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이게 뭐야?”
“꺄아악!”
진하의 물음에 대답하듯 거리에 있던 한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그녀의 시선은 한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셋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멀리서 검은 구름을 내뿜고 있는 한 건물이었다.
“이런 미친!”
이기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검은 구름을 내뿜고 있는 건물은 다름 아닌 진하 일행이 묵고 있는 호텔이었으니까.
“예진아, 업혀!”
정신을 차린 진하가 재빠르게 외쳤다. 그녀는 진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진하에게 업혔다. 이기수는 먼저 간 건지 그가 있던 자리에는 전기만 파직하고 방전하고 있었다.
―과거의 후회(2단계)
콰직!
바닥이 움푹 패이며 호텔 쪽으로 진하의 신형이 빠르게 튀어 나갔다. 그리고 뒤에 업혀 있는 하예진에게 말했다.
“너는 외각에서 치료에 집중해. 아마 팀원들이 이미 사람들을 밖으로 빼내고 있을 테니까.”
“응!”
하예진은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진하의 눈에 흉물스럽게 파여 있는 호텔이 한가득 들어왔다.
* * *
콰앙!
호텔의 한곳이 폭발하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폭음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부만 바라볼 수 있었다.
퍽! 콰직! 퍽!
폭발이 일어나기도 전에 날아온 잔해를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 운이 좋은 사람은 어깨나 팔에 맞고 쓰러졌지만 운이 나쁜 사람들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즉사했다.
“으아악!”
머리가 터진 사람을 본 남자의 비명을 기점으로 폭탄이 터진 호텔 주변은 아비규환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의 파편이 예고편임을 알리듯 사방으로 도망가는 사람들 위로 커다란 파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극, 그그극! 뚝!
잠깐이나마 파편을 지탱하던 철골이 끊어지며 떨어지는 커다란 파편들, 그중 가장 큰 파편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은 순간 아무런 반응도 못 한 채 파편을 멍하니 바라봤다.
파직, 파지직!
그 순간 그들 위로 펼쳐지는 커다란 전격의 망, 빠르게 떨어지던 파편은 전격 망에 부딪침과 동시에 우뚝! 하고 멈춰 섰다.
“으악!”
“꺅!”
파편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뒤늦게 상황을 인식하곤 저도 모르게 다들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그들 위로 이기수가 나타나며 외쳤다.
“파편은 제가 막을 테니까 모두…….”
“살려 줘!”
“으아앙!”
하지만 이기수의 외침을 듣기는커녕 혼란스러워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이기수는 혀를 찼다.
‘소용없겠어.’
이미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아무리 소리친다 해도 알아먹질 못할 게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이기수는 입술을 깨문 채 발을 크게 굴렀다.
쿵! 파지직! 파직!
발을 구르자 이기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퍼지는 전격, 넓게 퍼진 전격은 멀리 뻗어 나가면서 그 사이에 위치한 사람들을 모두 감전시키기 시작했다.
‘일반인에게 능력을 쓰는 건 불법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감전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 봐야 놀라서 잠깐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약했기에 문제도 없었다.
“다들 천천히 대피하세요!”
잠깐 사이 터진 정적을 이용해 소리치는 이기수,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들 위로 커다랗게 전격으로 이루어진 망이 쳐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허, 헌터다!”
“살았다!”
하늘에서 간간히 떨어지는 파편들이 모두 허공에서 멈추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뱉었다.
이기수는 사람들이 패닉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모든 사람들이 패닉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정신을 차렸으니 문제는 없었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챙길 테고, 가장 큰 문제인 사람들끼리 도망치다 다치는 문제도 없어질 테니까.
“근데 이것들은 왜 안 나오지?”
분명 떠나기 전에 2~3명의 사람들이 숙소에 남아서 쉰다는 걸 확인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하루 종일 숙소에 있을 거라고 했으니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사람들을 챙겨 한두 명씩 빠져나왔어야 했다.
“상황은!”
그때, 뒤늦게 도착한 진하가 이기수를 보며 외쳤다. 진하의 등에 업혀 있던 하예진은 재빨리 그의 등에서 내려 다친 사람들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파편은 내가 모두 막았고, 이제 천천히 내려놓기만…….”
콰앙!
그때 호텔에서 또다시 커다랗게 울리는 굉음, 그 소리에 진하와 이기수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똑같은 굉음이었지만 아까는 폭탄이 터지면서 난 소리였던 것에 비해 지금 들리는 소리는 커다란 힘끼리 부딪치는 굉음이었으니까.
“내가 올라갈게!”
“알았어! 조심해!”
그 말과 함께 진하가 호텔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며 이기수가 이를 갈았다.
‘제발 빨리 좀 와라.’
이기수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유럽 협회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벌써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한 명도 이곳에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협회가 와서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야 이기수도 전격망을 해제하고 갈 텐데 아직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분명 미하일이랑 이사벨이 온 거야.’
방금 들렸던 소리는 분명 A급 이상의 헌터들이 아닌 이상 내기 힘든 충돌음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 이상의 헌터들이 싸우고 있다는 소리였는데 지금 호텔 내에는 팀원의 등급은 S급 2명과 A급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 3명이 아직도 나오지 못한다는 건 적 역시 적어도 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고 이런 일을 벌일만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비교밖엔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진하가 갔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손이 부족한 이상 피해자가 생길 게 분명했다.
‘제발 모두 무사하길…….
* * *
타닥, 타닥.
불타는 방 안에서 한 남자가 평온하게 서 있었다. 그는 뭔가 마음에 든다는 듯 자신의 손에 잡힌 휘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 꽤나 튼튼한데? 마음에 들어. 데리고 가도 되지?”
[네 마음대로 해. 근데 돌아가서 아버지한테 혼날 준비는 하고.]
“하,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야! 그리고 오빠라고 불러!”
[그럼 오빠답게 행동을 하던가. 들키지 않게 기껏 테러만 하고 돌아오라니까 왜 거기서 밍기적거리는 건데?]
“싸울 맛이 나는 놈들이 있는데 당연한 거 아냐?”
남자의 말에 멀리서 텔레파시를 주고받던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그녀의 오빠이긴 했지만 무식한 존재였다.
이번 일만 해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로 인해 하는 수 없이 아버지가 이거라도 해라, 하고 보내 줬건만 그새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치고 있었다.
[아, 그 아랫놈들은 모두 죽이는 거 잊지 말고.]
“알아, 알아. 어차피 이놈에 비해 다른 놈들은 때리는 맛도 없어.”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둘을 쳐다보았다. 한 명은 완전히 쓰레기였고 한 명은 나름 쓸 만했지만 맷집이 너무 약했다.
“뭐, 그래도 인간치고는 나쁘지 않았지.”
남자는 그 말과 함께 머리를 터뜨리기 위해 발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있는 힘껏 내리밟았다.
콰앙!
그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날아가는 남자,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진하가 서 있었다.
진하는 재빠르게 홍승연과 엘리사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오! 새로운 놈이야? 이번 놈은 꽤 손이 맵네?”
한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나온 남자가 진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진하는 그런 남자의 손에 들린 휘젠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까드득!
“뭐야? 아는 놈이야? 꽤 화났나 봐?”
“너 뭐 하는 놈이야.”
이곳으로 올라오는 동안 진하는 미하일과 이사벨 부부가 쳐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남자는 아무리 봐도 미하엘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난 아레스야.”
“뭐?”
[야이, 멍청아! 그걸 말하면 어떡해!]
“아, 거참 뭐 어때 잡으면 되지.”
아레스의 혼잣말에 진하는 한 명이 더 있음을 직감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텔레파시 능력자와 대화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으니까.
[지금 다른 헌터 놈들도 다 오고 있다고!]
“어차피 빠르게 없애면 되는 거 아냐? 이런 놈을 두고 가만히 있는 건 나랑 성미가 안 맞는다고. 너도 그렇지?”
진하를 보고 웃으며 말하는 아레스. 진하는 그를 보며 조용히 생존의 투지를 발동시켰다.
“응?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네? 좋아. 아주 좋아!”
아레스는 달라지는 진하의 기운을 느끼며 손에 들고 있던 휘젠을 벽으로 던졌다.
쿵!
“네가 있으니까 이놈은 이제 필요 없어.”
그 모습에 진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담담해졌다. 그리고 조용히 아레스를 노려보았다.
“칼은 안 뽑아도 되겠어?”
“닥쳐.”
“많이 화났나 봐?”
아레스는 신난다는 듯 말했고 진하는 아무 말 없이 곧바로 아레스를 향해 달려들어 주먹을 뻗었다. 그 모습에 아레스 역시 신나서 곧바로 진하를 향해 똑같이 주먹을 뻗었다.
콰직!
정중앙에서 부딪치는 둘의 주먹, 진하는 왼 주먹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뭐야? 왜 이렇게 약해?”
아레스는 생각보다 약한 진하의 주먹에 의문을 표했다. 겉으로 느껴지는 기세만 봐도 꽤나 즐겁게 싸울 만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치니 주먹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거야…. 제대로 부딪치면 친구들이 다치니까!”
―무력화.
휘청!
순간적으로 힘이 빠지며 자세가 무너지는 아레스, 진하는 그 순간을 이용해 멀쩡한 손으로 허리춤에 찬 장난감 칼을 쥐고 그대로 휘둘렀다.
서걱!
칼집을 베며 빠져나온 장난감 칼이 대각선을 그리며 아레스를 베었다.
“캬악!”
그 순간 아레스가 소리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로 인해 아레스를 완전히 베려던 진하의 칼은 몸통을 베지 못하고 아레스의 오른팔을 잘라 버렸다.
진하는 빠르게 풀린 무력화 스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시간도 없이 곧바로 아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 버리겠어!”
뒤로 물러나던 아레스가 곧바로 방향을 바꿔 진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진하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날린 주먹을 향해 곧바로 검을 내리그었다.
푹!
그 순간 날아온 화살 하나가 진하의 오른팔을 뚫었다. 그 충격에 균형을 잃은 진하는 날아오는 아레스의 주먹을 검면으로 다급히 막았다.
쿵! 치이익!
충격에 의해 진하가 뒤로 밀려나고 그의 오른팔을 꿰뚫은 화살을 본 아레스가 크게 소리쳤다.
“아르테미스! 이게 무슨 짓이야!”
[도와줘도 지랄이네.]
“내가 싸울 때 방해하지 말랬지!”
[내가 아니었으면 넌 그대로 베였어.]
“이번엔 신력을 둘렀거든!”
[멍청아, 보면 모르냐! 저건 신력을 둘러도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잖아!]
텔레파시를 날리던 여자, 아르테미스가 혀를 차자 아레스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이제부터 방해하지 마.”
[시간 아웃이야 돌아가자.]
“무슨 소리야?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아는 놈은 죽이라며!”
[까드득!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리고 그년 왔어. 이대로 있다간 우리 둘다 죽는다고.]
“내가 때려눕히면 돼!”
[내 말을 무조건 들으라는 아버지의 엄명까지 무시할 건 아니겠지?]
“……이런 젠장! 알았어. 가면 되잖아. 너! 나중에 다시 보자.”
짜증난 표정으로 소리친 아레스는 곧바로 발을 굴러 호텔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허공에 뜬 그를 아르테미스가 곧바로 잡아챘다.
진하는 순간 요요를 이용해 공격할까 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공격이 아니라 친구들의 목숨이었으니까.
“휘젠!”
벽에 부딪친 휘젠에게 달려간 진하는 재빠르게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숨은 쉬었지만 온몸의 뼈가 부러진 걸 넘어 잘게 바스러진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곧 목숨이 끊어진다는 걸 깨달은 진하는 재빠르게 요요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기술을 실행했다.
―강제 리턴.
기술과 함께 순식간에 감기는 요요. 그와 동시에 진하의 앞에 있는 휘젠의 몸이 흑백으로 변하며 시간이 되감기듯 멀쩡해지기 시작했다.
“하아, 다행이다.”
진하는 멀쩡해지는 휘젠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휘젠을 살릴 수 없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놈들은 뭐지…….”
아레스와 아르테미스라고 불리던 존재들, 신화 속 이름을 따온 정체 모를 각성자의 등장에 진하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