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밖이다.”
게이트를 나온 한 헌터가 나지막이 말했다. 묘한 기쁨이 섞인 소리. 확실히 그의 말대로 게이트와 다르게 맑은 햇빛이 그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르륵, 그르륵!
“A급 사체 자르실 수 있는 분!”
“야 이 멍청아! 무너진 건물 들추기 전에 유령종 있는지 확인하랬지!”
밖으로 나온 게이트의 모습은 완전히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각종 몬스터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이를 치우기 위해 헌터들과 장비들이 총동원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전모를 쓴 송준하가 공략대 가장 앞에 있던 이기수에게 말했다.
“밖은 모조리 끝났나요?”
“네, 여러분이 올라오는 동안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해 놨어요. 지금은 그 뒤처리 중이죠.”
“게이트 안 몬스터들은 거의 없어요. 폭주로 나간 덕에 12층부터 1층까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하지만 역시겠죠?”
“역시죠.”
이기수의 말에 송준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이대로 게이트 안쪽이 깨끗했으면 좋겠지만 아마 일주일 이내로 다시 몬스터들로 가득 찰 게 분명했다.
미래를 본 진하가 그런 말을 했었고, 유럽 게이트 역시 그런 식으로 다시 리셋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진하 씨는요?”
“저쪽에 있어요.”
이기수가 뒤쪽에 있는 진하를 가리켰다. 거동조차 불편한 진하는 들것에 실려 게이트를 나오고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요.”
다가와서 말을 건넨 송준하의 말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봐도 자신의 몰골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바로 병원으로 가시죠. 미리 차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앞으로도 같이 싸울 동료를 위한 건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여러분에 비해 한 게 없잖아요.”
감사함을 표하는 송준하. 진하는 그런 그를 보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까와는 다른 쓴 미소를…….
‘앞으로 같이 싸울 사람이라…….’
아직 누구에게도 진하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진하의 상세가 심각하다고만 알 뿐 그가 헌터로서 복귀하지 못한다고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하는 그 사실을 바로 잡지 않았다. 언젠가 말하기는 해야 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완전히 전투에서 빠져야 한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었고.
“자, 가시죠.”
송준하의 안내에 따라 공략에서 돌아온 헌터들이 각기 찢어지기 시작했다. 멀쩡한 헌터들은 휴식을 위해 마련된 장소로, 다친 헌터들은 이송 차량으로 나누어졌다.
“진하야 난 좀 더 돌아보다 갈게.”
모든 헌터들이 찢어지는 와중에 이기수에게 진하가 말했다. 진하는 너도 쉬라고 말하려다 주변을 둘러보는 이기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하다 와.”
“그냥 뭐, 도와줄 거 없나 둘러보는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진하의 예상대로라면 아마도 최소 몇 시간 이상 사람들이 낑낑대며 일하는 걸 도와주다 올 게 뻔했다.
“난 간다.”
이기수가 떠나고 들것에 실려 이송 차량으로 향하는 진하는 떠들썩한 게이트를 살펴보았다.
분명히 이 싸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회귀 전의 상황과 지금은 상황은 천차만별이었다.
사람들의 피와 시체로 가득했던 전장은 대다수가 몬스터의 피로 바뀌었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시체를 치우던 사람들은 이제 밝은 얼굴로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잘 막았네.’
통계가 정확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사망자 역시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미래를 바꿨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있을 게이트 폭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때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니까.
“환자분 약간 덜컥거릴 거예요.”
덜컥!
진하가 조심스럽게 차량에 마련된 침대 위에 얹어졌다. 진하를 침대에 얹은 직원들은 들것을 해체해 회수하고는 내려갔다.
그리고 출발하는 차량,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진하는 내리지 않고 남아서 보호자석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그래서 뭔 일인데.”
진하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송하나 님의 전언입니다. 신후 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송 중에 보호 인력을 배치했습니다.”
“보호 인력?”
“네. 이송하는 차량 주변으로 호위 차량을 붙였습니다. A급 1명, B급 헌터 12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외의 보고는?”
“항암 그룹을 바쳐 길드와 대기업 모두 조용하며, 블랙 길드의 경우 정보 길드의 힘으로 현재 통합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직원으로 위장한 조직원의 말에 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날을 반면교사로 삼은 건지 송하나의 일 처리가 많이 빡빡해진 게 보였다.
과거였으면 적어도 블랙 길드는 놔뒀을 텐데 말이야…….
“혹시 하예진 쪽에도 경호 인력이 붙었나?”
“네, 마찬가지로 같은 구성으로 경호 인력을 배치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모든 걸 확인한 진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물을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콰앙! 끼이익!
앞쪽에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하를 태우던 차량이 극심하게 흔들렸다.
[전방에서 습격, 대응에 나선다.]
[후방에서 다수의 헌터 출현. 마찬가지로 대응에 들어간다.]
콰앙! 끼익, 끼이익!
무전기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진하는 조직원에게 말했다.
“핸드폰 내놔.”
다급하게 핸드폰을 받은 진하는 곧바로 송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송준하가 전화를 받자마자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습격입니다. 하예진 쪽 상황 확인해 주세요.”
[하예진 씨 쪽은 멀쩡합니다. 방금 송하나 씨한테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지금 바로 진하 씨 쪽으로 지원이 갈 거예요. 이기수 씨도 방금 출발하셨고요.]
“아뇨, 지원 돌려서 하예진 쪽으로 가세요. 그쪽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협회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병원이 어디죠?”
[송실 병원입니다.]
“전 알아서 갈 테니 걱정 마세요. 하예진에게 지원 집중해 주세요.”
전화를 마친 진하는 원격 구매창을 불러 배송 버튼을 눌렀다.
[배송 가능 목록: 삼각자, 돋보기, 끈끈이, 주작…….]
곧바로 주작을 누른 진하, 곧이어 진하의 손 위로 병아리 모습을 한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삐약?
지렁이를 문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병아리를 보며 진하가 말했다.
“뒤쪽 문 열어.”
“네.”
진하의 명령에 빠르게 문을 열어젖히는 조직원, 문을 열어젖히자 진하가 있는 곳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는 습격자들이 보였다.
“변신해.”
그 말과 함께 진하는 병아리를 냅다 밖으로 던졌다. 밖으로 날아가며 잠시 당황하던 병아리는 이내 작은 빛과 함께 커다래지기 시작했다.
끼악!
완전히 변한 주작은 곧바로 입에 화염을 머금어 습격자들에게 내뱉었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차량, 그러자 그곳에서 헌터로 보이는 인원들이 튀어나와 진하가 있는 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잉! 핑!
그 순간 진하의 차량에서 튀어나온 삼각자가 빠르게 습격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습격자들은 날아온 삼각자를 빠르게 막아 냈지만, 그로 인해 뒤로 밀려나 진하의 차량에 탑승하지 못하고 그대로 차도 위로 떨어졌다.
“모태빠.”
끼악!
진하의 부름에 대답한 주작이 차량 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나 먼저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이대로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호위하는 헌터들의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괜찮지만 언제 앞이 가로막혀 차량이 멈출지도 몰랐다. 그러니 차라리 주작을 이용해 혼자 가는 게 나았다.
찌이익―
삼각자와 자신의 손을 엮은 붕대를 입으로 찢은 진하는 곧바로 가까이 붙은 주작을 향해 삼각자를 날렸다.
휘이익! 으득!
타악.
“크으…….”
삼각자에 실려 주작 위로 무사히 올라간 진하는 고통 어린 어깨를 만지며 주작에게 명령했다.
“속도는 천천히, 고도는 꽤 높이 방향은 북서로.”
끼악!
주작은 진하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고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주작 위에 올라탄 진하를 공격하기 위해 총격을 가하거나 화살을 날리는 게 보였지만 모두 주작에게 가로막혔다.
완전히 고도가 높아지고 이제는 적과도 멀어진 진하는 그대로 주작 위로 털썩 드러누웠다.
“미치겠군.”
이때쯤을 노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바로 습격을 가하는 신후 그룹을 생각하며 진하는 혀를 찼다.
이번에야 다행히 넘어갔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힘을 잃은 상태니까.
‘아무래도 한동안 문방구에 박혀있어야겠어.’
적어도 신후 그룹이 처리되기 전까지는 문방구에 박혀 안전하게 있는 게 나을 듯했다.
* * *
끼악!
“고생했어.”
간단하게 주작을 쓰다듬어 준 진하는 병아리로 변한 주작을 앞주머니에 넣었다. 주작이 착륙한 헬기장 주변으로는 어느새 도착한 협회의 직원들이 빠르게 진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누우시죠.”
뒤쪽에 있는 들것을 가리키는 의사의 말에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 그냥 자신의 발로 내려가는 게 나았다.
“그냥 가죠.”
진하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병실로 가시면 바로 검사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24시간 내내 협회원들이 지키고 서 있을 테니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원을 일주일 안으로 끝낼 순 없나요?”
진하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대중이지만 지금 진하의 상태는 최악 그 자체였다. 사실 처음에 들것에 눕는 게 싫다고 했을 때도 억지로 눕힐까 할 정도로 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자세히 검사해 봐야겠지만 아마 최소 운신 가능까지 1달 이상 잡아야 할 겁니다.”
“운신이라면 지금도 되는데…….”
진하의 말에 의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왠지 거기서 한마디 더 하면 안 될 것 같아 진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 진하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진하는 의아함에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이신혜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이신혜를 진하를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달려갔다. 경호원들은 그런 이신혜를 다급히 막아섰다.
“저 사람은 괜찮아요. 비키셔도 돼요.”
진하의 말에 옆으로 물러나는 경호원들, 진하는 자신 앞으로 다가온 이신혜에게 말했다.
“여긴 무슨 일이야?”
“너 괜찮아? 몸이 왜 이래?”
걱정하면서 진하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이신혜, 진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러는 너야말로 괜찮아?”
“나는 뭐, 그래봤자 전투지에서 후방에 있었는걸? 봐봐 멀쩡하잖아.”
“근데 여기에는 왜 있는 거야?”
“나는 괜찮은데 동료들이 다쳤거든.”
이신혜는 뒤쪽에 있는 몇 사람을 가리켰다. 이신혜의 언급에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마주 숙여 인사한 진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커피숍에서 말했던 동료들과는 인상착의가 상당히 달랐으니까.
“아, 걔네들 아냐. 이번에 게이트에서 만나서 같이 싸운 사람들이야.”
“아하, 어쩐지…….”
고개를 끄덕인 진하는 의사를 쳐다보았다. 진하의 의도를 알아챈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들 모두 최고급 치료를 받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어?”
의사의 말에 이신혜가 벙찐 얼굴로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는 그런 이신혜를 보며 웃어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와, 진짜, 너무 고마워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말문이 막힌 이신혜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료들 진하는 그들에게 손사래 쳤다.
“아뇨, 별거 아닙니다.”
“아뇨, 그래도 정말 감사한걸요.”
“맞아요. 아무리 최고급 치료라니…….”
“아, 신혜야 이분 방해하지 말고 이제 가자.”
동료들은 그 말과 함께 이신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제서야 진하의 몸 상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낸 이신혜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나도 이만 가 볼게!”
그 말과 함께 돌아서는 이신혜, 그 순간.
―블라인드
―윈드 커터
―매직 미사일
진하와 이신혜를 향해 다가왔던 동료들이 스킬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