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뭐……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송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말을 더했다간 죽일 것 같은 기운을 팍팍 풍기는 송하나를 상대로 더 이상 얘기할 용기도 더 없었다.
‘그나저나 다들 어설프네.’
송하나와 진하를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려웠다. 원래 있던 존재와 다른 차원에 존재할 뿐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수많은 지식을 가진 송하나나 손쉽게 바로 SS랭크를 다는 진하를 바라보면서 그 차원과 이 차원은 많은 게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려웠고.’
뭘 하든 다 아는 듯이 행동하는 송하나와 강한 무력을 가진 진하를 보면서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다. 나름 게이트 폭주를 이끈 영웅이었고, 협회를 뒤엎은 사람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둘에겐 통용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더 웃긴 건 그런 두 존재가 저쪽 차원에서 가장 위가 아니라는 거였다. 둘의 행동이나 대화를 토대로 예상해 보면 둘은 꽤 커다란 세력에 속한 리더 정도였다.
‘그런 존재들이 못 막는 미래…….’
지금 송준하가 속한 차원보다 몇 단계는 높은 힘을 가졌고, 다른 차원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존재들조차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미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송준하는 그걸 막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발버둥 치는 거였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대해 왔던 존재들을 지금 이렇게 보니 자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힘의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이 고민하고 갈등을 짓는 그들은 확실히 송준하와 같은 인간이었다.
“타겟 99% 손상되었습니다.”
“다리 부상으로 이동력이 크게 저하되었고, 재생력 또한 많이 저하된 게 확인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10분.”
그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새 시간은 약속된 시간에 거의 도달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를 듣던 송하나는 짤막하게 말을 뱉었다.
“공격 빈도를 줄인다. 다만 급소를 노리지 않을 뿐 죽일 듯이 공격해.”
“타입 A의 무기는 뺄까요?”
“아니, 그것까지 빼면 너무 티 나, 그걸로 공격하되 대부분은 빗맞히게 해.”
“네.”
명령을 내린 송하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화면 속에서 헐떡이고 있는 진하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 *
“헉, 헉!”
털썩!
땅에 쓰러진 진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공격이 날아올 걸 생각하면 이렇게 누워 있어선 안 됐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더는 못 움직여.’
정말 쓸 수 있는 힘은 모조리 썼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온몸은 상처로 가득했고, 체력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송하나가 나타나 그냥 단검을 내지르더라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많이 지쳐 보이네.”
진하의 귓가로 송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하는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송하나가 웃는 모습으로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년…….”
“칭찬 고마워. 그나저나 의외였어. 생각보다 꽤 버티던데?”
송하나의 말에 진하는 기가 질리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꽤 버틴다. 그렇다는 건 그것보다 낮게 평가했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수준의 공격을 준비했다는 소리였다.
“어디서…… 구한 거지?”
“뭐를?”
“무기.”
단순히 정보 길드가 준비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여기서만 터진 폭탄만 해도 수백 톤은 가뿐히 넘어갔다. 거기에 진하에게 쏟아진 아티팩트와 마법까지 생각하면 이건 일개 세력이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거의 한 국가가 전쟁을 벌일 만한 수준의 양, 이건 그녀 혼자 절대 준비하지 못하는 양이었다.
“뭐, 협회장의 협조를 받았지. 너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거 아니었어?”
“미친…… 내란을 일으킬 것도 아니고…….”
“SS급을 잡는 데 그 정도는 필요하니까. 그래도 안 죽었잖아?”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그녀를 죽일 듯 바라보았다. 그나마 진하가 강화계에 과거의 후회를 3단계로 중간중간 써가며 버텼기에 이 정도였지. 이 정도면 어지간한 SS급은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조금 감탄했어. 아무리 움직일 수 없게 공간을 제한했다지만 그 수많은 공격을 버틸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그것만 아니었으면 널 죽였겠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무슨 소리야?”
“죽이러 온 거 아니었어?”
진하의 물음에 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여 주었다.
“축하해 2시간을 버텼네.”
그녀가 내민 시계는 정확하게 2시간을 2분 정도 넘긴 상태였다.
“이건 선물이야.”
그 말과 함께 진하의 옆에 놓은 물건 하나. 확인해 보니 홀리포션이었다.
“그럼 다음 암살 때까지 몸 보전 잘하고.”
그 말과 함께 멀어지는 송하나. 그런 그녀를 보며 진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왜…….’
지금 상태라면 그녀는 얼마든지 진하를 죽일 수 있었다. 체력은 이미 다 써서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도 힘들었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해 그의 피부를 뚫는 것도 쉬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진하를 죽이지 않았다. 2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대화를 하는 동안 죽일 수 있음에도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듯…….
* * *
한 달 후, 협회 내 휴게실.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손에 잡고 있는 커피를 바라봤다. 몸은 집중 치료를 받은 덕에 다 낫긴 했지만 여전히 커피를 잡은 손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왜…… 안 죽였을까.”
진하는 커피를 잡고 있는 흉터 진 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번 암살로 하나 확신한 게 있다면 송하나가 진하를 죽일 맘이 없다는 거였다. 정말로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에 죽였을 테니까.
‘심지어 템포도 조절했어.’
공격을 받으며 도망칠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다 끝난 후에 생각해 보니 공격도 아슬아슬할 정도만 했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죽을 것 같으면 미묘하게 약하게, 그런 식으로 공격을 했었다. 덕분에 진하는 딱 죽지만 않는 상태로 있는 힘을 다 썼다.
“훈련?”
곰곰이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죽지는 않고 있는 힘을 다 사용하게 만드는 것, 이게 훈련이 아니면 다른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냥 진하를 훈련시키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진행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더디기는 하지만 진하를 도와줄 사람은 많았고, 대련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면 되는 거였다.
물론, 실전이었기에 대련으로는 얻을 수 없을 만큼의 경험치를 얻긴 했다. 시험으로 강해지고 처음으로 젖 먹던 힘까지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돈에 비하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아, 모르겠다.”
도대체 송하나가 무슨 생각으로 진하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복수라기엔 이상했고, 그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뭔 일 있어? 훈련은 또 뭐고?”
이기수가 커피를 들고 다가오며 물었다. 그의 모습에 진하는 고개를 저으며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별거 아냐. 그나저나 이제 곧 부서 해체한다지?”
“너 그거 어떻게 아냐?”
“뭐, 그럴 것 같아서.”
이맘때쯤에 부서를 해체했으니 알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블랙 길드도 잡을 수 있을 만큼 다 잡았으니 더 이상 부서를 유지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즉, 원래 진행되어야 할 수순대로 진행되는 거였다.
“네 말대로 한 달 뒤에 해체한다더라. 아직은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도 따로 들었냐?”
“비슷해.”
“해체되면 이제 뭐 하나…….”
“뭐 하긴, 게이트 공략해야지.”
“그러다 또 터지면 어떡하고.”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게이트 폭주 이후로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들이 줄기는 했다. 언제 터져서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고, 12층의 보스를 건드렸기에 게이트 폭주가 일어났다는 견해가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잖아. 미국 생각해 봐라.”
게이트 폭주 이후 미국에서는 게이트를 봉쇄했다.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막대한 이득을 포기해서라도 더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게이트 폭주의 영향인 건지 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몬스터들이 생겨났고, 결국 미국은 게이트 봉쇄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저층만 잡으면 되잖아. 우리 같은 SS급이 내려가서 뭐 하냐.”
“초반의 그 생각은 어디 갔냐? 몬스터를 박멸하고 싶다며.”
“그건 지금도 여전하긴 하지. 근데 이젠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사람들만 지켜도 되지 않을까?”
이기수의 말에 진하는 그가 슬럼프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하기야 몬스터가 1층부터 다시 가득 찬 걸 생각하면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너 이상하지 않냐?”
“뭐가?”
“몬스터가 다시 가득찬 게.”
“뭐, 그건 어쩔 수 없잖아? 게이트가 폭주했으니까.”
이기수의 말에 진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나 자격이 없어서인지 의심이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뭐, 그건 됐고. 적당히 고민해라. 어찌 됐든 헌터인 이상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게 우리 의무야.”
“나도 알아.”
게이트 폭주 전에 몬스터를 잡는 게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의무였다. 그게 헌터라는 직종의 바뀐 개념이었다.
진하는 고민하는 이기수를 어깨를 토닥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다시 일어설 놈이었다. 이곳의 미래를 위해 진하가 해 줄 거라곤 이기수의 실력을 높여 주는 것밖에 없었다.
띠링!
그때 진하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이기수를 토닥이던 진하는 핸드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다음 시험, 협회장실로 와주세요. ―송준하―>
“뭐야?”
굳어진 진하의 표정을 보며 이기수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냐. 협회장이 불러서.”
“너…… 진짜 뭔 일 있어?”
“뭐가?”
“계속해서 표정이 어둡고 너한테 이상하게 암살들이 쏟아지는데 안 이상하냐?”
이기수의 물음에 진하가 쓰게 웃었다. 확실히 그것만 봐도 이상한 상태긴 했다.
“거기다가 저번에는 크게 다쳐서 돌아왔잖아. 그것도 협회장의 명령으로 출장 다녀와서. 진짜로 뭔 일 있어?”
“없어. 그냥 비밀 임무 정도로 알아 둬라. 너도 안 물어본 이유가 그거 때문에 아냐?”
“하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언젠가 얘기할 수 있음 좋겠다. 다들 궁금해하더라 네가 왜 그런 일을 당하는 건지 뭘 하고 있는 건지.”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동료들이 궁금해하면서도 참고 있는 이유는 협회장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해서 참고 있다는 걸. 그래서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걱정 마.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그럼 난 간다.”
진하는 이기수의 어깨를 마저 토닥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협회장실로 올라가자 저번에 봤던 비서가 진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잠깐 기다리면 되나요?”
“아뇨,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비서의 말에 진하가 곧바로 협회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안 궁금해하려나?’
순간 비서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모든 비밀이 오가는 협회장실이었다. 궁금해하는 게 당연했는데도 그녀는 항상 볼 때마다 궁금해하는 표정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곤 했다.
‘하긴, 그러니까 협회장실 비서를 했겠지.’
진하는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리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당연하게도 협회장이 진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없네요.”
“송하나 씨 말입니까?”
“예.”
“내용이 담긴 쪽지만 건네고 갔습니다.”
송준하는 편지 하나를 보여 주며 말했다. 진하는 송준하가 넘겨주는 편지를 받아 봉투를 찢으며 말했다.
“뭐, 다른 말은 없었어요?”
“마지막 시험이라고 말하더군요.”
“마지막 시험이라…….”
진하로서는 좋은 얘기였다. 최대 3번까지 생각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그로서는 환영이었다.
‘문제는 아직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단 거지만…….’
진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봉투 안에 든 편지를 펼쳐 들었다.
<마지막 암살이야. 나를 죽여. 위치는 정보 길드로 하자.>
짧게 쓰여있는 한마디. 진하는 그 글을 보곤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