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피해 보고해 줘요.”
“사망자 10명, 중상자 30명, 경상자 20명입니다.”
팀버의 보고에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킨다고 지켰는데 그럼에도 사망자가 나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옆에 있던 잭이 그런 이기수를 위로해 줬다. 숫자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아무리 잭과 팀버, 이기수가 빠르게 몬스터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9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를 일순간 죽일 수는 없는 거였다.
거기다가 그 9마리의 몬스터 모두 S급 중 최상위에 속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쿠르릉―
그때 문이 닫힌 공동 안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잭은 울려 퍼지는 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싸우는 건가?”
약 2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물론 최대 1시간까지 잡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잭의 입장에서는 진하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아티팩트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S급 게이트 보스였다. 심지어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만 봐도 시안보다 수십 배 이상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보스를 이제 겨우 S급에 들어선 진하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 철수할 준비 하자.”
“아니, 그렇게는 못 해.”
“진하는 못 이겨. 아니, 설사 이긴다고 하더라도 다시 살아난 보스는 처리 못 해.”
잭의 말에 이기수가 입을 달싹였다가 닫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기운이 애초에 진하와 이기수가 상정했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잭과 이기수, 팀버 셋만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기수는 후퇴할 준비를 할 수 없었다. 그러는 것은 진하를 버린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설사 보스를 잡지 못하더라도 진하를 끌고 도망쳐야 했다.
“다들 돌입할 준비를 한다.”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기수를 대신해 하준수가 사람들을 모았다. 그 모습에 잭은 한숨을 내쉬며 전투 준비를 했다.
어찌 됐든 리더는 이기수였다. 어떠한 명령이든 게이트 내에서는 리더의 말을 따르는 게 철칙이었으니까.
‘물론 빚진 느낌도 있고.’
어찌 됐든 진하는 은인이었다. 특히, 그가 아니었다면 잭의 부모님은 핵폭탄에 맞고 죽었을 예정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싫기는 했지만, 은혜는 갚아야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 없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도망친다.’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지만 정도라는 게 있었다. 아무리 잭이라고 한들 은혜를 갚기 위해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없다면 이곳에 있는 한국 헌터들을 모두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갈 생각이었다.
콰앙!
삐익―!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이기수가 쥐고 있던 신호기에서 소리가 울렸다.
“들어간다!”
그 말과 함께 빠르게 돌입하는 이기수 그는 문짝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며 공동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따라 들어간 잭은 보이는 풍경에 얼굴을 굳혔다.
“하하하하!”
멀쩡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이슬라와 기둥에 처박혀 죽어가는 진하, 잭은 빠르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뒤따라오던 팀버가 뒤돌려던 그의 등을 밀며 말했다.
“약해졌습니다.”
팀버의 말에 잭은 그제야 이슬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여전히 강하기는 했지만 처음 밖에서 느꼈던 그런 압도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로 해낸 거야?”
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기둥에 박혀있는 진하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못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혼자서는 힘들지 몰라도 팀버, 그리고 이기수와 함께 싸운다면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진하야!”
이기수가 벽에 박혀있는 진하를 향해 달려갔다. 잭은 그런 이기수를 보며 혀를 찼다. 몬스터가 바로 앞에 있는데 한눈을 팔다니…….
―아이스 월
잭이 빠르게 발을 구르며 이기수를 노리려던 이슬라에게 수십 개의 거대한 창을 쏘아냈다.
챙! 채쟁! 차앙!
순식간에 깨지는 얼음 창들, 그제서야 상황을 인식한 이기수가 몸을 틀어 이슬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팀버, 서포트 해!”
“네!”
잭 역시 곧바로 이슬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살짝 늦게 진입한 하준수가 보스와 싸우는 이기수와 잭, 팀버를 보며 빠르게 외쳤다.
“서포트 계열은 모두 보스한테 붙어! 엘리사! 너는 복사한 잭의 스킬을 이용해서 서포트하고! 그리고 회복계열!”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하준수의 말을 끊으며 하예진이 소리쳤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진하의 곁에 도착한 하예진은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를 향해 스킬을 퍼부었다.
―리저렉션
그녀의 스킬에 살짝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들, 하지만 그 상처들은 다시금 순식간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뭐 해요! 붙어요!”
하예진의 말에 치료 스킬이 있는 모든 헌터들이 진하에게 홀리포션과 스킬을 퍼부었다.
치이익―
그제서야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하는 진하의 상처, 그 모습에 하예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푸화악!
그 순간 다시 크게 터지는 진하의 상처, 진하의 피를 뒤집어쓴 하예진은 이를 악물고 스킬을 더욱 강하게 사용했다.
[소용없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진하의 상태는 완전히 그릇이 깨진 상태였다. 속에서부터 세포 단위로 무너져가는 몸에 아무리 치료 스킬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회복될 가능성은 없었다.
실제로 처음엔 어느 정도 치료가 되는 듯 보였던 상처들도 이제는 더 크게 벌어지는 걸 막는 게 한계였다.
“제발, 제발!”
[거참, 안 된다니까.]
로드는 절박하게 소리치는 하예진을 보며 말했다. 물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가능성은 없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같은 뱀파이어 또는 진하뿐이니까.
[거참. 마지막이 찝찝하구먼. 안 그래?]
그러면서 뒤돌아보는 로드의 뒤쪽에는 진하가 하예진을 보고 있었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이런 경험도 신기하네요.’
진하는 로드에 의해 절반쯤 분리된 정신 상태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의 손, 발 감각이 모두 느껴짐에도 반쯤 뒤로 물러나서 스스로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야지. 안 그래?]
‘그건 그렇죠. 근데 왜 저 바로 안 죽어요?’
진하의 물음에 로드가 자신을 가리켰다.
[나 때문에. 네가 빨아들였던 생명력을 이용해서 잠깐 네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어.]
‘왜요?’
[아무리 못나고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도 마지막은 봐줘야지.]
그렇게 말하는 로드의 눈은 수세에 몰리고 있는 이슬라를 향해 있었다. 진하는 그런 로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이해 못 할 애정이네요. 도발하고 죽이려 할 때는 언제고 마지막을 지켜본다라…….’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일족이란 건 그런 주박에 묶여 있는 존재거든.]
‘뭐, 덕분에 저야 다른 사람들보고 갈 수 있어 좋긴 하네요. 어, 이제 끝나가네요.’
진하는 이기수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이슬라를 쳐다보았다. 저 상태라면 얼마 되지 않아 곧 최후를 맞이할 것 같았다.
“크아악!”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날뛰는 이슬라. 진하는 그런 이슬라를 보며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 오만하고 자존감 넘치는 이슬라가 그 어떤 대공보다 추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모두 저런 거라네. 자존감이 극심해지면 자만감이 되는 거고, 오만은 곧 타락을 불러일으키는 거니까. 애초에 폭식과 결합한 것 자체가 문제였지.]
‘그러고 보니까 폭식이 정확히 뭐예요?’
[나와 비슷한 존재라고 보면 되네. 다만 순수 악이지. 저놈이 합쳐진 건 그 폭식의 찌꺼기야.]
‘그럼 다른 보스들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진하의 물음에 로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존재들을 뭐라 하는지 아나? 7개의 죄악이라 부른다네.]
‘아, 저도 들어봤어요.’
[그렇겠지. 인간 세상 어디에나 널린 게 7개의 죄악이니까. 아무튼 이 죄악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거든. 그래서 같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네.]
‘하지만 관리자라는 신적 존재가 준거잖아요.’
[아무리 관리자라 해도 7개의 죄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순 없어. 그리고 자꾸 신, 신 거리는 데 관리자는 신이 아냐. 나보다도 끗발 떨어지는 관리자들이 수두룩한데 뭔 신이야.]
‘아, 네…… 아무튼 그럼 저런 건 더 이상 우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 그리고 애초에 이미 인과율을 많이 사용했어. 한동안은 제대로 못 움직일 거야.]
‘인과율은 또 뭔데요?’
[아, 거 그런 게 있어! 곧 죽을 놈이 별걸 다 궁금해하네.]
로드의 신경질에 진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더 묻는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끝났군.]
때마침 이슬라의 목이 베어지는 게 보였다. 뭔가 허무한 죽음이었다.
“크륵, 크.!#%@@”
그 순간 이슬라의 잘린 목에서 뒤틀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인간[email protected]##인간! #[email protected]$인간!]
[이런, 관리자네.]
‘네?’
로드의 말에 진하가 이슬라의 목을 가리켰다.
‘그럼 지금 저 소리를 내고 있는 게 관리자라는 거예요?’
[응. 화 많이 났나 보네. 직접 빙의한 거 보니까. 아무래도 공격하겠는데?]
‘누구를요!’
로드가 진하를 가리켰다.
[너를. 이기수라는 인간도 자격의 씨앗을 가지고는 있지만 일단 그걸 개화한 게 너거든? 그러니 그게 가장 잘 느껴지는 너를 공격하겠지?]
‘그럼 어떡해요!’
[뭐, 어때, 어차피 죽을 거 가슴에 구멍 한 번 더 뚫린다고 문제 될 건 없잖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이 잘린 몸통이 빠르게 진하를 향해 쏘아졌다. 가로막는 헌터들을 모조리 상처 입히며 다가오는 모습에 진하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그의 바로 앞에 있는 건 하예진, 이대로라면 그녀가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 진하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보았다.
꿈틀.
다행히 아직 아예 못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뭐 해? 움직이면 붕괴가 더 빨라진다.]
‘닥쳐요!’
온 힘을 집중해서 무너지고 있는 몸에 힘을 주는 진하, 팔 한쪽을 겨우 움직인 진하는 재빠르게 자신의 치료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하예진을 밀었다.
툭!
“어?”
진하의 손길에 의해 옆으로 밀리는 하예진, 그리고 쓰러지는 그녀가 앉아 있었던 공간으로 창백한 손길 하나가 파고들었다.
푸욱!
깔끔하게 진하의 심장을 관통하는 이슬라의 손, 그 모습을 목격한 하예진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안 돼!”
하예진은 이미 축 늘어진 이슬라의 사체를 밀어내고 진하의 심장을 향해 스킬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미 뻥 뚫려버린 그의 가슴 안쪽의 심장은 재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미친놈, 만족했냐?]
진하의 정신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드는 마지막 공격 때문에 완전히 정신을 잃은 진하에게 물었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로드는 마치 대답이라도 들은 듯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네가 만족하면 된 거지.]
그와 동시에 그의 뒤쪽으로 작게 열리기 시작하는 포탈, 로드는 넓어지는 포탈을 바라보며 쓰러져 있는 진하에게 인사했다.
[덕분에 즐거웠다, 인간.]
그 말과 함께 포탈로 들어서는 로드.
퉁―
[응?]
로드는 들어가 지지 않는 포탈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야! 본체! 문 열어!]
[…….]
[뭐? 장난치냐? 이미 죽은 놈을 내가 어떻게 살려. 그리고 저놈 마지막에 관리자한테 맞아서 건들면 티 난다고!]
[…….]
[아씨, 알았어. 잠깐만. 지가 본체라고 명령질은.]
구시렁거리며 주변을 살펴보던 로드는 눈물을 흘리며 진하를 치료하는 하예진을 바라보았다.
[흠, 저 아가씨면 되겠네. 어이 아가씨. 그놈 죽고 사는 건 당신한테 달렸으니까. 알아서 잘해 봐.]
따악!
하예진을 향해 손을 튕긴 로드는 다시 포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튕기지 않고 스르륵 들어가지는 로드의 신형.
로드는 포탈 안으로 몸을 밀어 넣다가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진하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영원히 안녕이다. 진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