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46화 (146/202)

#146

어느 집의 한 방 안, 그곳에는 6명의 남녀가 한 곳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보고해라.]

그들이 바라보는 쪽에 있는 수정구에서 튀어나오는 굵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제일 왼쪽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마석의 경우 계획에 차질 없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마 아버지께서 명하신 시기까지 모을 수 있을 듯싶습니다.”

[다른 계획들은?]

“그 역시 계획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남자는 그 말과 함께 힐끗 옆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아르테미스와 아레스가 순간 흠칫했다.

[헤르메스. 말해라.]

“아레스와 아르테미스가 본인의 이름을 누설하는 실수를 했고, 그 이후 협회에서 네메시스가 있는 곳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레스, 아르테미스.]

“네!”

얌전히 부복하고 있던 둘이 재빠르게 제우스를 향해 대답했다. 수정구 너머의 제우스는 그들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실수였나, 아니면 고의였나.]

“아버님,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실수, 고의.]

차가운 제우스의 음성에 아르테미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끝맺음을 내지 못하고 제우스에게 차단당했다.

“고의였습니다.”

아레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런 아레스를 살짝 노려봤으나 아레스는 아무렇지 않게 부복해 있을 뿐이었다.

[아르테미스, 고의 맞나?]

“……네.”

[아레스, 왜 그랬지?]

“인간들 속에서 숨어지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마음에 안 들었다라……. 그래서 내 명을 어긴 건가?]

수정구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 임에도 제우스의 음성은 그 무엇보다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다른 신들은 자신이 질책의 대상이 아님에도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어긴 건 아닙니다. 다만 증거인멸을 위해 죽이던 중 아버지께서 피하라 하신 헌터와 마주쳤습니다.”

[너의 그 오만한 판단으로 인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아느냐.]

네메시스는 죽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힙노스는 아니었다. 비록 힘은 약한 존재였지만 힙노스가 가진 최면은 그들을 빠르게 인간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필수 불가결의 존재였다.

“하지만 아버지, 이미 교세는 확장되었고 굳이 그놈이 없더라도…….”

[닥쳐라.]

“죄송합니다.”

[실수였다면 그냥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판단하에 행동한 것이라 말했으니 기회를 주마. 헤르메스, 헤라클레스.]

“예, 아버지.”

[아르테미스와 아레스를 도와라. 아레스, 너는 네가 판단한 것을 증명해라. 힙노스와 네메시스를 죽인 헌터들을 모두 죽여라.]

“예, 아버지.”

아레스는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고개를 숙여 보이지 않았을 뿐 아레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이었다.

[디오니소스.]

“예,”

[너는 힙노스의 역할까지 같이한다. 너의 술로 인간들을 매료시켜라.]

“예!”

[그리고 아리온.]

“네.”

[너의 발이라면 헤르메스가 하던 일을 네가 대신 할 수 있겠지?]

“예, 아버지.”

아리온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든 일의 재분배한 제우스는 부복해 있는 신들에게 말했다.

[제1 순위가 나와 포세이돈의 부활임을 잊지 말아라. 그전까지는 명령을 위반한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락하지 않는다.]

“예!”

[아레스, 너도 마찬가지다. 만약 실패할 시 너의 신위를 박탈하겠다.]

“예! 아버지.”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의 빛이 꺼졌다. 수정구가 꺼지고 부복해 있던 신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아르테미스가 옆에 있던 아레스에게 외쳤다. 아레스는 그런 그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 어차피 다 잡으면 끝 아니야?”

“할 필요 없던 일을 하니까 문제잖아!”

“워, 워, 둘 다 그만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끼어들어 둘을 중재했다. 어찌 됐든 이미 아버지의 명령은 내려온 상황이니 서로의 팀워크를 해칠만한 사건을 만들어서 좋을 건 없었다.

“일단 싸우는 건 미루고 해결할 방법부터 찾자고. 헤르메스 추적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

“한…… 10일? 내 힘의 복구는 여기서 제일 바닥이니까.”

“그래? 추적까지 생각하면 다음 보고까진 살짝 애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디오니소스, 지금까지 모아 놓은 마석 중 일부 좀 사용해도 될까? 아버지의 명을 이루려면 아무래도 힘의 복구가 좀 더 필요해.”

다음 보고전까지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힘을 더 복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제우스의 처벌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디오니소스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아리온에게 물었다.

“아리온, 헤르메스가 쓴 만큼 채울 수 있어?”

“어차피 마석은 충분하니까 될 거야. 근데 헤르메스 정말로 넌 인간으로 회복을 못 하냐?”

“저승에 한 발 걸친 존재라서 그래. 너도 알잖아. 하데스가 나에게 어떤 금제를 걸었는지.”

헤르메스의 말에 아리온은 혀를 찼다. 그리고 그들 중 유일하게 저승에 발을 걸친 헤르메스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너도 딱하다. 인간으로 힘을 복구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디오니소스 너는 괜찮겠어? 일이 두 배로 늘었잖아.”

헤르메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디오니소스가 지금 하는 일도 매우 빡센 편이었다.

그런데 힙노스와 네메시스가 하던 일까지 해야 하니 여기서 제일 바쁜 건 디오니소스일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 어차피 힙노스가 하던 일은 내 술이면 충분히 쉽게 해. 애초에 힙노스의 역할은 이미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잖아?”

“그건 그렇지.”

힙노스의 역할은 형제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네메시스와 함께 그 일을 잘 이행해서 쎄오스(Theos)교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교단은 이제는 커져서 그가 없이도 알아서 커지고 있었고 힙노스가 하던 건 그저 들어온 그들을 세뇌시키는 것뿐이었다.

“내 술이야 넘치고 인간들을 노예로 만드는 건 굳이 고품질의 술이 필요하지도 않아. 그러니 걱정 마.”

디오니소스의 자신만만한 말에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해한다면 굳이 더 이상 걸고넘어질 필요는 없었다.

“다음 보고까지 15일이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힘내자.”

“뭐, 걱정하지 말라고.”

“네가 제일 걱정이야. 아레스.”

* * *

유럽 협회 내 협회장실, 그곳에서 진하와 레이나는 서로 마주 앉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협회 내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다행히 순조롭게 쎄오스(Theos)의 첩자들을 걸러 내고 있어요. 이게 다 하예진 씨랑 김진하 씨 덕분이죠.”

협회가 쎄오스(Theos)의 첩자를 골라내기 힘들었던 이유는 세뇌가 너무 교묘하게 되어 있어서였다.

그래서 A급 최면 능력자라 하더라도 세뇌를 당한 존재를 찾기 힘들었으며 한 명, 한 명 검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작전을 세우는 것에 꽤 골치를 앓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밝혀낸 사실을 기반으로 작전을 짜야 하는데 어디서 작전이 셀지 몰랐으니까.

“설마 레저렉션에 그런 효능이 있었을 줄이야.”

하예진이 정말 우연히 세뇌된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원들을 도와주다 밝혀진 사실, 다른 스킬들과 다르게 레저렉션만 세뇌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일하게 치료되는 스킬을 색적 능력으로 쓰자고 한 진하 씨도 대단했어요.”

“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하예진이 레저렉션으로 세뇌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진하는 그녀에게 치료보다는 첩자의 색적을 부탁했다.

멀쩡한 사람에게 레저렉션을 사용했는데 치료가 되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세뇌를 당한 사람일 테니까.

덕분에 며칠이 지난 지금 진하네 팀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하예진이었다. 협회 내 치료사들과 팀을 이뤄서 먼저 치료사들이 선 치료 후 레저렉션을 통해 첩자를 골라내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하에진 씨를 많이 아끼나 봐요? 데리고 다닌 걸 보면.”

“많이 티가 났나요?”

“네, 첫날부터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밀어주는데 왜 모르겠어요. 처음엔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진하 씨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제가 잘못되면 뒤를 봐줄 존재니까.”

“글쎄요…….”

레이나는 진하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항상 그가 행동하는 판단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꼭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넣었으니까.

사실 헌터라면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또 대비하기 마련이긴 했지만 그런 것 치곤 진하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제 생각에는 진하 씨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어째서요? 저번에 보니까 이미 이기수 씨를 넘어선 것 같던데요. 그리고 그 아티팩트들도 있고요.”

그녀의 말에 진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대인전만 따지자면 진하가 이기수를 넘어선 것은 맞았다.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나고 대인 공격도 진하가 더 강하니까.

하지만 살아남는 건 별개였다. 적어도 진하는 전투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앞으로 나설 생각이었고 제일 먼저 죽을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은 적었다.

“아마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이기수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그놈이 죽는 걸 볼 자신이 없어서요.”

“서로가 많이 소중하신가 보네요. 아니, 진하 씨는 모든 동료들을 소중히 여기시는군요.”

“소중하기도 하고, 빚도 있어서요. 무엇보다 다시는 겪기 싫거든요.”

“다시? 뭘요?”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레이나는 진하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궁금증을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럼 실행일은 3일 뒤인가요?”

“네, 그렇죠. 동시에 진행해야 된다는 거 알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보안에도 신경 쓰잖아요.”

“알죠. 그래도 좀 걱정되서 그런 것뿐이에요.”

“잘 안 될까 봐요?”

그녀의 물음에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잘 안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가 한쪽이 잘못되더라도 다른 한쪽을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작전이었으니까.

다만, 그로 인해 다칠지도 모르는 동료들이 걱정됐다. 작전을 세운 건 진하와 레이나, 이기수였고, 그중 가장 기초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게 진하였기에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 잘 되겠죠.”

진하는 걱정을 털어 냈다. 어차피 걱정해 봤자 일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나았다.

“그럼 진하 씨는 이제 3일간 뭘 하실 건가요?”

“정보를 얻어 내야죠.”

아직 죽이지 않은 신 2명이 협회 내에 구속되어 있으니 그들을 고문할 생각이었다. 불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

“꽤 독하시네요.”

이미 고문이라면 그들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했을 텐데도 더 하겠다는 진하를 보니 약간 소름이 돋았다.

“뭐, 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요. 저는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준비가 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

말을 끝마친 진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약 10분, 협회원들이 없는 쪽으로 이동한 진하는 멈춰서서 복도를 훑어보았다.

“여기면 되려나.”

CCTV도 없는 공간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이 정도면 딱인 것 같았다.

“원하는 대로 했으니 이제 나오지?”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어느새 한쪽 복도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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