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스르륵.
눈이 떠지고 보이는 하얀 천장, 진하는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하고 그걸 막아낸 뒤에…….
‘신혜!’
“크윽…….”
몸을 일으키려던 진하는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드르륵.
“어? 환자분.”
마침, 들어오던 간호사가 의식을 차린 진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빠르게 의사를 호출했다. 간호사의 호출에 다급히 달려온 의사는 진하를 살펴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정신이 드시죠?”
“네, 들려요”
“후, 다행히 정신 차리셨네요.”
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하는 그런 의사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 지난 거죠? 습격자들은요?”
“습격자라면…… 아, 낮의 일 말이군요.”
진하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은 의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일은 끔찍했으니까.
“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지는 반나절 정도 됐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분을 공격했던 분들은 모두 죽었고요.”
“그게 무슨…….”
“그 자리에서 모두 제압했는데 입안에 있던 독약을 먹고 죽더군요. 후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어요.”
“저 혹시 그때 있었던 사람들은 다 무사한가요?”
“아, 예. 제가 알기로는 자결한 사람 외에는 모두 크게 다친 사람은 없던 거로 기억해요.”
의사의 말에 진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 추가 습격은 없었던 듯했다. 그리고 이신혜 또한 멀쩡한 듯했고.
‘그나저나 찝찝하네.’
습격을 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뭔가 찝찝했다. 분명 생각보다 치밀하게 준비했고 2중에 걸쳐 준비한 걸 생각하면 미끼는 아니었다.
‘근데 은발의 헌터가 없어.’
신후 그룹의 가장 강력한 패 중 하나인 그녀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자신이라면 그녀를 이용했을 텐데, 이번 습격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진하가 자리를 피했던 첫 번째 습격 장소에서 나타났을 수도 있지만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기에 아직 뭔가를 판단하기엔 일렀다.
“저기……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생각에 잠겨있는 진하를 보며 의사가 말을 꺼냈다. 진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지?
“예, 말씀하세요”
“신 간호사는 잠깐 나가 있게.”
“네, 선생님.”
간호사가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의사는 곧바로 진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의사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진하가 당황했다. 밑도 끝도 없이 사과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
“협회장의 명령으로 김진하 환자분과 하예진 환자분의 상태를 최우선적으로 검사했습니다.”
의사의 말에 진하는 뭔가 싸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강한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김진하 헌터는 완치가 불가능한 몸이 되었고, 하예진 환자분은 혼수상태에서 못 벗어날 것 같습니다.”
“네? 어째서요?”
진하가 완치가 불가능한 몸이라는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었을 목숨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하예진이 깨어나지 못 한다니…….
“차례대로 설명해 드리자면 현재 진하 씨의 몸은 저희 의료진이 건들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몸이 붕괴와 회복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어 건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붕괴와 회복이요?”
“네, 상태창에 써 있는 신체 붕괴와 생명력 공유, 두 가지 상태가 환자분의 몸을 부수고 또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그건 알겠어요. 그 부분은 넘어가고 하예진이 왜 못 깨어난다는 거죠?”
진하의 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거였다.
“하예진 환자 분은…… 현재 어떠한 이상으로 인해 혼수상태가 된 게 아니라 스킬의 페널티로 혼수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건 스킬을 취소…….”
말을 하던 진하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스킬로 인한 페널티라면 스킬을 취소시킨다면 그녀가 깨어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네, 스킬을 취소하는 순간 김진하 환자분이 죽습니다.”
“잠깐만요. 그럼 제가 원하면 취소가 가능하다는 거죠?”
“말했다시피 김진하 환자 분의…….”
“내 목숨 따위는 됐으니까. 취소해 줘요. 스킬 취소 가능하죠?”
하지만 진하의 말과 달리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진하는 의사의 고갯짓에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에 스킬 무효화 능력자 없나요? 아니면 등급이 낮아서 그런가요? 그럼 제가 협회에 연락해서…….”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면요?”
“스킬을 취소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미 A급 무효화 능력자가 가능성을 확인하고 갔습니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입니다. 본인이 원해서 취소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정신계 능력자는요? 꿈을 통해서 접속 가능하죠? 제가 설득해서 취소시킬게요.”
진하의 말에 의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진하가 생각한 방법을 의사가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 역시 검사를 마치자마자 모든 가능성을 찾아보고 확인해 보았다.
“정신 자체가 침범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제가 환자분의 완치나 하예진 환자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건 모든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 말씀드린 겁니다.”
“아니, 잠깐만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현대의학에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죄송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그 말과 함께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진하는 그런 의사를 두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완치가 불가능이라니…….’
차라리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예진이 깨어나지 못 한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자살, 자살은요?”
진하가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의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 번에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꿰뚫리지 않는 이상 진하 씨는 절대로 죽지 않는 반 불사 상태가 됐어요. 그리고 솔직히 그런 식으로 스킬을 취소시킨다면 어떻게 될지는 저희도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이대로 평생 살라고요?”
“……수명도 저희가 예상하는 바로는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겨우 10년입니다.”
이제는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10년간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것도 남의 생명에 기대서 기생충처럼 살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아뇨, 됐어요. 그런 말 듣고자 한 게 아니니까요.”
진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마음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지만 억지로 버텨냈다. 이대로 무너져서는 죽도 밥도 안되니까.
“죄송한데, 혼자 있고 싶…….”
[가용시간이 끝났습니다. 페널티가 시행됩니다.]
그 순간 갑자기 사라지는 진하, 의사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진하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가, 간호사!”
의사의 다급한 외침에 문이 드르륵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의사의 당황한 모습에 의아해하다가 사라진 진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빠, 빨리 경찰한테 연락해! 환자가…….”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멍해지는 의사의 눈, 그런 의사를 보면 간호사는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보고드립니다. 목표 대상 사라졌습니다. 예상 포인트에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간단하게 전화를 마친 간호사는 곧이어 의사에게 다가갔다.
“자, 너는 이제부터 방금 전에 있던 기억을 모조리 없애 버린다. 알겠지?”
“네…….”
“환자는 지금 위중한 상태이고 너는 모든 사람의 병실 출입을 금지시킨다. 그리고 오로지 너만 병실에 20분 단위로 들어와서 가만히 있다가 다시 나간다.”
“예, 알겠습니다.”
멍하니 간호사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 간호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음? 신 간호사 자네 거기서 뭐 하나?”
“네? 저야 선생님 따라왔죠.”
간호사의 말에 아차하는 표정을 짓는 의사. 그는 곧바로 진하가 있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아, 환자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왔었지? 흠……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구먼.”
“그렇죠. 원래 몸 상태가 안 좋기도 했고요.”
“흠, 이 환자는 절대 안정 취해야 하니까. 면회 금지시키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하게. 아, 밖에 경호원들도 마찬가지네.”
“네.”
그 말과 함께 의사는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빠르게 간호사가 뒤쫓았다.
* * *
의사에게 말하던 진하는 순식간에 변하는 시야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본 후 아차 싶었다.
“맞다, 페널티.”
잊고 있었던 페널티가 작동했었다. 깜빡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발동할 줄이야…….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겠네.”
진하는 안전하게 병원으로 가기 위해 송준하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온건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괜히 전화를 걸어 정보가 새어 나가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몰래 돌아가는 게 더 나았다.
“하아…….”
한숨을 내쉰 진하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문방구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잠금장치를 바꿔서 다행이네.”
예전에 한번 멋대로 돌아온 이후에 자물쇠에서 다른 것으로 바꿨는데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물쇠였으면 또 잘라내야 했으니까.
“모태빠.”
삐약!
진하는 원격 배송을 통해 주작을 소환했다. 역시 안전하게 가는 데에는 주작만한 게 없었다.
“변신해. 도착지점은 저번에 간 송실 병원.”
삐약!
피잉―챙!
그 순간 진하를 향해 날아온 암기, 진하는 문방구를 나오며 챙긴 삼각자를 날려 날아온 암기를 쳐냈다.
“이런 미친…….”
진하는 자신의 주위로 나타난 암살자들을 보며 혀를 찼다. 자신이 병원에서 사라진 지 2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인원이라니…….
“여기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페널티로 인해 문방구로 되돌아간 것은 기껏해야 2번 정도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것까지 예상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뭐 상관없나?”
이미 병아리에서 주작으로 변한 모태빠였다. 적당히 견제하면서 허공으로 도망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도망가지 않는 걸 추천하지.”
그때, 한 남자가 진하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게도 진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바로 허공으로 치솟으려고 했으나 남자의 뒤에 있는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마. 우리도 보호하는 협회원들을 처리하고 데려오는데 꽤 많은 손실이 났으니까.”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축 늘어져 있는 이신혜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쓰러져 있는 이신혜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꽤 안 좋은 상태였다.
공격으로 인해 찢어진 옷에 베어진 상처들, 그리고 그로 인해 전신을 물들인 피까지…….
“걱정 마, 치명적인 상태는 아니니까. 너만 조용히 따라와 주면 놓아주겠다.”
“내가 뭘 믿고?”
“그럼 어떻게 할 거지?”
남자의 말에 진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놔준다면 따라가도록 하지.”
“무얼 믿고?”
“모태빠.”
진하의 말에 잠시 안절부절 못 하는 주작, 하지만 진하는 그런 주작을 지긋이 쳐다보았고 이내 주작은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이러면 바로 도망은 못 가겠지? 대신 너희가 허튼짓을 하는 순간 여기로 불덩이가 쏟아질 거야.”
“건네줘라.”
“치료액도 내놔.”
이신혜를 들고 있던 암살자 중 한 명이 진하에게 다가가 그녀와 치료액을 하나 넘겼다.
“하아, 미안해.”
진하는 기절해있는 이신혜에게 치료액을 뿌리고 먹인 뒤 문방구 문을 열었다.
‘될까?’
이신혜를 문방구 안쪽으로 들어선 진하가 뒤쪽을 곁눈질했다. 현재 문방구 입구에 있는 적은 한 명, 인식 불가와 함께 삼각자로 처리 후 문을 닫기만 하면 됐다.
“인식 불가 모드.”
그러자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문방구, 진하는 갑자기 사라진 문방구에 암살자들이 당황하는 사이 문방구 안에 있던 암살자에게 삼각자를 날렸다.
채쟁, 챙!
암살자가 뒤로 물러나며 삼각자를 쳐냈다. 그 모습에 진하가 미소 지었다. 죽이진 못 했지만 밖으로 내쫓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일단 인식 불가 상태가 되면 아무리 똑바로 들어오려 해도 들어올 수 없게 되니까.
“됐다.”
진하는 쾌재를 부르며 문을 잠그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누워있던 이신혜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 진하의 뒷목을 쳤다.
털썩.
그대로 기절하는 진하, 이신혜는 그런 진하를 보며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타깃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