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61화 (161/202)

#161

“후우…….”

빛이 사라지고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양쪽에 있는 신들과 무릎 꿇은 신도들 중앙에 굳건히 서 있는 한 남자였다.

근육질에 흰색 옷을 입은 남자, 얼굴은 젊어 보였지만 길게 긴 수염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갓 소환된 제우스를 보며 진하가 말했다. 이제야 갓 소환된 신일 뿐이었다. 여기서 바로 잡는다면 커다란 희생 없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피잉!

진하에게서 튀어나온 삼각자들이 빠르게 신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에 신들이 재빨리 삼각자를 쳐내기 위해 뛰쳐나왔다.

채앵! 챙!

“어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삼각자들이 각기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에게 막혀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까지가 진하가 노리던바.

파지지직!

삼각자를 쳐내는 사이 이기수의 전격이 그물망 모양으로 날아가 두 신들을 잠시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화염 폭풍

그 틈을 이용해 날아가는 레이나의 화염 폭풍이 신들을 지나쳐 제우스를 향해 쏘아졌다. 곧이어 화염을 뒤따라 날아가는 진하의 요요.

콰앙! 콰직!

화염이 제우스를 맞춤과 동시에 요요가 화염을 뚫고 들어갔다.

‘됐어!’

진하는 길게 늘어진 요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을 느끼며 요요를 회수하기 위해 손을 당겼다.

패앵!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요요.

“진하 씨.”

그에 맞춰 레이나가 입술을 깨물며 진하를 불렀다. 진하의 요요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화염 역시 주변으로 퍼지지 않은 채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멀쩡한 모습을 보인 채 나타나는 제우스.

“어떻게?”

진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급하게 날렸다지만 레이나와 진하가 날린 공격은 갓 소환된 신이 쉽게 받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아니, 백번 양보하더라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진하가 날린 요요는 제우스의 손에 잡혀 있었다.

꽈악!

제우스가 손에 잡힌 요요를 부수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단단한 요요는 그의 힘에도 부서지지 않았고 그 모습에 제우스의 눈동자가 작게 이채를 띄었다.

“돌아와.”

진하가 재빠르게 요요를 당기며 말했다. 그러자 제우스의 손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요요, 제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요요를 멈추기 위해 힘을 더욱 강하게 주었지만 끝내 요요는 제우스의 손을 벗어나 진하에게 돌아갔다.

“신기하군…….”

소환된 제우스의 첫마디였다. 빨갛게 변해 버린 자신의 손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하는 제우스의 모습에 진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버지, 인간 세상에 강림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돌아온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간 세상이라…….”

“아버지, 굴욕이시겠지만 저희가 막는 사이 인간들을 흡수하시고…….”

말하던 디오니소스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들이 쓴 마석과 인간들은 분명 많았다.

수치만 따지면 대략적으로 30% 정도의 힘을 가진 채 제우스가 소환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래서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소환되자마자 인간들을 흡수하고 도망치는 게 계획이었다. 그 후에는 인간들을 흡수하면서 돌아다니면 되니까.

그런데 지금 소환된 제우스는 아무리 봐도 거의 100% 상태로 소환된 상태였다. 완벽하다고 말하긴 힘들었지만 인간들을 제물로 바친 걸 생각하면 최상의 상태로 소환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흐음…… 이 정도 양으론 소환하기 쉽지 않겠는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인간을 바라보는 제우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네가 더 쓸모가 없구나.”

“아버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제우스를 보며 디오니소스가 불안함에 그를 불렀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너의 희생은 잊지 않겠다.”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제우스. 갑작스럽게 움켜잡힌 머리를 빼려고 안간힘을 쓰던 디오니소스는 순간 아테네의 말을 떠올렸다.

―올림포스의 중심은 아버지인 제우스, 그만 있으면 올림포스는 언제든지 건국돼.

제우스를 위해 자신들이 미끼가 된다고 했을 때 아테네의 말을 듣고 디오니소스는 수긍했다. 어쩔 수 없지만, 올림포스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신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상위 신이면서 올림포스를 위해 희생한 그들을 디오니소스는 존중했다.

“아버지 설마……?”

그제서야 느껴지는 희미한 신력들, 제우스의 거대한 신력에 가려졌던, 이제는 찌꺼기만 남은 신력들이 제우스의 몸에서 감지되었다.

“너도 이제 가거라.”

“아버지!!!”

뒤늦게 디오니소스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인간들은 이미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린지 오래였고 그 역시 발끝부터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재가 되어 죽어 가는 와중에도 제우스를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불만이더냐. 결국, 내 배에서 나왔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거늘.”

“어떻게! 어떻게 모든 신들을 잡아먹을 수 있어!”

그가 올림포스의 중심인 건 맞았다. 그리고 지도자로서 그만 살아있다면 올림포스는 영원할 거라는 말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도자층에만 속하는 말, 그들이 이끄는 백성인 하급 신들은 아니었다.

백성이 있어야 왕이 있는 법인데 제우스는 그걸 모조리 무시하는 행위를 해 버린 것이었다.

“나와 하나가 됐으면 좋은 거 아니겠더냐.”

아무렇지 않게 디오니소스를 바라보며 말하는 제우스, 디오니소스는 그런 그를 보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어느새 눈 바로 아래까지 재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흐음, 조금 부족한데.”

제우스의 말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프로디테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제우스는 잠시 고민에 잠기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뭐, 내 아이를 낳을 신 정도는 한 명 있어도 상관없겠지. 인간들을 공포로만 다스릴 수도 없고.”

제우스의 말에 아프로디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통해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부인인 헤라 역시 제우스의 속으로 흡수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오너라 벼락이여.”

제우스의 말과 함께 아테네 상공에 떠 있던 먹구름이 조금씩 움직이며 그의 바로 위쪽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쿠릉!

제우스가 바로 위쪽으로 뭉친 먹구름은 이내 옅은 번개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제우스 바로 앞에 떨어지는 커다란 벼락, 벼락이 떨어진 자리는 깊게 파였으며 그 위로 기다란 창이 곧게 꽂혀있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지?”

제우스가 창을 뽑아 들며 반대편에 있는 진하 일행을 바라보았다. 진하를 비롯한 일행들은 제우스가 내뿜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못 이겨.’

단순하게 수치상으로 예상했을 때와는 달랐다. 수치와는 다르게 몸으로 느껴지는 제우스의 기세는 그들이 모두 덤벼든다고 해도 이기기 매우 어렵다고 위험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하물며 아티팩트로 보이는 창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나를 방해하긴 했지만 너희들은 꽤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지. 어떠냐 지금이라도 나를 섬기겠다면 특별히 너희들을 거두겠다.”

“지랄.”

제우스의 말에 이기수가 빠르게 대답했다. 제우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모두 본 상황이었다.

모든 사람을 희생시켜 만든 몸에 인간들을 제물로 바쳐 얻은 무기를 가진 자를 따른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흐음…… 넌 나와 같은 힘을 쓰는 아이구나.”

이기수의 몸에 흐르는 전격을 알아챈 제우스가 재밌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많은 신화에서 그와 비슷하게 벼락을 다루던 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저렇게 강한 벼락을 다루다니…….

“너는 특히 탐이 나는구나.”

제우스의 시선에 소름이 돋은 이기수가 진하를 보며 말했다.

“이길 수 있어?”

“아니.”

“그럼 어떻게 해?”

“나타나길 기다려야지.”

“누굴?”

진하는 이기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도망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이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그놈은 나타날 게 뻔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역시 죽을 테니까.

“거기서 쳐다만 볼 것이냐? 헤르메스.”

제우스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진하도 시선을 올리니 언제 온 것인지 헤르메스가 웃으며 제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아버지 잘도 알아채셨네요?”

“설마 내가 아들인 네가 온 것을 모르겠더냐?”

“그래요?”

“물론이지. 그리고 어째 아들들이 하나같이 버릇이 없구나.”

“그건 당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우스의 말을 받아치는 한 목소리, 진하 일행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인 헤라클레스는 진하와 헤르메스 그리고 제우스를 잠시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제우스 하나만 묻겠다. 너는 올림포스를 위하는가?”

“물론이지.”

“그럼 어째서 모든 신들을 잡아먹은 것이지?”

헤라클레스가 이를 갈며 물었다. 이곳에서 그가 믿을 존재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인 헤르메스는 물론이고 그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린 인간들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제우스의 행보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여러 신력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본 디오니소스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어째서라…… 당연한 거 아니더냐?”

“당연하다고?”

“내가 올림포스 그 자체니, 모두가 희생한 건 당연한 것이다.”

당당하게 말하는 제우스, 그 모습에 헤라클레스는 구역질이 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모든 신들의 죽음을 희생이라고 표현한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꼭 죽인다.”

그 말과 함께 달려드는 헤라클레스, 제우스는 그런 그를 보며 기껍다는 듯 웃으며 그에게 마주 달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하가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하데스는?”

“들으셨잖아요. 이미 제우스에게 잡아먹혔죠. 그 덕에 소환도 못 했고요.”

편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헤르메스, 진하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걸 일일이 따질 시간이 없었다.

“배신 때리지나 말아라.”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제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다른 일행들 역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제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헤르메스는 그런 그들을 보며 아직 출발하지 않은 휘젠을 보며 말했다.

“아직 안 쓰셨네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글쎄요. 그걸 안 쓰시면 여기서 좀 힘드실 텐데…….”

헤르메스는 휘젠을 보며 싱긋 웃어 주고는 그대로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 헤르메스의 뒷모습을 보며 휘젠이 이를 악물었다.

툭, 툭.

그때 그의 어깨를 건드리는 엘리사, 그녀는 이를 악무는 휘젠을 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걱정해 줘서 고맙다. 신경 안 쓸 거야.”

그 말과 함께 휘젠이 전투 중인 곳으로 출발했고, 엘리사는 그런 그를 보며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그녀 역시 몸을 움직였다.

* * *

“으하하하! 즐겁구나!”

헤라클레스가 휘두른 주먹을 붙잡아 날려 버린 제우스가 크게 웃었다. 그런 그를 향해 수많은 공격들이 쏟아졌지만 그는 대부분의 공격을 몸으로 때우며 돌진했다.

‘미친!’

제우스를 공격하던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수많은 존재들이 공격하고 있지만 대부분 그의 몸에 흠집만을 낼 뿐 도저히 유효타를 먹일 수 없었다.

그나마 레이나의 화염과 헤라클레스의 주먹, 헤르메스의 단검이 그에게 상처를 내고는 있었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직 하나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한번 받아 보거라!”

제우스의 주먹에서 뻗어 나가는 전격, 진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전격에 칼을 세워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파지직!

순간 뒤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전격이 진하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제우스에게서 뻗어 나온 전격과 부딪쳤다.

파직, 파지지직! 콰앙!

그와 동시에 이상한 방향으로 휘는 전격, 방어를 준비하던 진하는 뒤를 쳐다보았다. 이기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진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막을 수 있어. 그러니까 공격에만 집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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