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65화 (165/202)

#165

“헤르메스!”

제우스의 외침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이미 대처를 취하기는 늦은 상황, 헤르메스의 칼날이 무자비하게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러게 방심을 하지 말았어야지.”

제우스와 헤르메스 둘은 결국에 적이었다. 제우스가 습격을 당했다고 해서 그걸 지켜만 봐야 할 의무도 없었고 그럴 사이도 아니었다.

헤르메스가 나서지 않는 듯한 제스처는 기만책, 제우스도 그럴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기수와 재희의 공격이 위험해 순간 그를 놓치고 말았다.

“흐음, 그래도 나름 즐거웠어요. 복제품 씨.”

“이, 이……!”

“자, 이제 복제품은 퇴장하시죠.”

제우스는 이를 악물고 모든 신력을 모아 부서진 심장을 재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헤르메스는 아예 재생할 수 없도록 단검을 비틀어 제우스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촤악!

헤르메스의 단검이 뽑히고 천천히 무너지는 제우스, 헤르메스는 쓰러지는 제우스를 아주 즐겁게 바라보았다.

터억!

그 순간 헤르메스의 팔을 붙잡는 제우스.

“아직, 아직 안 끝났다.”

“추하게 미련 가지지 말죠? 재미없으니까.”

기분이 확 나빠진 헤르메스가 자신을 붙잡은 제우스의 손을 떼기 위해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쉽게 떨쳐 내지지 않은 제우스의 손, 그제야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손 쪽에 모든 신력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나는…….”

파직, 파지직!

“복제품이 아니다!”

커다란 전격이 둘을 휩쓸었다. 순간적으로 밤이 사라질 만큼 커다란 빛이 도시를 뒤덮었고 그 빛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사그라졌다.

털썩!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던 제우스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있던 자리에는 검게 탄 물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잠시 뒤, 검게 탄 물체가 스르륵 재생되더니 이내 헤르메스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젠장, 끈질기기는…….”

헤르메스는 이를 갈며 쓰러진 제우스를 바라봤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 건지 설마 마지막에 자폭을 할 줄이야…….

“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헤르메스는 이제는 천천히 회복되어 가는 몸을 보며 혀를 찼다. 겉으로는 멀쩡해지겠지만 제우스의 전격으로 인해 꽤 많은 신력에 타격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걸 회복하려면 꽤 많은 인간을 잡아먹어야 할 듯싶었다.

타악!

헤르메스의 몸이 거의 회복된 순간 뛰쳐나와 그의 팔을 붙잡는 헤라클레스. 이미 그가 숨어있던 걸 알고 있던 헤르메스는 자신을 붙잡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잡아서 어쩌려고요?”

“복수다.”

눈을 빛내며 한쪽 팔을 봉쇄하는 헤라클레스, 그의 그런 모습에 헤르메스는 피식 웃었다.

“고작 그런 걸로…….”

화륵!

말하는 빈틈을 노리며 뛰쳐나온 레이나가 하얗게 불타는 검을 헤르메스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터억!

“저를 잡을 수 없습니다.”

헤르메스는 반대 손으로 레이나의 검을 붙잡은 채 말했다. 레이나의 불꽃은 그의 손을 끊임없이 불태웠으나 그것보다 그의 손이 더욱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다.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고요.”

헤르메스가 공중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압!”

이미 들켰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내뻗는 하준수와 그의 팀원인 홍승원, 둘의 공격은 각각 그의 머리와 눈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멈춰라.”

나지막하게 말하는 헤르메스, 그러자 그에게 달려들던 둘의 몸이 바로 코앞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렇게 제 몸을 묶어 놓는다 한들 뭐가 바뀌나요?”

“바뀌지.”

어느새 헤르메스의 뒤에 나타난 진하가 그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당신의 공격도 쓸모…….”

촤르르륵.

“이게 뭐죠?”

검으로 공격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온몸을 칭칭 감는 요요를 보며 헤르메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느껴지는 사념과 마력으로 보아서 꽤 강한 아티팩트인 것 같긴 했지만 그래봤자 고작 그게 다였다.

피잉!

“엘리사!”

진하가 요요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그러자 숨어있던 엘리사가 헤르메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아…… 진짜 이렇게 미련해서야.”

그녀의 모습을 보며 헤르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이렇게 자신의 신력과 신체를 구속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하등쓸모 없는 짓이었다.

“왜 상대가 안 되시는 걸 모르십니까.”

헤르메스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달려든 사람들을 떨쳐 내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아니,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

“이건…… 히드라의 독이군요. 하지만 언제?”

지속적으로 몸을 마비시키는 독을 느끼며 의문을 표하는 헤르메스, 그의 시선에 헤라클레스가 붙잡은 팔이 보였다.

“하아, 제우스…….”

완전히 재생되지 않은 상처 틈새로 헤라클레스가 독을 넣었음을 깨달은 헤르메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완전히 묶였네요.”

히드라의 독 또한 어차피 복제라서 그에게 마비 외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 다만 금세 회복되긴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자신의 몸은 거의 묶인 거나 다름없었다.

신력을 쓰려 해도 신력 역시 허공에 묶은 둘과 계속해서 자신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힘을 주는 레이나, 그리고 몸을 파고들려는 요요의 줄에 대다수를 할당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그사이 어느새 도착한 엘리사가 재빠르게 헤르메스의 몸을 터치했다.

“켁.”

“엘리사!”

진하는 헤르메스의 몸을 터치하자마자 온몸에서 피를 쏟아지며 쓰러지는 엘리사를 보며 소리쳤다.

“설마 당신들 생각을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요?”

어찌 됐든 이 몸의 주인은 휘젠이었다. 그러니 그 몸을 차지한 헤르메스에게 그의 기억이 전달되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구석에서 소멸당하지 않고 버티는 휘젠 덕에 모든 기억을 읽을 순 없었지만,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아티팩트와 엘리사의 능력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복사가 만능이긴 하지만 적어도 상대를 잘 골랐어야죠.”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사기나 다름없는 능력이라도 약점은 존재했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그릇의 크기, 인간들 내에서는 그래도 그릇이 큰 편이라서 복사가 그나마 수월했을지 몰라도 그를 상대로는 아니었다.

“대야에 담긴 물을 물잔에 담으려 하다니 쯧쯧, 생각보다 멍청들 하시네요.”

애초에 될 수 없는 작전이었다. 격도 낮고 신체의 내구도도 낮았으며 심지어 담을 수 있는 양조차 적었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여유로웠던 거였다. 이 작전이 얼마나 말이 안되고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를 알았으니까.

“자…… 이제 어쩔 건가요?”

헤르메스가 자신을 묶어두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며 말했다. 상황은 그들이 자신을 묶어 놓은 상황이지만 이제는 반대였다.

그가 이 상황에서 풀려나는 순간 그들은 죽을 것이며 그 순간은 히드라의 독이 완전히 해독되는 순간이었다.

비틀

그때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엘리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헤르메스의 팔에 감긴 팔찌를 잡고 실을 툭 하나 끊었다. 능력의 전달 대상은 진하였다.

“노력이 가상하네요.”

헤르메스는 다시 한번 그의 실을 끊기 위해 팔찌를 잡아당기는 엘리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주욱―

잡아당겨 보지만 끊어지지 않는 팔찌, 그 모습에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팔찌를 잡아당기던 엘리사의 눈이 흔들렸다.

“저는 전령의 신이기도 하고 도둑의 신이기도 합니다. 또 여행자, 목동, 체육, 웅변, 도량형, 발명, 상업, 거짓말쟁이의 신이기도 하죠.”

“아…….”

엘리사는 어느새 바뀌어 버린 헤르메스의 기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그의 기운은 거의 초 단위로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자, 다시 한번 복사하겠어요? 참고로 다시 복사하면 죽을지도 몰라요?”

짓궂은 얼굴로 엘리사를 쳐다보는 헤르메스, 진하는 그의 그런 모습에 엘리사에게 소리쳤다.

“엘리사, 다른 방법을…….”

하지만 진하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엘리사가 헤르메스의 몸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행되는 복사.

주르르륵

아까와는 같은 양의 피가 그녀의 온몸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엘리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붙잡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도움이 돼야 해.’

진하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 휘젠이었다. 언제나 낯을 가리는 그녀를 챙겨 주었고 항상 다가와 줬던 사람이 휘젠이었다.

모든 팀원들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그중에서도 휘젠이 특히 좋아했다. 복사를 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팀원들이 그녀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보통은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했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고 챙기는 팀원들조차 다들 조금씩은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진하와 휘젠이었고 그중에서도 딱하다는 감정을 조금 가진 진하와는 다르게 휘젠은 완전히 그러한 감정이 없었다.

“그…… ㄹ…… 니…… ㄲ.”

휘젠을 위한다면 그의 마지막 말을 지켜야 하는 게 그녀의 보답이었다.

또 하나의 실이 끊어졌다. 그리고 엘리사에게서 쏟아지는 피가 더욱 많아졌다.

툭, 투둑.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끊어지는 팔찌, 처음에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그녀를 쳐다보던 헤르메스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이, 더이상 복사하면 진짜 죽는다고요?”

그녀의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고작 6개를 끊은 것만으로 이미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투둑

두 개의 실이 더 끊어졌다. 이제 남은 실은 3개, 그 모습에 헤르메스의 표정은 완벽하게 굳어졌다.

“이 미천한 인간들이!”

놀라 소리친 헤르메스가 기운을 바꾸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이렇게 되면 엘리사가 받는 타격은 거의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한 번 더 끊어지는 실, 이제는 2개밖에 남지 않은 실을 보며 헤르메스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천천히 실을 잡아당기는 엘리사를 쳐다보았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하지 말란 말이야!”

남은 실은 한 개, 헤르메스는 완전히 빠져나간 이 몸의 신체 능력에 경악하며 마지막 실에 손을 뻗는 엘리사를 보며 소리쳤다.

“아, 안 돼…….”

엘리사의 손이 마지막 실에 닿고 끊기 위해 힘을 주려는 순간.

“……진 않지?”

푸화학!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엘리사. 그런 모습을 보며 헤르메스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킥킥킥킥킥! 아, 재밌어라. 난 이런 반전이 너~무 좋단 말이에요? 어때요, 꽤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반전 아니에요?”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헤르메스, 그는 곧이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하 일행을 보며 말했다.

“될 리가 없잖아요. 킥킥, 설마 진짜로 희망을 가진 건 아니죠?”

애초에 헤르메스는 초당 수백 번까지 기운을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초당 한두 번으로 기운을 변경한 건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엘리사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슬아슬할 때까지 몰아붙임으로써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고, 그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나아가는 인간.

“하아…… 정말 재밌었어요. 진짜 오랜만에 즐거움이네요. 본체도 꽤나 좋아하겠는데요?”

“이…… 개자식이!”

헤르메스의 말에 진하가 요요의 끈을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팔을 붙잡고 있던 헤라클레스 역시 그의 팔을 뽑기 위해 힘을 주었다.

“아, 소용없어요. 이 몸이 약해져서 될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의미 없답니다.”

애초에 신력을 거의 다 썼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공격한다지만 딱 맞게 모든 신력을 쓴다는 건 너무 소설 같은 얘기지 않는가?

애초에 신력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고, 팔찌가 끊어질 때마다 진하에게 넘어가는 신체 능력은 신력으로 보충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아, 능력이 다시 되돌아오는 데 꽤 걸리죠?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헤르메스가 굳어져 있는 존재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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