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관리자와 원본, 그리고 자격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 이상 진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관리자에게서 벗어난 존재야.’
사실 따라오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고작 관리자가 만들어낸 몬스터라고 하기엔 헤르메스의 능력이 너무 뛰어났으니까.
관리자가 S급인 이슬라를 SSS급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꽤나 많은 인과율을 소모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 이상을 뛰어넘는 몬스터를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함정이라기엔 너무 이상해.’
함정치곤 그 대상과 방법이 너무 이상했다. 진짜 함정이라면 헤르메스를 이용할 리 없었으니까.
헤르메스는 기본적으로 비전투 계열의 신, 차라리 제우스나 포세이돈을 강화시키고 곧바로 진하를 죽이면 모를까 이런 방식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하물며 이렇게 다가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차라리 원본의 기억을 이어받았다는 게 더 말이 되지.’
이미 S급 몬스터임에도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시안이라는 선례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날 왜 초대한 거지?”
이들이 원본의 기억을 이어받았든 아니든 의미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격을 가진 진하를 찾은 이유, 그게 가장 중요했다.
[제우스를 막을 존재는 너밖에 없으니까.]
“제우스를?”
[그래, 원본의 기억을 이어받은 존재는 나와 제우스 그리고 헤르메스다.]
“정확히는 제가 두 분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죠.”
헤르메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서로 받아들이는 게 달랐군.”
[정답이다. 원본의 기억을 받은 나는 그냥 이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제우스는 아니었어. 그는 자신이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싫어했고 인간들을 지배하고 이용해서 벗어나려고 하지.]
가만히 듣던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시안이나 이슬라와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관리자는 어째서 너희를 그냥 둔 거지?”
관리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꼭두각시가 줄을 끊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진하라는 방해물까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히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제우스가 하려는 행동이 관리자와 맞으니까. 굳이 건들 필요가 없던 거지.]
“그럼 너희들은?”
“저희들을 건드리면 관리자의 입장에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우린 다른 존재들과 달리 신이니까.]
하데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진하는 그런 하데스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신이라…….’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신, 그 신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관리자가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결국 그들은 관리자가 만든 피조물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건드릴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우리를 건드리면 원본이 난리를 치는 것뿐이니까요.”
“원본?”
“네, 모든 신들이 복제품이지만 하데스 님이나 저는 원본의 기억을 이어받았죠. 아니, 정확히는 연결되었다는 게 맞겠네요. 그러니 죽으면 원본 역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 물건을 건드리지 말아라. 이건가?”
이 복제품 신들을 관리자가 허락을 맡고 복제를 한 건지 아니면 무단으로 복제를 한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그들을 관리자가 죽이면 곤란하긴 할 것 같았다.
내 물건을 남이 건드리면 그것만큼 기분이 나쁜 것도 없으니까.
“고작 겨우 그런 이유로?”
“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원본이 되는 세 주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이곳 관리자보다 높은 존재니까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결국 제우스는 원래 관리자가 의도했던 방향과 비슷했기에 남겨둔 거고 하데스나 헤르메스는 굳이 건드려서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뭐, 대충 상황이 이해는 갔어. 하지만 아직도 너희한테 내가 필요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간단한 거다. 헤르메스와 난 그저 조용히 살아가고 싶기에 네가 제우스를 막아 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굳이? 내가? 왜?”
[나는 제우스에 의해 반쯤 유배된 상태거든.]
그의 말에 진하의 시선이 곧바로 헤르메스에게 쏠렸다. 하데스가 반쯤 유배가 된 상태라면 그가 여기에 멀쩡하게 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아, 저는 중립인 척했거든요. 일종의 방관자처럼 있었죠. 일종의 이기는 편 내 편이랄까?”
“그렇다고 불안한 요소인 널 그냥 둘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거야 저를 못 건드니까요. 왜냐하면 원본들과의 연결점이 저거든요. 인간 말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공유기와 같은 거랄까요?”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불안 요소이지만 원본과의 통로인 헤르메스를 죽일 수는 없다. 거기다가 자신의 편까지 들고 있다. 그렇다면 확실히 척을 지는 것보단 끌어안는 게 더 낫긴 했다.
“결국 너희가 원하는 건 제우스를 막아 달라는 건가?”
“비슷해요. 정확히는 제우스가 날뛸 수 없게 하데스 님을 도와줘야 되죠.”
그 말과 함께 헤르메스가 주머니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진하에게 내밀었다.
진하는 그가 내민 구슬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구슬일 뿐이었다.
[다른 신들을 죽여라. 그러면 그 구슬에 그 신들의 신력과 신앙심들이 흡수될 것이다.]
“그걸 모아서 너에게 넘겨 달라는 건가?”
[그래, 내가 게이트 밖을 나와 네가 건네준 그 힘을 흡수하면 나는 제우스를 이길 수 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도 좋은 걸 테지?]
확실히 하데스가 제우스라는 존재를 막아선다면 진하로서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알아서 제 살을 깎아 먹는다는데 그가 안 좋을 이유는 없었다.
“내 이득은? 무엇보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하데스가 제우스를 죽일 수 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만약 하데스가 제우스처럼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진하로서는 자신의 손으로 더욱 강력한 적을 만드는 꼴이었다.
그렇기에 이 제안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고작 이득이라곤 적이 될지 아닐지 모르는 존재의 평화협정 약속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가? 인간들의 적을 우리가 처리해 주겠다는데 너희 입장에서는 좋을 텐데?]
“그것보단 더 좋은 수단이 있는걸?”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죽이지 않는 이유, 그건 연결이 끊어져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하가 헤르메스만 죽이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러면 강한 적을 상대할 필요도 없어지고 불안 요소도 없어지는 선택이었다.
[뒤는 생각 안 하나?]
“뒤?”
[결국, 너의 적은 관리자일 텐데?]
“그래서 뭐, 너희들이 관리자와 싸울 때 도와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진하의 물음에 하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아무리 원본과 연결되었다고 한들 결국 복제품이었다.
지금 게이트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운 판에 관리자와의 싸움에서 도와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너의 힘을 강화시켜 주지.]
“내 힘?”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서 봤다. 분명 너는 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 도핑, 평상시의 육체와 영혼은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았어.]
“그래서?”
[신들을 죽이고 신력을 흡수한다면 곧바로 그중 일부는 너에게 자동으로 할당되게 하지.]
하데스의 말에 진하가 턱을 쓰다듬었다. 신들을 죽일수록 진하 역시 성장하는 구조. 확실히 나쁘진 않았다.
“내 이득은 제우스의 처리와 내 스스로의 성장이라…….”
[어떤가 나쁘지 않지?]
“가장 중요한 믿음이 빠졌는데 말이야.”
[어차피 너의 목적은 신들을 막는 거 아니었나? 가만히 있는 것보단 이게 더 나은 선택일 텐데?]
“그건 그렇지.”
신들의 전력이 알아서 깎인다는데 안 좋을 리 없었다. 그리고 하데스가 강해지는 것 역시 진하도 같이 강해진다면 어느 정도 불안 요소도 조금 사라질 테고.
“그래도 믿음 하나는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내 신위를 거는 건 어떤가?]
“하데스 님!”
헤르메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데스는 소리친 헤르메스를 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비록 복제지만 내 신위를 건 발언은 무겁다. 내 약속하지. 죽음의 신을 걸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맹세하지.]
“흠…… 하나 더 걸지. 네가 원하는 건 제우스를 이기고 평화롭게 사는 거지 힘이 아니겠지?”
[그렇다.]
“그럼 제우스와 대등히 싸우거나 아주 약간 우위를 줄 정도의 힘만 주고 나머지는 내가 가진다. 어때?”
[그렇게 아슬하게 넘긴다면 했다가는 내가 질 수도 있다.]
“같이 싸워 줄게. 그게 아니라면 난 이 제안 거절하지.”
진하의 말에 하데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진하는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하데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저 상태로 살아가야 할 테니까.
[좋다. 그렇게 하지.]
잠시간의 고민 끝에 눈을 뜬 하데스가 진하의 제안을 수락했다.
[단, 먼저 내가 흡수를 하고 남은 걸 너한테 넘기는 걸로 하지.]
“흡수만 하고 홀라당 도망가는 건 아니고?”
[그때는 네가 제우스를 도와 날 죽이면 되지 않나? 결국, 서로 싸울 테니 제삼자인 너는 옆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서로가 가장 피해를 주게 할 수 있을 텐데?]
“뭐 좋아. 그럼 받아들일게. 어차피 여기서 더 이야기해 봐야. 시간만 질질 끌 것 같으니까.”
[현명한 선택이다.]
“그럼 너는 언제 나오지?”
진하의 질문에 하데스가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헤르메스는 하데스의 시선에 빠르게 입을 열었다.
“현재 빼돌린 마석은 목표치까지 약 40% 모였습니다. 아마 이대로라면 제우스보단 좀 더 빠르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게 언제인데?”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 속도라면 약 한 달, 만약 당신이 신들을 죽이고 다니면 더 오래 걸리겠죠.”
“부활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네?”
“주신 급들은 완벽하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마석을 사용하는 것일 뿐, 만약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면 인간을 희생시켜서 나오는 방법도 있어요.”
확실히 그런 거라면 나오는 건 확정이라고 봐야 했다.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 건지는 몰라도 사이비 교의 세는 지금도 점차 늘어가고 있으니 나오려고 하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었다.
“너는 잘도 마석을 빼돌렸네?”
“저는 회복되는 정도를 속였거든요. 실제로 회복된 양보다 적게 회복됐다고 말했고.”
“흐음…… 그렇구나. 오케이. 좋아. 대략적으로 한 달 안에 지금 나온 신들을 모조리 잡으면 되는 건가?”
“정확히는 그 이상의 신을 잡아야 합니다. 숫자가 줄어들면 백 퍼센트 인신공양으로 신들을 밖으로 내보낼 테니까요.”
“그럼 총 몇 명을 잡아야 하는데?”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나온 신들만 잡아도 목표치의 70% 이상은 채울 거예요.”
“일단은 알겠어. 그럼 이걸로 모든 이야기는 끝인가?”
[끝이다. 내가 부른 이야기는 이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지.]
“알겠어. 그럼 동맹은 성립된 걸로 알고 이제 그만 일어나도 될까? 나도 나름 일정이 많은 사람이거든.”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의 빛이 훅하고 꺼졌다. 하데스가 사라지고 헤르메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밖으로 나가는 길은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냐, 됐어. 같이 있어 봐야 서로 좋을 거 없잖아? 대신 신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나 정보 넘겨줘.”
“예. 뭐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헤르메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진하는 그런 헤르메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왔다.
그리고 안쪽 공간을 지나 카지노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맞닥뜨릴 신들과 제우스를 상대함에 있어서 하데스와 헤르메스는 꽤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그 점에서 볼 때 유럽에서의 일은 아주 나쁘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다라…….’
왠지 상황이 꽤 복잡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