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54화 (154/202)

#154

“안 돼.”

진하가 즉답하였다. 이건 아무리 그가 원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가 위험한 짓을 한다는데 그걸 흔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그럼 그거 필요 없으니까 버려.”

“뭐?”

마치 쓰레기를 버리라는 듯 말하는 이기수를 보며 진하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기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상태로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이거 없으면 어떻게 싸우게.”

“그게 있어도 어차피 지는 건 똑같아.”

답도 없는 말을 내뱉는 이기수를 보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떼를 써도 너무 심하게 쓰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도 안 되는 건 안 돼.”

이걸 들어줬다간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행동을 할지도 몰랐다. 아니, 그 이전에 그걸 들어줬다간 진하가 회귀를 당하고 기껏 문방구를 물려받은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똑똑!

그때, 그들의 훈련실의 입구 쪽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둘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제가 방해했나요?”

헤르메스가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하는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지난번 테러와 신들의 습격으로 인해 유럽 협회의 보안은 몇 배다 더 엄중해졌다. 그런데도 헤르메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협회에 침투해 훈련실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전해줄 소식이 있어서 왔어요.”

“전해줄 소식?”

“그 전에 이 문 좀 열어 주시면 안 될까요?”

헤르메스가 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모습에 진하가 얼척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협회도 들어왔으면서 이걸 못 들어온다고?”

“아뇨, 뭐 들어가려 한다면 못 할 건 없죠. 출입증만 구하면 되니까요. 다만 굳이 번거로운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아서요.”

헤르메스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쉰 뒤 직접 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어 주었다. 진하에게 간단하게 묵례를 하고 들어온 헤르메스는 이기수를 보며 마찬가지로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그래서 전하려는 소식이 뭔데.”

“저번 소식은 잘 전달됐죠? 그땐 직접 못 가서 아쉬웠는데.”

“어.”

이틀 전 전한 소식이라면 확실하게 잘 받았다.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에게서 벗어나 홀로 활동한다는 것과 인간 세상으로 신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정보는 확실하게 받았었다.

그래서 현재 유럽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마석의 통제와 사이비 교단을 족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하하, 이미 신들이 거의 다 올라와서요. 그거 전달하러 왔죠.”

“뭐? 어떻게?”

마석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으며 사이비 교단 역시 빠르게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이틀 만에 올라오다니…….

“제우스가 올라올 마석까지 모조리 썼거든요.”

헤르메스의 말에 진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가 제우스의 인간 세상 강림인데 그가 올라올 마석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마 대략적으로 이틀이면 올라오는 건 물론이고 학살 준비까지 끝낼 거에요.”

“학살?”

“네, 속도를 높이려고 그냥 인간을 제물 삼아 올라오려는 것 같아요.”

“그 방법이 지금 학살이라고 말하는 거야?”

진하의 질문에 헤르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의 정보가 맞다면 속속히 올라온 신들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주변 인간들부터 죽이며 제물을 삼을 게 분명했다.

“총 몇 명이 올라왔는데?”

“12 주신 포함 96명이요.”

헤르메스의 설명에 진하는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S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신들이 96명이라니…….

“물론 급하게 올라온 거라 완벽하게 회복하진 못한 상태일 거예요.”

“그 말은 시간이 끌리면 바로 회복된다는 거겠네.”

“그렇죠?”

지하는 헤르메스가 뭘 경고하러 온 건지 이해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라면 빠르게 먼저 기습하는 게 나았으니까.

“위치는?”

“덴마크의 에뢰섬이요.”

친절한 그의 말에 진하가 이를 갈았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인간들이 그들을 막아서길 원해서겠지.

‘완전히 이용당하고 있군.’

그들로서도 나쁠 게 없는 정보이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용당한다는 사실 자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도와주겠지?”

“아…… 그러고 싶은데 일단은 같은 신들이라서요.”

“지랄.”

같은 신들이라서 공격을 못 한다는 것 치곤 아르테미스를 잘만 죽였던 게 헤르메스였다. 그런 그가 같은 신이라는 이유로 전투에서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뭐, 사실은 우리 쪽도 많이 바쁘거든요.”

“하데스 쪽에서 바쁠 일이 있나?”

어차피 하데스나 제우스나 인간 세상에 나오기 전까진 할 게 없는 신세였다. 그나마 제우스는 다룰 신이라도 많지만 하데스는 그렇지도 않았다.

“아무리 세가 약하다지만 하데스 님도 나름 부하들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그 바쁜 일이 뭔데?”

“헤라클레스의 설득이요.”

“설득?”

“아시다시피 저희가 지금 나름 열세거든요. 그래서 이기려면 헤라클레스를 설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로 넘어가면 이길 가능성이 없거든요.”

아슬아슬한 올림포스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존재가 헤라클레스였다. 그가 제우스에게 넘어가냐 아니냐에 따라서 하데스와 헤르메스가 제우스를 잡느냐 아니냐가 결정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이간질을 한 건가?”

“네? 이간질이라뇨?”

“헬라클레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제우스에게서 벗어날 리가 없잖아.”

보나 마나 헤르메스가 중간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구도가 만들어질 리 없으니까.

“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소식은 전해 줬고 제우스 쪽은 잘 막아 줘요?”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헤르메스.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이기수가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제우스를 막아야지.”

“그게 상대가 원하는 거라는 건 알지?”

헤르메스의 노림수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단순히만 봐도 인간과 제우스의 전력이 서로 깎이는 형태였다.

삼파전에서 결국 이득을 보는 건 헤르메스밖에 없었다.

“내가 미쳤냐? 손해 보게.”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먼저 선수를 쳐야지.”

“선수?”

“양쪽에게 모두 빅 역을 선사하려고.”

* * *

“이틀 후인가요?”

“네, 이틀입니다.”

“그럼 바로 준비를 해야겠군요.”

레이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이 활동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문제는 일반인들인데…….”

신들을 타격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미사일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초반에 미사일을 퍼붓고 헌터들이 진입하는 것이 가장 타격을 줄이는 방식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에뢰섬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죄가 없으니까.

“그들 모두가 사이비일 가능성은 없나요? 신들이 숨은 곳이라면서요.”

“없어요. 아니, 사이비라고 해도 확증이 없는 이상 건드리면 안 될 거예요.”

레이나의 말처럼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기는 했지만 그 부분은 절대로 섣불리 판단하고 건드려서는 안 됐다.

협회에 대한 반발이 커질수록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쎄오스 교단의 명분은 더 진실되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결국, 명분이 없는 상태로 그들을 사이비로 판단하고 제압하거나 미사일을 쏘게 되는 순간 적들의 몸집은 더욱 불어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흠…… 일단은 군사 훈련으로 최대한 일반인들을 빼야겠네요.”

“고작 그걸로 되겠어요?”

그녀의 의견대로 에뢰섬을 군사 훈련 지역으로 지정하고 일반인들을 빼내는 방법은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쯤 강제적인 한국도 군사 훈련 지역이라고 지정해도 잘 벗어나지 않는 게 사람들인데 자유에 대해 더 민감한 그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그 지역을 이탈할 것 같진 않았다.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돈을 제시할 겁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으면 사이비겠죠.”

“잠깐만요.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에요.”

진하의 말에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말이 자유지 결국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게 사람입니다. 단순히 자리를 며칠 비우는데 큰돈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뭔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반드시 사이비라는 보장은 없진 않습니까.”

“상관없어요. 어차피 사이비라고 발표하는 건 협회니까요.”

“그렇다는 건…… 지금 조작을 하겠다는 겁니까?”

예전 한국 협회에서도 자주 하던 짓, 아니, 지금의 협회나 정보 길드에서도 했던 짓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식의 기만은 결국 단체의 타락을 유발하는 행위니까.

그렇기에 지금의 협회는 정보의 통제는 가할지언정 정보 조작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민간인들을 위한 정보 조작만을 하였다.

“네, 그렇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어요.”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반대로 묻죠. 그들 몇백, 몇천 명이 죽는 것과 헌터들이 죽는 것 어느 게 더 손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답지 않았다. 과거 유럽의 게이트 폭주 당시 민간인을 걱정하던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진하가 알기로 그녀는 민간인의 목숨과 헌터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들이 에뢰섬을 벗어나면 민간인들의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몰라요.”

“그것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빠르고 단호하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아뇨. 지금은 1분 1초가 급해요. 이렇게 하겠습니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추진력을 보이며 단호하게 말하는 레이나, 진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아직도 다른 의견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진행하실 거죠?”

“조금 떨어진 곳에 일룸이라는 무인 섬이 있어요. 그곳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작전을 진행할 겁니다.”

“무인 섬에요?”

“네, 혹시나 적의 세작이나 또는 신들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들을 가두고 일을 진행해야죠.”

역시나 이질적이었다. 이상하리만큼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 물론 그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분명 그것은 어쩌면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건 원래 레이나에게 없던 거였는데…….’

“이것조차 불만이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많이 양보한 겁니다.”

그녀의 말에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거부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결정권자는 그녀이기도 했고, 진하 역시 일일이 그런걸 챙길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친구들이 다치지 않는 거니까.’

“그럼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작전은 바로 내일 아침 바로 합니다.”

“너무 빠르게 하면 적들이 눈치를 챌 텐데요?”

사람들이 나갈 걸 생각하면 조금 더 여유 있게 하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적들의 습격은 2일 뒤였다.

어차피 그전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세심하게 속이는 게 나았다.

“아뇨. 들키지 않을 겁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레이나의 말에 진하는 하는 수 없이 수긍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예.”

레이나를 뒤로하고 문밖으로 나온 진하는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나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에뢰섬이 어디지?’

진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에뢰섬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이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딱 독일과 덴마크의 경계선 부근…….

그 순간 진하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하가 뒤를 돌아 협회장실을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가 생각한 것은 심증일뿐더러 증명해 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설사 맞다 하더라도 진하가 예상한 게 맞다면 적어도 그리 피해가 가는 쪽으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추구하는 바는 진하의 목적과 일부분 겹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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