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기수는 소파에서 휘젠에게 헤드록을 걸고 있는 진하를 보며 물었다. 한국 헌터들이 오기 전까지 답장을 준다는 걸 생각하면 고작 며칠이긴 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며칠조차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아파! 아파!”
“누가 그러게 늦게 보내래!”
진하는 헤드록을 건 그대로 휘젠을 깔아뭉갠 뒤 팔꿈치로 곡괭이질을 했다.
“캬악! 진짜 아프다고! 어디서 팔꿈치 갈아 왔냐!”
“내가 너를 위해 오만 년을 갈아 왔다!”
“이것들아!”
보다 못한 이기수가 둘에게 소리쳤다.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저러더니 지금까지 계속 저러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진지한 질문을 던졌음에도!
탁!탁!
“항복!”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진하는 바닥에 탭하는 휘젠을 풀어 준 후, 살짝 난 땀을 훔쳤다. 그리고는 이기수를 보며 말했다.
“뭐가 그리 초조해. 며칠이잖아.”
“여기 출발하기 전에는 네가 더 초조했거든!”
“그거야 부정확했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러니 초조해 하지 마. 우리가 빠르게 행동해야 할 건 결정이 내려진 이후야.”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확실히 진하의 말대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나눠 준 아티팩트에 다들 익숙해질 필요성도 있어. 너야 일찍 받아서 쓰는 데 익숙해졌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
진하의 말대로 숙소에는 진하와 이기수, 휘젠을 제외하곤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숙소 지하 1층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 각성자 훈련소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왜 안 가냐?”
“빨리도 묻는다…….”
진하가 휘젠에게 의아해하며 묻자 휘젠은 엎드린 상태 그대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오자마자 시비를 걸어서 못 갔잖아! ……는 아니고, 아티팩트에 딱히 익숙해질 필요가 없으니까?”
“뭐, 하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하가 휘젠에게 넘겨준 아티팩트는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꽤 무난한 효과였으니까.
<실 팔찌: 11개의 실이 모여 이루어진 팔찌,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다.>
<신체 능력 한 단계 상승, 착용 부위로 타격 시 공격력 증폭. 자가 수복>
<팔찌의 실 1개가 끊어질 때마다 10%의 능력을 일정 시간 원하는 대상에게 전달 가능.>
본래는 휘젠이 가진 유대화를 극대화시킬려고 만들었다가 실패한 아티팩트였다. 그러나 아티팩트는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져 버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그때 진하는 하는 수 없이 휘젠의 아티팩트를 가장 뒤로 미뤘었고 결국 다시 만들지 못하고 그대로 주고 말았다.
“그래도 신체 적응은 필요하잖아.”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는 해도 어찌 됐든 거의 국가급 아티팩트였다. 적어도 강해진 신체 능력에 적응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도 필요 없어. 아, 너는 모르나?”
“뭐가?”
휘젠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가시화시켜 진하에게 보여 주었다.
<이름: 휘젠
능력: 유대
칭호: 절친
스킬: 강철화, 최적화.
상태: 이상 없음.>
<최적화: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상황에 맞게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한다.>
스킬을 읽은 진하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최적화는 직역하자면 결국 어떠한 상황, 다치거나 버프를 받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가장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시켜 준다는 소리였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어도 스킬 중 상위권에 속한 스킬이었다.
“이게 말이 돼? 아니, 너 이거 어떻게 얻은 거야?”
보통 스킬은 신념의 표출된 형태로 나온다. 그건 아무리 처음부터 스킬을 가지고 각성자가 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실제로 휘젠이 가진 강철화도 유대와 비슷하게 사람들과의 유대가 많을수록 몸이 단단해지는 거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진하는 지금까지 휘젠이 행동하는 모습이나 스킬 효과를 보고 그의 신념을 사람들과의 유대라고 추측했었다. 하지만 최적화는 그런 추측과는 너무 딴판인 능력이었다.
“너 이거 어떻게 각성했냐?”
“왜?”
“아니, 친구들에 대해서 뭘 생각했을 거 아냐.”
분명 이기수처럼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탄생했다든지 하는 그런 신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하의 머릿속에서는 스킬과 신념 사이의 연결점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흠…… 이걸 어떻게 각성했더라.”
“어떻게 각성했는지 기억 안 나?”
“아마도 너희들이랑 같이 놀고 싶어서? 그리고 지긋지긋한 훈련장에 틀어박혀 있기 싫어서 미쳐 버릴 것 같았을 때 각성했는데?”
“뭔 개소리냐?”
진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겨우 그런 생각으로 스킬을 각성했을 리는 없었다.
“아,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
버럭 화를 낸 휘젠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문으로 걸어가며 소리쳤다.
“나는 실내 수영장 가서 쭉쭉빵빵한 누나들이랑 놀란다. 메롱!”
탕!
진하는 황당한 표정으로 휘젠이 닫고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이기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하기야 말하기 싫을 만하지.”
“엉? 넌 뭘 아냐?”
진하는 재빠르게 이기수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야 조금은 알지. 같이 붙어 다녔던 게 하준수 씨랑 팀원들이었으니까.”
“뭔데? 뭐길래 저놈이 저렇게 다급히 도망가는 건데?”
“아마 너는 몰랐겠지만 휘젠 씨 원래는 팀에서 나가야 했어.”
자신의 의지로 떠난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휘젠은 유일하게 하준수에게 나가 달라는 말을 들었던 팀원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약해서였다.
“왜? 그래도 A급이었잖아.”
“A급이긴 하지만 너도 알잖아. 가장 바닥이기도 했고, 전력도 들쑥날쑥했던 거.”
하준수라고 해서 내쫓고 싶어서 그런 소리를 했던 게 아니었다. 같이 하고는 싶었지만 휘젠이라는 헌터는 그런 맘과 달리 너무나 불확실한 존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력이 들쑥날쑥한 것도 단점이긴 했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문제였던 건 낮은 성장성이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신체 능력으로 인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움직임을 최적화하는데 시간을 대다수 잡아먹었고 그로 인해 성장도 늦어졌던 게 원인이었다.
“통보받은 뒤로 근 반년은 훈련실에서 살았을걸?”
아마 꽤나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다시 팀원으로 돌아왔을 때 겉으로 봐도 근 10kg은 빠진 것처럼 메말랐으니까.
“뭐, 얼마나 어떻게 힘들었는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개고생하다가 팀원으로 돌아왔어. 그 이후로 성장 속도도 가팔라졌고.”
“흠…….”
이기수의 말에 진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다면 자신이라도 숨기긴 했을 것 같았다. 휘젠이나 진하나 그런 걸 말할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저놈도 미친놈이네. 죽을 자리에 스스로 돌아오고.”
“매번 미친 짓을 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데?”
“응,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진하가 이기수의 타박을 그래도 반사했다. 하기야 여기까지 같이 올 사람이라면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친구 사이라면.
* * *
이틀 뒤, 만나자는 레이나의 연락에 유럽 협회에 도착한 진하는 입구를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안 올 줄이야.”
“뭐, 솔직히 예상했잖아?”
“그렇긴 하지.”
이기수와 하예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하준수한테 그런 역할을 바라는 것부터가 진하의 욕심이었으니까.
―난 절대 안 가. 그리고 미리 못 박아 두겠지만 네가 죽든 살든 난 뒤를 맡을 생각 없어.
단호한 표정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하준수를 진하는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는 1시간이 넘는 설득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거라면 하예진 한 명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교섭 자체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둘이 죽었을 경우라면 본인도 죽었을 거라면서 고집부리는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가 나는 느낌이었다.
“둘이 있는 게 딱이었는데.”
혹여나 뒤를 맡는다면 둘이 딱이었다. 뚝심 있는 하준수랑 남을 헤아릴 줄 아는 하예진, 이렇게 둘이 서로를 보완해 주니까.
물론 하준수가 말했던 송하나나 송준하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한 단체의 수장이었기에 후보에서 뺐던 거고.
“근데 나도 팀장 말이 이해는 돼. 네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런 짓을 해야 해?”
“해야지. 누가 죽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네가 죽으면 어차피 끝이잖아.”
“누가 그래?”
하예진의 말에 이기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하의 의도도 알고 필요한 일이라 하니 따르기는 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진하가 없다면 세운 계획들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내가 죽어도 이기수가 있고, 그 뒤로 네가 있어. 애초에 내가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진하가 죽어도 아티팩트는 남는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없어도 회귀 전에는 2차 게이트 보스를 잡았었다. 즉, 최소한의 정보와 아티팩트를 넘긴 시점에서 진하는 죽어도 아주 크게 상관이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죽는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없다고 세상이 멸망하진 않아. 그걸 제일 잘 아는 게 너잖아.”
“그건 그렇지만 반대로 그들이 선택한 거도 너지.”
“내가 죽으면 자격을 가진 네가 또 다른 대타가 되겠지.”
진하는 이기수의 말을 가볍게 부정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번 일 이후 특히 그를 리더로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심해졌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그냥 일개 헌터일 뿐이야.”
그저 운이 좋은 헌터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았고 잘할 사람도 많았다. 그저 진하는 그중에 운이 좋아 미리 모든 걸 알고 대비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그에게 조금씩 의지해서는 될 일도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 뭐 네가 그리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이기수는 진하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준수보고 고집쟁이라고 뭐라 하던 진하였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진하 역시 만만치 않은 고집쟁이였다.
“아무튼,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들어가기나 하자.”
이기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진하는 어느새 도착한 협회장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달칵!
“어서 오세요.”
안에서 레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하를 맞이했다. 그가 입구에 도착할 때 미리 준비한 건지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미리 숫자에 맞춰 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일행은 레이나의 인사에 마주 인사한 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은 뒤 레이나는 싱긋 웃은 뒤, 차를 권했다.
“좋은 차가 들어왔어요. 드셔보시겠어요?”
“그래요?”
진하는 그녀의 권유에 차를 가볍게 마셨다. 머리가 맑아지는 게 확실히 좋은 차이기는 했다.
“맛있네요.”
“칭찬 고맙습니다. 자, 그럼 서론은 싫어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본론부터 빠르게 말하는 게 당연히 좋으시겠죠?”
“그렇게 배려해 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죠.”
“저도 그런 서론은 싫어하니까요.”
레이나와 진하는 서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대답하는 레이나를 보며 진하는 좋은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레이나의 성격상 거절이었다면 당연하게도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를 내지 않을 테니까.
“그럼 바로 결과부터 말씀드릴게요. 유럽협회원과 상의 결과 제가 가는 거로 결정되었어요.”
“역시 그렇…….”
“단, 어제까지만 해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