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나는…….”
진하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다시 한번 똑같이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럴 수 없어.’
그 한마디만 내뱉으면 되는데 도저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말 한마디면 휘젠이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그리고 위험한 전투에서도 뺄 수 있다.
그러니 한마디만 하면 된다…… 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하아…….”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런 만큼 진하는 친구들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싸우려는 이유, 진하가 모든 걸 홀로 짊어지지 않고 그들에게 힘을 빌리는 이유. 그 모든 건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들의 뜻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나만 물을게 정말로 후회 안 해?”
“후회 안 해.”
“위험한 게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어.”
“그땐 내가 스스로 막을게. 너도 잘 알잖아.”
알았다.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진하가 휘젠에게 넘겨준 아티팩트. 총 11개로 이루어진 아티팩트가 그를 막는 방법이었다.
한 가닥에 10%씩 능력치를 전달하는 아티팩트, 그리고 마지막 11번째는 자신의 생명까지 모조리 전환해서 남에게 넘겨주는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진하야. 내가 아티팩트를 받았을 때 했던 말 기억해?”
“……기억해.”
모든 사람들이 아티팩트를 받은 뒤 공항으로 가기 전 진하는 휘젠을 불러 아티팩트에 대해 설명했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끊어지지 않겠지만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니까 시간을 준다면 다른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아니, 원한다면 진하가 쓰는 아티팩트 중 검을 잠시 빌려준다고도 했었다.
―그럼 이 아티팩트는? 그리고 그럼 너는 어떻게 하려고.
―그건 내가 써야지. 그리고 나야 아티팩트는 2개가 있으니까.
―흠, 그럼 그냥 이거 내가 쓸게. 어차피 마지막 한 개만 안 끊으면 되는 거 아냐?
그의 말대로 아티팩트는 그가 원하지 않는 한 끊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찝찝했기에 다시 한번 물었던 것인데 휘젠은 괜찮다는 듯 진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티팩트를 착용했었다.
“하아…. 알겠어. 대신 아직은 사용하지 마. 조금 더 알아보자.”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는 게 나았다. 휘젠의 맘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물건이었다.
진하는 그가 내민 손에서 구슬만을 집어 들었다.
“협회에 요청에서 철저하게 검사를 진행할 거야. 그리고 그 이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다시 넘겨줄게.”
“그거면 돼.”
휘젠은 진하의 말에 씩 웃으며 손에 쥔 팔찌를 다시 자신의 팔에 찼다.
“나 간다.”
더 이상 할 말도 또 말하기도 힘들어진 진하는 그대로 훈련장을 나왔다. 그리고는 층을 올라 로비에 도착한 뒤 스마트폰을 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협회 로비로 와라.”
짧은 말을 끝낸 진하가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시스템창을 이것저것 건드리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앉아 있는 곳에 이기수가 찾아왔다. 이기수는 깊은 고민에 빠진 채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진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왜 불렀어?”
“받아.”
진하는 아무 말 없이 이기수에게 무엇인가를 던졌다. 받아서 확인해 보니 일전에 이기수가 주었던 딱딱이였다.
“그거 가지고 어떻게 되는 나는 이제 몰라.”
“너…….”
“대신 죽으면 다시 찾아서 죽여 버릴 줄 알아라.”
하려던 말을 모두 마친 진하가 그대로 협회를 나갔다. 이기수는 그런 진하를 따라갈까 하다가 이내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대신 진하가 넘겨준 딱딱이를 확인해 보았다.
<딱딱이: 상대방을 놀래키기 좋은 물품, 매우 튼튼하다. 한 번 사용으로 사용자의 몸에 부하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 출력의 전격을 형성시킨다.>
<최초의 한번 이후 누른 횟수마다 위력이 기존보다 배로 늘어난다. 단, 한계를 넘어선 전격을 형성 시 생명력이 깎인다.>
<신체가 한 단계씩 강화된다. 전격의 부하가 줄어든다.>
<제한: 이기수.>
* * *
다음 날, 덴마크 에뢰섬에서 떨어진 한 바닷가.
“준비는 다 됐나요?”
진하가 묵묵히 에뢰섬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나에게 물었다. 레이나는 그런 진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됐어요. 그런데 그들은 안 오는 건가요?”
“뭐, 안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하의 말에 레이나의 안색이 펴졌다. 역시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신들과 동맹을 맺은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기야, 헤르메스는 둘째치고 헤라클레스는 만나면 안 싸우는 게 다행이지.’
이미 협회의 인물들을 죽인 전적이 있는 만큼 레이나와는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게 나았다. 사실 레이나에게도 숨길까 했지만 어쨌거나 일을 진행하는 중추인 이상 숨길 수 없어서 얘기를 해버렸다.
‘헤르메스 개자식.’
헤라클레스야 그렇다 치지만 설마 헤르메스가 빠져나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껏 못 가는 이유를 없애 줬는데 또 못 가는 이유를 만들 줄이야…….
―하데스 님의 소환을 시작하려고요.
정말 딱 알맞게 마석이 모였을 리는 없으니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양을 속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따지기에도 뭐하고, 그렇다고 미안하다는 듯이 거부하는 놈에게 강요를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강요를 하려고 했지만 헤르메스가 못하게 막아섰다.
―대신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각 신들의 정보와 약점들을 알려 줄게요.
―그리고 제가 휘젠 씨에게 준 거, 이 올림포스에서 그 신력을 이용해 나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진짜로 신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뿐이에요. 제 신명을 걸죠.
실제로 협회를 통해 검사를 진행했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협회와 헤라클레스, 헤르메스의 맹세까지 정말로 그냥 물품일 뿐이었단 거다.
‘물론 못 믿지만.’
아무리 맹세를 했다고 해도 믿을 순 없었다. 이상은 없기에 휘젠에게 다시 넘겨주긴 했지만 역시나 너무 찜찜했다.
“1분 뒤에 포격이 시작될 거예요. 우리들은 그 이후에 진입할 거고요.”
“알겠어요. 그러고 보니 무인 섬에 가둔다는 사람들은요?”
“아무도 가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진하는 레이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실제로는 그 어떤 공문도 그들에게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쪽으로 보내기만 한 건가.’
공문이야 덴마크 쪽으로 보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다른 고위직 간부들과 협상해서 받기만 하고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 입장에선 혹시 모를 사이비교를 없애서 좋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를 없앨 수 있어서 좋을 테니까.
후우웅!
진하의 청력에 미사일이 날아오는 소리가 잡혔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의 머리를 지나 에뢰섬을 향해 떨어지는 미사일.
콰아앙!
에뢰섬을 향해 떨어져 내리던 미사일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아마도 숨어 있던 신들 중 한 명이 요격한 것 같았다.
‘뭐, 소용은 없지만.’
모든 신들을 S급으로 상정하고 날리는 미사일이었다. 당연히 핵을 쓰진 못하지만 대신 양으로 때려 박을 순 있었다.
휘잉! 훙!
첫발이 시작이라는 듯 곧이어 마치 정어리 떼처럼 에뢰섬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미사일들.
쾅! 콰앙!
수많은 미사일들이 요격에 의해 허공에서 빠르게 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거기까지는 인식했던 부분이었다. 애초에 S급이 드글거리는데 대부분의 미사일이 허공에서 터질 것은 당연히 예상했던 거였다.
“대신 충격파는 못 막겠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느껴지는 충격파였다. 당연히 바로 위인 에뢰섬에서 받아들이는 충격파와 더 심할 것이고 그것들로 인해 체력이 깎이기만 하면 됐다.
쏴솨솨!
거기다가 민간에선 사용이 금지되었던 백린탄 또한 섞여 있었기에 미사일이 터지고 있는 에뢰섬은 완전히 불바다나 다름없었다.
“근데 진짜로 아티팩트로 막아집니까?”
진하는 살짝 불안한 마음에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매만졌다. 정화 마법과 열기 보호 마법이 인챈트된 물품이라지만 상대는 백린탄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미 시험해 봤으니까요. 단 두 시간이지만 충분히 막아 줄 거예요. 협회 예산의 절반이 사용된 물품이니까 믿으세요.”
레이나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하기야 백린탄에 맞는다고 바로 죽을 만한 헌터들은 애초에 배제했으니 괜찮긴 할 듯싶었다.
“가죠.”
시간을 확인한 레이나가 배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배는 시동이 걸리더니 에뢰섬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전 불지옥이네.”
점차 가까워지는 에뢰섬은 완전히 불지옥 그 자체였다. 독이나 다름없는 연기들이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열기는 아직 완전히 가까워지지 않았음에도 후끈거렸다.
“이 정도면 조금은 피해를 봤겠네. 어떻게 할 거야 바로 진입할 거야?”
“아뇨, 굳이 저기서 구워지고 있는데 바로 들어갈 필요는 없죠. 화염 계열 능력자들 앞으로!”
레이나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능력자들 중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능력자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섬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섬을 향해 날아간 화염 마법들은 마을을 향해 쏟아졌고 안 그래도 뜨거웠던 섬은 더욱 뜨겁게 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작은 섬이라서 다행이에요.”
기분 좋은 듯 싱긋 웃으며 말하는 레이나. 진하는 그 모습에서 그녀의 독한 면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출렁~
기우뚱
순간적으로 배가 크게 기울었다. 배가 기울어진 것을 느낀 헌터들이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펴보았고, 곧 사납게 치는 파도를 발견했다.
출렁! 출렁!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는 파도는 어느새 커다란 배를 미친 듯이 흔들기 시작했고 너무나 강한 흔들림에 몇몇 헌터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주변의 물건을 붙잡았다.
쏴아아!
“비?”
그리고 갑작스럽게 쏟아지기 시작하는 소나기, 진하는 그 모습에 한가지 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콰앙!
그 순간 커다란 충격과 함께 기울어지는 배, 그와 함께 배는 구멍이라도 뚫린 미친 듯이 흔들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잭!”
“오케이!”
레이나의 명령에 잭이 재빠르게 바다를 얼려 섬까지 일직선으로 길을 내었다. 헌터들은 재빨리 가라앉는 배에서 벗어나 잭이 만든 길을 따라 섬으로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레이나!”
“알아요.”
진하가 레이나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말했으나 이미 레이나 또한 눈치를 챈 듯싶었다.
‘아마도 포세이돈의 자식들, 최악은 포세이돈.’
이런 짓을 할 만한 신은 포세이돈 또는 그의 자식들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반적인 물에는 꺼지지 않는 백린탄이 비가 쏟아지자마자 순식간에 꺼지기 시작한 게 그 이유였다.
문제는 이게 포세이돈의 자식들이 힘을 합쳐서 불을 끈 건지 아니면 포세이돈이 나타난 건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포세이돈이 나왔다기엔 제우스와 맘먹는 삼신이기에 그가 소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반대로 포세이돈이 아니라기엔 그의 자식들이 이렇게 쉽게 불을 끄고 배를 전복시킬 만한가 하면 그것도 애매했다.
힘을 모은다면야 가능하겠지만 힘을 합친 것치곤 힘의 흐름이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래서 진하는 혹시 몰라 레이나에게 경계하라고 소리친 것이었다.
“섬으로 들어서자마자 조별로 활동한다! 절대로 혼자서 신들을 상대하지 마!”
그 말과 함께 레이나가 제일 먼저 섬을 향해 뛰어들었다.
피잉!
그와 동시에 그녀를 향해 쏘아진 창 하나. 레이나는 침착하게 불을 두른 검을 휘둘러 창을 비껴냈다.
“이런 미천한 것들이!”
커다란 외침과 함께 드러나는 파란 머리의 미남.
커다란 위압감을 뽐내는 남자를 보며 진하는 한눈에 그가 포세이돈이라고 추측했다. 왜냐하면 아레스나 다른 신들과는 전혀 다른 위압감을 뿜고 있었으니까.
“제가 상대할게요!”
―홍염의 날개& 화염 폭풍
레이나의 등에서 돋아난 불의 날개가 휘둘러짐과 동시에 포세이돈을 향해 커다란 화염이 몰아쳤다.
“어딜!”
다가오는 화염에 삼지창을 휘둘러 주변에 있는 물을 끌어모은 포세이돈이 재빠르게 물을 장벽을 만들었다.
치이이익!
거대한 화염이 물과 부딪치며 막대한 수증기를 만들어냈고 그 사이로 수많은 헌터들이 섬 안으로 속속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섬으로 들어선 진하는 잠시 레이나 쪽을 힐끗 바라봤다. 화염을 두른 채 포세이돈과 격돌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행히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모든 헌터들이 섬으로 찢어지고 잭과 이기수, 하준수 역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진하는 계속되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캉! 카앙!
“미천한 인간들이!”
“죽어!”
사방에서 들리는 전투 소리, 그 소리들은 진하의 맘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왜 포세이돈이 나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