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너…….”
“그냥 좀 죽여 줘.”
아무런 생기 없이 말하는 그녀, 그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고작해야 지쳤다는 느낌뿐이었다.
―다음 시험은 네가 충격받을 만한 일로 진행될 거야. 적어도 나한테 들어온 정보를 보면 그래.”
바로 전 시험에서 송하나가 진하에게 했던 말. 그제야 진하는 송하나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애초에 이렇게 될 걸 알았구나.’
송하나는 이신혜가 어떻게 될 줄 알았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으니까.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이신혜는 진하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송하나를 곁에 두었던 이유도 이신혜와 닮았기 때문이고, 회귀 전 그녀에게 초기에 했던 말 중엔 이신혜에 대한 것도 많았었다. 그러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신혜야, 충격받은 거 아는데 잠깐만 얘기 좀 나누자. 응?”
“그냥, 죽여 줘.”
“왜, 죽여 달라는 건데. 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단순히 미래가 멸망한다는 이유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목숨이 단순히 아까워서라면 죽여 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신혜야? 우리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얘기 좀 해 보자.”
진하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신혜의 상태는 정신이 나간 상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험 통과는 둘째치고 이런 식으로는 얘기조차 나누기 힘들었다.
“아니, 난 제정신이야. 그리고 정말 냉정하게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지금 모습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죽어있는 눈에 생기 없는 목소리까지 아무리 봐도 냉정한 게 아니라 그냥 넋이 나간 거였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뭐야? 무슨 이야기를 나누길래 왜 이리 안 와?”
그때 저 멀리서 들리는 팀장의 목소리, 진하는 그 목소리에 이신혜를 보며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하고 결정하자. 그 이후엔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진하는 멍하니 있는 이신혜를 두고 빠르게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려갔다. 팀장은 진하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니네 저녁 안 먹어? 왜 이리 안 오는데?”
“팀장님 급히 얘기드릴 게 있어요.”
“뭔데?”
“죄송한데, 오늘 여기서 야영하는 거로 하면 안 될까요? 어차피 4시간 후면 저녁이잖아요.”
진하의 말에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하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략을 미루는 것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장난해? 공략이 무슨 애들 장난이야? 몸이 다친 건 아닐 테니까 결국 개인 문제라는 건데 그걸 여기까지 끌고 와?”
“하아,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요.”
“그럼 다른 팀원들은? 걔들이 그런 걸 받아들일 것 같아?”
“이번 공략에서 저랑 신혜가 받을 몫을 포기할게요. 그 정도라면 충분하죠?”
진하의 말에 팀장이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둘의 몫을 다른 헌터들에게 나눠 준다면 4시간 정도 늦춰지는 거는 크게 문제는 없긴 했다.
사람이 많아 그리 많이 나눠 갖는 건 아니었지만 아침도 아니고 4시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설득할 만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알아서 잘 해결해. 얘들한테는 내가 얘기해 둘 테니까.”
“감사합니다.”
팀장은 멀리서 멍하니 있는 이신혜를 힐끗 보고는 곧바로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진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신혜에게 돌아갔다.
“신혜야. 이제 얘기 좀 하자.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으니까.”
“뭐?”
“나…… 여기서 자살했었어.”
“자살?”
진하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녀가 말하는 자살이 진하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여기서.
“하지만 넌 여기서 독에 중독돼서…….”
“죽었지. 근데 그거 일부러 당한 거야.”
“너 그럼 신후 그룹에게 살해당한 게 아니란 거야?”
진하의 물음에 이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죽은 이유는 신후 그룹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신후 그룹에서도 그녀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보였지만 그녀가 죽은 건 그룹이 움직이기 전이었다.
“스스로 죽었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거든.”
“어째서…….”
“진하야. 내 능력과 스킬이 뭔 줄 알아?”
“그거야…….”
순간 진하의 입이 턱 막혔다. 이신혜의 능력은 서포트 계열이었다. 스킬은 암살 계열로 추정됐고.
하지만 여기서 약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서포트 계열의 능력에 암살 스킬인 사람이 A급 최상위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같은 계열이면 모를까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능력과 스킬이었다. 방향성이 다르다고 A급 최상위에 도달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내 스킬은 이거야.”
이신혜는 아무 말 못 하는 진하에게 자신의 스킬을 보여 주었다.
<도플갱어: 자신과 피가 이어진 자의 능력과 스킬을 빌려 쓸 수 있다. 단, 빌려 쓰는 동안에는 자신의 능력은 사용 불가능하다. 제한: 상대가 살아 있을 때 빌릴 수 있다.>
“이건…….”
“내 동생도 각성자거든. 능력은 암살 계열. 그것도 스킬을 미리 각성한 타입.”
“하지만 네 동생은 죽었잖아.”
“맞아. 그래서 더 이상 암살자 노릇도 못 하지.”
“잠깐만 그거랑 죽여 달라는 게 무슨 상관이 있어?”
그녀가 자살했다는 건 살고 싶지 않아서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과 도플갱어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진하의 물음에 이신혜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겉으로만 보면 상관이 없어 보이긴 했다.
“내가 스킬을 각성한 이유가 동생 때문이거든.”
“동생?”
“응, 내 삶의 이유이자 전부. 그래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살아 있었다. 동생이 죽은 지 꽤 됐지만 살았었고, 진하와도 잘 지냈다. 그녀가 자살하려고 했다면 정말로 자살했을 거였다.
“맞아. 한동안은 살았지. 너도 있고, 주변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근데 아무리 버텨 보려고 해도 안 되더라.”
“신혜야.”
“8번이나 동생이 죽은 걸 봤어. 그리고 앞으로 한 번 더 동생이 죽는 걸 보겠지. 있잖아 난 그걸 더 이상 보기 싫어.”
이신혜의 말에 진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다, 동생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런 위로가 아니라 확실한 희망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가만히 있는 진하를 보며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여달라고 해서 미안해. 근데 나 솔직히 너무 지쳤어. 기억 속에서 나…… 항상 자살했어. 여기 말고도 목을 맨 적도 있고 칼로 목을 찌른 적도 있어.”
담담하게 말하는 신혜의 모습을 보며 진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시간선과 지금을 제외하면 총 8번의 자살.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세상이 멸망한다며, 그럼 그냥 죽여 주면 안 돼? 이젠 자살하는 것도 지쳤어.”
‘생각해 내야 돼. 신혜가 삶에 의지를 가질 만한 생각을…….’
진하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들을 끄집어내서 신혜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나 희망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분명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시험에 넣었을 게 분명했다. 사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람을 택할 리 없었다.
“신혜야, 우리…… 아! 잠깐만! 네 동생 안 죽어. 내가 살릴 수 있어.”
순간 진하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뽑기판. 분명 그곳에는 부활이라는 목록이 있었다. 그거라면 충분히 그녀의 동생을 살릴 수 있었다.
“나한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어. 그러니까 네가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돼. 응?”
“부활?”
“응, 동생이 죽어도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자.”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녀는 애쓰는 진하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 동생 살려 주면 좋겠다. 살려 줄 수 있어?”
“응, 살려 줄게. 그러니까…….”
“고마워. 근데 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도대체 왜!”
삶의 이유인 동생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되돌아가면 그곳에서 그녀를 위협할 만한 존재도 더 이상 없다시피 했다. 즉,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행복이라는 희망이었다.
“지쳤으니까.”
답답해하는 진하를 보며 나직이 내뱉는 한마디, 그 순간 진하는 내뱉으려던 말을 그대로 넣었다. 그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지쳤다고?”
“응, 지쳤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10개의 삶은 너무 벅차.”
그녀의 말에 진하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어쩌면 이게 맞는 반응일지도 몰랐다. 당장 세상이 멸망한다는데 멀쩡하게 행동하는 게 더 이상했다. 심지어 이미 삶에 희망을 잃은 사람이라면 확실히 이런 반응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정말 죽고 싶은 거야? 앞으로 행복만 있는데도?”
“응,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고 싶어. 날 죽여줘.”
“어째서? 왜? 왜 나한테 죽여 달라는 건데?”
“마지막 부탁이야.”
그녀의 말에 진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나에게 고민할 시간을 줘. 그 정도는 줄 수 있지?”
“응…….”
“그럼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
이신혜는 축 처진 진하를 안아 준 채로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캠프가 있는 쪽을 향해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녀가 떠나고, 완전히 혼자가 남게 된 진하는 생각에 잠겨있다 입을 열었다.
“사서, 나와봐. 다 듣고 있는 거 아니까 나와 보라고.”
진하의 말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공간, 진하는 그 모습에 빡쳐서 외쳤다.
“나와 보라고! 네가 이 상황을 만들었으면 잠깐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진하는 악이라도 써 볼까 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방법이 없어.’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삶에 의지를 잃은 사람을 도저히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도 슬픔도 완전히 느끼지 않는 상태, 그냥 삶이라는 것에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
* * *
시간이 지나고 완연한 밤이 되어버린 던전, 그곳에서 진하는 이신혜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진짜 죽을 거야?”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진하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날 죽여도 이곳의 김진하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냥 우리는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 거니까.”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이기수 때처럼 희망을 보여 줄 수도 없었다. 하예진 때처럼 달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송하나 때처럼 협박과 설득을 할 수도 없었다.
오직 그녀가 원하는 건 죽음, 그거 하나뿐이었다.
웃긴 건 심지어 시험을 포기한다고 이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되돌아가도 그녀의 기억은 그대로일 거고, 진하가 죽이지 않는다면 그녀는 혼자서 자살할 사람이었다.
“날 봐서라도 안 돼?”
“널 봐서라도 난 죽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설득은 하지 말아 줘.”
너무나도 단호한 말, 그 말에 진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사랑했어.”
조용히 눈을 감는 그녀, 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챙그랑!
“미안, 나는 못 해.”
동생이 삶의 이유였듯, 진하의 삶의 이유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원한다고 해도 진하는 도저히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진하의 말에 감았던 눈을 뜬 그녀는 떨어진 단검을 주워 진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은 채로 들어 올렸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도 안 돼. 나는 널 죽일 수 없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누가 뭐라고 해도 너니까.”
“근데 어째서…….”
“진하야. 내 동생의 스킬이 뭔 줄 알아?”
이신혜의 말에 불안함을 느낀 진하가 재빨리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가 한 발 더 빨리 스킬을 시전했다.
“무력화.”
<무력화: 손에 닿은 대상을 1초간 무력화시킨다. 재사용 시간: 7일.>
푸욱!
그녀의 심장에 꽂히는 단검, 그 모습에 진하의 눈이 커졌고 힘이 돌아오자마자 재빠르게 단검을 놓은 채 쓰러지는 그녀를 받쳤다.
그리고 재빠르게 파우치에서 치료액을 꺼내 그녀에게 먹이고 부었지만 점차 꺼지는 그녀의 눈을 되돌려 놓을 수 없었다.
“왜……?”
띠링!
<스킬: 무력화가 이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