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개소리네.”
휘젠의 헤르메스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신력, 뭐 하는 건지는 몰라도 적에서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았다.
아니, 애초에 믿을 수도 없었다.
“흠, 아직 간절하지 않나 보네요.”
“뭐?”
“당신을 가지고 놀았던 그 신을 이기고 싶지 않아요?”
헤르메스의 손에 휘젠이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높아지려는 언성을 꾹 누르며 말했다.
“이기고 싶지. 하지만 적에게 영혼을 팔아 이기고 싶은 게 아니야.”
“제가 적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래, 그 말이 사실인지도, 네가 진하랑 어떤 약속을 맺었는지도 난 몰라.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넌 적이란 거야.”
“흐음, 뭐 맞는 말이네요.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이유는 당신이 약해서라는 것도 알고요?”
순간 휘젠의 입에서 까득! 하는 이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헤르메스는 그런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신력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힘, 당신의 유대보다는 더욱 효율이 좋죠.”
“내가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네.”
“신력은 두 가지로 한 가지는 한 번 받은 신앙의 신력으로 강해지는 육체, 그리고 변동적인 신력입니다.”
듣든 말든 자신의 말을 모두 끝마친 헤르메스가 유리구슬 하나를 휘젠에게 던졌다.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깨면 돼요. 그럼 적어도 지금보단 1.5배는 강해질 테니까요.”
유리 구슬을 던진 헤르메스가 사라지고,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던 휘젠은 손에 들린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하아…….”
* * *
“오랜만이야?”
진하는 밝게 웃으며 앉아있는 힙노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힙노스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폐인처럼 있어? 사실은 멀쩡하잖아?”
“큭, 이게 멀쩡한 거냐?”
진하의 말에 순간 허탈하게 대답하는 힙노스, 진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 줄이 제대로 붙어 있으면 멀쩡한 거지. 설마 사지까지 온전하길 바랬어?”
진하가 바라보는 힙노스의 몸은 팔, 다리가 모두 잘려 있었다. 몸 또한 온갖 고문으로 생긴 상처가 가득했고, 온전한 것이라곤 목 위쪽의 얼굴이 다였다.
“자,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거 없어?”
“없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어차피 아는 것도 별로 없잖아?”
그를 살려둔 건 어디까지나 혹시나 해서였다. 물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비밀을 알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건 이미 다녀온 네메시스를 통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흠……. 아레스,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진하의 입에서 나오는 신들의 이름, 힙노스는 신들의 이름이 나열될수록 점차 얼굴이 굳어졌다.
“이렇게 총 6명이 밖으로 나와 있지?”
“너…… 설마 네메시스가…….”
“그건 알 필요 없고, 그래서 진짜 얘기하지 않을 거야?”
“상관없다. 어차피 네메시스 그년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
“뭐, 알아. 애초에 너한테 온 것도 혹시나 해서야”
이미 네메시스한테도 힙노스가 모든 걸 본 것처럼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들은 네메시스는 체념한 얼굴로 진하를 바라봤고.
―하,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지? 미안하지만 나도 그 이상은 잘 몰라.
그걸 통해서 진하는 네메시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힙노스 역시 진하가 알고 있는 사실에서 더 많이 알아봤자 그리 크지 않을 거라는 것도 깨달았고.
‘완전히 쩌리네.’
진하는 둘이 헤르메스가 넘겨준 정보만큼밖에 모른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 존재들이기에 겨우 이 정도 정보밖에 모르다니…….
“시간을 끌어도 변하는 건 없을 것 같고, 너도 이만 죽어라.”
서걱!
그 말과 함께 진하의 허리춤에서 빠져나온 칼이 힙노스의 목을 갈랐다. 그러자 힙노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오더니 허리춤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신력이 흡수되었습니다.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진하는 몸이 좀 더 쫀쫀해진 느낌을 받았다. 헤르메스의 말대로 확실히 네메시스와 힙노스를 잡으니 신체 능력이 성장했다.
“그나저나 너무 의외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뭔가를 시도한 흔적이 없었다. 신들을 죽였건만 정말 깨끗하게 신체 능력만 상승시키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흠, 하긴 이런 옅은 수작을 부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겠지.”
그랬다간 동맹이고 뭐고 날아갔을 테니까. 결국, 적어도 신들을 죽이고 신력을 흡수하는 것 자체에는 거짓이 없는 것 같았다.
“흠…… 그럼 진짜 이중 스파이 인가?”
진하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느끼며 방을 나왔다. 헤르메스와 제우스, 하데스까지. 도대체 3명이서 뭘 숨기고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응? 너 여기에 왜 있어?”
여러개의 보안을 지나 협회 복도로 나온 진하는 방 앞에 서있는 휘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너 진짜로 신들이랑 동맹을 맺었어?”
순간 진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휘젠은 그 모습에 헤르메스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 진짜구나.”
“동맹은 아냐.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지. 그쪽은 콩가루거든.”
“뭐,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어.”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너 누굴 만난 거야.”
“헤르메스.”
휘젠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휘젠을 찾아갔을 줄이야…….
“뭐, 암튼 어떤 상황인지 알았어.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그 말과 함께 휘젠이 몸을 돌렸다. 진하는 멀어지려는 그를 급하게 붙잡았다.
“잠깐만, 그 자식이 뭐라고 말했지? 아니, 그 자식이 너한테 뭔 수작을 부린 건 없지?”
“없어. 걱정 마.”
휘젠은 진하를 안심시키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헤르메스가 휘젠을 아무런 이유가 없이 찾아갔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무슨 수작을 부리러 간 게 틀림없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다 하지 마.”
“뭔 소리냐?”
“네가 그놈한테 들은 거든, 받은 거든 그게 어떤 거든 간에 그놈이랑 관련된 걸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야.”
“내가 바보냐? 적한테 들은 걸 믿게? 그냥 내가 들은 사실이 진짜인가 해서 그거 확인하러 온 것뿐이야.”
휘젠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을 붙잡은 진하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이따가 저녁에 맥주나 한잔하자.”
진하는 점차 멀어지는 휘젠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역시 신이란 놈들은 함부로 믿어선 안 됐다. 구슬을 보고 얕은 수작은 안 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더 얕은 수작을 부릴 줄이야…….
콰앙!
위이이잉!
그때, 울리는 사이렌 소리, 진하는 갑작스런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삐빅!
그와 동시에 그의 핸드폰에 문자가 전송되었고 진하는 재빠르게 도착한 문자를 읽어 보았다.
<의문의 적 습격, 동북쪽으로 도주, 현 레이나 협회장 습격자 추적 중.>
<협회로부터 동북쪽에 위치한 협회원은 도주로를 막을 것. 그 외 협회원은 집결.>
벌어진 상황을 파악한 진하는 재빨리 본부 동북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 시기에 협회를 습격할 만한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 * *
“후…… 빠르네.”
뻥 뚫린 벽면으로 멀어지는 레이나를 보며 이기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나름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속도를 비교해 보면 그와도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왜 이리 어설프게 습격한 거지?”
이기수는 알 수 없는 습격에 고개를 갸웃했다. 습격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너무나 어설펐었다.
그저 벽면을 뚫고 들어와 레이나를 습격하고 바로 도망쳐 버렸으니까.
“흠…… 아무래도 레이나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레이나만 따로 떼어내서 습격하려는 것 같았다. 협회에서 그녀만큼 속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이기수를 포함해 거의 없으니까.
―당신은 협회를 지켜 주세요.
레이나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맘 같아선 그도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들었으니 쫓아갈 수도 없었다.
“뭐, 알아서 눈치채겠지.”
레이나가 바보도 아니고 이게 함정이란 건 금방 눈치를 챌 게 분명했다. 그럼 알아서 되돌아올 거고.
“어? 아니, 걱정 안 해도 되려나?”
뻥 뚫린 벽면 너머도 이기수는 빠르게 달려 나가는 진하를 볼 수 있었다. 레이나와 진하라면 뭐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래서 저기는 몇 명이야?”
“3명이다.”
“고작 그걸로 되겠어?”
이기수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하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붙잡아 두는 역할?”
이기수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를 하는군. 저 여자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아버지가 완벽한 회복 전에는 조심하라고 했거든. 아버지의 말은 절대복종해야 하지.”
“아, 미친…… 충분하다가 그 충분하다가 아니었네.”
이기수는 그제야 적들의 목적이 레이나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충분하다는 건 레이나를 낚은 존재들이 도망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이겠지.
“신들은 인간을 무시하는 거 아니었어?”
이런 식의 각개격파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미 신들은 오만하다고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니…….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나는 아니거든.”
“너는 누군데?”
“내 이름은 헤라클레스.”
“젠장, 반신이네.”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태어나 신의 자리를 차지한 반신 헤라클레스, 그라면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근데 너도 신이라는 작자랑 크게 차이는 안나네. 너도 그렇게 인간을 고평가하진 않나 봐?”
이기수가 전격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갑작스런 습격을 통해 레이나를 끌어들인 건 좋았다.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을 밖으로 빼돌린 거니까.
그리고 확실하게 도망가기 위해 철저히 3명이 연합한 것도 좋았다. 미끼를 확실하게 던지고 이곳을 습격한다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자신의 쪽으로 하나만 온건 실수였다.
“내가 아무리 약해도 명색이 SS급 능력자인데 말이야.”
올 거라면 6명의 신 중 나머지 3명이 왔었어야 했다. 그들이 습격한 장소는 무려 협회였다.
아무리 약하다지만 이기수를 포함, S급 능력자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인간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들 모두가 왔어야 했다.
“아니, 난 인간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것 치곤 너 혼자잖아?”
“방심하지 않았기에 내가 여기로 온 거다. 약한 3명을 이용해서 가장 거슬린 적을 치우고 내가 너를 죽이는 거지.”
“뭔 개소리야.”
달깍!
순간 이기수의 손에서 커다란 전격이 뿜어져 나갔다. 전격은 곧바로 헤라클레스를 덮쳤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기수는 혀를 찼다.
“이런 미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헤라클레스, 이기수는 그제야 그가 하는 말을 뭔 뜻인지 깨달았다.
‘혼자서 나머지 협회원을 다 해결할 자신이 있던 거였군…….’
인간을 우습게 보고 주 전력이 레이나를 유도하면서 부 전력으로 협회를 치는 게 아니라, 부 전력이 레이나를 유도하고, 주 전력이 협회를 습격한 거였다.
단순히 숫자만 보고 레이나가 더 위험할 것 같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듯싶었다.
콰악!
주먹을 움켜쥔 헤라클레스가 이기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죽을 준비는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