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24화 (124/202)

#124

“이게 뭔…….”

진하는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손으로 눈을 비벼 보았지만 송하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많이 놀랐나 봐?”

“네가 왜 이 자리에 있어?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진하는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송준하를 보며 물었다. 협회와 블랙 길드,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 같이 있었다.

“블랙 길드랑 손을 잡은 겁니까?”

여기는 진하가 있던 시간선과 달랐다. 둘 사이를 진하가 중재하지도 않았고, 이미 블랙 길드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시간대였다. 즉, 이 시간대에서 블랙 길드는 절대 악이었다. 그런데 그런 블랙 길드와 손을 잡다니…….

촤락!

진하가 단검을 뽑아 듦과 동시에 스킬을 시전했다. 그 모습에 송준하가 긴장하며 뒤로 물러났다.

‘죽인다.’

이 시간선에서 협회가 블랙 길드와 손을 잡은 상태라면 무너뜨려야 했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다 죽을 테니 차라리 무너뜨리고 새로운 협회가 설립되게 만드는 게 더 나았다.

“진하야, 멈춰.”

그때 가만히 진하를 보고 있던 송하나가 진하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진하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멈춰. 그리고 지금 날뛰면 통과는 없어.”

까득!

“너는 항상 그게 문제야.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설프고 그게 엇나가면 감정적이 돼. 그건 고쳐야 돼.”

“……젠장!”

진하가 들고 있던 단검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송하나와 송준하를 바라보았다

“똑바로 설명해. 하지 못한다면 난 송준하 당신을 죽일 거니까.”

“우선 자리에 앉지?”

송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진하에게 의자를 권유했다. 진하는 이를 악문 채 송하나의 반대편 의자에 주저앉았다.

“말해.”

“스킬은 안 풀어?”

“그냥 말해.”

스킬을 중간에 해제하면 딜레이가 발생한다. 모든 시간을 사용한 게 아니라지만 재사용 시간이 존재하게 되는데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 환경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다.

“뭐, 네 맘대로 해. 어디부터 말할까? 흠, 일단 협회와 정보 길드가 손잡은 건 맞아.”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송준하를 노려봤다. 하지만 송준하는 어색하게 웃을지언정 그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블랙 길드와 손을 잡은 건 아냐. 정확히는 나랑만 잡은 거지.”

“너랑? 하지만 정보 길드도 블랙 길드인 건…….”

“어디까지나 이 시간선에서는 말이야.”

진하의 말을 중간에 끊은 송하나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이 시간선에서 유독 블랙 길드를 소탕하는 게 빠르지 않았어?”

“네가 정보를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맞아. 솔직히 너도 대충 짐작했잖아?”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시간 선과는 다른 빠른 소탕과 송하나를 잡는 것에 미적이던 협회를 보면 확실히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송하나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블랙 길드와 손을 잡는 건 안 돼.’

거래와 손을 잡는 건 달랐다. 거래 정도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일회성 거래 정도야 어차피 잘만 숨기면 되는 거였으니까. 서로 등쳐먹는 세계에서 그런 관계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맹은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다른 기업이나 길드였다면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블랙 길드는 아니었다. 이 시간 선은 이미 1차 게이트 폭주가 일어난 이후의 시간선이었다. 블랙 길드라는 것 자체가 사회악이었으며 헌터들의 적이나 마찬가지라고 인식이 박혀있었다.

애초에 1차 게이트 폭주에서 심각하게 많은 피해를 입은 건 블랙 길드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놈들과 손을 잡는다는 건 적어도 이 시간 선에선 타락하고 똑같이 블랙 길드가 되겠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슨 짓이라니?”

“네가 뭘 하지 않고서야 송준하가 블랙 길드와 협력할 리 없잖아.”

아무리 시간선이 바뀌어도 송준하는 송준하였다. 적어도 이 시간선에서는 야심 있고 타락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협회를 뒤엎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흐음, 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각보다 견고하네? 이게 다 과거 때문인가?”

“똑바로 말해.”

“별거 아냐. 그냥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미래를 조금 알려 줬을 뿐이야.”

송하나의 말에 진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아니, 그전에 그걸 송준하가 믿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왜? 문제 있어? 안 믿겨?”

진하가 송준하를 바라봤다. 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진하는 그 모습에 그가 완전히 미래에 대한 정보를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건 됐고 무슨 짓이야. 네가 지금 뭔 짓을 했는지 알아?”

“잘한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잘한 짓이라니…….”

“그럼 이 시간 선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로 다 죽으라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진하 역시 이 시간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진행했다. 블랙 길드를 좀 더 빠르게, 피해 없이 소탕할 수 있게 기여했고, 게이트 경계 시스템의 허점을 짚어 주었다.

비록 크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진행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할 수 있는 행위, 정보를 전달한 것뿐이야.”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잖아.”

그녀가 아무리 20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두 불안전한 기억이었다. 제대로 세계에 대한 비밀도 모르고 그저 불안전한 미래의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관리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모르고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더 나쁜 미래가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건 네 생각이고.”

“뭐?”

“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네 맘대로 생각하는 거야?”

“그게 무슨…….”

“미래가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나도 같은 시간선에서 왔어.”

송하나도 미래가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하와 송하나가 있던 시간 선에서 모든 사건들이 빠르게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알지 못하는 게 바보였다.

“우리는…….”

순간 진하가 아차하며 송준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송준하는 놀라는 기색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다 말한 거야?”

“허락되는 선에서는?”

“미친! 넌 우리가 여길 떠날 사람들이란 건 알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는 거지. 왜 이 사람들의 미래를 네가 결정해? 여기 사람들이 해야지.”

어찌 됐든 진하와 송하나는 그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존재였다.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진하가 가져서는 안 됐다.

“너는 제대로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

송하나는 관리자의 존재를 몰랐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미래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진하가 있던 시간선처럼 문방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는 상태로 미래를 아는 건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저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송준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는 진하에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미래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있던 시간대에 대해서도, 당신들이 유령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라는 것도 알겠습니다.”

“예. 맞아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떠날 거예요. 저라는 존재가 없어질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김진하가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어쩌면 진하가 했던 모든 일이 없어진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모든 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적당히 개입하는 게 맞았다.

“확실히 이곳은 당신들이 말한 이상한 아티팩트도 없고, 미래를 완전히 바꾸기엔 자원도 시간도 당신들에 비해 부족합니다.”

말하면서 목이 타는 건지 송준하가 앞에 있던 물을 벌컥 마셨다.

“당신들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우러 온 거라면 적어도 선택권 정도는 우리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맞아. 선택권은 저들에게 주는 게 맞는 거야. 안 그래? 그리고 너도 개입 안 한 거치곤 이미 SS급 헌터로 등록하고 꽤 많은 걸 바꿨잖아?”

송준하와 송하나의 말에 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어떤 면에선 그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흘러가는 미래가 아니었다.

‘관리자와 싸우는 거지.’

단순히 미래를 방지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상대가 신과 비슷한 존재라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아, 이미 지나간 거니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송하나가 뭘 알려줬든 다 믿지 마세요. 작은 선택 하나에 미래는 180도 바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미끼로 협력을 얻은 건 알겠는데 날 부른 이유는?”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진하를 불렀을 리 없었다. 이 자리에 송하나가 있다는 것은 결국 송하나가 진하를 불렀다는 이야기이고, 무슨 용건이 있다는 소리였다.

“더 이상 안 따지나 보네?”

“내가 막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 용건은 간단해 통보야.”

“통보?”

“응, 곧 첫 번째 암살이 있을 거야. 당연히 위치는 강원도에 위치한 인적없는 산골이고.”

송준하가 진하에게 종이 한 장을 넘겨주었다. 받아든 종이에는 진하가 가야 되는 위치와 시간이 적혀있었다.

“말한 시간대에 준비해서 오면 돼. 그리고 준비한 암살을 버티기만 하면 되고, 쉽지?”

“이게 암살이라고?”

“뭐, 죽이면 다 암살인 거지. 거절은 못 하는 거 알지?”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쓰게 웃었다. 확실히 그를 죽이는 방식은 이런 방식이 제일이기는 했다.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철저히 준비 후 공격하지 않으면 진하를 죽일 수 없으니까.

“정말 악질이네.”

“난 내 상황을 잘 이용하는 것뿐이야. 기껏 수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안 써먹을 순 없잖아?”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보아하니 당신도 도와주는 것 같나 보네.”

진하의 물음에 송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가 알고 있는 건 일부의 미래, 도와주는 대가로 나머지 정보를 얻기로 약속받았다.

“미안합니다.”

“아냐. 당신 입장도 이해는 가. 다만 저 녀석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아.”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럼 됐어요”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하나는 그런 진하를 보며 쾌활하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리 같이 점심이라도 먹으러 갈래?”

“아니, 미안하지만 난 바빠서 말이야. 죽지 않으려면 준비를 해야 하거든.”

진하는 그 말과 함께 협회장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송준하는 송하나를 보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뭐, 한두 번도 아니고 괜찮아.”

송하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진하에게 미움받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하는 행위였다.

“자, 가자. 점심 먹고 싶으니까.”

“네?”

“그럼 나 혼자 먹으라고?”

송하나는 당황하는 송준하를 끌고 협회장실을 나갔다.

* * *

―죽이자. 어서 죽이자.

―아냐, 살려야 돼. 응?

―하아…… 뭐든 좋아. 진하의 얼굴만 볼 수 있다면.

“다들 닥쳐.”

짜증 난 음성과 함께 송하나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도대체가 이것들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굴복당했으면 그냥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돼?”

―하지만 약속을 아직 안 지켰잖아.

―맞아. 그리고 난 진하가 보고 싶은 걸?

―난 뭐든 좋아.

머릿속에서 떠들어 대는 목소리에 송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가 협력이라는 걸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잘 들어.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진하는 안 죽어. 이미 대충은 알잖아?”

―그런 거 몰라.

“그리고 너희들도 나라면 합리적으로 좀 생각하지?”

―그래서 도와주고 있잖아.

도와주기는 개뿔,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애초에 판을 이렇게 짠 것도 이것들 때문이었다.

“대충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줬잖아. 그럼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좀 따라줘.”

―정말로 그거면 돼?

제일 잠잠하던 머릿속에 있던 기억이 송하나에게 물었다. 송하나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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