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19화 (119/202)

#119

“여, 출근했냐?”

“어, 나도 한 잔만.”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종이컵을 하나 더 꺼낸 뒤 믹스커피를 탔다. 진하는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송하나라…….’

지난 일주일간 진하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나봤다. 하지만 아무도 대상자에 속하지 않았다.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것도, 여러 기억들이 몰려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현재의 대상자는 송하나라는 것. 그녀 외에는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였다.

‘문제는 왜 안 찾아오는 거지?’

현재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다. 어차피 진하가 기억하는 곳과 같은 장소에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걸리는 점은 그녀가 진하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상해…….’

그녀의 성격상 바로 진하를 찾아와야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뭔지 파악해야 했다. 물론 블랙 길드의 영역에 속했으니 함부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기억이 있다면 그녀는 당연하게도 베테랑 중의 베테랑일 텐데 고작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 도망쳐서 진하에게 보호 신청을 바라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하아, 도대체 뭐가 뭔지.”

“뭔 고민 있어?”

이기수가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진하는 이기수가 건넨 커피를 받아들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별거 없어.”

“흠, 아닌 것 같은데 저번주부터 계속 안색이 어두웠잖아. 거기다가 사람들 만나고 다니면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던데?”

“이상한 행동?”

“동료들 찾아가서 빤히 쳐다보다가 나 알지? 이런다며.”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대상자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 수 없고 직접 묻기 어려워서 그런 식으로 알아보긴 했었다.

“진짜 별거 아냐. 그나저나 오늘 갈 작전지역 C-25 지역 맞지?”

“어, 맞아. 근데 그 지역 뭐 있나? 저번에 한 번 털지 않았어?”

“오늘 네가 고생일 거다.”

“응? 뭔 소리야?”

이기수의 물음에 진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오늘 갈 지역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과거 이미 갔던 지역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송하나를 만났으니까.

“가자. 호출이다.”

“야, 하던 말은 다 하고 가야지! 뭐 들은 거라도 있어?”

“가면서 이야기해 줄게.”

진하는 몸을 일으켜 정보부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게 뭐야…….”

이기수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로 앞에 있는 가게들을 바라봤다. 진하는 이기수의 표정에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C-25 지역, 매춘 거리지.”

“내가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이기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C-25 지역이 매춘을 하는 지역인 건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이 C-25 지역에 속한 가게에서 특정 사람을 찾고 체포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다만 문제는…….

“왜 손님으로 위장을 해야 하는 건데!”

“그게 가장 나으니까?”

“그냥 평소처럼 하면 안돼?”

“어, 안 돼.”

진하가 이기수의 물음에 즉답했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숨어서 잠입하는 건 소용이 없었다. 그런 건 자료를 찾거나 암살이나 습격을 할 때나 효과적인 방법이지 사람을 찾는 것에는 의미가 없었다.

“아니, 그냥 숨어서 이곳저곳 찾아보면 되는 거잖아.”

“그게 안 된다고. 넌 이렇게 복잡하고 환한 공간에서 그게 쉬울 것 같냐?”

“나 SS급인데?”

“미안한데 너만 SS급이야. 다른 사람들은 아니고. 그리고 한곳이라도 걸리면 끝인 거 몰라?”

이번에 투입된 팀만 근 30팀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이번 작전을 완전히 망치게 되니 이기수가 말한 방법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놈의 기계들이 문제지.’

이기수라면 모를까 다른 헌터들까지 모두 기계의 감시를 피할 순 없었다. 특히, 이번에 작전을 실행하는 지역의 경우 하나같이 감시가 철저한 고급 가게가 몰린 지역이었기에 위험 가능성은 최대한 배제해야 했다.

“시간 없다. 빨리 가자.”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

“그럼 돌아가? 네가 시말서 쓸래?”

이 지역으로 예상 범위를 좁히는 데만 엄청난 돈이 깨졌다. 그것도 오늘이 아니면 쓸모없는 정보인데 고작 들어가기 싫다는 이유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냥 거리 전체를 통제하면 되잖아. 응?”

“그럼 퍽이나 잡히겠다. 그래도 너 배려해서 가장 마지막으로 출발했잖아.”

“하아…… 젠장.”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진하의 말대로 들어가기 싫다는 이유로 포기할 순 없었다.

“넌 그냥 내 뒤나 졸졸 따라와.”

진하가 앞장서면서 말했다. 오늘 컨셉은 숙맥인 친구를 진하가 데리고 경험시키는 컨셉이었다. 실제로 이기수가 이런 쪽으론 숙맥에 가까우니 딱 좋은 컨셉이었다.

“아, 그리고 멍청하게 있다가 인챈트 물품 건들게 하지 말고.”

“내가 설마 그러겠냐!”

“응.”

이기수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분명 여자한테 어버버하다가 실수로 안경이라도 떨굴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진하가 겪었던 과거에서 어버버하다가 떨굴뻔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둘이에요?”

“어머, 사장님 멋있다.”

거리로 들어서자 몇몇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게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미녀에 아슬아슬한 옷차림이었다.

“시선 주지 말고 따라와라.”

진하는 얼굴을 붉히며 힐끗거리는 이기수를 나무랐다. 저렇게 호객 행위를 하는 곳은 죄다 급이 낮은 곳이었다. 그들이 가야 할 고급 지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 잠깐만 들렀다 가세요.”

그때 한 여성이 이기수의 팔을 붙잡았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이기수에게 밀착했고 이기수는 얼굴을 붉힌 채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하아…….”

호객꾼에게 붙잡히면 상당히 피곤했다. 특히, 이기수같이 숙맥이면 끌려갈 가능성도 높았다.

“거기서 뭐 하냐. 빨리 오지 않고.”

“어머, 이쪽분도 잘생기셨네? 친구분 경험시켜주러 오신 거예요?”

“안가니까 그것 좀 놓지?”

진하가 싸늘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통은 이렇게 싸늘하게만 대하면 끝이었다. 그들도 눈치가 있기에 이 정도만 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에이, 왜 그러세요.”

하지만 그녀는 아닌 듯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뻔뻔한 건지 다시 한번 들이대는 그녀.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너네 같은 급 낮은 곳 안 간다고.”

약간의 살기까지 섞어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진하는 뻣뻣하게 굳은 그녀의 손에서 이기수를 떨군 후 그를 끌고 갔다.

“그렇게 해도 돼?”

어느 정도 멀어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기수가 물었다. 염탐을 하는 건데 일반인에게 살기를 쏘아 보내는 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상관없어. 여기선 이게 맞아.”

보통이라면 각성자가 일반인에게 살기를 쏘아내는 것만으로 문제가 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각성자가 여기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는 일까지만 아니면 웬만해선 그냥 다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이렇게 하는 게 나아.”

“뭐?”

“주변을 잘 봐라.”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주위를 둘러봤다. 거리는 여전히 호객하는 사람들이 넘쳤지만, 아까와 달리 그들에게 다가오거나 바라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각성자는 어찌 됐든 고 수입자야. 그걸 아는데 호객 행위를 하겠냐? 심지어 사고 나면 큰일 나는 놈들인데?”

“아…….”

낮은 랭크의 헌터가 아닌 이상 각성자들은 웬만하면 죄다 중상급 가게를 찾는다. 돈이 많으니까. 그러니 급이 낮은 가게나 하는 호객꾼이 둘을 건드릴 리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기도 했고.

“아무튼 잘 따라붙어.”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가야 하는 곳은 이길 아니지 않아?”

지도를 떠올린 이기수가 물었다. 지금 진하가 가는 곳은 그들이 맡은 지역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알아. 잠깐 하나만 확인하고 들릴 거야.”

어차피 오늘 진하와 이기수가 갈 지역의 고급 가게에는 목표대상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급하게 가서 미리부터 감시할 필요는 없었다.

‘송하나를 찾아야 해.’

진하에게 가장 급한 건 대상자인 송하나를 찾는 일이었다. 이 지역 자체가 블랙 길드와 얽힌 곳이 많기에 함부로 찾아갔다가 협회에서 감사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진하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 아니면 힘들어.’

과거랑 똑같이 흘러간다는 전제하에 2시간 뒤에 목표물을 찾았다는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니 시간에 여유가 있는 지금 확인해야 했다. 작전지역도 원래 진하가 배정받았던 곳과 다르기에 과거처럼 목표물을 쫓는 과정에서 송하나가 있는 곳을 지나치는 방법은 불가능했다.

“야야, 어디가? 이러면 시말서야.”

“나도 알아. 잠깐 들릴 곳 있다니까?”

“너 여기 자주 왔었어?”

이기수가 능숙하게 길을 찾는 걸 보며 놀라 물었지만 진하는 깔끔하게 그 말을 무시했다. 그런 진하의 모습에 이기수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진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흐음…… 여기쯤인데?”

진하의 기억이 맞다면 이 근처에 송하나가 속해있던 풍속점이 있어야 했다. 진하는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훑어보다 이내 익숙한 모양의 가게를 발견하곤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어서오…… 세요.”

카운터에 앉아있던 사내가 떨떠름하게 진하를 맞이했다.

‘뭐지?’

진하와 이기수의 옷은 꽤 고급진 차림이었다. 이렇게 급이 낮은 곳을 올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씨, 설마?’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한 달 전 같이 술 마시며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돈 많은 인간들 중 몇몇 변태 같은 놈들이 찾아와서 상품을 망가뜨렸다고 푸념하던 옆집 포주. 어쩌면 이놈들도 같은 부류일 수도 있었다.

“여기 송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있어요?”

“송하나요? 아뇨,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는데요?”

“그럼 자희라는 이름은요?”

“두 명 있습니다.”

“둘 다 사진 좀 보여줘 봐요.”

“잠시만요.”

진하가 그 말과 함께 팁으로 5만 원짜리를 6장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던 포주가 안색을 피며 재빠르게 사진 두 장을 찾아 진하에게 보여주었다.

‘아니야.’

포주가 내민 두 명의 여성 모두 진하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시간선이 달라 이름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자희라는 이름은 가명이었으니까.

‘하아……. 이건 보여주기 싫었는데.’

진하가 안쪽 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협회에 등록되어 있던 이신혜의 얼굴이었다. 보여주는 것 자체가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것만큼 빠르게 찾는 방법도 없었다. 어찌 됐든 둘은 서로 닮았으니까.

“이 여자랑 닮은 여자 있어요? 여기가 아니면 근처에서 본 적 없어요?”

“일단 저희 가게에는 닮은 애가 없습니다. 다른 곳이라…….”

잠시 고민하던 포주가 이내 얼굴을 환하게 피며 말했다.

“아, 옆 옆집 가게에 이 사람과 닮은 애 있던 거 같은데요?”

“옆 옆집? 거기가 어딘데요?”

“근데 흠…… 잠시만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포주가 전화를 걸었다.

“야, 거기 주희라는 애 있지 않았었어? 그 검은 생머리에 예쁘장하게 생긴 애. 어, 어. 그치? 내가 기억한 게 맞지? 어. 고맙다.”

전화를 끝낸 포주가 진하를 보며 말했다.

“그 애는 며칠 전에 죽었습니다.”

“죽어요?”

“예, 며칠 전에 화재가 났었거든요. 그때 죽은 걸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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