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콰아앙!
레이나의 불꽃에 밀려 허공으로 날아가는 포세이돈, 레이나는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화염을 날려 대며 포세이돈을 향해 돌진했다.
‘쉬워.’
연신 포세이돈을 몰아치던 레이나는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상대가 약한 건 아니었지만 그 수준은 기껏해야 저번에 싸운 아레스보다 아주 약간 더 강한 정도, 신들의 목표 중 하나라고 하기엔 너무나 약했다.
지금까지 오래 버틴 이유도 그저 이곳이 물로 가득한 바다였기에 겨우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포세이돈이 이를 악물며 삼지창을 휘둘러 화염을 쳐냈다. 그리고 동시에 바닷물로 해일을 일으켜 레이나를 덮치게 만들었다.
“조잡해.”
그 말과 함께 검을 스윽 긋는 레이나, 덮치던 해일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파고든 레이나가 당황하는 포세이돈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카앙!
“크윽!”
피할 틈을 놓친 포세이돈이 다급히 삼지창을 들어 막았지만 충격을 해소하지는 못했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륵!
삼지창과 마주친 검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불꽃, 노란 불꽃을 잡아먹기 시작한 하얀색은 곧이어 검의 전체를 하얗게 물들였다.
치이익―
그와 동시에 아주 조금씩이지만 맞닿은 곳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삼지창, 포세이돈이 그 모습에 몸을 빼내려 하였지만 레이나는 검을 더욱 강하게 내리눌러 그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인간놈이…….”
포세이돈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물을 모두 끌어모아 계속해서 그녀를 공격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화염을 생성시켜 모든 물을 증발시켰다.
“감히 인간이 신에게 대적해!”
“그럼 신다운 면모를 보여 주던가.”
“내가 모든 힘만 다 찾았어도…….”
무척이나 분해하는 포세이돈. 레이나는 그런 포세이돈을 보며 검에 더욱 힘을 주었다.
피잉―
그 순간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단검 하나. 바로 뒤에 올 때까지 인지하지 못한 레이나가 다급히 검을 회수해 단검을 쳐냈다.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려는 포세이돈을 피해 다급히 몸을 멀리 떨궜다.
‘누구지?’
레이나는 물러나며 또 다른 적의 추가적 공격을 경계하며 다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추가적인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푸욱!
어느새 포세이돈의 뒤에 나타난 헤르메스가 포세이돈의 심장을 찌른 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헤르메스……!”
“약간은 부족하지만 뭐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어.”
“네가 어떻게 나에게…….”
“뭐라는 거야. 복제품 따위가.”
촤악!
포세이돈의 몸에서 뽑힌 헤르메스의 손에는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심장이 잡혀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경계하는 레이나를 바라봤다.
“헬로우?”
“죽어.”
빠르게 돌진해 헤르메스에게 검을 내리긋는 레이나. 헤르메스는 재빨리 잡고 있던 포세이돈의 시체를 그녀에게 던짐과 동시에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서걱!
시체가 반으로 갈라지고 바로 헤르메스를 쫓아가려던 그녀는 어느새 사정거리 이상으로 멀어진 헤르메스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럼 저는 이만.”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헤르메스. 레이나가 다급히 주변을 감지해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헤르메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쯧.”
혀를 찬 그녀는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안쪽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주 먼 곳에서 바라보던 헤르메스는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확실히 인간치고는 강해.”
원본의 힘을 이어받고 모든 힘을 찾은 헤르메스인데도 그녀와 붙는다면 아마도 패배할 듯싶었다.
그나마 이렇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권능을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거지, 만약 방랑과 도둑을 담당하는 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붙잡혀 그도 죽었을 것이다.
두근 두근
주인이 죽었음에도 계속 뛰는 포세이돈의 심장, 그 모습을 보며 헤르메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한 방 먹었는걸.”
포세이돈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3개의 신력을 느끼며 헤르메스가 혀를 찼다.
그가 원한 것은 그가 전해 주는 정보를 이용해 신들이 도망을 가고 인간들이 그들을 쫓으며 계속되는 소모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각하게 밀리지 않게 마석을 지원했던 것이고.
그런데 앙큼하게도 아테네는 그런 헤르메스의 뜻을 꿰뚫어 보고 마석을 빼돌리고 모든 신들을 미끼 삼았다.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말이야.”
그가 원한 것은 온전치 못하게 3명의 신들이 부활하는 것이지 온전하게 부활하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다른 신들을 희생해서 소환된 포세이돈은 여러 신력이 섞인 바람에 기운이 약간 혼탁해져 버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비록 계획이 틀어졌지만 크게 문제는 없었다. 목표로 했던 3명 중 1명의 심장은 확보했고, 또 곧이어 소환될 하데스의 심장도 쉽게 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제우스. 아마도 계획과는 다르게 거의 모든 힘을 가지고 소환될 것 같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도와주는 인간들이 힘을 합친다면 어렵긴 해도 그를 제거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더라도 헤르메스가 같이 힘을 합치면 되니까.
“하아…… 내가 전투의 신이었어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령의 신이기에 원본의 기억을 받았지만 전투력은 다른 신들에 비해 낮았다.
그 덕에 같이 기억을 이어받은 제우스나 하데스에게 밀려 함부로 빠르고 직선적인 계획이 아닌 멀리 돌아서 가는 방법을 택해 버리고 말았다.
“뭐, 그래도 다 잘 됐으니 된 거지.”
혹시 모를 방해꾼인 헤라클레스도 가짜 정보를 수백 개나 흘려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혹시 모를 움직임에 대비해 감시도 붙였으니 감시를 붙였으니 더 이상 그가 할 것은 없었다.
이제는 인간과 신들이 결판나기를 기다리며 차분히 구경만 하면 될 뿐.
“모든 것은 올림포스를 위해서.”
이 모든 게 올림포스를 위해서였다.
* * *
“전장은요?
레이나는 전장으로 달려가다 전장에서 이쪽으로 오는 진하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잭과 기수가 전장에 참여했으니까 괜찮아요.”
껍데기뿐인 3명의 12 주신은 죽였고 남은 거라곤 고작해야 모든 힘을 찾지 못한 신들뿐이었다.
그러니 위험한 신이 있을 리도 없었고, 있다 한들 잭이나 이기수 선에서 해결 가능한 정도였다.
“그나저나 포세이돈이랑 헤르메스는요? 연락한 게 사실이에요?”
진하의 물음에 레이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락했던 대로에요. 포세이돈은 죽었고 헤르메스는 도망갔어요.”
“젠장, 좀 더 경계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니에요. 애초에 헤르메스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 안 한 제 잘못이죠.”
애초에 인간을 돕든, 아니면 딴생각을 가졌든 만약 이곳에서 할 일이 있었다면 따라왔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헤르메스는 그러지 않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건 포세이돈을 발견한 직후에도 똑같았다.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이번은 그들의 전력을 소모시키려는 뜻이 보였으니까.
심지어 에뢰섬으로 출발하기 전에는 혹여나 싶어 헤라클레스에게 장소와 시간을 제외한 신들을 공격한다는 계획 중 일부 흘려 헤르메스가 움직일 폭을 제한하기도 했다.
‘근데 설마 올 줄이야…….’
물론 인간을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점은 다행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온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 하데스의 부활은 물론 헤라클레스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꽤 신경을 썼을 텐데…….
“아무튼 피해가 없으면 됐어요.”
그리고 레이나 덕에 대충이나마 헤르메스의 목적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목적은 3명의 주신을 죽이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과 신들의 싸움을 소모전으로 유도한 것도 설명이 됐다.
‘다만, 왜 3명의 주신을 죽이려는지는 모르겠단 말이야.’
원본의 기억을 이어받아 강해졌기에 단순히 3명을 제치고 그가 올림포스의 왕이 되려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혹시 헤르메스가 포세이돈을 죽일 때 뭔가 말하거나 특이한 건 없었나요?”
“음…… 심장을 가져갔어요.”
“심장?”
“네, 단순히 죽이려 했다면 심장을 터뜨리고 끝냈으면 됐는데 심장을 온전히 뽑아내고 머리를 베어서 죽였어요.”
“심장이라…….”
어째서 심장을 가져간 것일까…….
신력을 흡수하기 위해?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아무래도 헤라클레스를 찾아가 봐야겠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었고, 또 그사이 애매한 놈은 언제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아마도 중립인 헤라클레스라면 해답을 알고 있겠지.
‘이참에 이용해 먹을 수 있으면 좋고.’
굳이 이쪽에 붙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그저 이 사실을 알리고 헤라클레스가 헤르메스를 적대만 해도 충분히 좋은 상황이었다.
“아, 그리고 지금 당장 협회에 연락해서 모든 정보망 돌리세요. 빠져나간 신을 찾아야 해요.”
아테네가 두 명의 신을 빼돌렸다. 그건 아마도 제우스의 부활을 위해서일 거고, 그렇다면 빠르게 찾는 게 중요했다.
“알았어요. 빠르게 찾을게요. 그리고…….”
말을 하던 레이나가 한쪽을 바라보았다. 진하도 그녀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봤고, 이내 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달려오는 한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지.”
진하가 칼을 붙잡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다가오던 무리가 멈춰서고 그중 앞에 있던 한 여자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송하나 님의 부하인 이세현이라고 합니다.”
“송하나의 부하라고?”
“네, 송하나 님이 급하게 정보를 전달하라고 하셔서…….”
그녀의 말에 진하가 의아해했다. 이곳이 전투 중임을 알 텐데 어째서 부하들을 보낸 거지?
보낸 이들 모두 강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평균 B등급 헌터들이었다. 만약 이곳의 전투가 치열했다면 그들은 완전히 죽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용이 뭔데요.”
“10분 전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커다란 먹구름이 관찰되었습니다. 인위적인 것으로 보였고 그곳에 상주해 있는 정보원의 연락이 끊겨 급히 확인해 본 결과 아테네의 사람들이 죽어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테네가?”
“네. 정확하게 추측은 되지 않으나 모든 생명체가 죽었을 것으로 판명되며 그 수는 최소 67만 명입니다.”
순간 진하는 어질어질해지는 걸 느꼈다. 최소 67만 명.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리고 아테네가 신들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그리고 제우스가 어디서 소환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추가적인 정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알려 줘.”
“네.”
이세현은 대답을 마치고 곧바로 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진하는 레이나를 보며 빠르게 말했다.
“협회도 빠르게 정보를 파악해 주세요. 그리고 여기를 정리하자마자 바로 아테네로 가죠.”
“알겠어요.”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전기를 이용해 바깥에 있는 협회와 연락을 했다. 그리고 진하는 이를 악물며 빠르게 전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부터는 1분 1초가 급했다.
* * *
그리스, 아테네시.
그곳에 위치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그곳을 구경하러 왔던 인간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으며 오직 살아있는 존재는 제우스 신전 중앙에 위치한 두 명의 신뿐이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은 채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발부터 아주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한 존재가 있었다.
무릎까지 생성된 존재를 보며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는 희열에 찬 눈으로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들의 신인 제우스가 인간들의 세상에 강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