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40화 (140/202)

#140

“‘어제까지는’이라고요?”

진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되는 거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갑자기 어제까지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예요. 사실 원래는 제가 가기로 했어요. 근데 어제 일이 터지고 난 이후에 결정을 번복하게 되었어요.”

“어제 사건이라면…….”

진하는 오늘 아침에 정보 길드에서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어젯밤 12시경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사이비 종교에 의해 일어났으며 피해자는 유럽 협회 간부 중 하나.

“하지만 그건 프랑스잖아요?”

테러가 일어난 것은 독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은 조용한 편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그녀가 독일을 떠날 일이 없으니 프랑스에서 사건이 터졌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거절이 될 이유는 없었다.

“맞아요. 저랑은 관계없죠. 저는 독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녀가 있든 없든 결국엔 다른 나라는 지원을 못 받는 처지였다. 그러니 이번 안건에서 테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진 않긴 했다.

애초에 테러를 당한 나라도 하나고 그 간부도 하급 간부였다. 테러한 사람도 일반인인 걸 생각하면 확실히 진하가 지적하는 말이 맞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있는 것과 없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아무리 국가급 아티팩트가 있어도요.”

레이나의 말에 진하가 헛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로, 그것도 되었다가 말았다라는 걸 말했다는 건 분명 그 뒤에 뭐가 더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죠?”

“간단해요. 저희가 역 제시를 하는 거죠.”

“역 제시?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국가급 아티팩트를 보장하면 잭과 S급 헌터 두 명, 그리고 A급 헌터의 지원까지 해 드릴게요.”

저번보다 S급 헌터의 숫자가 늘었다. 하지만 진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했다. 테러를 생각하면 SS급 헌터 한 명과 S급 헌터 두 명이 그들에게는 더 손해였으니까.

“이건 둘에게 서로 좋은 딜이 아닌 것 같은데요?”

없는 것보단 낫지만 내키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서로에게 손해만 보는 조건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제시, 우리를 도와주시면 저와 잭, 그리고 S급 헌터 둘 및 A급 헌터를 지원해 드릴게요.”

“도와주는 거라면 사이비 종교?”

“네, 그들을 소탕하는 걸 도와주세요. 그럼 도와드리죠.”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요.”

“본거지는 이미 찾았어요. 그것만 처리하면 돼요. 길어야 하루, 이틀입니다.”

그녀의 말에 진하는 입 안이 꺼끌꺼끌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유리하고 좋은 제안이었다. 그래서 진하는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들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이렇게 퍼 주듯이 제안을 한다는 건 너무나 이질적이었으니까.

“그래서 뭘 도와줘야 된다는 거죠? 애초에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있나요?”

“필요가 있으니까 말하는 거겠죠? 저희가 원하는 건 간단해요. 그저 본거지를 쳐들어가면 S급 헌터 두 명을 맡아 주세요.”

“S급 헌터?”

“네, 넘어갔더라고요. S급 두 명이.”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같은 소속의 헌터끼리 싸우게 만들기 싫어서 진하 일행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본거지만 파괴하면 사이비교는 확실히 세가 약해질 것이고, 그 이후에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정확히 뭐가 문제인 건데요? 하나씩 풀지 말고 빠르게 다 이야기해 주세요. 이게 다는 아니잖아요?”

이해는 됐지만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단순히 같은 소속의 헌터끼리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치곤 너무 이유가 빈약했다. 레이나는 진하의 그런 태도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알았어요. 그럼 남은 걸 바로 말하도록 하죠. 우선 그 이후에 국가급 아티팩트 하나 더 주세요.”

“그리고 또.”

“그리고 본거지에 있는 S급 헌터 둘을 죽여 주세요.”

레이나의 말에 진하는 순간 멈칫했다. 아무리 사이비교에 빠졌다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협회소속 헌터를 죽여달라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진하의 마음을 아는지 레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서류 두 장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두 헌터의 이름은 미하일, 그리고 이사벨이에요.”

“미하일, 이사벨?”

둘의 이름에 진하는 머리가 순간 띵해지는 걸 느꼈다. 미하일과 이사벨, 부부 헌터이자 세계 최초의 S급 헌터 두 명의 이름이었다.

그 둘은 지금은 덜하지만 초기에 유럽에서 영웅으로 불렸던 사람들이며 대부분의 고위급 헌터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누구보다도 게이트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두 부부였다. 자식들을 잡아먹은 게 몬스터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둘이 사이비에 넘어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사이비교 쪽에 S급으로 추정되는 최면 능력자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백여 명 내외인 게 S급 헌터들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갓 S급이 된 사람들이 점차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적은 게 S급 헌터였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국가가 몰랐을 리도 없고, S급 헌터가 애초에 사이비교에 가담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거든요. 실제로 몇몇 사이비 교도들을 잡아서 확인해 본 결과 매우 고등급의 최면 능력이 발견됐고요.”

“S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협회 내 A급 최면술사가 최면을 덮으려는 시도가 전혀 안 먹혔으니까요. 그럼 최소 S급이라는 건데 SS급은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건 그녀의 말이 맞았다. S급조차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SS급은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두 사람이 최면에 걸리려면 확실히 S급이긴 해야 했다.

“하아, 그래도 믿기지 않는데요. 갑자기 S급 헌터가 튀어나온 것도, 그 둘이 사이비교단에 들어간 것도요”

“그건 유럽 협회도 마찬가지예요. 상식적으로 S급 헌터가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아예 이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요.”

이미 유럽 협회에서도 많은 말이 오갔던 사항이었다. 그들 역시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가정도 없이 뭘 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렇기에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고.

진하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레이나에게 말했다.

“죽여 달라는 건 파훼 방법이 없다는 거겠죠?”

“적어도 우리 생각으론 그래요.”

“완전 우릴 쓰레기로 만드네요.”

결국 본인들이 흠모하는 영웅들을 죽일 수 없으니 대신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거였다. 확실히 그게 가능한 건 당장에 진하와 이기수밖에 없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영웅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에서였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유럽 헌터들은 그 최면 능력자를 잡겠네요. 본거지도 소탕하고.”

“네, 그럴 거예요.”

“그놈 얼굴이나 봅시다.”

같은 S급이라면 한 번에 최면에 걸릴 리 없었다. 낮은 등급의 헌터조차도 여러 번 접촉을 해야 가능한 게 최면이었으니 분명 S급인 그들을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넘겨드린 서류 맨 뒷장에 얼굴이 있어요.”

진하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서류를 집어 들어 맨 뒷장으로 종이를 넘겼다. 그러자 CCTV에 찍힌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 문을 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신원은 조회됐나요?”

“아뇨, 일단 계속 찾고 있긴 한데 아마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하기야 신원이 조회될 걸 알 텐데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하진 않겠죠.”

게이트가 생겨난 이후로 거의 모든 시스템망을 고치긴 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신원이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생겼고 특히, 땅덩어리가 넓은 유럽의 경우에는 그게 더 심했다.

“그래도 너무 당당한데요? 이렇게 얼굴을 까고 다니고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죠. 실제로 S급이면 자신 있을 만하고요.”

“협회가 상대만 아니라면 말이죠.”

레이나가 뭘 원하는지 완벽하게 생각을 정리한 진하는 잠시 고민했다. 유럽 쪽에선 두 가지 선택지를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두 가지 선택지 중 진하가 선택할 것은 결국 하나였다. 두 가지 모두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지만 애초에 2번째 선택지가 너무 매력적이었으니까.

“그럼 작전은 저와 이기수만 나가면 되겠죠? 당연히 실행일은 이틀 뒤고요.”

“네, 두 분이면 충분하죠. 그리고 날짜도 이틀 뒤로 미룰 생각은 없고요.”

S급 두 명을 상대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SS급인 이기수는 물론, 진하 역시 이번에 S급으로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작전일 역시 이틀 이상으로 미뤘다간 기껏 찾은 본거지를 옮길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적들이 극심하게 숨기지 않으니 다시 찾는 건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었다.

“날짜는 오늘부터 이틀 뒤 저녁 8시에 할 거예요. 장소는 영국 리즈라는 곳이고 내일 바로 출발할 거예요.”

“그 일이 끝나면 바로 다음 날 게이트로 출발하고 싶은데 가능하나요?”

잠시 고민하던 레이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라면 본거지 소탕에는 몇 시간 걸리지 않는다.

그 이후 뒷수습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일이 끝난 후 남은 잔당은 유럽에 존재하는 헌터들만으로도 충분히 없앨 수 있었다.

“충분해요. 빠듯하긴 하지만 저녁에 출발하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뭐죠?”

레이나의 질문에 진하는 하예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작전 시작 전에 정보 전달이나 간단한 의견 교환은 하예진 헌터한테 하면 됩니다. 아티팩트 관련해서 훈련하는 것 때문에 연락이 안 될 경우도 있어요.”

“네, 그건 그러도록 하죠.”

대화를 마친 진하는 곧바로 협회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협회를 빠져나오자마자 하예진이 진하의 팔을 꼬집었다.

“거기서 내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당연히 네 이름이 나와야지. 그럼 그냥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가 나오려 했어?”

이기수야 애초에 무력으로 이미 인증받은 사림이었기에 딱히 말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이기수가 이런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 진하에게 떠넘기기도 했고.

하지만 하예진은 달랐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단은 만약을 대비한 제3 명령권자가 그녀였다. 그렇다면 그냥 얼굴만 익히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인식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어떡해! 그리고 그런 말도 들어가면서 안 했잖아.”

“뭐, 그건 얘기하면서 생각나서? 그리고 그때 아니면 딱히 너 인식시키기도 어려웠어.”

중간에 그녀까지 끼어들어 같이 의견을 나눴으면 좋았겠지만 주제가 주제다 보니 그녀를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거고.

“하아, 난 모르겠다. 굳이 나를 그런데 끼워 넣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냥 내 욕심이라고 생각해.”

그냥 만약을 대비한 안배를 만들고 싶은 것으로 보아도 좋았다. 미래가 어찌 되든 일단 그러는 게 진하의 입장에선 더 마음이 편했다.

‘그래야 걱정 없이 날뛸 수 있으니까.’

뒷말은 삼킨 진하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하예진을 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그 모습에 하예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얘한테 좀 뭐라고 해 봐요.”

“그냥 두세요. 애초에 똥고ㅈ…….”

콰앙!

그 순간 커다란 굉음이 그들의 귓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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