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난…… 죽은 건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감각, 멍한 기분,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만 하면서 영원을 보내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렇게 지내다가 환생하던가.
‘그래도 잘했어.’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또 한 번의 기회를 통해 모든 걸 되돌릴 기회를 얻었다.
자신만큼 모든 걸 해본 행운아는 아마도 없을 듯했다.
‘이제 환생인가? 아님 천국인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진하는 점점 옅어지는 회색 배경을 느끼며 생각했다. 무엇이 됐든 이제 모든 것과 이별이구나…….
화악!
“진하야!”
번쩍 떠진 시야 사이로 보이는 이기수, 잠시 눈을 껌뻑인 진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로드’
혹시나 하고 불러 봤지만, 대답 없는 로드. 그걸 보아 확실히 그는 죽은 게 맞았다.
‘하지만 백 퍼센트 죽는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살아날 수 없을 거라 했던 로드였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이 살아 있는 걸까…….
“무슨…… 큭…….”
“아직 몸이 정상아냐. 좀 쉬어.”
그러고 보니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막사 안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게이…… 트 폭주는?”
“멈췄어.”
간단하게 대답하는 이기수. 그의 말에 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일단 쉬고 있어. 난 나갔다 올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나가는 이기수를 보며 진하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좋은 방향으로 끝났다고.
‘아니, 좋은 방향은 아닌가?’
은은하게 고통이 느껴지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깨어난 지 시간이 좀 지나니까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모든 능력을 잃었다.
‘능력으로 따지면 E? F?’
각성 자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직 상태 창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각성자 특유의 감각은 살아 있는 걸 보면 각성 자체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저 감각을 제외한 모든 게 완전한 일반인, 아니, 그 이하였다. 아무리 회복을 잘해도 그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을 거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면에선 완벽하게 끝이네.’
살아남았지만 이제 전투를 할 수 없다. 친구들과 같이 싸울 수 없으며,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없다.
그게 너무나 아쉽고 슬펐다.
‘근데 예진이는 안 오나?’
자신이 깨어났다면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올 하예진이었다. 이기수가 알렸다면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직 알리지 않은 건가?’
진하는 의아함을 느끼며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홀리포션 아나를 움켜잡았다. 절반 정도 쓰여 있는 게 방금 전까지 진하에게 들이부었던 것 같았다.
꿀꺽, 꿀꺽
남아있는 홀리포션을 모두 들이켠 진하는 슬며시 몸을 일으켜 보았다.
“크윽!”
여전히 강한 고통과 좋지 않은 몸 상태, 어째서 홀리포션을 더 이상 쓰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홀리포션은 그저 통증 완화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창”
<이름: 김진하
능력: 없음.
칭호: 문방구 알바
스킬: 과거의 후회-사용 불가.
상태: 과도한 신체 붕괴, 생명력 공유 중.>
역시나 능력을 잃었다. 능력이 ‘없음’이라니…… 뭔가 엄청 씁쓸했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하다고 슬퍼했었는데.’
누구나 가지는 능력이라 항상 다른 능력이 되길 빌었었는데 없어진 지금은 그거라도 다시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몰려왔다.
‘그리고…… 칭호는 그래도 있고, 스킬은 사용 불가. 역시 상태가 말이 아니네. 근데 생명력 공유?’
처음 보는 상태였다. 말뜻 그대로 보면 생명력을 공유 중이라는 건데 이런 스킬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던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 덕에 죽음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나가 볼까…….”
진하는 통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움직여서는 안 될 몸이긴 했지만 적어도 어떻게 됐는지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폭주가 멈춘 게이트 안의 상황을 직접 보고 싶기도 했고, 이번 상황에서 누가 누가 죽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펄럭
막사의 천막을 걷고 나오자 삼삼오오 모닥불에 모여 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옅은 막으로 씌워져 있는 것으로 모아 아티팩트로 보호막을 친 듯했다.
하긴, 게이트가 폭주 상태만 아니라면 몬스터들이 보호막을 치고 갈 리는 없으니 이게 좋은 방법이긴 했다.
‘이것만 봐도 확실히 게이트 폭주가 멈춘 것 같긴 한데…….’
주변 배경을 보아하니 6층 이상인 것 같은데 확실히 가득했던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어? 진하야!”
그때 모닥불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휘젠이 진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진하는 뛰어오는 그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살아 있네.’
팔 한쪽이 날아가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휘젠의 모습에 진하가 미소를 지었다. 지인이 살아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즐거운 일이니까.
“몸은 괜찮냐?”
“그럭저럭, 그나저나 너도 살았네.”
“후후, 불사신 휘젠 님을 얕보지 말라고!”
한쪽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말하는 휘젠을 보며 진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놈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는 경우가 없었다.
“여기 몇 층이야?”
“5층이야.”
“그래? 그나저나 막사 분위기도 그렇고 확실히 모든 게 끝나기는 했구나.”
“그치, 아마 역사에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적은 희생으로 게이트 폭주를 끝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예진이는?”
진하의 물음에 휘젠이 잠시 멈칫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다쳤어?”
진하의 기억은 마지막에 하예진을 옆으로 민 것까지만 남아있었다. 어쩌면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아니, 다친 건 아니고…….”
살짝 기어들어 가는 휘젠의 목소리, 진하는 휘젠을 닦달했다.
“제대로 말해, 어설프게 둘러대지 말고.”
“아니, 상태는 멀쩡해. 다만…… 못 일어날 뿐이지.”
“못 일어난다니?”
휘젠을 말 대신 한쪽 막사를 가리켰다. 진하는 느린 걸음으로 휘젠이 가리킨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서 휘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진하의 뒤를 뒤따랐다.
펄럭.
막사를 열자 보이는 공간, 그곳에 몇몇 여자 헌터들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진하는 그들을 주욱 훑다가 한쪽에 누워있는 하예진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멀쩡해.’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잘못된 게 없었다. 하지만 고른 숨을 내쉴 뿐 하예진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너를 살리려다 그렇게 된 거야.”
“나를?”
진하의 물음에 휘젠이 진하가 가슴이 꿰뚫린 이후의 상황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 * *
“안 돼!”
하예진은 미동도 없는 진하를 보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오늘처럼 이렇게, 이렇게 힘이 부족한 자신이 원망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분명 스킬을 사용하고 모든 걸 쏟아붓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하의 심장은 재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띠링!
<알 수 없는 힘의 개입으로 스킬을 각성합니다.>
<신체의 제한이 풀립니다.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 생명력 공유가 생성되었습니다.>
<생명력 공유: 자신의 생명력을 누군가와 나누고 공유한다. 단, 그만큼 자신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그 순간 하예진의 눈을 가득 채우는 메시지 창, 메시지를 읽고 순식간에 무슨 스킬을 각성했는지 깨달은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스킬을 진하에게 사용했다.
“생명력 공유!”
<생명력 공유가 사용되었습니다. 대상: 김진하.>
<대상의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주의: 시전자의 생명력 60%가 회복을 위해 사용됩니다.>
<주의: 시전자의 생명력 20%가 대상의 생명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주의: 90%의 확률로 시전자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주의: 실패 확률: 88%입니다. 시전 후 사용된 생명력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수히 떠오르는 주의 메시지. 하지만 하예진은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실행.”
아무 망설임 없이 스킬을 마저 실행하는 하예진, 곧이어 옅은 녹색 빛이 진하를 감싸기 시작했다.
<스킬: 생명력 공유가 대상자에게 안착합니다.>
<스킬 시전이 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스킬 시전이 성공하였습니다.>
<시전자가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됐다!’
스킬이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 하예진은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다시 심장이 재생되고 있는 진하를 보며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 * *
“생명력 공유라는 스킬을 사용하더니 그때부터 계속 이상태야.”
“상태 확인 아티팩트는?”
“혼수상태라고만 떠 있어. 자세히 확인하려면 병원에서 탐지계열 능력자한테 보여야 할 것 같아.”
휘젠의 말에 진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하예진이 혼수상태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왜…….’
살아나 봤자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몸이었다. 심지어 헌터로서의 미래도 하예진이 훨씬 밝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하예진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펄럭.
“음…… 여기 있었구나.”
막사 안으로 들어온 이기수는 아무 말 없이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의 상태도 좋지 않고 지금 당장 말한다고 좋을 것도 아니라 미루고 있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알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게 안 좋은 몸으로 깨어나자마자 행동하고 하예진을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가자. 여기 계속 있으면 민폐니까.”
진하가 몸을 돌려 막사를 나갔다. 이기수와 휘젠은 뒤따라가며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괜찮아?”
“어, 괜찮아.”
의외로 담담한 진하의 목소리. 이기수는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의 진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게 아니면 됐어. 혼수상태는 병원 가서 치료하면 되는 거고.”
“그치, 금방 깨어날 거야. 요즘에 불치병은 없으니까.”
“그치, 그치!”
진하의 말에 맞장구치는 두 사람, 진하는 그 둘을 보며 말했다.
“너희 둘도 일 봐. 나도 이제 쉬어야지.”
“알겠어.”
“필요한 게 있거나 뭔 일 있으면 바로 말해.”
둘이 떠나가고 혼자 남은 진하는 조용히 자신이 있던 막사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막사, 아마도 이기수가 배려해서 혼자만 쓸 수 있게 만든 듯했다.
하기야, 진하가 이슬라를 거의 죽인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후우…….”
진하는 아주 조심스레 몸을 간이침대 위로 눕혔다. 그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회복에만 전념하자. 회복에만.’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아무리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낫는다 해도 자신에게 생명력을 나누어 줬다.
어느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랬다는데 괜찮을까. 그저 더 이상 걱정하지 못하도록 괜찮은 척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진이가 준 몸이야. 빠르게 회복해야 해.’
진하의 몸은 하예진의 생명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무리해서는 안 됐다. 내 몸이 아니니까. 더욱더 신경 써서 행동해야 했다.
그러니 슬픔도, 안타까움도 분함도 모두 통제해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오로지 회복만 할 수 있게 행동해야 했다. 그게 진하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진하는 게이트를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