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51화 (151/202)

#151

“젠장!”

아레스가 뒤에서 날아오는 불덩이 하나를 피하며 이를 갈았다. 기껏해야 인간들에게 복수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도망쳐 다녀야 한다니…….

“무슨 생각인지 알겠지만 참아.”

옆에 있던 아르테미스가 앞서 달리는 아레스에게 말했다. 분명 아레스의 성격상 이렇게 가만히 참고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

―셋은 미끼가 되어 주시죠.

―뭐?

―셋이 미끼가 되어 도망치고 제가 습격을 하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정말 짜증 난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전을 낸 게 헤라클레스였기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을 무시하지 마시죠.

작전을 짜고 불만 어린 생각을 하던 그들에게 헤라클레스가 한 말이었다. 인간 자체도 강력한데 제대로 된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을 이기기 힘들 거라는 말.

당연히 아레스는 발작을 했지만 헤라클레스에게 제압되고 이렇게 그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알아…….”

그때 잔뜩 짜증 난 아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지금 이 상황이 맘에는 안 들지만 그렇다고 판단을 그르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불덩이 하나하나가 아폴론의 태양마차급이야.’

뒤에서 날아오는 불덩이의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단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 왜 아버지께서 저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솔직히 그걸 느끼지 않았으면 이렇게 짜증 나는 상황에서 아무리 헤라클레스가 뭐라고 했더라도 곧바로 붙었을 테니까.

“하, 차라리 협회에 내가 갔어야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인 거 알잖아.”

그들 중 가장 강력한 게 헤라클레스였다. 그런 그를 제치고 아레스가 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넌 아까부터 계속 재잘재잘, 아주 속도 좋다?”

“하, 무슨 소리야 나 바쁜 거 안 보여?”

아르테미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아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냥 도망만 치는 그와 달리 그녀는 달리면서 화살을 쏘고 함정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래야 더 오래 도망치니까.

근데 아레스는 그걸 알면서도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였다.

“워, 워, 둘 다 진정 좀 하시죠.”

같이 달리던 헤르메스가 그들을 말렸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걸 봐도 재미가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즐겁게 보기엔 조금 아쉬웠다.

“아르테미스도 힘든 거 알고, 아레스도 지금 얼마나 짜증 난지는 잘 알아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둘이 싸우면 우리가 힘들지 않을까요?”

“하아, 네 말이 맞다.”

“쳇.”

둘이 혀를 차며 고개를 팩 돌렸다. 헤르메스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저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좋은 게 있는데 어떠신지요?”

“타개책?”

“결국엔 우리가 이렇게 도망 다니는 이유가 아직 회복이 덜 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치?”

“그럼 이건 어떤가요?”

그렇게 말하는 헤르메스의 손에 커다란 S급 마석 5개가 놓여있었다. 둘은 마석을 확인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협회를 습격하기 전에 슬쩍했죠. 본부라서 그런지 보기 힘든 S급 마석이 있더라고요.”

“너 이 자식!”

아레스가 기쁘다는 듯 헤르메스를 보았다. 역시 도둑의 신은 도둑의 신이었다.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할 줄이야…….

“이거면 80%는 회복 가능하겠죠?”

“물론이지. 우리 모두 그 정도는 회복 가능할 거야.”

“누님도 어떠신가요? 이 정도면 해볼 것 같지 않나요?”

헤르메스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아르테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뒤에서 쫓아오는 레이나가 강력하긴 했지만 마석을 흡수하고 회복된 3명이라면 못 할 만한 것도 없었다.

“헤르메스 넌 이거 흡수하면 다 회복하는 건가?”

“저는 그렇죠.”

“그럼 나도 찬성.”

승낙을 한 아르테미스가 빠르게 마석 두 개를 가져갔다. 아레스 역시 빠르게 마석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치이익!

셋은 달리던 다리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흐흐흐!”

칵, 챙그랑!

이빨로 마석을 씹어 삼킨 아레스가 진한 웃음을 흘리며 달려오는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불덩이 하나를 붙잡았다.

화르륵! 퍼엉!

“확실히 뜨겁긴 해.”

불덩이를 잡아챈 헤르메스가 불덩이를 터뜨리며 말했다. 확실히 강력하고 후끈거리는 온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적어도 80% 이상 회복했으니 해볼 만했다.

타악!

그들 앞에 멈춰선 레이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셋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 맞겠지?”

“너도 이곳이 무덤이란 건 알고 있겠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아레스, 그런 아레스를 보며 레이나가 이마를 미미하게 찌푸렸다.

“괜히 지랄하지 말고 내 엄호나 잘 받아.”

옆에 있던 아르테미스가 그를 타박했다. 그들이 몸을 회복한 건 맞았으나 아직 더 강한 건 레이나였다.

그러니 철저하게 협공해서 그녀를 잡아야 했다.

“그럼 저는 뒤에서 기습을 노리도록 하죠.”

헤르메스가 단검을 꺼내며 말했다. 아르테미스는 헤르메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싸울 동안 너는 빈틈을……!”

갑작스러운 충격에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헤르메스가 그녀를 찌른 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 자식이!”

깜짝 놀란 아레스가 헤르메스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헤르메스는 주먹을 쉽게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저를 상대할 시간은 없을 텐데요?”

“뭐?”

콰앙!

아레스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거대한 불꽃이 몰아쳤다. 아레스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고 그런 그를 따라가며 레이나가 검을 휘둘렀다.

“자, 저쪽은 이제 끝났고 진하 씨는 언제 오려나?”

“너…… 왜 배신을…….”

“배신이라뇨. 저는 원래부터 당신들 편이 아니었습니다만?”

헤르메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 모습에 아르테미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하, 이 미친 새끼가 기습을 했다고 네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 정도 피해를 입었다고 그녀가 헤르메스를 이기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화살 하나를 꺼내 시위를 매긴 후 헤르메스에게 날렸다.

“에휴, 그렇게 무리하면 좋을 거 없는데.”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챈 헤르메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아르테미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아무리 회복을 다 했다 하더라도 헤르메스였다. 그가 그녀의 화살을 이렇게 쉽게 막아설 리 없었다.

“이래서 꼭두각시들이란…….”

“뭐? 케엑!”

그 순간 검은 피를 토해 내는 아르테미스, 그런 그녀를 보며 헤르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독이 빠르게 돌다가 진하 씨가 오기 전에 당신이 죽으면 안 된다고요.”

“너 이 자식……. 독을…….”

“인생은 효율적으로 오케이?”

싱긋 미소를 지어준 헤르메스가 저 멀리 보이는 진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진하는 그 모습에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려 그의 앞에 내려섰다.

“제가 잘해 놨으니 마무리하시죠?”

“네가 이런 건가?”

“네, 어때요? 괜찮죠?”

헤르메스가 자랑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진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 쉽게 배신하고 들켜도 되는 거야?”

“에이, 들킨 건 아니죠.”

헤르메스가 검지를 흔들었다.

“여기에 있는 놈들은 진하 씨, 당신과 레이나가 해결했다고 할 겁니다. 둘 다 자존심이 강한 신이라 맞붙었다 하면 되고 저는 도망쳤다 하면 되거든요.”

“도둑이자 전령의 신이니까?”

“그렇죠. 저는 전달하기 위해 도망갔다 하면 되죠. 대신 진하 씨, 당신의 전력이 노출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죠?”

헤르메스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아르테미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를 확인한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전력 노출로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행동할 정도였나? 제우스가 의심할텐데?”

아무리 진하랑 동맹을 맺었다지만 너무나 쉽게 행동했다. 아니, 아르테미스가 저렇게 쉽게 헐떡이는 걸 보면 그가 필요한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저거야 독으로 기습했으니까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꼭두각시라지만 모든 신을 잡을 순 없죠. 무엇보다 괴물 한 놈도 있고…….”

“괴물?”

“헤라클레스라는 반신이요.”

헤르메스는 치가 떨린다는 듯 말했다. 헤라클레스, 반신 중 한 명이자 유일하게 원본과 연결된 제우스에 가까운 무력을 가진 올림포스 최강의 존재였다.

“다행히 헤라클레스가 스스로 협회로 간다 해서 다행이었죠.”

“뭐? 협회?”

“네, 본인이 직접 간다던데요?”

헤르메스의 말에 진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협회만큼 위험한 공간도 없었다.

“아, 걱정 마세요. 존재가 존재인지라 회복 자체가 한 30%밖에 안 됐어요. 인간으로 회복하기도 했고.”

“그럼 약한가?”

“흠, 아마 그래도 지금의 저 둘을 합친 거랑 비슷한 정도? 아니, 조금 더 위려나?”

그의 말에 진하의 인상이 무참하게 구겨졌다. 그렇다는 건 지금 협회의 인원들로 헤라클레스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에이, 걱정 마요. 혼자라서 이 둘을 해치우고 가도 많이 못 죽여요. 솔직히 신 두 명에 약간의 인간이면 이득 아닌가요?”

“이 미친 자식이.”

진하가 재빠르게 칼을 휘둘러 헐떡이는 아르테미스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는 레이나를 쳐다보았다.

치열한 듯 보였지만 점차 그녀에게 기울어지고 있는 전투, 그것을 확인한 진하가 헤르메스를 쳐다보았다.

“너랑 난 지금 당장 협회로 간다.”

“네? 아레스는 안 잡아요?”

“협회가 더 우선이야.”

“아레스의 신력을 흡수하지 않으면 일에 차질이 생깁니다.”

“레이나가 알아서 생포할 거니까 가자고.”

“그럼 제가 그걸 지켜보는 편이…….”

까드득!

순간 진하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헤르메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다급히 말했다.

“가요. 얼른 가죠.”

“레이나! 생포해요!”

대답을 들은 진하가 큰 소리로 레이나를 부른 뒤에 협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진하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아레스를 압박하던 불의 강도가 약해졌다.

“너, 만약 친구들이 잘못됐으면 죽을 줄 알아.”

“뭐, 된다면요? 그리고 그냥 이해하세요. 모든 계획에는 희생이 필요한 거예요.”

헤르메스가 한심하다는 듯 진하를 바라보았다. 진하는 그런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닥쳐, 그걸 네 맘대로 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야.”

진하의 말에 급격하게 시무룩해지는 헤르메스, 너무나도 변화무쌍한 변화에 진하는 머리가 아파 왔다.

‘젠장 모든 게 다 진심 같아서 더 짜증 나.’

“앞에서 달려.”

“제가요?”

“어, 너한테 뒤를 줄 생각 없어.”

“그러죠, 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헤르메스가 속도를 높여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진하는 앞서 나가는 헤르메스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짜증 나게도 완전히 신들에게 놀아난 기분이었다.

* * *

“흠, 훌륭해.”

헤르메스가 이기수의 멱살을 붙잡은 채 말했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는 전기가 잔뜩 방전되어 있었다.

“설마 네메아의 가죽에 상처를 입힐 줄이야.”

그도 초기에는 가죽에 상처를 입히지 못해 목 졸라 죽였던 놈이었다. 그런데 이기수는 그런 네메아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작지만 그슬리게 만들었다.

“지랄…….”

이기수가 말에 헤라클레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은 위험했다. 죽기 직전인데도 저런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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