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37화 (137/202)

#137

“뭔데?”

무언가 더 얘기하려고 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고작 블러핑 하나만을 얘기하려고 불렀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것만 따로 얘기하고 싶었다면 굳이 송준하까지 남겨 두지 않았을 테니까.

“우리 쪽 조직원들이 알아 온 거야.”

송하나가 안쪽 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각각 진하와 송준하에게 넘겼다. 종이를 받아 든 둘은 간략하게 적혀있는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사이비교의 창궐이라…… 꽤 규모가 크네?”

“규모도 규모지만 퍼지는 속도가 빨라.”

송하나가 건네준 종이에는 유럽에서 퍼지고 있는 종교에 관한 내용이었다. 서류상으로 정리된 종교 인원의 통계는 보기 쉽게 그래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래프로 그려진 선만 봐도 가파르게 성장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알고 있던 것보다 심하군요. 설마 이렇게까지 클 줄이야…….”

“당연하지. 우리 정보 길드랑 협회가 정보를 얻는 방식도 방향도 다르니까.”

두 세력이 정보를 얻는 방식은 거의 반대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각종 세력에 첩자를 심어 둔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협회는 헌터들이나 일반인들에게서, 정보 길드는 딥웹과 각종 요정 등에서 고위급 간부들이 주고받는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이 달랐다.

거기다가 애초에 정보 수집의 방향 또한 다르기도 했다. 협회는 불법적인 일이나 불순 세력을 거르기 위한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지만 정보 길드는 각 길드의 약점과 전반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정보를 위주로 모으고 있었으니까.

“사이비교의 이름은 쎄오스(Theos), 각종 헌터들을 배제해야 된다는 구호 아래 모이고 있어.”

“Theos? 그리고 헌터들을 배제해야 한다니?”

종교 이름이 특이한 것도 신기했지만 헌터를 배제한다는 건 아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정되긴 했지만 유럽만큼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은 곳이 없었기에 헌터를 배제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헌터는 각성 능력자가 아니야. 말 그대로 헌터, 게이트를 공락하는 사람들이지.”

세간에선 보통 헌터=각성자라는 인식하곤 했다. 애초에 각성자라면 협회에 등록을 하게 되기도 했고 등록자들의 대부분은 게이트에서 종사하니까.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각성자와 헌터는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었다.

“사이비교에서 게이트 폭주의 원인은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

“개소리네.”

“그치, 개소리지.”

모든 사실을 아는 송하나나 진하가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게이트는 그들이 들어가지 않아도 언젠가 터지는 곳이었다. 폭주는 절대로 헌터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니, 쉽게 선동당하겠군요.”

송준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사람들의 인식에서 게이트는 신이 준 선물이었다. 세상에 처음 생겨난 몬스터들을 한곳에 가둔 공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곳을 공략하고 층을 내려가다가 처음으로 게이트 폭주가 일어났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이트가 신의 선물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우리도 최근까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녀의 말이 맞긴 했다. 완전한 사실을 알기 전에 진하 역시 어느정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게이트는 절대 신의 선물이 아니었다. 그저 인과율의 과도한 소모를 막기 위해 관리자가 만든 공간이었으며 거기서 생겨나는 모든 물품 역시 인간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일 뿐이었다.

‘심지어 시스템도 관리자가 만든 거니까 할 말 다 한 거지.’

시스템과 각성, 그리고 몬스터까지 오직 인간을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 없기에 관리자가 만든 것일 뿐이었다.

“아무튼, 문제는 그로 인해서 암중으로 헌터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근데 그게 우리와 상관있을까?”

어차피 그들은 유럽으로 넘어가서 바로 게이트를 공략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사이비교가 퍼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상관이 있죠. 종이에 적힌 게 사실이라면 우선 지원에 타격이 갈 겁니다.”

“지원에요?”

“네, 헌터들이 쓰는 모든 게 결국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거니까요.”

헌터들이 가져온 부산물을 가지고 물품을 만들 거나 게이트 공략을 위한 식량을 만드는 것 모두 일반인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헌터들은 부산물을 가져오고, 그리고 그걸 이용해 재가공하는 게 사람들이었으니, 이렇게 헌터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진다면 당연히 협회가 물품을 구입하는 것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지원뿐이면 그래도 좀 낫겠지만. 폭동의 조짐도 보이고 있어.”

“폭동? 그 정도로 심각한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다만 규모가 점차 커지는 게 문제지. 지금이야 괜찮지만 헌터들의 지원을 못 받거나 적게 받을 수 있어.”

그냥 일반인의 폭동이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이들 중에 각성자 역시 끼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각성자가 폭동을 일으키면 그걸 제압할 사람은 같은 각성자들밖에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만약을 대비해서 항상 압도적인 전력인 고위 헌터들이 상주하며 억제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면 그만큼 많은 수의 헌터들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고위급 각성자가 종교에 속해 있다는 게 확인되면 그때는 아예 지원이 거의 없을 수도 있어.”

“잘하면 게이트는 완전히 우리끼리만 내려갈 수도 있다는 소리네.”

“응, 그렇겠지.”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게이트의 공략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유럽이 더 쉽다고 판단한 이유가 단순히 공략 허가뿐만 아니라 헌터들의 지원 또한 있었으니까.

“왜 저까지 남겼는지 이해가 되네요.”

“응, 지원 가능하지?”

“다 뺄 수는 없고, 노력하면 S급 한 명이랑 A급 수천 명은 가능하겠네요.”

이게 송하나가 송준하를 남겨 둔 이유였다. 억제력이 문제라면 그걸 한국이 채워 줌으로써 유럽 헌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16층 보스를 상대함에 있어 필요한 것은 물량이 아니라 고위급 헌터였다. 그러니 한국에서 폭동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헌터를 지원한다면 고위급 헌터를 빼 올 수 있을 거라고 송하나는 판단했다.

“대충 계산하면 얼마 정도 뺄 수 있어?”

진하의 물음에 송준하가 종이에 간단하게 끄적이며 계산을 한 뒤 말했다.

“친분까지 생각하면 최소 잭 헌터는 뺄 수 있겠는데요? 나머지는 모르겠고요.”

“흐음…… 잭도 좋지만 레이나가 같이 내려가면 좋을 텐데 말이야.”

“불가능합니다. 레이나는 유럽 내 최고 억제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

“그치, 그건 맞는 말이죠.”

레이나를 데려가는 게 베스트이긴 했지만 송준하의 말대로 그녀가 내려갈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협회 내 권력자이기도 하고 가장 높은 무력을 가진 헌터였으니까.

“뭐, 그건 어쩔 수 없죠. 아, 그리고 유럽에서도 정보 길드 운영 가능하지?”

“몇몇 지부가 있어서 가능하지만 네가 원하는 만큼의 지원은 불가능할 거야.”

“그건 괜찮아. 그냥 지금처럼 공략에 방해될 만한 정보들만 보내 주면 돼.”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럼 송준하 씨는 헌터들 모아서 바로 보내 주세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빠르게 모으면 3일 이내로 가능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요. 아, 그리고 미국 쪽 공략권도 부탁할게요.”

“그건 걱정 마. 이미 미국 쪽 블랙 길드랑도 접촉하고 있으니까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면 갈 수 있을 거야.”

“그건 그렇지.”

확실히 둘이라면 시간은 걸릴지라도 가능했다. 사실 이번에 설득에 실패한 것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인 거지,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 두 사람한테 맡길게요.”

할말을 모두 마친 진하는 협회장실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닫혀있던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아!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진하가 잠시 빙글 돌아 송하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송하나는 똑바로 그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걱정 마. 인격의 통합은 99% 끝났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송하나의 텔레파시를 들은 진하가 빙긋 웃었다. 회의 때 외에는 개인적으로 연락이 없어서 아직 인격의 통합을 실패한 건 아닌가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그제서야 남아있던 찝찝함마저 모두 털어낸 진하는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렸다.

“그럼 다녀올게.”

그 말과 함께 협회장실은 나간 진하,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송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무슨…….”

“왜요?”

송준하는 차갑게 대답하는 송하나의 말에 바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원래 하려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빠르게 꺼냈다.

“아뇨, 바로 작업 시작하자는 거였습니다.”

* * *

다음날, 독일 내 협회장실.

그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레이나는 똑똑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책상에서 눈을 떼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무슨 일이죠?”

“한국 헌터분들께서 왔습니다.”

“들여보내세요.”

레이나는 그 말을 한 뒤 서랍에서 통역 마법이 인챈트된 목걸이를 하나 꺼내 착용했다.

스윽

그녀가 목걸이를 착용하자마자 문이 조용히 열리며 진하 일행이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통역 목걸이를 착용한 진하가 마법을 활성화시키며 말했다.

“자리가 잘 어울리네요?”

“어디까지나 임시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법을 활성화시킨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빈 소파로 진하 일행을 안내하며 말했다.

“지난 1년간 소식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나 했어요.”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그러는 레이나 씨도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렇죠. 정말 이런 일은 싫었는데 말이에요.”

레이나가 자신의 자리에 놓인 명패를 슬쩍 쳐다봤다.

<유럽연합 헌터 협회장 레이나.>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네요.”

레이나가 진하에게 작게 푸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하는 아마도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그녀가 원치 않아서 임시라는 딱지를 붙인 것뿐이지. 이미 반년 넘게 협회장 업무를 행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분들도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레이나의 인사에 차례대로 하준수, 이기수, 하예진이 반갑게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일단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으세요.”

레이나의 말에 일행들은 앞에 있는 소파에 착석했다. 그리고 잠시 뒤, 비서가 들어와 그들에게 차를 건넨 뒤 나갔다.

“비행은 힘들지 않으셨어요?”

“안 힘들었죠. 이 몸으로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그래도 그거랑은 별개로 불편하긴 할 테니까요. 바로 오신 거죠? 협회에서 최고급 호텔을 준비해 놨으니까 나가시면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라를 구한 은인들인걸요. 오히려 이것밖에 해 드리지 못 해서 미안하네요.”

부드럽게 대답하는 레이나, 그녀의 모습에 진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사람도 살짝 능구렁이가 됐네.’

아마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협회장을 맡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기존에 있던 딱딱함이 많이 사라지고 부드러움이 많아졌다.

그게 다라면 좋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리는 없을 테니 결국, 협상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약간 피곤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일단 인사도 끝냈고 우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본론이요?”

진하의 말에 눈을 크게 깜빡이며 처음 듣는다는 듯 되묻는 레이나. 그녀의 모습에 진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게이트 공략이요. 모르실 리 없잖아요.”

괜히 돌려 말하고 싶지 않은 진하가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 애초에 정치를 하듯 돌려 말하는 것도 싫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까. 진하의 말에 레이나가 아차 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모르는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네요.”

그녀의 말에 진하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신지하를 상대했을 때 많은 피곤함을 느꼈었다.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기싸움을 하고 자신의 패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때 진하는 지쳐서 그냥 대놓고 말하기는 했었다.

“뭐, 그럴 수 있죠. 아무튼 전 그런 건 딱 질색이니 대놓고 물어볼게요.”

“네, 그러세요.”

“이번 공략에 얼마나 지원이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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