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35화 (135/202)

#135

진하는 그 말과 함께 한쪽으로 치우던 물품 중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장난감 칼?”

“응, 맞아.”

“당연히 아티팩트겠고, 달라진 게 있는 거야?”

하예진의 의아함에 진하가 내민 장난감 칼을 받아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장난감 칼: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칼, 가볍고 튼튼하다.>

<사용자의 격보다 한 단계 높은 절삭력과 내구성을 가진다. 재생과 회수 기능이 있다.>

<사용 제한: 없음.>

정보를 확인한 하예진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확실히 좋은 아티팩트였다. 다만 엄청 좋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좋은 아티팩트긴 한데, 엄청 좋은 거야?”

“응, 간단하게 설명하면 네가 가진 랭크보다 한 단계 높은 공격력이랑 내구도를 가진다고 보면 돼.”

진하의 설명에도 하예진은 오묘한 표정을 피지 못했다. 그 모습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설명으로만 보면 애매하기는 했다.

‘그거야 이게 내 맞춤으로 만들기도 했고, 최대한 효율적이게 만들었으니까.’

어젯밤 시스템을 확인하면서 진하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가게 방침뿐만 아니라 물품에 제한을 걸거나 봉인하는 등 세부적인 것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제한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 장난감 칼이었고 아무래도 맞춤형으로 설정하다 보니 설명만으론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가 힘들었다.

“국가급 아티팩트랑 비교하고 있는 중이지?”

“응, 그 정도가 아니면 16층 공략에 쓸모없을 것 같으니까. 이것도 좋긴 한데 국가급 아티팩트랑 비교하면 밀리는 정도가 아닐까? 당장 제일 유명한 아티팩트 있잖아.”

“엑스칼리버?”

“응, 그거.”

하예진의 말을 들은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겉으로 보기엔 엑스칼리버가 주는 임팩트가 더 강하긴 했다.

사용자의 기력을 빨아들이는 대신 한 번의 휘두름에 작은 산을 지워 버릴 수 있는 아티팩트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지.’

강하기는 했지만 그게 다인 아티팩트일 뿐이었다. 위력은 강하지만 한계가 존재하는 물품.

그에 비해 진하가 조정한 물품은 엑스칼리버처럼 한 번에 산을 지울 순 없지만 한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사용하는 사람이 강할수록 한없이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는 아티팩트였으니까. 진하는 간단하게 자신이 조정한 아티팩트의 장점을 하예진에게 말해 주었다.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왜 하필 성장형인 거야?”

“어쩔 수 없었어. 제한을 없애야 하니까.”

위력만 높인다면 얼마든지 높일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쫀드기처럼 아무도 쓸 수 없는 물품이 만들어질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제한을 없앴더니 위력이 너무 애매해져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장은 강하게 쓸 수 있는 물품이었지만 관리자의 아바타와 싸울 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애매한 수준의 아티팩트.

“최대한 위력을 증폭시키면서 제한이 없게 만들려면 성장형이라는 제한을 걸 수밖에 없더라고.”

“다른 물품들도 똑같아?”

“응. 대부분 비슷해.”

어차피 싸울 사람들은 고위 헌터들이었다. 진하가 커스터마이징한 물품의 단점은 쓰는 사람에 따라 약해질 수도 있다는 거였지만 그런 단점은 어차피 고위 헌터만 존재하는 진하 일행에게는 필요가 없는 단점이었다.

“아직 모두 설정하지는 못했어. 최대한 다음 회의 전에 일행들한테 맞는 물품을 만들려고.”

기본적인 셋팅은 해 두었으니까 이제 적절한 물품을 찾아서 부여만 하면 되는 거였다.

“자, 그러니까 일 얘기는 여기서 끝. 일단 밥이나 먹자. 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네?”

* * *

“이게 뭐야?”

진하가 내민 딱딱이를 보며 이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긴 뭐야. 아티팩트지.”

“아니,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이거 조금 애매한건 알지?”

이기수도 진하가 내민 딱딱이가 쓸모 있다는 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약점이 되는건 같은 수준의 몬스터를 잡을 때 필수적으로 힘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으니까.

다만 내구도가 너무나 쓰레기 같았다. 몇 번쓰면 부서질 정도로 내구도가 약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전투 중에 빈틈이 생길수도 있었다.

“뭐, 준다니 고맙긴 하지. 일단 비장의 수 정도는 되니까?”

“저번 거랑 달라. 안 부서질 거고 위력도 올라갔어.”

진하가 만들었던 장난감 칼과 비슷하게 만들었기에 성능은 단순했다. 사용자의 전격을 보조하고 증폭하는 것.

어차피 이기수의 전투 성격상 다른 버프를 부여해주는 건 애매했다. 속성이 전격이다보니 기본적으로 간단한 버프는 다 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나만을 강하게 보조해서 몸에 부담이 덜 가는 형식으로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거 쓰면 바로 최대출력을 낼 수 있을 거야.”

“뭐?”

“한 번에 네 최대출력, 두 번에 그 이상.”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그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모은 전격의 파괴력은 작은 마을 하나를 가루로 만들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런데 그걸 딜레이 없이 쓸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 힘든 발언이었다.

“문방구 주인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문방구 주인이란 게 대단하기보단 그걸 아무런 제약 없이 쓸 수 있게 만든 내가 대단한 거 아닐까?”

“뭔 소리야?”

“뭐, 그런 게 있어.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진하가 텅 빈 협회 휴게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와선 안 될 공간인 건 아니지만 송준하가 개인 방까지 만들어 줬는데 굳이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전화를 했을 때 이곳에 있던 것도 이상했고, 굳이 여기서 만나자고 한 것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외진 휴게실이라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 방은 뺐어. 대신 여기를 달라고 했지.”

“뭐? 여기를?”

“어, 시험에서 돌아오고 나서 한 일이야. 여기를 나 혼자 쓰고 싶다고 했거든. 다른 직원들이 못 오게 하고.”

“아, 그럼 출입문이 있던 게…….”

들어오면서 못 보던 출입문이 하나 생겨있길래 ‘뭐지?’ 하면서 출입증을 찍고 들어갔었는데 그게 이기수 때문에 만들어진 듯싶었다.

“근데 왜? 아니, 그전에 난 통과되던데?”

“통과된 거는 당연히 너는 내가 미리 등록해 놨으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그냥 다른 시간선의 기억이 생기니까 여기에 애착이 가더라고.”

“너….”

“재밌는 일 많았잖아? 블랙 길드 부서에 속해 있을 때 우리 부서 사람들끼리 맨날 여기서 파티하고 놀고 그랬잖아.”

이기수의 씁쓸한 말을 들은 진하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지금 이기수가 겪고 있는 건 그 역시 고민하고 슬퍼했던 점이었으니까.

“그냥, 좀 그렇더라고. 나는 친한 헌터인데 그 사람은 나를 어려워하니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너도 힘들었겠다. 나는 너라도 있지만 너는 그런 사람 한 명 없었잖아.”

“글쎄다. 뭐, 그리 어렵진 않았어. 네가 멍청해서 친해지는 것도 쉬웠고.”

“뭐? 미쳤냐? 여기서 내가 너랑 친해진 건 그냥 내가 마음이 넓어서 그런 거였거든.”

그의 말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여기서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회귀 전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긴 했었다.

“그래서 여기서 왜 보자고 한 건데.”

“응? 그냥 내 구역이 이곳밖에 없어서 그런 건데?”

“개소리하지 말고. 너 고민 있을 때마다 여기 처박혀 있던 거 다 아는 사실이야.”

단순히 만나는 거였다면 이기수가 진하에게 왔을 것이다. 아니, 그러지는 않더라도 입구에는 마중 나왔을 게 뻔했다.

이기수라는 헌터 자체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존재였기에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공적인 만남을 제외하곤 협회에서의 만남을 지양했었다.

그래서 사적으로 단둘이 이야기를 하거나 만날 때는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항상 협회의 바깥에서 만나는 걸 선호하던 이기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소리인데 이것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 새끼 고민이 있을 때마다 여기에 박혀있었지.’

회귀 전 이기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모두가 퇴근한 부서의 휴게실에서 이렇게 혼자 앉아있곤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고민하거나,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서 믹스 커피를 마시는 건 진하를 포함한 그 당시 모든 동료들이 알고 있는 그의 버릇이었다.

“니 버릇 너 빼고 부서 내 헌터들 다 아는 사실이었어.”

“미친…… 쪽팔려 뒤지겠네. 넌 친구라는 놈이 그걸 알면서 말해 주지도 않냐?”

“내가 왜? 그때 넌 그거라도 안 했으면 더 힘들었어. 그래서 여기엔 진짜로 왜 있는 건데?”

고작 추억이나 곱씹자고 여기에 박혀 있을 리는 없었다. 그가 사적인 만남을 싫어함에도 이곳에 박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심한 고민과 마음속 흔들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뭐, 그냥 다 꼭두각시 같아서 말이야.”

“꼭두각시?”

“너도 그렇게 느끼잖아?”

이기수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진하는 그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인식했다.

“너…… 이 세상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는 거냐?”

“알겠냐? 네가 신이라는 작자들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도 몰라. 송하나처럼 기억 외에 다른 정보가 심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어제 너랑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거 보면서 이상한 걸 깨닫고 소름 돋은 거지.”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거?”

“그래,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다들 신이라는 작자를 봉인할 생각만 하더라.”

진하는 이기수의 말에 그가 거의 완전히 자격을 발아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의심이나 이상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그에 대해 고민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더 이상 세계에 통제를 당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너는 잘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더라?”

“거기서 위화감을 보여 봤자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게 설령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도?”

“의미 없는 일 아니야.”

절대로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었다. 관리자를 봉인함으로써 그가 얻을 수 있는 건 평화였고 친구들의 안전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덕 하나에 바뀌는 거잖아.”

이어진 이기수의 말에 진하는 순간 멈칫했다. 이기수도 그런 진하의 반응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신을 봉인하는 건 좋아. 아바타를 없애면 그가 우리를 건들지 못한다는 것도 알겠어. 근데 그럼 다른 존재들은?”

“그들은 우리 편이야.”

“정말? 인간을 벌레 보듯이 하는 신이 있는데 다른 신은 그러지 말라는 보장 있어?”

“신은 인간을 벌레 보듯이 하지 않아.”

“그럼 왜 인간들을 죽이고 몬스터를 만드는 건데?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지금 이기수는 진하에게 묻고 있는 거였다. 지난번 만남에서 계속해서 피해 왔던 신이 인간들을 죽이려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거였다.

“신, 아니 관리자가 인간을 질투하니까.”

“뭐?”

“말 그대로야. 그들은 우리를 질투해. 편애를 받는다고 생각하거든.”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질투, 무엇을 그리 편애라고 느끼고 질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웃겼다.

“정말…… 진짜 개 같은 것들이네.”

“그렇지. 뭐…….”

“그럼 더 믿을 수 없어. 정말로 그들은 우리 편이야? 그들은 지금 상대하는 신이라는 족속과 진짜로 달라? 인간을 질투하지 않아?”

“…….”

진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와 사서는 확실히 이곳의 관리자와는 다른 존재였다. 우리 편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완벽하게 관리자와 다르냐고 묻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그들 나름대로의 이득이나 원하는 것이 있어서 행동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들이 인간을 질투하지 않고 같은 존재로 보냐고 묻는다면 진하는 그 말에는 맞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역시도 그 부분은 잘 모르니까.

‘그나마 사서는 인간 출신이라고는 말했지만….’

진하에게 시험에서 보여 주었던 행동을 생각하면 그 역시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자는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한걸음 떨어져서 진하를 지켜보는 방관자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너도 알잖아.”

미래에 대한 건 결국 그때가 돼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당장 닥친 위협을 없애는 것도 힘든 판에 그런 것까지 고민하기엔 그들에게 주어진 힘과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으니까.

그렇기에 진하는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는 이기수의 어깨를 그저 툭툭 두들길 뿐이었다.

“걱정 마. 잘될 거니까.”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스스로와 그에게 최면을 걸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