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43화 (143/202)

#143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네, 대략적으론 그렇습니다.”

레이나는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잠시 열었다가 이내 그만뒀다. 믿기 힘든 말이긴 했지만 믿지 않기엔 진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고 말에 진정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실이 진실이라면 진하가 왜 갑자기 게이트 보스들을 공략하려고 하는지 또한 이해가 됐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그러면 믿어 주셨을까요?”

“그건…….”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믿기 힘든 인물이 계속 튀어나오고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믿기 힘든데 아무런 일도 겪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연히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더군요.”

레이나는 그제야 한국 협회장인 송준하가 수많은 이유를 대면서 공략 허가권을 얻으려고 했는지 이해했다.

본인이라도 이런 일이 있다면 사실을 말하기보단 다른 이유를 대며 허가권을 얻으려고 했을 테니까.

“뭐, 아무튼 대략적으로 상황은 이해가 되신 것 같네요.”

“예, 그럼 결국, 저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건가요?”

“제 생각에는요.”

애초에 손에서 여러 사람의 형질이 검출되었다는 점부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일단 그들이 시안 때와 같이 몬스터인 건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해야 할 건 몇 가지 없죠.”

“미하일하고 이사벨 부부에 대한 동태를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할게요.”

“그리고 이번 사이비교를 습격하는 것도 인원을 더 늘리죠.”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일단은 최대한 규모를 늘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근데 꼭 가야 할까?”

듣고 있던 이기수가 말했다. 아레스라는 존재가 한 말과 지금의 사건을 요약하면 느낌상 본거지를 습격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인 것 같았으니까.

“아마, 함정은 아닐 거야. 그러기엔 너무 허술하거든.”

함정이라고 말하기엔 적들이 하는 행동이 너무 허술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하의 생각엔 그들은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하는 족속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말만 들어 봐도 전형적으로 인간을 무시하는 생각이 바닥에 깔린 존재들이었어. 그런 존재들이 우리를 경계하고 함정을 팔 리 없잖아.”

“하지만 레이나가 오는 거에 도망갔다며. 그리고 겨우 둘을 보고 판단하기에도 좀 그래.”

“그건 그렇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밀한 존재들은 아닐거야.”

아마 그들이 습격하려는 본거지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본거지라기보단 그저 일개 지부겠지.

사실 그것만 보면 습격할 메리트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곳을 습격해야 했다.

“어차피 그들의 정체를 알려면 습격해서 뭐라도 건져야 해.”

이대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 단서라도 잡으려면 함정이든 지부이든 습격해야 했다.

“송하나에게 말해 둘 테니까 사이비교에 대한 정보 교차 검증으로 다시 확인해 봐요.”

“알겠어요.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정보를 다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 * *

이틀 뒤, 영국 리즈의 외각에 위치한 한 대형 교회. 그곳에서 떨어진 한 건물 위에서 이기수가 장비를 점검했다.

치익!

[점검은 끝났나요?]

이기수의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이쪽은 준비 다 됐습니다. 그쪽은요?”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그러도록 하죠. 작전대로 레이나 씨의 불꽃을 시작으로 할 겁니다.”

[흠, 알겠어요.]

무전이 끊기고 이기수는 뒤에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준비를 마친 건지 무기를 꺼낸 채 이기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유럽협회가 먼저 들어가면 뒤따라 들어갈 거예요. 목표는 가장 중심에 위치할 것으로 생각되는 중앙입니다.”

“네!”

화르륵!

그 순간 저 멀리서 커다란 불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회 쪽으로 떨어지는 불꽃은 한눈에 봐도 크고 뜨거워 보였으며 그 아래 위치한 교회는 한순간에 불타 버릴 듯했다.

위잉―

쿵!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교회 위쪽에서 순간적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기며 커다란 불꽃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갑시다!”

이기수는 그 말과 함께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한 손에 쥔 딱딱이를 달칵하고 눌렀다.

콰르릉!

그의 손에서 순식간에 쏟아지는 커다란 전격, 전격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더니 이내 교회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쩌적! 쩍!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불꽃을 막아 내던 교회의 보호막에 금이 가더니 이내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깨졌다.

화륵 화르륵!

보호막이 깨진 교회로 불꽃이 쏟아지고 그곳을 향해 유럽 헌터들이 재빠르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적이다!”

“신을 위하여!”

그러자 쏟아지듯 나오는 사람들, 협회원들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베어 내며 길을 트기 시작했다.

이기수는 그들이 뚫어 놓은 길을 따라 달려가면서 입술을 씹었다.

―이번엔 일반인이든 각성자든 다 죽여야 해. 인간으로 보면 안 돼.

회의실에서 진하가 했던 말, 그때는 이기수 역시 동의하긴 했지만 역시 막상 일반인들이 죽어 가는 게 보이자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다.

“죽어!”

그 순간 이기수를 향해 달려드는 한 남자, 그의 손에는 작은 단검이 들려있었다.

‘일반인이야.’

달려드는 모습부터 속도까지 각성자로 보이지 않는 모습, 그 모습에 이기수는 저도 모르게 손에 있던 전격의 세기를 조절했다.

콰직!

그 순간 이기수의 옆에서 튀어나온 하준수가 달려든 남자의 얼굴을 짓뭉갰다.

“할 거면 제대로 해.”

한마디만을 남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하준수, 그의 모습에 이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신이시여!”

멍하니 있는 이기수를 향해 옆에서 기습을 행하는 교인 한 명, 이기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파직!

튀어 나간 전격에 순식간에 검게 타버리는 교인, 그 모습을 이기수는 씁쓸하게 바라봤다.

“제대로 하자.”

일반인을 죽이고 싶지 않은 건 그뿐만 아니었다. 거의 학살을 하듯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협회원들과 그의 팀원들 모두 당연히 원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건 작은 변수를 조금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기수 역시 제대로 행동해야 했다.

치익!

[10분 뒤 불 끄겠습니다.]

무전기에서 들리는 잭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기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교회의 중앙을 향해 달려갔다.

* * *

“시작했네.”

붉게 타오르는 하늘과 은은한 천둥소리를 들으며 진하가 몸을 일으켰다. 신호가 왔으니 이제 그 역시 작전대로 움직여야 했다.

“흠, 반응이 없네.”

진하는 앞에 보이는 저택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 본거지라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역시나 교회 쪽은 미끼인 듯싶었다.

“역시 함정도 아니었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떠나 그냥 아예 신경을 끄는듯한 모습이었다. 아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함정도 아닌 듯했다.

“그럼 가죠.”

진하가 뒤에 있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뒤에 조용히 서 있는 복면을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악!

발을 굴러 빠르게 정문을 향해 뛰어든 진하는 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사람에게 짧게 애도하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걱!

한 번의 칼질에 잘려 나가는 사람들의 목, 진하는 곧바로 바로 앞에 있는 문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정원으로 들어가자마자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건 뭐…… 습격에 의미가 없네.”

허탈한 목소리로 말한 진하의 눈앞에는 정중한 태도로 주르륵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들이 습격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싶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이 저택의 집사인 하인즈라고 합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사용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진하는 그 모습에 검을 도로 꽂아 넣으며 말했다.

“안내해 준다면야 저야 좋죠. 아, 근데 잠시만요.”

진하는 주머니에서 요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요요를 내렸다 올렸다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뭘 하시는 거죠?”

하인즈는 의아한 모습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는 하인즈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요를 하더니 이내 슬립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기술.

촤락, 촥! 촥!

“이게 찹이라는 기술이거든요?”

“그런데요?”

“이게 시간을 잡아먹긴 하는데 나름 쓸만한 기술이더라고요.”

요요를 이리저리 수십 번 돌리던 진하가 이내 기술을 풀고 손을 툭 하며 털었다.

촤르르륵, 츄르륵!

순식간에 원위치하는 요요, 올라오는 요요를 잡은 진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끝!”

촤자자작!

말이 끝나자마자 양옆으로 도열해 있던 사람들의 목이 모두 동시에 잘려 나갔다. 그 모습에 뒤에 있던 복면인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모두 죽이셨군요.”

“혹시 모를 후환을 남겨 둘 순 없으니까요.”

“그럼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뒤돌아 피로 범벅이 된 길을 걸었다. 진하 역시 아무렇지 않게 그를 따라 걸어갔다.

툭.

그때 뒤에 있던 복면인이 진하를 살짝 건드렸다. 진하는 살짝 뒤돌아 복면인을 보며 말했다.

“아, 신기하죠? 위력 자체는 강하지 않은데 다수를 상대할 때 좋더라고요.”

찹이라는 기술의 특징이었다. 요요를 회전시킬수록 무형의 칼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진하가 노리고자 하는 곳에서 생겨나 적을 공격하는 기술이었다.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으나 몇 초만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마법이나 다름없는 좋은 기술이었다.

절레절레.

진하의 말에 고개를 흔드는 복면인, 그 모습에 진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애초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건 모두 없앤다고 미리 말했을 텐데요? 이런 거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마세요.”

복면인이 뭘 불편해하는지 알겠지만 이건 진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친구와 동료지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힘이 없는 세뇌된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진하에겐 조금의 위험이 있다면 모두 죽이는 게 나았다.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도착한 건지 집사가 한쪽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마워요.”

진하는 싱긋 웃으며 칼을 뽑아 그대로 집사의 목을 베었다. 집사 역시 할 일이 끝났다면 굳이 살려 둘 필요는 없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에는 한 남녀가 의자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게. 차 한잔 들겠는가?”

진하를 맞이한 남자, 미하일은 그의 반대편에 마련되어 있는 차를 가리켰다.

“아뇨, 괜찮아요. 대신 뭣 좀 묻죠?”

“뭐든지?”

미하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에 진하는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하일, 그리고 이사벨 씨?”

“네.”

“왜 그러지?”

“진짜 둘은 어딨나요?”

진하의 말에 순간 정적이 돌았다. 그리고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는 미하일, 그는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진짜 둘은 어딨다니.”

“너희들한테 보고 들어갔을 거 아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레스가 말 안 하든?”

순간적으로 미하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하는 그 틈을 노리고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서로 사이가 나쁜 모양이네. 그치? 힙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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