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33화 (133/202)

#133

“다들 꽤나 오랜만이죠? 아닌 분도 있겠지만.”

진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닿을 때마다 시선을 마주친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대충 내용은 알고 계시죠?”

“세상이 멸망하는 거 말인가?”

하준수의 말에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준하에 하준수까지, 시험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아는 걸 보니 일단은 모두 안다고 보면 될 듯싶었다.

“다들 아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맞아요. 세상은 곧 멸망할 거고 그걸 우리가 막아야 하죠.”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현실감 없는 얘기네요.”

송준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멸망,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고 생각한 일들이었다.

“뭐, 시험에 참여 안 한 두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죠. 시험에 참가한 사람이야 겪은 게 있다지만 두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기억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신비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니까.

“뭐, 그건 여태까지의 너를 봐서 믿는다 치고, 그래서 넌 시험을 통과하고 뭘 얻은 거지? 고작 힘이면 조금 실망일 것 같은데.”

하준수가 진하를 보며 말했다. 물론 진하가 얻은 힘이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SS급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니까.

하지만 그가 전해 들었던 말들이 사실이라면 고작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일단 얘기부터 하자면 지금 실력이 SS급이라는 거지 최종 실력은 그 이상이야.”

지금 진하의 육체 상태는 S급 턱걸이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스킬을 사용하면 SS급이 되고 과거의 후회 3단계를 사용한다면 순간적이지만 SSS급 근처에 달하는 힘을 내는 게 가능했다.

즉, 신체의 단련이 될수록 그의 포텐셜은 단순히 SSS급이 아닌 그 이상도 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론적으론 SSSS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실제 등급 간의 격차를 생각하면 그건 아니고 SSS급 이상 SSSS급 아래 그사이 어느 것이겠지만 아무튼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건 나중 일이니까 넘어가고, 그리고 두 번째 이제부터는 문방구 물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

“흠…… 미묘하네.”

“아니, 정확히는 쓸모없지. 게이트 폭주를 막아서는 거면 모를까, 그 신이라는 작자를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이기수가 미묘하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그 평가를 부정하는 송하나, 그녀는 퀭한 눈으로 진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부족하지. 문방구에서 아무리 물품을 가져다 써도 부족하지. 애초에 우리가 하는 건 신을 잡는 게 아니야.”

“그럼?”

“죽인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봉인, 그 말이 더 맞겠네.”

“봉인?”

송하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서와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풀어서 설명했다. 중간에 필터링이 걸려서 설명에 애를 먹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진하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전달되었다.

“흠…… 요지는 16층 게이트 보스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진하의 긍정에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기수의 기억 속 16층 보스는 솔직히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존재였다.

여러 나라 최고위 헌터들이 힘을 합쳐서 겨우 잡은 게 16층 보스였다. 그걸 총 3마리나 잡고 뒤이어 신의 아바타까지 잡는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했다.

“한국 게이트는 몰라도 다른 게이트는 어떻게 할 건데?”

“뭐, 어떻게든 해야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잡았던 게 16층 보스였잖아?”

“그건 그때 수많은 나라에서 도와준 거잖아. 그들이 지금 도와줄 것 같아? 그리고 지금 헌터들 수준이 어떤지는 너도 잘 알잖아.”

다른 시간선과는 달리 지금 시간선에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과거와 달리 막심한 피해가 사라진 지금은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게이트를 공략해야 하는 이유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가 또 하나의 문제점은 헌터들의 수준이 낮다는 거였다. 다른 시간선에서의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헌터들은 평균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1차 게이트 폭주에서 죽은 사람들이 적었으니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헌터들의 수준은 오히려 낮아져 버렸다. 1차 게이트 폭주가 싱겁게 끝나는 바람에 성장할 기회가 사라졌으니까.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헌터들 수준이 낮은 거야 한국 기준이고, 미국이나 유럽은 비슷할 거야. 그리고 다른 나라의 협조는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

진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역시 지금 상황이 막막하고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헌터들의 수준은 낮았고, 다른 나라의 협력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하가 계산해 봐도 이길 수 없다고 봐야 했다.

“나도 하나만 물어볼게. 봉인이 수천 년이라고 그랬는데 그 이후는?”

“그건…….”

하예진의 물음에 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후는 후손들에게 맡겨야 했다. 진하가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그거면 충분한 거지. 여기 누구 수천 년 살 수 있는 사람 있어? 지금 봐야 할 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야. 어설픈 걱정은 집어치워.”

“뭐, 그건 맞죠.”

송하나의 말에 송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도 중요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천 년이었다. 당장 그들이 생각하기엔 너무나 까마득하게 먼 미래였으니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오지랖이었다.

짝!

“자, 일단 어쨌든 그 부분은 그만 얘기하자고, 어차피 우리가 건들 수 없는 부분은 배제하고 지금부터는 할 수 있는 얘기만 할 거야.”

진하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각자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얘기하다간 끝도 없이 돌고 돌게 분명했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상황 파악과 해야 하는 일들을 정하는 거였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뿐.

“우선 길드장 팀은 다들 꽤나 성장했겠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애초에 S급으로 오를 재목들도 많았기에 분명 꽤나 올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네 말대로 다들 성장했다. 나하고 하예진 포함 총 10명 중 S급 6명, A급 4명이다.”

“꽤나 숫자가 줄었네.”

“미친 듯이 아래층을 공략했으니까. 죽은 사람도 있고 나간 사람도 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거의 공략대 수준인 40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건 10명, 하준수나 하예진을 빼면 8명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꽤 많이 남았네.’

사실 가장 1순위 목표였던 협회가 무너진 이상 빠져나갈 건 예상하고 있던 문제이긴 했다. 처음 만든 목표가 사라진 이상 계속 유지되기 힘든 팀이었으니까.

그래도 8명이나 남았다는 건 꽤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거기다가 S급도 6명이나 됐고.

“협회에 등록된 S급은 길드장 팀이 다인가요?”

“아뇨, 그 외 2명이 더 있습니다. 솔직히 과거랑 비교하면 S급이 너무 늘어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거야 당연하죠. 사건이 사건이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과거에는 차근차근 사냥을 하며 안전하게 등급을 올렸으니 최상위 헌터들의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동안 겪었던 사건들이 있으니 아무리 회귀 전에 비해 수준이 낮아졌다 하더라도 많은 수의 고위 헌터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명은 당연히 협회 휘하에 있겠죠?”

“네, 아주 강압적이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협조해 줄 겁니다.”

“뭐, 아주 최악은 아니네요.”

과거에는 S급이 한국에만 20명이 넘었던 거랑 비교하면 적긴 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협회장님은 미국 쪽에 있는 제3 게이트 입장이랑 헌터들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실래요?”

“명분은요?”

“우리나라 제1 게이트에 2차 폭주 조짐이 보여서 확인한다고 하세요.”

“폭주 조짐 증거는 조작해야겠군요. 하지만 그래도 협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어요. 최소 게이트 입장만 통과되기만 해도 만족이에요.”

“유럽 쪽은요?”

“거기는 뭐 빚을 달아 놓은 사람이 있어서 괜찮아요.”

유럽은 레이나와 잭이 있으니 게이트 입장이나 지원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미국만 처리하기만 해도 만족이었다.

“나는 송준하를 도와주면 되겠네.”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할 일은 송준하를 도와주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시죠?”

진하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사실 송준하와 송하나 빼고는 다른 사람이 할 일은 없었다. 해외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근데 그래서 첫 번째로 어디를 갈 건데? 미국?”

이기수의 질문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미국도 나쁘진 않았지만 16층의 보스를 상대한다면 좀 더 쉬운 공략이 가능한 곳부터 해결하는 게 나았다.

“유럽으로 가야지.”

* * *

문방구 앞,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문방구로 앞에 도착한 진하는 익숙한 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엔 이게 내 것이 됐구나.”

뭔가 길게 돌아온 기분이었다. 알바로 시작해서 문방구 주인이라…….

“말만 들어 보면 걍 사업에 성공한 사람 같네.”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막대한 의무와 부담감만 생겼을 뿐이었다. 그것도 세상의 명운이라는 거대한 명제를 가진 의무와 부담감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피곤하네.’

시험이 끝나고 사서와 싸우고 곧바로 진행한 회의였다. 지치는 게 당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육체가 지치는 건 거의 없었다. 육체 자체는 멀쩡했다.

다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신혜의 죽음부터 사서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앞으로 할 일 등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데 말이야.’

소중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꼭두각시 같이 살았다는 느낌의 절망과 짜증에 앞으로 할 일의 막막함까지 원래라면 모든 걸 포기하거나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몰렸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진하의 상태는 정신적으로 힘들지언정 몰린 상태는 아니었다.

“할머니의 배려인 건지. 아님 내가 미친 건지.”

놀랍도록 차분한 정신 상태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소름이 돋는 느낌도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조종당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에휴, 이젠 모든 게 의심되네.”

시험을 겪고 나니 모든 게 스스로 하는 행동조차 모든 게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게 정상적인 건지, 혹시 조종당하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슬픈 건 이러한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더 슬펐다.

“그나마 기수가 뭔가 이상한 걸 느낀 듯하긴 했지만.”

그것도 자격의 씨앗을 가졌으니 가능한 거였다. 그 외에는 본인들의 세상이 조종당하거나 체스 말처럼 쓰이는 것에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 몰라……. 일단 들어가자.”

이것도 괜히 깊이 생각하다간 생각에 잡아먹힐 뿐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지금은 원래 목표 하나만 보고 달리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더 나았다.

철커덕, 드르륵.

진하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은 문방구, 진하는 거의 비어있는 문방구를 보며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띠링!

<문방구의 주인이 인식되었습니다.>

<기능이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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