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27화 (127/202)

#127

진하는 편지에 써진 내용은 보며 의아해했다. 송하나를 죽이는 게 마지막 암살…….

“이건 또 무슨 장난이죠?”

“죄송하지만 아마 장난은 아닐 겁니다.”

“이게 장난이 아니라고요?”

진하가 편지를 책상 위로 탕! 하고 내리치며 말했다. 약속된 것은 암살을 하고 그걸 버티는 거였다. 그런데 이건 반대로 그녀를 암살하라는 거였다. 이게 놀리는 게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송하나 씨가 전달해 달라더군요. 암살이 꼭 당해야 암살은 아니라고, 직접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그게 무슨 개떡 같은 논리입니까?”

“저는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해 드렸을 뿐입니다.”

송준하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그가 맡은 일은 송하나가 시킨 일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후…… 송하나 당장 부르세요.”

“죄송하지만 편지를 본 시점부터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송준하의 말에 진하는 기가 차는 걸 느꼈다. 이제는 제멋대로인 수준을 넘어섰다. 시험 기간 동안 진하는 참고 또 참았다. 뭘 하든 시험을 통과해야지 미래를 제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진하가 미래를 바꾸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는데 송하나는 지금 자신보고 그걸 깨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난, 안 해. 안 한다고 전해요.”

어차피 시간이 상관없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시간이야 얼마나 들이든 천천히 그녀를 설득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죄송하지만 모든 연락 수단이 끊겼습니다.”

“상관없어요. 몇 달이나 가만히 있으면 그쪽에서 연락 올 거니까.”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진하 씨,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요.”

“진하 씨에게 송하나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송준하의 물음에 진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동료, 하지만 공적인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관계.”

“정말요?”

“맞아요.”

“하아, 저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처럼 다른 차원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본 적도 없고요.”

“그렇게 전달했나? 뭐, 그래서요?”

“다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하나 씨가 당신을 죽인 적도 있고 진하 씨가 하나 씨를 죽인 적도 있다지요?”

송준하의 말에 진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송준하가 이걸 알고 있다는 건 송하나가 알려 줬다는 거였다.

‘쯧, 쓰잘데기없는 개인사는 왜 알려 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죠?”

“서로 죽이고 죽이면서 왜 붙어 다니십니까? 공적인 관계라기엔 그렇게 보이진 않더군요.”

“당신이 알 필요는 없어요.”

“그렇죠. 확실히 당신들 입장에선 여긴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저조차 답답해서 못 봐주겠더라고요.”

송준하는 그 말과 함께 조그마한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진하는 그가 갑작스럽게 꺼낸 아티팩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간 이동 아티팩트입니다. 진하 씨가 상상하는 곳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아티팩트죠.”

“이걸 갑자기 왜…….”

“서로 밀어내지 마세요. 이건 미래를 알려 준 보답입니다. 적어도 같은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끼리 이 정도는 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

송준하는 그 말과 함께 아티팩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진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 * *

“배치는?”

“모두 다 배치했습니다.”

“김진하가 출발하면 모두 제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해.”

“네.”

부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곤 방을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송하나는 술이 든 잔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끝난다.’

이곳에 떨어지고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계획한 모든 일이 곧 끝난다 생각하니 약간 아쉬움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처음에는 그저 진하를 빠르게 내보내고 미래를 도모할 작정이었다. 그 이후에는 그저 인격을 통합하면서 진하를 훈련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격이 융화될수록 그녀가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그건 이대로 시험을 통과하고 돌아가더라도 승산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신이였나? 아무튼 당신은 진짜 악질이야.”

그녀는 머릿속에 든 정보를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이기수에게는 못 들었던,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

“뭐, 나름 나도 만족했으니까 됐어.”

“뭘 만족했다는 거지?”

갑작스런 목소리에 송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품에서 단검을 꺼내 내질렀다.

“그런 게 먹힐 리 없잖아.”

그녀가 단검을 내뻗은 곳에는 그녀의 칼을 손으로 잡은 채 서 있는 진하가 있었다. 송하나는 순간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비밀 통로로.”

“그곳들은 이미 다 막아 뒀어.”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공간 이동 아티팩트를 통해 들어왔지만 그것까지 그가 말해 줄 이유는 없었다.

“그건 상관없잖아? 그나저나 설명이나 좀 하지? 밖에 있는 것들은 다 뭐야?”

“뭐긴 뭐야, 당신을 막아설 병력들이지.”

“민간인이?”

진하는 곧바로 이곳으로 이동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이동하여 몇 곳을 확인한 후 이곳으로 다시 공간 이동한 거였다.

“나한테 민간인을 죽이게 시켜서 어쩌려는 거지?”

“민간인이라면 네가 못 죽일 것 같아서. 그냥 방패막이로 쓴 것뿐이야.”

송하나는 그 말과 함께 단검을 책상 위에 꽂았다. 그리고는 양팔을 진하에게 벌리며 말했다.

“자, 죽여. 그럼 통과야.”

“싫어. 넌 나한테 말해 줘야 할 게 있잖아.”

“그럼 내가 이러는 이유를 찾았어?”

“아니.”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었다. 단순한 사랑, 집착, 복수라고 보기엔 그녀의 감정은 너무 복잡해 보였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럼 땡, 힌트는 알려 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날 죽여.”

“아니, 틀려도 기회 한 번은 준다고 하지 않았어?”

진하는 그 말과 함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날을 잡은 채로 손잡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내가 제안하는 게임이야.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말해 줘. 아니면 날 죽여.”

“뭐 하는 짓이야!”

“뭐긴 게임이지. 네가 나한테 했던 거랑 비슷해.”

“시험을 통과할 생각이 없다는 거야?”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그놈의 시험, 그거 하나 때문에 지겹도록 끌려다녔다. 이제는 진하 쪽에서 거부하고 싶었다.

“시험이 중요하지만 그게 뭐. 널 죽이느니 그냥 멸망하라고 해.”

“개소리 집어치워. 우리는 공적인 관계 아니었어?”

“그래 공적인 관계지. 서로 죽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애증의 관계.”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아티팩트를 하나 꺼냈다. 진하가 손에 끼고 있는 것과 똑같은 아티팩트였다.

“너 그거 어디서…….”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조건은 네가 나에게 이러는 이유를 10분 안에 듣는 것. 듣지 못할 시 나는 죽는다.”

그 말과 함께 진하는 두 개의 반지를 모조리 자신의 손가락에 끼었다. 그러자 약한 빛을 내는 반지, 송하나는 그 모습에 놀라 소리쳤다.

“미쳤어?”

“응, 미쳤어.”

“당장 그거 빼! 아니, 당장 설득됐다고 인정해 줄 테니까.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

“미안하지만 그런다고 안 넘어가져. 그리고 넘어가도 아티팩트는 작동할 거고.”

사서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말로만 인정했다고 넘어갈 리 없었다. 그런 게 됐으면 진하가 애초에 이런 고생을 할 리도 없었고.

“8분.”

“너! 너 진짜……!”

송하나가 기가 막힌 듯 진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녀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7분.”

“5분.”

“4분.”

“3분. 이제 이야기 안 하면 기회조차 없다?”

진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송하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아티팩트를 해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절대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고, 말할 수밖에 없을 거였다.

까득!

송하나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진하는 얕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녀의 고집이 꺾였다.

“……다음 시험 때문이었어.”

“다음 시험? 자세히 말해 봐.”

“다음 시험은 네가 충격받을만한 일로 진행될 거야. 적어도 나한테 들어온 정보를 보면 그래.”

“그래서 이런 짓을 했다고 왜?”

“하나는 제대로 힘을 통제 못 하는 너를 훈련시키려고, 둘은 너에게 살인을 무감각하게 느끼도록 만들려고.”

“살인이라면 충분히 무감각한데?”

진하의 말에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그런 거였다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거였다. 진하에게 가장 필요하고 취약한 것, 그건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다른 죽음에는 무감각하면서 진하는 유독 그 부분에는 취약했다. 친구들의 죽음을 막고자 목숨을 내던질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그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앞으로 네가 갈 미래는 친구들이 모두 죽거나 인질로 잡혀 협박당할지도 몰라.”

“그래서?”

“미리 민간인과 너랑 가까웠던 친구들을 죽여버리게 만들어서 무감각하게 만들려 했어.”

“내가 망가질 거는 생각 안 하고?”

“네가 망가질 리 없잖아. 바로 앞에 원망할만한 존재도 있으니까.”

진하의 원망은 모두 그녀가 받을 생각이었다. 진하를 공격하고 진하의 친구들을 죽이게 만든 것 모두 그녀가 끌어안고 갈 생각이었다.

그게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그녀가 생각한 방법이었고, 신적인 존재가 그녀에게 원한 역할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왜 그렇게 한 거지? 너랑 내가 그럴 정도로 사랑했던가? 네가 아무리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해가 안 돼.”

진하의 물음에 송하나가 잠시 침묵했다. 확실히 아무리 여러 기억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인류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하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야. 처음부터 너와 강하게 엮여버렸거든.”

“엮였다고? 기억들 때문인 거야?”

진하의 물음에 송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들이 기폭제가 된 것은 맞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네가 다른 시간선으로 넘어온 시점부터 정해진 거였어. 처음부터 난 너를 사랑하라고 영혼 깊숙이 새겨졌거든.”

원리는 그녀도 몰랐다. 그저 하나 아는 거라곤 진하가 지금 있는 시간선으로 넘어오면서 그와 관련된 영혼들이 모두 같이 왔다는 거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다지만 고작 반년에서 1년이야. 그 시간 동안 너와 관련된 사람들이 너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믿음을 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다들 네가 있었던 시간 선의 영혼들이 합쳐져서 그래.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너를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게 된 거지. 그리고 그것들이 여기 오면서 밖으로 표출된 거고.”

“잠깐만 그럼 기억이 주입된 게 아니라 애초에 원래 있던 거라고?”

진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서가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분명 사서는 그가 넘어오면서 사라진 시간선은 다른 모든 시간선에 퍼진다고 말했지 그게 모두 한쪽으로 몰린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저 여기서 얻은 기억은 영혼 속에 묻혀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밖에 몰라. 나한테 전해진 정보는 그게 다야.”

차라리 이기수처럼 숫자가 적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아니, 하예진처럼 일관된 감정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진하는 너무나 지독하게 얽혔고 항상 다른 모습으로 만나왔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를 지독하게 사랑하게 되어 버리게 만들었고, 일반적인 사랑을 넘어 삐뚤어진 사랑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이게 내 이야기의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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