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55화 (155/202)

#155

유럽 협회에서 좀 떨어진 작은 카페. 장사가 잘되지 않는 건지 건물 안에는 사람이 오간 흔적이 거의 없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카페로 들어선 남자는 느긋한 걸음으로 카운터로 다가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카페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그런 주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에스프레소 하나요. 아, 그리고 얼음물도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주인은 곧바로 커피를 제조하기 위해 돌아섰고 남자는 그런 주인을 잠시 본 뒤에 카페 인테리어를 살펴봤다.

“식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카페 안은 온통 식물로 가득 차 있어 안 그래도 작은 공간이 더욱 좁아 보였다. 커피를 만들던 주인은 돌아보지 않은 채 가볍게 대꾸했다.

“네, 제 낙이죠. 식물만큼 솔직한 생물도 없거든요.”

“그래요? 겉모습과 달리 많이 섬세하시네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사람들이 겉모습이랑 많이 다르다고들 그러더군요.”

실제로 커피를 만드는 주인은 겉으로만 보면 UFC에 나갈 듯한 근육을 가진 덩치의 소유자였기에 그런 오해를 받을 만했다.

“주문하신 에스프레소와 얼음물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남자는 주인이 건넨 커피와 물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얼음물을 조금 마신 뒤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얼음물에 부었다.

주인은 남자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에스프레소를 물에 섞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즉석에서 만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휘휘 저은 후 한입 마셨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커피가 영 맛이 없네요.”

“물에다가 커피를 타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아, 한국은 이게 정석이라서요. 그나저나 신이 타준 커피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남자의 말에 주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메리카노를 마저 마시며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지?”

“뭘 어떻게 알아.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돌아다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이제는 존대까지 생략한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카페의 주인 헤라클레스를 바라봤다.

“내 얼굴을 아는 존재는 거의 없을 텐데?”

적어도 헤라클레스는 자신과 마주한 인간들의 모습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서양인은 아무리 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기세 덕에 각성자인 건 알았지만 설마 자신을 아는 인간일 줄이야…….

“아, 얼굴? 네 얼굴이야 영상화시키면 되는 거고, 내 얼굴은 이게 진짜 얼굴이 아니니까.”

남자는 가볍게 자신의 얼굴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몸과 얼굴이 점차 변하기 시작하더니 검은 머리의 남자로 변했다.

“너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검은 머리의 남자, 진하는 싱긋 웃으며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헤라클레스가 숨어있는 곳이 유럽 협회 바로 코앞일 줄이야…….

“어떻게 찾은 거지? 겉으로 보기엔 내 모습은 그저 인간과 다를 바 없을 텐데?”

지금 헤라클레스의 모습은 겉모습은 바뀌지 않을지언정 느껴지는 기세 등은 완전한 일반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얼굴을 안다고 해도 그래봤자 몽타주,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을 신으로 확신하고 다가올 리 없었다. 하물며 안팎으로 바쁜 지금은 더욱이 그랬다.

“뭐, 나만의 시크릿 방법이랄까?”

비밀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리 큰 비밀은 아니었다. 그저 원래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인 돋보기를 이용해 협회에 남아 있는 헤라클레스의 흔적을 추적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헤라클레스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진하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게 일반인으로 보였던 그를 신이라고 확신한 이유였다.

‘한국어를 너무나 쉽게 알아들었으니까.’

그가 끼고 있는 한 달짜리 인챈트 물품은 어디까지나 주변의 말들을 번역시켜 주는 거지 그의 말을 외국어로 변환시켜 주는 물품이 아니었다.

즉, 진하는 헤라클레스에게 한국어로 주문을 했었다. 헤라클레스는 그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아듣고 커피를 제조한 것이고.

‘신의 특혜 중 하나지.’

어떠한 언어든 이해하고 말하는 언어를 그들의 자국어로 들리게 하는 신의 특징 중 하나였다.

“아무튼, 배짱도 좋아. 이렇게 근처에 숨고 말이야.”

“그래서 뭘 어떻게 할 거지? 주변을 살펴봐도 너 혼자뿐이다. 설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뭐, 이기려면 못 이길 건 없지.”

습격 이후 헤라클레스가 딱히 힘을 회복하지는 않았을 테니 전체적인 스팩은 진하가 앞섰다.

물론 신들이 사용하는 사기적인 아티팩트가 있긴 했지만 진하 역시 그에 밀리지 않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으니 절대로 질 이유는 없었다.

“근데 여기까지 와서 싸우긴 그렇잖아? 난 대화를 하러 온 거라고.”

“대화?”

“그래, 제우스나 하데스, 헤르메스. 누가 됐든 그들을 못 믿어서 나온 거지?”

정확히 어떤 점에서 이간질을 당한 건지, 아니면 이상함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았다면 결국 셋 다 못 믿는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내가 그들을 못 믿는다고 하여 인간의 편인 건 아니다.”

“누가 편해 달래? 그냥 정보 교환을 하자는 거지.”

“정보 교환?”

“셋에 대한 관계를 내가 알려 줄게 어때?”

진하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잠시 고민했다. 무언가가 바뀐 셋의 관계, 헤라클레스가 제일 알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덥석 받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진하가 그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조차 믿을 수 없었고 정보라면 하데스에게서도 받을 수 있으니까.

“설마 나를 못 믿고 하데스나 헤르메스에게 들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멍청하다고 말해 주지.”

셋이 의심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데스나 헤르메스에게 정보를 듣고 믿는다는 건 머저리나 다름없었다.

물론 사실을 말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그를 기만할 가능성도 높았다. 특히, 헤르메스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도둑의 신을 믿는다라…….”

“도둑의 신을 믿지 않는다. 하데스를 믿고 그의 맹세를 믿는 거지. 신이란 자신이 한 맹세는 꼭 지키거든.”

“그건 너희들이 긍지를 가졌을 때나 그런 거지.”

“긍지?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진하를 보며 헤라클레스가 커다란 의문을 내비쳤다. 그 말은 셋은 신이라는 긍지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믿든 안 믿는 얘기나 좀 하자고. 나중에 하데스나 헤르메스에게 이야기를 듣더라도 내 말까지 해서 교차 검증하는 게 낫지 않아?”

진하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헤라클레스는 이내 겉에 두른 앞치마를 벗은 뒤 카운터를 나와 근처 의자에 앉았다.

진하는 그의 반대편 의자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입 마셨다.

“으…… 역시 맛없네.”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답해라. 긍지가 없다니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그들에겐 아마 긍지가 없을 거야. 그나저나 반대로 물어보자. 너는 무슨 이유로 그들에게 긍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들을 마구 죽여대는 살인마일 뿐인데?”

헤라클레스, 인간이자 신으로 올라선 존재. 책에서 읽은 정보가 모두 사실이라는 법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인간을 얕보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인간을 싫어하지 않거나 아니면 인간과 신 모두를 싫어하거나.’

아마도 둘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카페를 차리고 인간과 같은 눈높이로 있는 걸 보면 인간을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 싫어하기에 카페에 이렇게 식물을 가득 키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신은 인간을 인도한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재앙 앞에서 항상 그들을 지키고 벌준 것은 신이었지. 이번에도 그럴 뿐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어째서 너희들이 그런 게이트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곳과 이곳은 같은 세상이었지만 찢어진 세상, 다시 합칠 수 없으니 우리가 이쪽으로 넘어와 다시 인간을 계몽시키려는 것뿐이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건가…….”

S급 이상의 몬스터부터는 인간에 대한 증오가 절대적이지 않다. 아마도 관리자는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한 듯싶었다.

인간을 증오하지 않는 존재들에게 이곳은 그저 찢어진 세상의 일부이자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고 인식시키고 있는듯했다.

“그럼 너희들은 그저 인간들을 인도하기 위해 왔다?”

“그렇다. 다행히 인간들은 아예 우리를 잊지 않은 듯하더군.”

“인간들을 죽이는 게 언제부터 인도가 됐지?”

“예전부터 인간들을 신에게 바쳐온 것은 당연했다. 뭘 그리 놀라지? 그리고 우리가 죽이는 것은 어디까지만 악마의 홀림에 넘어간 인간이나 우리에게 적대적인 인간들 뿐이다.”

,

골치가 아팠다. 이렇게 대화를 나눠서는 끝도 없을 듯하여 진하는 주제를 돌렸다.

“뭐, 그건 넘어가자고. 내가 알고 싶은 건 하나야. 네가 왜 셋을 적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

“……간단하다. 올림포스를 위하는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올림포스는 신들의 세상이자 인간들의 인도자. 그러다가 바뀐 셋이 과연 올림포스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 것뿐이다.”

“결국, 뭔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는 거네?”

헤라클레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자 반신이었던 그가 제우스를 따라 신이 된 것은 간단했다.

그것이 거인들을 막고 세상을 지키는 것이며 인간들을 인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신들의 의무인 세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는 이번에도 같은 의도로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본 인간들은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였으니까.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이곳의 신이 아니거든.”

“무슨 소리지?”

헤라클레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진하가 간단하게 사실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 복제품이라고. 진짜 신을 본뜬 복제품.”

“…….”

헤라클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진하를 바라만 볼 뿐. 그 모습에 진하는 혹시 헤라클레스도 세상의 필터에 걸려서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완전히 굳어져 있는 그의 표정을 보면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안 믿겨?”

“당연한 거 아닌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런 얼토당토하지 않는 소리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혹시 너는 한 번도 네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생각 든 적 없어? 인간을 계도한다면서 왜 항상 죽이는 쪽으로 행동하는지는? 정말 짚이는 게 하나도 없어?”

진하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입을 오물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당연했다.

복제품으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의심을 심어 주면 없던 것도 만들어서 짚어내는 게 인간이란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게 그리스 로마 신화이기도 했고.

“그럼…… 그 세 명은 원본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헤라클레스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쉽게도 원본은 아니야. 하지만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는 세 명이지.”

“그들이 변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그래, 복제품이기에 원본처럼 되고 싶은 제우스, 그리고 그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하데스, 마지막으로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헤르메스까지. 잘 생각해 봐. 내가 말한 거에 맞는 행동을 그들은 하지 않았어?”

확실히 그렇게 하긴 했다. 갑작스럽게 무력이 강해지고, 갑작스럽게 하데스와 제우스가 싸웠다. 마지막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진하의 말을 모두 다 믿기엔 아직도 그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어디서 무슨 말을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뭐, 못 믿겠다면 믿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교차검증하라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이득은 뭐지?”

“내 이득? 간단해. 그냥 네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그것뿐이야.”

제우스, 하데스 그리고 헤르메스까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도 진하에겐 이득이었다.

헤라클레스라는 존재가 필요한 세 세력에게는 그 무엇보다 이 사실이 초조하게 다가올 거고 짜증날 테니까.

“내가 전달한 말은 이게 다야. 뭐 더 궁금한 거 있어?”

“하나만 더…….”

“뭐든지 말해 봐.”

잠시 망설이던 헤라클레스가 이내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