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64화 (164/202)

#164

갑작스럽게 들린 말에 진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존재가 그들의 적이나 다름없는 신인 헤라클레스였으니까. 헤라클레스는 그런 진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친구를 위해 간다는 거 나도 같이 가겠다.”

“네가?”

“그래, 나도 가겠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문제라면 차고도 넘쳤다. 당장 레이나만 해도 헤라클레스를 기회만 되면 죽일 것 같은 눈으로 항상 쳐다보고 있었고, 그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원들 역시 그를 경계하고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헤라클레스가 참여한다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제우스와 싸울 때야 긴급했으니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거지 그들이 한편인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 같이 가겠다는 거지?”

하준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신이었다. 그것도 사람들 제물로 바쳐 소환되고 사람들을 죽인 신, 인간을 개미처럼 바라보는 신인 그가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절대로 순수한 의도로 보기 힘들었다.

“간단해. 이제 내 목표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거든.”

“목표?”

“내가 지키려 했던 인간은 아주 예전에 죽었고, 그 대체재인 올림포스도 사라졌다. 심지어 복수를 위해 제우스를 죽이려 했더니 모든 것이 복제품이고 이 기억은 가짜였지.”

말을 하는 헤라클레스는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없게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 아무것도 없다고 이런 식으로 주저앉으면 그 빌어먹을 제우스도 진품 헤르메스도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복수인가?”

진하의 물음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아, 복수야.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라면 적어도 멍청이 짓을 한 제우스를 단죄하고 올림포스를 우롱한 진품을 방해하고 싶거든.”

헤라클레스의 말에 모든 일행의 시선이 복잡해졌다. 그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표정, 진하는 그런 그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좋아. 너도 참여해.”

지금은 하나의 전력도 아쉬운 판이었다. 헤라클레스가 무슨 생각을 가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막는 거였으니까.

* * *

타다다닥!

이기수와 재희는 아테네 시내를 달리면서 출발하기 전 진하가 말해 주었던 계획을 상기시켰다.

―잘 들어. 이건 너희들밖에 할 수 없는 거니까. 둘은 일행이랑 따로 떨어져서 저격할 위치를 찾아.

다른 사람과 달리 유일하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재희와 이기수만이 가능한 역할. 둘은 어느새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 전투지역을 보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럼 부탁해.”

“걱정 마세요.”

이기수는 재희를 두고 거리를 벌렸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이기수는 심호흡을 한 뒤에 손에 쥔 딱딱이를 내려다 보았다.

―이기수, 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엘리사랑 휘젠, 이렇게 셋이서 만들었다는 거 혼자서 만들 수 있어야 해. 그게 아니면 제우스는 위협 자체를 느끼지 못할 테니까.

확실히 최소 그 정도의 위력이 아니라면 제우스에게 생채기 이상은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할 수 있을까.’

셋이서도 만들기 힘들었던 전격의 창이었었다. 그때와 같은 도핑도 그를 보조해 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혼자, 혼자서 모든 과정을 해내야 했다.

“아니, 할 수 있어.”

따다다닥!

순식간에 눌러진 버튼, 4번이나 눌러진 딱딱이에서 순식간에 평소의 8배나 되는 전격이 표출되었다.

지지직, 지직!

이기수는 자신의 몸을 조금씩 태우는 거대한 전격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도저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양의 전격이었다.

‘그래도 해야 해.’

터질 것 같은 전격, 이기수는 우선 다른 제어는 포기하고 우선 압축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격이 압축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었으니까.

치지직, 지직!

이기수의 조정에 따라 아주 조금씩 압축되기 시작하는 전격, 전격은 곧이어 이기수의 뜻에 따라 길죽한 모양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됐다!”

구슬땀을 흘리던 이기수는 조금씩이지만 형상이 잡히는 전격을 보며 기쁨에 찬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너무나 이른 기쁨이었을까?

압축되어 거의 형성되었던 전격은 다시금 커지기 시작하더니 전격을 조정하는 이기수의 팔을 새까맣게 태우기 시작했다.

까드득!

“제발 좀!”

이기수는 다시금 커지는 전격을 보며 이를 악물며 다시 전격을 압축시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쓸모없는데 이것조차 못하면 그는 진짜로 쓸모없는 놈이 되는 거였다.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강해졌다고 생각했고 부족하다고 생각되자 진하에게는 원치 않는 짓을 하게 강해지려 했다. 자신이 생각했지만 이기적이고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도움이 되어야 했다.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그에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되라고!”

파지지직!

이기수가 온 힘을 다해 전격을 짓눌렀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적어도 딱 한 번만 쓸모 있는 행동을 하고 싶었다.

파직, 파직.

다시 압축되기 시작하는 전격, 이기수는 강하게 반발하는 전격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됐든 이 전격들은 자신의 전격이었다. 자신의 능력에서 나왔고 자신이 통제하는 힘이었다.

“말 좀 들어!”

키잉―

마지막 짓눌림과 함께 길쭉한 모양을 형성하며 빛나는 막대 하나. 전격으로 이루어진 막대는 안정된 형상을 유지한 채 이기수 앞에 둥둥 떠 있었다.

파스스슥

그와 동시에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그의 양팔. 이기수는 없어져 버린 양팔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둥둥 떠 있는 막대 하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이름을 뭐야?

셋이서 연습하던 중 휘젠이 이기수에게 물었던 질문.

―이름?

―응, 능력자들은 이미지화를 잘할 수록 능력의 구현이 더 쉽다며. 그래서 이름을 정한다고 했는데 아니야?

―아니, 맞긴 해. 근데 그건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셋이서 하는 건데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 있나?

―뭐, 어때? 이왕하는 거 이름도 붙이자고. 어쨌든 네 능력이니까 이름은 네가 정하는 걸로!

“후우…….”

이기수가 저 멀리 보이는 제우스를 쳐다보았다. 이미 압축에 거의 모든 힘을 쓴 상황, 제우스를 맞추기 위해 직접 조준하는 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직!

이기수의 몸으로부터 작은 전격 한줄기가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전격은 곧바로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고, 이기수는 멀어지는 전격을 보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

“이름은…….”

치익―

발을 크게 뒤로 젖히는 이기수.

이 공격은 절대로 빗나가서는 안 되고 반드시 맞아야 하는 창이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뒤로 젖힌 발을 크게 휘둘렀다.

꽈앙!

커다란 소음과 함께 쏘아지는 창, 이기수는 날아가는 창을 보며 남은 말을 마저 토해 냈다.

“궁니르야.”

그 말과 동시에 이기수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 * *

콰앙!

제우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며 창으로 헤르메스를 찔러 갔다. 하지만 그는 날카롭게 찔러 오는 창을 뱀처럼 부드럽게 피하며 웃었다.

“좀 더 힘을 내는 게 어때요?”

“닥쳐라!”

제우스는 짜증 나게 웃는 헤르메스를 향해 다시 한번 창을 내질렀다. 창에서 튀어나온 전격은 곧바로 헤르메스에게 쏟아졌고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뺀 그는 새까맣게 타버린 자신의 옷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친 것도 우리 아버지를 닮았네.”

약 올리듯 움직이며 달려드는 헤르메스, 가벼운 그의 말투와는 달리 그가 내뻗는 단검은 제우스조차 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매서웠다.

치익―

제우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검, 피하자마자 곧바로 반격을 하기 위해 창을 치켜든 제우스는 순간 자신에게 날아오는 커다란 힘을 느꼈다.

쉐에엑!

‘번개?’

너무나도 익숙한 힘, 그리고 설사 자신이라 해도 맞으면 피해를 입을 만한 힘이기에 제우스는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피잉!

하지만 그와 동시에 창의 궤도가 바뀌며 다시 제우스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눈썹을 치켜올린 제우스는 다시 한번 창의 공격권에서 벗어났지만 창은 또 한 번 그를 노리며 궤도를 바꿨다.

‘어째서?’

파직!

의문을 가진 순간 느껴지는 작은 이질감, 그제서야 제우스는 전투로 인해 인식하지 못했던 티끌 같은 전격 하나가 자신의 전격과 섞여 있는 것을 느꼈다.

“오, 재밌는 상황?”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모습에 공격도 하지 않은 채 그를 구경했고, 그 모습에 제우스는 급격한 모멸감을 느꼈다.

감히 인간들이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신들이 싸우는 곳에 공격을 날렸고, 헤르메스는 그런 모습을 재밌는 연극을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 미천한 것들이!”

제우스가 손에 붙잡은 아스트라페를 크게 휘둘렀다. 애초에 전격은 그의 힘, 완전하게 소환된 무기가 아니기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피한 것뿐이었지 없애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휘두른 창이 날아오는 궁니르를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흩어지기 시작하는 전격, 제우스는 흩어지는 전격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참 전부터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재희는 냉정한 얼굴로 숨을 골랐다.

―기수가 날린 전격은 아마 제우스에게 큰 타격을 주기 힘들 거야.

―그럼 왜 날려야 하죠?

―어찌 됐건 그건 이기수의 전격, 피하든 아니면 없애든 분명 제우스에게 빈틈이 드러날 거야. 왜냐하면 제우스는 창만 아니라 헤르메스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좀 더 은밀한 공격을 가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었다. 재희는 이미 한껏 당긴 활로 제우스를 겨누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격.”

진하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아티팩트 활에서 아주 작게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화살로 모든 빛이 모여들었다.

<장난감 활: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활, 하지만 생각보다 위험하다. 내구도가 매우 취약한 게 특징.>

<신체 능력 한 단계 상승, 명중률 상승, 화살의 위력 증가, 스킬: 저격 사용 가능.>

<저격: 사용자와 활의 모든 힘을 화살 하나에 모은다. 단, 한 번 사용한 이후 활은 부서진다.>

기회는 단 한 번, 헤르메스와 이기수에게 모든 신경이 분산된 순간 그녀가 날려야 하는 공격이었다.

퉁―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맑게 울리는 작은 소리, 긴장감과는 달리 너무나도 가볍게 울린 소리는 순간적으로 화살을 날린 그녀조차 제대로 쏜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털썩!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화살을 날린 그녀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았고, 화살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빠르게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제우스의 머리를 향해 빨려 들어가듯 꽂히는 화살.

뿌드득!

순간 기형적인 소리와 함께 제우스의 목이 빠르게 젖혀졌다. 그와 함께 그녀의 화살이 제우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제우스는 그것도 막거나 피할 가능성이 커. 누가 뭐라 해도 미친놈이니까. 근데 상관없어.

애초에 제우스는 상정 외의 존재, 그들이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공격이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진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공격이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좋고,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좋았다. 중요한 것은 그 공격들이 그에게 위협이 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빙고!”

제우스의 뒤에 나타난 헤르메스가 씨익 웃으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피하느라 순간적으로 헤르메스에 대한 경계가 흐트러졌던 제우스는 어느새 접근한 헤르메스를 보며 눈이 커졌다.

―어차피 그 정도까지 가면 그 뱀 같은 헤르메스 놈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모든 게 진하가 예측한 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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