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기능이?”
예상치 못한 안내 메시지에 진하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그가 미처 모든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메시지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2차 봉인되었던 물품의 기능이 해제됩니다.>
<물품 등록창이 활성화됩니다.>
<가게 방침의 수정이 가능해집니다.>
간단하게 내비쳐진 3가지 메시지, 진하는 그중 2차 봉인이라는 문구에 시선이 갔다.
“2차 봉인?”
이해할 수 없는 문구에 진하는 곧바로 작은 방으로 들어가 금고 안에 있는 물품 중 끈끈이를 꺼내 보았다.
<문방구에서 흔히 보이는 장난감. 원하지 않는 이상 떨어지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끊어지지 않는다. 접착력은 항상 영구 상태로 보존된다. 단, 목표 대상과 일정 이상의 격 차이를 보이는 경우 접착력이 떨어질 수 있다. 최소 사용조건: 자격을 가진 자, SS랭크 헌터 이상>
꽤나 길게 설명되어진 문구, 진하는 머릿속에서 원래 끈끈이의 설명 문구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문방구에서 흔히 보이는 장난감. 접착력이 매우 좋아 한 번 붙으면 손으로 직접 뗄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자주 사용하면 접착력이 떨어질 수 있다. 잦은 세척은 필수!>
확실히 많은 문구가 바뀐 상태였다. 특히, 제한이 생긴 점이라던가 아니면 구체적인 능력지표가 생겼다는 점이 바뀌었다.
기존 끈끈이의 경우 털 달린 몬스터에게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접착력이 매우 떨어졌었다. 거기다가 내구도도 엄청 높지 않았고. 그래서 사용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단점이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할머니는 설명해 줄거면 이것도 좀 설명해 주시지…….”
투덜거린 진하는 다른 창을 확인해 보았다.
“등록창은 말 그대로 등록창이네.”
그냥 물품 리스트라 쓰인 창에 빈 공간 목록만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등록창을 보며 진하는 간단하게 자신의 손에 들린 자물쇠를 등록해 보았다.
<자물쇠가 등록됩니다.>
<가게 방침에 맞게 적정 사념이 모입니다.>
“가게 방침?”
자물쇠에서 아티팩트 정보 확인 창이 뜬 것을 확인한 진하는 ‘가게 방침’이라는 문구에 궁금증을 느끼며 곧바로 가게 방침을 설정할 수 있는 메시지창을 불러 보았다.
<가게 방침은 가게의 방침과 아티팩트의 생성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가게 방침: 다수 형태(O), 소수 형태>
<다수 형태: 해당 사물과 똑같은 사념만 주입됩니다. 성능이 다소 낮아질 수 있습니다.>
현재는 다수 형태로 되어 있는 설정, 설명을 읽으며 진하는 자신이 지금까지 써 왔던 아티팩트들이 다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같은 모습의 아티팩트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인 듯했다.
‘그럼 소수 형태는 뭐지?’
진하는 곧바로 소수 형태의 설명을 확인해 보았다.
<소수 형태: 해당 사물과 관련된 모든 사념이 주입됩니다. 성능은 높으나 인간이 다룰 가능성이 매우 낮아집니다.>
“인간이 다룰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의아함을 느낀 진하는 등록창에 남아있던 모든 물품을 해제해 버린 뒤 쫀드기 하나만을 남긴 후 가게 방침을 바꾸어 보았다.
<가게 방침이 소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의 재 가공화가 이루어집니다.>
<불량 식품과 관련된 모든 사념이 기존에 등록되어 있는 물품으로 모입니다.>
<다른 사념이 일정량 생성되기 전까지 불량 식품군과 관련된 물품의 생성에 제한이 생깁니다.>
<물품 생성 제한 시간: 6개월.>
진하는 갑자기 생긴 제한 시간에 놀라 다급하게 가게 방침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을 취소할 수는 없는 건지 메시지 창에 적힌 물품 생성 제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 미친…….”
단순하게 가게 방침을 바꾸었을 뿐인데 기존에 없던 제한이 생긴 것에 진하는 침음을 흘렸다. 설마 간단하게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심각할 정도의 제한이 생길 줄이야…….
‘그나마 다행히 제한이 걸린 건 불량 식품이라는 건데…….’
불량 식품의 경우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다시피 한 물품류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물품의 숫자도 적었을뿐더러 대부분 랜덤성이 짙은 경우가 많아 안 쓰는 게 많았던 걸 생각하면 그리 큰 타격은 아니었다.
“흠, 그럼 이건 어떻게 바뀐 거지?”
수많은 사념이 들어갔다면 기존과는 확실히 다른 상태가 되었을 게 분명했기에 진하는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확인해 보았다.
<쫀드기: 불량 식품으로 자주 애용하던 식품. 단,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
<오감이 극도로 발달하게 된다. 일시적으로 전체적인 능력치가 1000배 상승한다.>
<포만감으로 인해 10년간 음식 섭취가 필요 없어진다.>
<강한 저주에 걸린다. 이 저주는 풀 수 없다.>
<섭취 제한: 인간, 자격을 가진 자, 신체 능력이 SSS급 이상, 독 면역 보유, 차원 이동 보유……>
능력치를 확인한 진하는 머리가 어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능력치 1000배 상승, 단순 계산만 해도 당장 이것을 먹으면 진하 혼자서도 관리자의 아바타를 죽일 수준의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쫀드기와 비교하면 거의 극과 극이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진하는 왜 이 기능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았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이 먹을 수가 없네”
앞에 있는 자격이라던지 신체 능력만 봐도 현재 이 세상에는 섭취가 가능한 존재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그 뒤로 달린 무수한 제한을 생각하면 이건 애초에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냥 섭취하면 어떻게 되지?’
제한이 있다 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물품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진하가 알던 물품의 경우 제한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고, 있어도 무시할 수 있는 매우 가벼운 페널티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때마침 진하의 궁금증을 알려주듯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추가되어 진하의 망막에 비췄다.
<제한 기준에 충족하지 않는 존재는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막대한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설명을 읽은 진하는 쫀드기를 고이 모셔 상자 안에 집어넣고 아주 구석진 공간에 넣어 두었다. 살 가능성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구석에 쫀드기 상자를 짱박은 진하는 곧바로 다시 시스템 창을 살펴보았다. 가장 크게 있는 가게 방침 외에서 수많은 목록이 시스템 창을 수 놓고 있었다.
“이건 뭐…….”
아찔할 정도로 수많은 목록을 보며 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이 된다길래 좋아했었는데 이걸 하나하나 비교하며 확인할 것을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
‘이거면 도움이 될 거야.’
기존의 물품은 이제는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2차 봉인이라는 게 풀린 덕에 더 강해진 것은 확인했지만 진하 외에는 쓸 수 없을 정도로 제한이 걸리기도 했고, 강화가 되긴 했지만 성능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쫀드기의 경우에는 달랐다. 사람이 사용할 수는 없지만 당장 그것만 사용해도 16층 보스는 그냥 씹어 먹을 정도의 아티팩트가 만들어졌다.
즉, 잘만 조절한다면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고 판세를 뒤집을 만한 물품을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두드득!
“후, 어디 한번 해 보자.”
손을 꺾어 푼 진하가 의자 하나를 가져와 털썩 앉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시스템 창을 하나씩 열어 보기 시작했다. 수십 가지가 넘는 시스템 목록을 보니 아찔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딱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 그래도 지금 진하에게 필요한 것은 도피처였었다. 미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마침 좋은 일거리가 생겨 즐거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건 이 기능이고…… 이건 이거고.”
정신을 집중한 진하는 빠르게 시스템 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겪었던 일들을 모두 잊을 정도로…….
* * *
다음 날 아침, 문방구 앞에 도착한 하예진은 손에 들린 도시락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어제 송하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상기했다.
―어떻게 할 거야?
진하와의 회의가 끝나고 송하나와 나눴던 이야기, 당시 몰랐던 진하에 대해 알게 된 하예진은 복잡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네가 싫다면 내가 가질 거야. 아니, 네가 좋다 해도 가질 거야.
―절대로 뺏길 생각 없어.
집착이 느껴지는 송하나의 목소리와 눈에 당시 하예진은 발끈해 반박했지만, 솔직히 자신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시험 때 진하의 마음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 이후 송하나와 지낸 기간을 생각하면 살짝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냥 다른 사람이면 불안하지 않겠지만 송하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마음이 남아있는 전 여친과 진하를 두고 싸우는 셈이었다.
“하아, 진짜 내가 쓰레기 같다.”
당장 진하나 다른 사람들은 멸망을 막겠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싫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멸망한다면 적어도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후회 없이 행동하고 싶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진하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그저 힘든 진하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 일단은 양보할게. 지금 걔한테 필요한 건 내가 아닐 테니까.
송하나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그런 말을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서글픈 표정을 짓지 않았을 테니까.
“후, 할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하예진이 문방구 문고리를 잡았다. 지금 진하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과 안정이었고,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를 위해 밥이라도 챙겨 주는 것뿐이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하예진은 손에 힘을 주고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진하야, 나 왔어.”
문이 열리고 하예진은 최대한 쾌활한 목소리로 진하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자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고 있었다면 애초에 문이 열려있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진하가 일어나지 않았을 리도 없었고.
하예진은 기척이 느껴지는 작은 방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번 진하를 불러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낀 그녀는 작은 방 앞으로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어제와 같은 차림으로 집중해서 무언가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진하를 볼 수 있었다.
“진하야?”
바닥에 몇 가지 물건을 놓은 채 깊은 고민을 하는 진하. 주변에 누가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 그를 보며 하예진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 1시간이 지나고 모든 고민을 마쳤는지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끝, 끝났다.”
“고생했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깜짝 놀란 진하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모습에 하예진이 작게 미소 지으며 커다란 도시락을 흔들었다.
“아직 밥 먹기 전이지?”
“어? 어. 언제 왔어?”
“5분 전쯤? 집중하길래 잠깐 기다렸어.”
그 말과 함께 하예진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진하는 방안에 널브러진 물건을 치우며 물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네가 밥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어쨌든 오랜만에 돌아온 거니까. 밥이라도 먹여야겠다 싶어서 왔어.”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내가 그러는 게 편해서 그래.”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한쪽에 놓인 상을 펴고 가져온 도시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이 도시락을 펼치는 진하를 보며 물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하던 일은 잘된 거야? 보아하니까 문방구 시스템 창 건드는 것 같던데.”
그녀의 물음에 진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응, 잘 됐어. 네가 들으면 놀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