을 파악한 사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인간들만으로 아무리 분신이라지만 헤르메스를 저 정도까지 몰아붙인거는 정말로 칭찬해 마땅한 일이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저거 안 될 것 같은데.”

보아하니 이기수를 회복시켜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제시간을 맞추기 어려울뿐더러 성공 확률도 적었다.

“하아…… 어떻게 할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간접적으로 그들을 약간 도와주는게 다였다. 직접 헤르메스를 상대하면 모를까 이렇게 인간들을 도와주는 건 인과율을 소모하는 행위였으니까.

“진하 씨를 강화…… 해도 어려울 것 같고, 이기수씨를 회복시키기도 애매하고.”

양쪽 다 쓸 수 있는 인과율을 모두 사용한다고 해도 애매했다. 진하의 힘을 강화시켜 봤자 저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이기수를 회복시킨다 하더라도 성공 확률 자체가 낮았다.

“이기수 씨가 회복될 수 있게 시간을 끌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거…….”

고민하던 사서의 눈에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가 들어왔다. 정말 작고 변수가 많은 가능성.

하지만 된다면 이 모든 게 아주 좋게 해결될 수 있는 방법.

“이게 그나마 효율적이고 낫겠다.”

결론을 내린 사서는 가지고 있는 인과율을 두 개로 나눴다. 그리고는 작게 나눈 인과율은 이기수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아까 보았던 가능성을 향해 보냈다.

“하아, 제발 잘되라.”

사서는 목적지로 향해 나아가는 인과율을 보며 기도했다.

* * *

“흐음…… 시간 거의 다 된 것 같네요.”

헤르메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과 다르게 능력치 이전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다른 게 이미 시간이 끝난 상태였다.

그를 중독시켰던 히드라의 독의 해독이 거의 끝난 상황, 이미 그렇게 될 줄 알았기에 헤르메스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다른 분들도 고생이시네요. 계속 한 자세로 몇 분이 넘게 서 있으시기 힘들죠?”

헤르메스의 말에 모두들 이를 갈았다. 몇 분이 넘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죽이기 위해 계속 힘을 주어도 헤르메스에 의해 고정된 상태였으니까.

“자, 그럼 이제 조금 지루해졌으니 나가…….”

말을 하던 헤르메스가 돌연 말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 멀리서 날아오는 조그만 빛줄기를 보며 소리쳤다.

“이 미친 사서 새끼가!”

“사서?”

갑작스럽게 놀라는 헤르메스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들어 그가 쳐다보는 곳을 쳐다보았고 이내 진하 역시 멀리서 날아오는 빛 한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 꺼져!”

헤르메스가 갑작스레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진하는 재빠르게 외쳤다.

“무조건 버텨! 저 빛이 올 때까지만 버텨!”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쥐고 있던 요요를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다른 일행들 역시 잡거나 찌르던 힘을 젖 먹던 힘까지 더욱 짜내었다.

“이…… 이!”

헤르메스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인간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서의 개입이라니…….

‘저 인간들을 풀어 줄까? 아냐, 그건 위험해. 히드라의 독은 언제 해독되지?’

공중에 멈춰 세운 인간들을 풀어 줬다간 자칫 잘못해서 오히려 더 위험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히드라의 독이 완전히 해독되기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어느새 빠르게 다가온 빛은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고 헤르메스는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야, 겨우 인과율이었던 건가.”

사서의 힘이라서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져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겨우 인과율이었다. 그것도 매우 적은 양.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는 건가?’

순식간에 진정된 헤르메스가 자신에게 흡수되려 하는 인과율을 보며 생각했다. 저 정도 인과율이라고 해 봤자 그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정도, 그 정도라면 딱히 헤르메스도 아쉬울 것 없었기에 그는 가만히 흡수되는 빛을 바라봤다.

“하아, 추태를 보였네요.”

사서의 힘이라서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다른 힘이었다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하필이면 올림포스에서 깽판 친 전적이 있던 사서여서…….

헤르메스는 완전히 흡수되는 빛을 보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나 빛은 흡수가 되었지만 워낙 작은 양이어서 그런지 딱히 커다란 반응은 없었다.

“자, 그럼 이제 마저 하던 거를…… 윽!”

갑작스러운 두통에 헤르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두통의 원인으로 추측되는 인과율을 재빠르게 찾기 시작했고, 이내 인과율이 어디로 흡수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인간?’

헤르메스는 휘젠의 영혼에 흡수된 인과율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귀한 인과율을 고작 인간의 영혼을 강화시키는데 쓰다니…….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그 인과율로 그가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아무리 인간의 영혼을 강화시킨다 한들 그의 영혼이 고작 인간의 영혼에 질 리 없었다.

“이건 고작 시간 벌이…….”

그 순간 헤르메스는 사서가 뭘 노렸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저 멀리 달려오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고작 한다는 게 이겁니까?”

사서라는 작자가 이렇게 낮은 확률의 도박에 판돈을 걸 줄이야…….

헤르메스는 재빨리 자신의 영혼 한쪽에서 날뛰는 휘젠의 영혼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인 건 맞았으니까.

“뭐지?”

진하는 계속해서 표정이 변하는 헤르메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서가 뭔 짓을 한 것 같긴 한데 뭘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하야. 데려왔어.”

때마침 도착한 하예진과 이기수가 재빠르게 진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상황을 파악한 이기수가 하예진에게 말했다.

“부탁할게.”

이기수의 말에 하예진이 이기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생명 공유.

그에게 스킬을 거는 하예진, 그와 동시에 이기수는 전격을 이용해 딱딱이를 띄운 다음 심호흡을 했다.

따닥!

전격에 의해 눌려지는 버튼, 막대한 전격이 생성됨과 동시에 이기수와 하예진의 얼굴이 모두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이 정도 출력으론 애매하단 걸 깨달은 이기수가 이를 악물며 딱딱이를 한 번 더 누르기 위해 전격을 조정했다.

그 순간.

털썩!

쓰러지는 하예진, 이기수는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하예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가장 멀쩡한 편에 속한 하예진이 갑작스레 쓰러진 이유를 알 수 없는 이기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 더 누를 수 있을까?’

“그냥 쏴.”

“뭐?”

“어차피 이미 다 한계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하가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헤르메스를 붙들어 놓은 일행이었다.

그들 모두 지칠 대로 지쳤고, 사실 더 이상 붙잡기도 힘든 상태였다. 여기서 아예 쏘지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쏘는 게 나았다.

까득!

빠르게 생각을 마친 이기수가 하는 수 없이 생성된 전격을 그대로 쏘아 냈다. 그와 동시에 붙어있던 몸을 빠르게 빼내는 일행들.

“캬아악!”

전격을 맞은 헤르메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하가 씁쓸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역시…….’

직격으로 심장에 틀어박히긴 했지만 출력이 부족했다. 비명을 지른 것과 달리 헤르메스가 비틀거리며 멀쩡히 일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 하…….”

계속해서 힘을 쏟아부었던 레이나나 헤라클레스는 이미 전력 외로 봐야 했다. 그나마 멀쩡한 건 허공에 붙잡혀 있었던 하준수와 홍승원, 그리고 아직 체력이 좀 남은 진하가 다였다.

“젠장, 끝이네.”

완벽히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진하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더이상 생각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장난치냐!]

그 순간 갑작스럽게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깜짝 놀란 진하가 헤르메스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에서 들린 목소리는 휘젠이었으니까.

[네가 언제부터 포기를 입에 담았냐!]

“휘젠?”

[그렇게 포기하는 놈 아니었잖아. 그리고 너희가 그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좀 닥치십시오!”

헤르메스가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약한 영혼 주제에 정말로 끈질기게 버티며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주욱―

그 순간 그의 팔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헤르메스가 뭐지 싶어 쳐다보니 쓰러져 있었던 엘리사가 어느새 반쯤 일어나 그의 팔찌를 붙잡고 있었다.

“하, 진짜…… 이렇게 구질구질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가 원한 것은 인간들이 희망에 목숨을 걸었다가 절망에 빠진 채로 끝나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중간까지 정말 재밌던 상황을 사서를 시작으로 이기수, 휘젠, 엘리사까지 도대체 왜 이렇게 끝을 내지 못하게 막으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흐지부지하게 질질 끌거나 원하지 않는 형태로 끝나는 연극은 정말로 그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인간이면 인간답게 좀! 포기하십시오!”

헤르메스가 복사하려는 엘리사를 보며 기운을 바꾸기 위해 신력을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신력.

[미안하지만 구질구질한 게 인간이라서 말이야.]

그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휘젠의 목소리, 헤르메스는 휘젠이 자신의 기운이 바뀔 수 없게 신력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걸 깨닫고 무참히 얼굴이 구겨졌다.

“이것들이 진짜!”

[구질구질해도, 재미가 없어도…… 해피 엔딩이기만 하면 돼. 그치?]

헤르메스의 정신 속에서 신력을 틀어막는 휘젠이 팔찌를 잡고 있는 엘리사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 내 부탁을 들어줘서.]

“복사.”

엘리사의 말과 함께 복사되는 헤르메스의 기운.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에 엘리사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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