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49화 (149/202)

#149

“어디 갔다 와?”

협회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이기수였다.

“너 왜 여깄냐?”

“네가 연락도 안 되고 사라져서 기다린 거지.”

“여기서?”

진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이기수가 서 있는 곳은 유럽 협회의 입구, 있어서 문제될 건 없지만 있으면 주목받는 공간이었다. 심지어 그게 이기수라면…….

“네가 돌아올 만한 곳이 여기밖에 더 있냐?”

“그냥 숙소에서 기다리지.”

“퍽이나 숙소에 오겠다.”

이기수는 코웃음을 치며 진하의 말을 받아쳤다. 진하가 이 머나먼 타국에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난다면 그건 백 퍼센트 유럽 협회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왜냐하면 연락도 없이 놀러 다닐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데 결국 그 무슨 일이란 걸 해결했든 아니면 아직 겪고 있는 중이든 진하가 갈 곳은 한곳, 협회밖에 없었다.

“들어가면서 이야기하자.”

진하는 그 한마디만을 하고 출입 게이트를 지나 협회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기수는 말투에서 진지한 낌새를 느끼고 아무 말 없이 진하를 묵묵히 따라갔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위층을 올라가 협회원들이 없는 공간에 다다랐을 때 앞서 걷던 진하가 말했다.

“협회로 신이 찾아왔어.”

“신? 신이라면…….”

“어,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 신.”

진하의 대답에 이기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이 찾아왔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적이 헌터들의 대놓고 집안 안방까지 찾아온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신이 찾아왔다면 진하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보다 약했다면 잡았을 것이고, 강하다 하더라도 지원 요청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하의 몸에는 전투의 흔적 따위는커녕 짙은 담배 냄새만 배어 있었다.

“그 신이란 놈이 뭐라 했는데?”

“그냥 간단하게 얘기만 했어.”

“간단한 얘기?”

“응.”

진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보이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뒤돌며 이기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뭐해?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 전에 잠깐만 확인해야 할 게 하나 있지?”

이기수는 손에서 전격을 얕게 피워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검과 요요, 그리고 안쪽 품에 있는 삼각자를 보여 주었다.

“45년 6월 11일.”

“내가 회귀한 날.”

그제야 손에서 전격을 흐트러뜨리는 이기수, 진하는 그런 그에게 고갯짓으로 방 안쪽을 가리켰다.

“이제 들어갈 거지?”

“들어가야지.”

이기수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진하 역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근 뒤 이기수를 바라보자 그는 진하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끼릭, 끽.

이기수의 손짓에 앞에 놓인 탁자가 비틀리더니 이내 벌어지며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나타났다.

이기수는 곧바로 드러난 계단으로 내려갔고 진하 역시 그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그극!

둘이 내려가자마자 탁자는 재조립되었고 마지막으로 내려온 진하는 벽 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기잉―

작은 소리와 함께 방안을 둘러싸는 차폐막, 진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중앙에 있는 인챈트 물품을 집어 들었다.

위잉~

마력으로 이루어진 막이 2, 3중으로 펼쳐지며 방안을 감쌌다.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기수는 진하를 보며 말했다.

“뭔데 이곳까지 온 거야?”

지금 있는 곳은 레이나가 알려준 협회 내에 몇 곳 없는 비밀 얘기를 할 때나 쓰는 공간이었다. 아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웬만해서는 이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아직이야.”

“또?”

진하는 황당해하는 이기수를 내버려 두고는 과거의 후회를 3단계까지 끌어올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네.”

“자 됐어?”

“어, 혹시나 미행이 붙었을까 해서 그런 거야.”

“신이?”

“응, 레이나의 기감까지 속인 존재였어.”

진하의 말에 이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무리 평소라지만 레이나의 기감을 속였다는 건 일반적인 수준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잠깐만.”

파직, 파지직!

이기수가 진하를 멈춰 세우고 주변으로 전격을 퍼뜨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방안을 세심하게 감지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없는 거 맞네. 그래서 할 말이 뭐야?”

“간단해. 신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났어.”

“균열?”

“응, 하데스와 제우스.”

진하는 그 말을 시작으로 이기수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요약했다. 그리고 설명을 모두 들은 이기수는 표정이 굳어진 채로 진하를 바라보았다.

“그 물품은 확인했어? 위치 추적이나 도청의 가능성은?”

“없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이미 요요를 이용해서 봉인해 놨어.”

“그럼 다행이고, 근데 어째서 헤르메스를 의심하는 거야?”

“너무 잘 짜여진 연극같으니까.”

너무 상황이 공교로웠다. 강한 상대를 두고 갑자기 나타난 내부의 균열, 그리고 적과의 동맹. 누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패 같지는 않다며.”

“응, 적어도 그 말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더라.”

제우스와 척을 졌다는 점이나 신력을 흡수하기 위해 준 구슬의 용도 등 대부분의 말은 진실 같았다.

특히, 하데스의 말은 진하가 듣기론 거의 백 퍼센트 진실만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떤 점이 가장 의심스러운 거야? 그냥 평범하게 있고 싶다?”

“그것도 그렇고, 헤르메스가 이중 스파이가 아닐까 생각돼.”

“이중 스파이?”

“아무리 마석이란 걸 빼돌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 그런데 하데스를 소환할 수 있는 양을 그만큼 모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그럼 그걸 제우스가 헤르메스에게 쥐여 준거다? 어째서?”

“완벽한 불순 세력의 제거 또는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거겠지.”

사실 이것도 예측에 불과했다. 실제로 헤르메스가 말한 건 진실일 수도 있었다. 도둑의 신인 그가 원한다면 마석을 제우스가 없는 상황에서 마석을 티 안 나게 훔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헤르메스가 나에게 무슨 거짓말을 했든 확실한 건 그 역시 인간을 흡수했다는 거야. 너라면 그런 존재를 믿을 수 있겠어?”

“아니, 못 믿지. 애초에 인간을 그리 좋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거잖아.”

“응, 하데스의 말에는 숨기지 못할 정도로 거만함이 깃들어 있으니까.”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거나 연기에 능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하데스의 경우는 그게 티가 날 정도였다.

전에 보았던 아레스나 잡아들인 힙노스처럼 진하를 대놓고 티가 나진 않았지만 그의 말투에는 분명 아랫놈에게 대하는 듯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결국엔 제우스와 하데스는 적대 관계라는 거고, 헤르메스가 이중 스파이거나 뭔가 꿍꿍이가 있다?”

“뭐, 정리하자면 그렇지.”

솔직히 헤르메스의 경우는 하데스와 같이 있지 않았다면 끔뻑 넘어갈 뻔했다. 진짜 우리와 동맹을 맺길 원하고 하데스를 걱정하거나 하는 모습에 진심이 담겼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였지.’

너무나 진심 같았던 게 문제였다. 모든 존재는 모든 일에 진심을 100% 담을 수 없다. 어느 것은 허술하고 또 어떤 것에는 진심을 담지 못한다. 마치 하데스가 숨기려 해도 인간을 얕보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듯이.

그런데 헤르메스는 그런 게 없었고, 감정이 너무 빠르게 그리고 깨끗하게 변했다. 즉, 연기를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뭘 노리는지는 몰라도 무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였고, 속이려는 의도가 풍부하다는 소리였다.

“흠, 어렵네. 피아 구분도 어렵고, 그나저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구슬.”

“아, 그거라면 간단하지.”

마침 좋은 상대도 있으니 시험해 보면 되는 거였다.

* * *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가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앞에서 주먹을 내뻗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휘젠.

“젠장!”

고작 이 정도 움직였다고 숨이 찼다. 고작 가상의 몬스터일 뿐인데도 그는 이깟 거 하나 쉽게 해치우지 못했다.

―자! 더 덤벼봐! 네가 덤벼야지 쟤들이 살지!

귓가에 그때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강했던 상대, 그리고 그에 비해 너무 약했던 자신.

그날, 그는 아무도 지키지 못했고 혼자서 살아남지도 못했다.

“차라리 다른 스킬과 능력이 있었으면…….”

그랬으면 달랐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상대하던 존재를 이겼을지도, 아니, 적어도 진하가 올 때까지 좀 더 쉽게 버텼을지도 몰랐다.

‘너무 약해.’

그는 너무나 약했다. 유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그의 신체 능력은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았고,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스킬은 그런 그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

“S급 몬스터 가고일 로드 2마리 set up.”

[S급 몬스터 가고일 로드 2마리를 set up 합니다.]

휘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타나는 검은 빛의 가고일 2마리, 가고일은 생성되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제일 먼저 코앞으로 다가온 가고일 한 마리가 발톱을 크게 휘둘렀다. 휘젠은 빠르게 휘둘러진 가고일의 발톱을 가까스로 몸을 젖혀 피해 냈다.

‘이대로 옆구리를 노리면!’

가고일의 빈틈을 포착한 휘젠이 팔을 뒤로 젖혀 가고일의 옆구리를 향해 내뻗었다.

콰아아!

하지만 그의 팔이 가고일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로 뒤에 있던 가고일이 둘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으니까.

‘이런 미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안심하고 공격했던 휘젠은 이를 악물며 가고일에게 내뻗었던 팔을 회수해 얼굴을 틀어막았다.

―석화

치이이이익!

스킬을 쓰자마자 브레스가 그를 덮쳤고, 그 충격에 벽 끝까지 밀린 휘젠은 뒤에 올 후속타를 경계하며 몸을 더욱 웅크렸다.

콰앙!

하지만 가고일은 발톱은 그를 덮치지 못하고 허공에 틀어 막혀 버렸다. 어느새 나타난 남자 한 명이 가고일의 발톱을 한 손으로 잡아챈 상태였으니까.

툭.

아주 작은 손짓, 남자가 떠밀 듯 내민 손짓에 가고일은 퉁하고 튕겨져 나가 뒤에 있는 가고일을 덮쳤다.

[가고일의 손상도 80%이상,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

“누구……?”

휘젠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곳 훈련소는 훈련 중에는 자동으로 입구가 잠기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들어온 것도 그렇고 아무리 전투 중이었다지만 그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남자는 경계하는 휘젠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며 인사했고, 휘젠은 그런 남자를 더욱 경계했다.

“저는 헤르메스라고 합니다. 음, 이미 저랑 비슷한 부류…….”

쾅!

“오, 많이 거치시네요.”

헤르메스는 어느새 자신에게 날아온 주먹을 붙잡은 채로 휘젠을 보며 히죽 웃었다. 휘젠은 그런 그를 보며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그에게 붙잡힌 손은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적이 아닙니다.”

“개소리하지 마.”

“진짠데? 진하 씨한테 물어보세요.”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헤르메스, 그는 휘젠의 손을 놔주었고, 휘젠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헤르메스를 경계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그저 이야기 하나만 전달하러 온 거니까.”

“이야기?”

“당신은 모르겠지만 전 방금 전에 진하 씨와 동맹을 맺었거든요. 물론 모두에겐 비밀로요.”

“그걸 어째서 나에게 말하는 거지?”

휘젠은 그를 더욱 경계하며 물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진실이라 하더라도 비밀이라면 자신에게 말하는 게 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냥? 당신이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와 많이 비슷해서요.”

“비슷하다고?”

“데이터에 등록된 게 ‘유대’였나요? 마치 우리의 신력과 비슷한 점이 많더군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냥 당신에게 제안 하나 할까 해서요. 혹시 당신 신력을 가져 볼 생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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