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20화 (120/202)

#120

송하나가 죽었다는 소리에 진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죽을 리 없으니까.

“잠깐만 죽을 리 없잖아. 각성자인데.”

“각성자요? 각성자라고요?”

포주의 질문에 진하가 머리를 짚었다. 이곳에선 아무래도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아, 됐어요.”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가게를 나왔다. 뒤따라 나온 이기수는 진하가 들고 있는 사진을 보며 물었다.

“네가 찾는 사람이야? 누군데?”

“너…… 신혜 몰라?”

진하의 물음에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전투 중에 마주친 적 있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적어도 그의 기억 속에는 없는 사람이었다.

“응, 모르는 사람이야.”

이기수의 말에 진하는 어쩌면 이곳이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뀐 시간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흐름은 비슷한데 뭔가 몇 가지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럼 송하나도 다른 운명인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그녀가 그를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진짜 죽었나 하고 생각하면 그럴 리는 없었다.

‘고작 일반 화재에 죽을 리 없을 텐데…….’

B급 최상위 각성자였다. 아무리 힘줄이 잘려 망가진 상태라고 해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할 정도였다. 거기다가 각성자의 기본적인 화염 저항력을 생각하면 화재로 죽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하아, 머리 아파.”

앞선 시험들과 달리 너무나 다른 게 많았다. 지금까지의 시험이 맛보기라는 듯 갑자기 난이도가 너무 뛰어 버렸다.

“진하야. 근데 이제 좀 가자. 우리 여기서 농땡이 핀 거 알면 시말서다.”

띠링!

그때 둘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이기수는 문자를 확인하곤 얼굴을 굳혔다.

<요정의 집에 목표물 확인. 지원 바람.>

“야, 떴다. 가자.”

빠르게 달려 나가는 이기수, 진하 역시 이기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 *

“하아…….”

“너 요즘 맨날 한숨이더라? 무슨 문제 있어?”

이기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있다면 있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협회를 이용해 송하나의 이름을 검색했지만 당연하게 나오지 않았다. 하기야 정보 길드 소속인데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있어도 얼굴과 이름 모두 거짓된 상태일 거고.

문제는 안가도 없다는 거였다. 혹시나 싶어 찾아가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조차 없는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을 축일 수도 없고…….”

“시간?”

“아냐, 그냥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까 하고.”

“얼마 전에 A급에 올랐으면서 그러냐? 그거 욕심이다?”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B급으로는 행동반경이나 작전 등에 걸림돌이 많아 일부의 힘만을 보여주어 A급으로 올려놓은 것뿐인데 이기수의 눈엔 욕심처럼 보인 듯싶었다.

“욕심 아니야. 그냥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보이니까 그런 거지.”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 해. 너 벌써 한 달째 한숨 쉬면서 미친 듯이 훈련하고 있는 거 알아?”

“알아.”

‘그거라도 안 하면 한 게 없으니까 그렇지.’

무려 그날로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 시간 동안 송하나는 찾을 수 없었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 것뿐이었다.

“아무튼, 난 이만 간다.”

“또 훈련 가냐? 비도 오는데 오늘은 그만하고 한잔 어때?”

이기수가 술을 마시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피곤해서 들어가 보려고. 훈련도 안 할 거니까 걱정 말고.”

진하는 대충 손을 흔들어 준 후 부서를 나왔다. 그리고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어디서부터 찾냐…….”

“죄송합니다.”

멍하니 걷던 진하를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갔다. 진하가 자신을 친 사람을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치고 지나간 사람은 어느새 진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급한 일이 있나?”

사람들을 피해서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게 엄청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진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 어떻게 부딪친 거지?”

훈련을 거듭하면서 지금 진하의 신체 스펙은 A급과 S급 사이였다. 거기다가 아무리 멍하니 있었다지만 현재 시기는 블랙 길드를 소탕하던 시기라 최소한의 경계를 항상 하고 있었다.

‘부딪칠 수가 없어.’

일반인이나 저급 랭크의 헌터라면 부딪치기 전에 진하가 알았어야 했다. 그 이상의 헌터라면 진하 모르게 부딪칠 수는 있으나 그 역시 마음먹고 부딪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일부로 부딪쳤어?”

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로 부딪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툭!

순간 진하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진하는 허리를 숙여 종이를 집어 든 후 곱게 접힌 종이를 펼쳐보았다.

<문방구 앞에서 기다릴게.>

종이를 보자마자 진하가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이 시간선에서 문방구라는 단어를 알만한 사람은 분명 송하나밖에 없었다.

“어딨지?”

밖으로 나온 진하가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지만 수 많은 사람들과 비로 인해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택시!”

진하가 다급히 협회로 들어오고 있는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탑승한 진하는 빠르게 목적지를 불러 준 후 종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문방구 앞에서 기다릴게.>

송하나의 글씨체였다. 확실히 수십 번 봤던 그녀의 글씨체가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왜 이제야 연락한 거지?’

조직에서 도망가고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기엔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시기의 송하나에게 무언가 자산이 될 만한 게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쪽지로 진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문득 섬뜩함을 느낀 진하가 무장을 살펴봤다. 파우치에 들어있는 치료액과 단검 3개가 다였다.

“택시 아저씨 죄송한데 차 좀 돌릴게요. 다시 협회로 가주세요.”

“네.”

진하는 그제야 뭘 놓쳤는지 깨달았다. 분명 사서가 여러 가지 기억이 들어갈 거라고 얘기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송하나는 그가 아는 송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젠장, 내가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애초에 송하나라는 사람 자체가 진하를 죽이려고 했던 존재였다. 지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러 기억이 들어갔다면 예전처럼, 아니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 당장 송하나와 만나는 건 위험했다.

“어라? 아저씨, 협회로 가달라니까요? 유턴 안 해요?”

“이쪽 길에는 딱히 유턴할 곳이 없어서 빙 돌아가는 중입니다.”

택시 기사의 말에 진하가 창문 밖을 살펴보았다. 빙 돌아간다는 말과는 달리 택시가 가는 방향은 문방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 즉시 진하는 단검을 빼 들어 택시 기사의 목을 겨눴다.

“너 뭐야.”

“사, 살려주세요.”

겨눠진 단검에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택시 기사. 택시 기사를 빠르게 훑어봤지만 일반인이 분명했다.

“누가 시켰어?”

“저, 저는 그냥 말한 장소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돈을 준다고 해서…….”

택시 기사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까지 계획했을 줄이야…….

“당장 멈춰.”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택시 기사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 정보 없음이라고 떠있는 화면, 진하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이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진하는 송하나의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그냥 서프라이즈? 평소처럼 준비해 봤어.]

“왜 안 나타난거야? 그리고 지금 기억 몇 개야?”

[흠…… 글쎄? 내가 그걸 말해 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

놀리듯 말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진하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를 불렀으면 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아, 맞다. 혹시라도 방향 돌리면 그 택시 기사 죽는다?]

“히이익!”

송하나의 말에 택시 기사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진하는 그녀의 말에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그걸 신경 쓸 것 같아?”

[아마도 신경 안 쓰겠지? 근데 반대로 지금 아니면 나 못 만나는 것도 알지?]

“협회를 통해 찾아내면 돼.”

[어떻게? 지금의 내가 어떤 신분인지는 알고? 협회가 협조할 만한 권력은 있고?]

“내 등급을 올리면 돼.”

지금이야 그녀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지금 시간선에서 진하는 그녀를 찾을 권력도 없었고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권력이야 만들면 되는 거였다. 지금 당장 랭크를 올려 SS급이 되면 권력쯤이야 순식간에 만들 수 있었다.

[알아. SS급까지 찍었다지? 분명 권력이야 금방 생기겠지. 근데 내가 해외로 나가면?]

“……어떻게 알고 있지?”

[이기수한테 들었어. 다녀와서 다른 동료들한테 다 알려주더라.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그녀의 말에 진하는 시험을 본 대상이 기억을 잃지 않고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기수라면 다른 말도 했을 텐데?”

[얘기했지. 되도록 쉽게 너를 통과시키자고. 나도 그 이야기에 동의했어.]

“그런데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대상자가 되기 전에야 일단 멸망을 막아야 하니까, 당연히 동의했지. 근데 막상 들어오니까. 갑자기 협조하기 싫어지더라고.]

“솔직히 말해줘. 너 몇 가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흠, 이건 말해 줘도 되겠지. 20개야.]

진하는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20개의 기억, 말이 좋아 20개지 그 정도면 원래의 송하나에게 영향을 주는 게 당연했다.

[참고로 너의 손에 죽은 게 7번이야.]

“원하는 게 뭐야. 복수?”

진하의 물음에 돌연 핸드폰에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한참 동안 말없이 웃기만 하던 송하나는 짧게 말했다.

[궁금하면 문방구로 와.]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진하는 한숨을 쉬며 단검을 거뒀다.

“최대한 빠르게 가 줘요.”

“네, 넵!”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하는 택시 기사, 그 역시 자신의 목숨이 걸렸다는 걸 인지한 건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무장 상태로 그녀가 준비했을 함정을 돌파할 수 있을지 애매했다. 물론 죽지는 않을 것이다. 등급이라는 게 있으니까.

‘문제는 그걸 송하나도 알고 있다는 건데.’

바보가 아닌 이상 무언가를 준비했을 게 분명했다. SS급이라는 걸 아는데 아무 생각 없이 진하를 불러들일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SS급을 죽일만한 함정이 생각나지 않았다. 적어도 그럴려면 국가급 전력이 움직여야 하는데 송하나가 그런 전력을 만들 가능성은 없었다.

“하,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송하나를 찾았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를 설득시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변해 버렸을지 모르는 그녀를 설득시키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끼익!

“다, 다 왔습니다.”

택시 기사가 차를 멈추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피익!

진하가 날아오는 총알을 피했다. 날아온 곳을 쳐다보았지만 찾기는 힘들었다.

‘쯧, 비만 아니었어도.’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폭우 수준으로 내리는 바람에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태인지라 저격하는 자를 찾기 힘들었다.

피익― 퍼억!

작은 소리와 함께 이번엔 택시 안에서 움츠리고 있던 택시 기사의 머리가 터졌다. 자신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기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진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 순간 울리는 공중전화. 진하는 천천히 걸어가 울리는 전화기를 받았다.

[어때? 화가 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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