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으음…….”
뒷목에 통증을 느끼며 깨어나는 진하. 그는 깨어나자마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일어나셨어요?”
깨어난 진하를 보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신지하가 빙긋 웃으며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뭐긴 뭐예요. 납치된 거지.”
신지하의 말에 진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납치된 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어째서 이신혜가 신지하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지를 묻는 거였다.
진하의 눈길을 깨달은 신지하가 킥킥거리며 이신혜를 가리켰다.
“아, 얘요? 저도 놀라긴 했어요. 설마 이렇게 쉽게 사람을 믿을 줄은 몰랐거든요.”
“신혜가 배신이라…….”
“아, 진짜 걸작이었다니까요. 저도 설마 설마 했는데 이렇게 잘 통할 줄은 몰랐어요.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신지하의 비아냥거림에 진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순진한 구석이라…….’
순진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이신혜를 믿은 것뿐. 그리고 진하는 아직도 이신혜를 믿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 이유는 동생 때문이겠지.
‘신혜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동생이니까.’
신후 그룹은 의약 쪽으로도 꽤 유명한 곳이었다. 동생을 미끼로 이신혜를 협박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래서 뭘 어쩌려는 거지?”
“오, 당당하시네요?”
“납치한 건 내가 필요해서겠지. 그리고 그 역겨운 존댓말 좀 그만하지?”
진하의 담담한 말에 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에게는 진하가 무척이나 필요했다,
“존댓말 해 줘도 뭐라 하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아티팩트, 그리고 헌터들을 성장시키는 비법.”
“뭐? 성장?”
진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신지하를 바라봤다. 아티팩트야 이해가 됐지만 헌터들의 성장이라니…….
“시치미 때도 소용없어. 이미 다 확인 끝났으니까. 네 곁에 있던 헌터들만 유독 다들 성장이 빠르더라고, 등급 한, 두 개쯤은 얼마 되지 않아 넘어버리고.”
“그래서 그 성장비법을 내놓으란 건가?”
“그래, 아마도 아티팩트겠지? 솔직히 처음에는 널 죽이려 했는데 그래서는 내 손해가 심하더라고 그래서 일단 가져올 수 있는 건 모두 가져가려고.”
신지하의 말에 진하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자식, 완전히 헛다리를 짚어도 잘못짚고 있었다.
진하 주변의 헌터들의 성장이 빠른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원래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이기수부터 시작해서 하준수의 팀원들까지, 대부분 원래 유명한 헌터였거나 S급을 찍었던 헌터였다.
그런 헌터들을 모아서 진하가 한 일은 그냥 미래에 그들이 해결할 고민 같은 걸 약간 도와줬을 뿐이다. 즉, 그들이 성장이 빠른 것은 진하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생각할 줄이야.’
거기다가 아티팩트도 그리 쓸 만한 게 거의 남지 않았다. 남은 아티팩트 역시 아예 쓸모가 없진 않지만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을 만한 건 없었다.
“미안해서 어떡하나. 네가 그리도 원하는 건 이미 없는데 말이야.”
“큭,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한번 보마.”
신지하는 그 말과 함께 일어났다.
“고문하고 빼낼 수 있는 건 모두 빼네.”
그가 나가고 홀로 남은 진하와 이신혜, 진하는 무표정하게 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동생 때문이지?”
순간 흠칫하는 그녀, 진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았다.
“협박받은 거라면 내가 도와줄게. 협회에서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
“나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야. 그냥 가만히만 있어 주면 돼.”
진하는 그 말과 함께 원격 구매창을 열었다. 어차피 이런 결박따위, 원격 구매로 삼각자만 사도 충분히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전기로 그냥 내 상황만 말하면 되지.’
어차피 적들은 자신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지금 진하는 거의 반 불사, 한번에만 죽지 않기만 하면 됐기에 매우 유리했다.
‘원격 구…….’
푸욱!
“큭…….”
진하는 자신의 어깨를 찌른 이신혜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바로 베어 버릴 거니까.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 말해 주지.”
뒤로 물러난 그녀는 왼손에 찬 팔찌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변하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긴 생머리는 은발로 변해 갔고, 그녀의 얼굴은 진하가 아는 은발의 헌터 모습으로 변해 갔다.
“…….”
그녀가 변하는 모습을 본 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신혜가 은발의 헌터일 리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회귀 전에 자신과 던전을 돌다가 죽었다. 만약 그녀가 진짜 A급 헌터라면 그런 던전에서 죽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떤 점이 그렇게 충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다 너의 착각이라고 말해 주지.”
“어째서…… 그럼 던전에서 죽은 건 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진하를 보며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진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과거에도 A급 헌터였다고? 그럼 나한테 보여줬던 모습은 뭐였지? 애초에 왜 죽은 거지?’
온갖 생각들이 진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그녀와 회귀 전의 그녀는 실력도, 성격도, 상황도 전혀 매치 되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간단하게 묻지 아티팩트를 쓰는 방법은?”
“이거 거짓말이지?”
“다시 묻겠다. 아티팩트를 쓰는 방법은 뭐지? 그리고 헌터들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대화, 이신혜는 계속해서 진하에게 질문했고,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진하는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후…… 고문 후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중간에 말을 마치 그녀가 단검을 빼 들었다.
* * *
“없습니다.”
조직원의 보고를 들은 송하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병원 그 어디에도 진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젠장,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미리 생각하지 못한 그녀의 잘못이 컸다. 그냥 암살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방식을 사용할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설마 진하에 대해 착각할 줄이야.
‘설마 그렇게 보일 거라고는 몰랐어.’
어설프게 습격을 여러 번 했을 때 바로 깨달았어야 했다. 지금까지 벌인 기행이 제삼자의 눈에는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지, 그리고 그걸 실행한 진하의 능력과 아티팩트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송하나나 이기수같이 동료들은 이미 진하의 아티팩트가 거의 다 떨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그저 크게 성장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는 것도.
그렇기에 권력의 중추로서 진하에 대한 가치는 생각했을지언정 진하라는 사람이 가진 아티팩트나 헌터를 성장시킨다는 측면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디지? 어디로 간 거지?”
페널티에 의해 문방구로 이동된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방금 연락 온 조직원들의 말로는 문방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랬다. 그렇다는 건 현재 인식 불가 상태라는 건데 만약 안에 진하가 있었다면 애초에 협회나 이기수에게 전화를 했을 게 분명했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적들이 착각하는 동안에는 살아 있겠지만 진하가 빈털터리인 걸 알게 되면 바로 죽일 게 분명했다. 빠르게 진하를 찾는 게 중요했다.
끼악!
그때, 그녀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끼악!
“모태빠!”
그러자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상처투성이인 주작, 주작은 송하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녀에게 내려갔다.
펑!
지상에 착륙하자마자 병아리로 변해 버리는 주작, 송하나는 그런 주작을 안아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하의 소환수는 A~S랭크 사이의 소환수였다. S급 헌터가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삐약!
송하나에게 안긴 모태빠가 그녀의 손을 콕콕 찔렀다. 그녀는 그 모습에 모태빠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걸 알아챘다.
“혹시 진하가 어딨는지 알아?”
삑!
고개를 가로젓는 모태빠.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바꿨다.
“혹시 진하가 납치됐니?”
삐약!
끄덕여지는 고개, 송하나는 그때부터 YES 또는 NO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대략적 사실을 알아낸 송하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범위가 넓은데?”
중간까지 따라간 주작의 행동 범위를 확인한다고 해도 범위가 너무 넓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없었다. 지금이야 회유나 협박 정도겠지만 아마 얼마 되지 않아 정신계 능력자까지 동원할 게 뻔했다.
“당장 송준하한테 내가 말한 곳으로 협회원 풀라고 해. 그리고 이기수한테 혹시 도시 전체에 전기를 끊으면 진하를 탐지할 수 있는지도 물어봐.”
“네.”
송하나의 명령을 받은 조직원이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송하나는 이빨을 깨물었다.
‘방법이 없어.’
저번처럼 진하의 아티팩트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정보 길드와 협회의 힘을 이용해 찾아야 했는데 그걸 실행하기엔 너무나 인력이 부족했다.
‘이걸 노린 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유가 어쩌면 이걸지도 몰랐다. 인력이 부족하지 않게 된다면 분명 빠른 시간 안에 진하를 찾을 거라는 걸 상대도 알고 있을 테니까.
‘생각해 내라. 생각해…….’
빠르게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진하에게 큰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 * *
“흐음…… 말할 생각 없나 보네?”
취조실로 돌아온 신지하는 피투성이가 된 진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기야 이 정도에 말한다면 권력의 중추가 되지도 못했겠지.
“근데 왜 이래? 치료하면서 고문한 거 아니야?”
“치료액이 안 듣습니다. 그래서 고문도 중간에 하다 멈췄습니다.”
신지하의 질문에 이신혜가 대답했다. 그 말에 신지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치료액까지 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물리적으로 그를 고문할 방법이 없었다.
“쯧, 백치로 만드는 건 싫었는데 말이야.”
정신계를 사용하는 방법은 그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제적인 개입이 들어가는 정신계 능력은 실패할 확률도 있었고, 자세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으니까.
“일단 정신계 능력자 사용해.”
며칠간 두고 보면서 회유할까 싶었지만 벌써부터 협회와 정보 길드가 수색을 시작하는 걸 확인했다.
당장은 이곳이 들킬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정보 빼내다가 맛 갔다 싶으면 그냥 죽여.”
진하의 가장 큰 가치는 어디까지나 아티팩트와 헌터를 성장시키는 방법이었다. 인질로서의 가치도 상당히 쓸만하긴 했지만 죽이는 것보단 덜했다.
‘거기다 뭘 꺼낼지 알 수가 없어.’
만약 여기서 진하가 살아나간다면 무슨 짓을 꾸밀지 몰랐다. 또 어떤 이상한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뒤통수를 칠지 알 수도 없었고.
‘특히 그 언론을 조작하는 아티팩트는 위험하지.’
협회가 당했던 꼴을 그대로 당하느니 차라리 그냥 죽이는 게 나았다.
“24시간 안에 끝내.”
협회와 정보 길드에서 그들을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야 40시간이었다. 넉넉잡아 그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명령을 내린 신지하가 나가고 이신혜는 묵묵히 정신계 능력자가 오길 기다리면서 진하를 감시했다.
잠시 후,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진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이신혜를 바라봤다.
‘무슨 삶을 살아온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