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개굴!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는 화염 개구리. 진하는 단검을 뽑아 잠시 날을 살핀 후 그대로 단검을 땅바닥에 떨궜다.
“흠, 무기가 필요한데.”
1층에서 던전으로 탈출하면서 던진 환도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기수에게 선물 받아 쓸 때는 ‘그냥 쓸 만하네’ 정도였는데 막상 없는 상태가 되니 속이 쓰라렸다.
“단검은 못 쓰겠고.”
확실히 보조 무장이라 그런지 보급용 단검은 쉽게 날이 상했다. 아무리 잠입이라지만 이렇게 주 무장이 없는 상태로는 바로 밖으로 나가기는 좀 그랬다.
“하아…… 결국 이걸 사야 되나?”
진하는 시스템 창 원격 구매에 올라와 있는 물품을 바라봤다.
<장난감 칼: 남자의 로망! 이것 하나만 있으면 인싸가 될 수 있다! 매우 단단하다.>
별 특색 없는 모양의 칼. 포인트도 설명에 비하면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막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사실 아티팩트 중 이렇게 단순하고 직관적인 설명이 있는 경우는 매우 환호받는 타입이었다.
왜냐하면, 효과가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설명이 직관적인 아티팩트들은 일단 다른 아티팩트처럼 다른 효능이 많거나 특이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아티팩트인 만큼 단순한 설명으로 나타낸 설명에 모든 걸 쏟아붓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단단하겠지.’
아마도 이 장난감 칼은 매우 단단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좋긴 한데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디자인이 너무 구려.’
이걸 들고 다니는 걸 생각하면 너무나 창피했다. 장난감 칼을 든 성인이라니, 얼마나 시선이 쏠릴지 안 봐도 뻔했다. 물론, 환도 모양의 검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사지 않고 다른 도를 구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 전투를 위해서는 결국은 써야 할 때가 오고 말았다. 진하는 떨리는 손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원격으로 배송되어 손에 떨어지는 장난감 칼 하나.
“진짜 장난감 칼이네.”
만져지는 재질을 보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가벼운 것도 싫었고, 칼이라는 점도 싫었고, 디자인도 싫었고, 무엇보다 칼날이 서 있지도 않았다.
물론 아티팩트라 진짜 아예 무기로서 쓰지 못할 건 아니겠지만, 그건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기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걸로 무라도 썰어야 되나.”
가볍게 칼날을 만져 본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진짜 칼날이 없었다. 보통은 아티팩트니 마법적인 칼날이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그 말인즉슨 최악의 경우 둔기로 쓰거나 직접 칼날을 갈아야 된다는 소리였다. 진하는 혹시나 해서 화염 개구리의 사체를 슬쩍 그어 보았다.
서걱!
아주 날카롭게 잘리는 사체, 그 모습에 진하는 극도의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마법 칼날이 존재했었다. 만졌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거로 보아 오직 진하 외의 존재를 공격할 때만 나타나는 칼날인 듯했다.
“미친, 잘못 샀다고 후회할 뻔했네.”
다시 한번 칼날을 만져 본 후 진하가 장난감 칼을 허리춤 뒤쪽으로 채웠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묶어 둔 망토를 꺼냈다.
“사용 3시간에 충전 3시간이라…….”
충전이 다 될 때까지 보스룸 앞에서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2시간이라는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안 그래도 혼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느려지다간 혼자 먼저 간 의미가 없이 공략대에 따라잡힐지도 몰랐다.
“이렇게 포인트 낭비하면 안 되는데…….”
한숨을 내쉰 진하가 빨간색 망토를 하나 더 원격 구매했다.
<슈퍼맨의 망토: 빨간색이 인상적인 망토, 야호! 이것만 있으면 나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처음에는 게이트를 내려갈 계획을 세울 때는 병아리를 데리고 내려와 타고 갈까 했었다. 하지만 1층부터 6층까지는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동굴 형태였다.
거기다 저번처럼 하늘에서 공격해 오는 몬스터를 요격할 S급 헌터들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었는데 이런 식이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진하는 슈퍼맨 망토를 두른 뒤 그 위로 마법 망토를 뒤집어썼다. 그러자 투명해지는 망토, 완벽하게 투명해진 것을 확인한 진하는 아주 천천히 포탈을 타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
그그극!
던전 밖을 나오자 바로 보이는 은색 몸체, 그 모습에 진하는 순간 속으로 움찔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망토는 제대로 작동하는 건지 아이언 골렘은 진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진하가 골렘의 뒤쪽으로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 발소리조차 아예 안 들릴 정도로 아주 천천히 골렘의 뒤로 걸어간 진하는 계단을 따라 아주 조심히 2층 통로를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통로를 내려간 진하는 아이언 골렘에게서 완전히 멀어졌음을 확인한 뒤에야 걸음 속도를 올렸다.
물론 앞에서 몬스터가 올라올 수 있으니 경계를 하긴 했지만 운이 좋은 건지 2층에 도착할 때까지 앞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2층에 도착한 진하는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1층과는 달리 꽤 많은 몬스터들이 있긴 했지만 A급은 아니었다. 아마 통로를 내려가면서 몬스터가 올라오지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인 듯했다.
‘역시 섞여 있었네.’
진하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여기도 고위 몬스터가 있었다면 아무리 하늘을 날더라도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을 테니까.
‘가자.’
투명 망토의 시간은 아직 2시간 반이나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날아서 가더라도 꽤 많은 거리를 나아갈 수 있을 듯했다. 마법 망토의 끝을 발목과 벨트에 각각 묶어 고정한 진하가 한 손을 위로 뻗었다.
슈욱!
‘왁!’
순식간에 치솟는 진하. 순간 진하는 균형을 잃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미친 왜 이리 어려워?’
드라마에서는 꽤 쉽게 날았었는데 막상 날아 보니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움직이기는커녕 허공에 떠오르는 것조차 유지가 힘들었다.
‘오케이, 이건 이렇게 하면 허공에 정지하고, 앞으로 나가는 속도는 팔에 힘준 정도고…….’
다행히 허공에서 오락가락하며 비행 방법을 빠르게 습득한 진하는 온전하게 허공에 몸을 체공시킬 수 있었다. 안정되게 체공할 수 있게 된 진하는 바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제 2시간 20분밖에 남지 않았었다. 빠르게 출발할 필요성이 있었다. 안 그래도 망토 자체가 완전히 모든 걸 가려 주는 게 아니라서 연습하는 내내 불안하던 참이었다.
그나마 몬스터들이 위를 쳐다보지 않아서 들키지 않았던 거지 앞으로도 계속 들키지 않을 보장은 없었다.
‘가자’
빠르게 판단을 마친 진하가 3층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게이트 6층 마지막 통로.
3시간씩 날고, 휴식을 취하며 날아온 끝에 다행히 진하는 원래 상정했던 2일이라는 시간보다 하루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일단 몬스터는 없고.’
묘하게 몬스터가 없었다. 보통 층을 내려가면 확실하게 몬스터의 모습이 보여야 했는데 내려가는 동안 몬스터가 게이트 폭주로 인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유럽 제2 게이트를 공략할 때와 비슷한 정도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다 어디 있는 거지?’
뱀파이어를 제외하고 유럽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백만은 가뿐히 넘었다. 그런데 현재 이곳의 몬스터는 이미 엄청난 양의 몬스터를 내뱉은 후의 유럽 게이트와 비슷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잘 풀리는 건 좋았지만 너무 잘 풀려서 기분이 나빴다. 게이트 안에서 이렇게 일이 잘 풀린다는 건 어딘가 꼬인 부분이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딱히 원인도 모르고 해결책도 없기에 진하는 일단 내려가기로 했다. 결국 여기서 안 보인다는 건 아래층에는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사실 없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없는 게 더 좋았다. 그럴수록 헌터들의 피해는 더욱 적어지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진하는 아주 천천히 7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걸어 내려갔다. 통로가 컸기에 여기도 다른 층처럼 날아서 내려갈까 싶기도 했지만 공중 몬스터도 그렇고, 7층의 원래 난이도를 생각하면 걷는 게 나은 것 같았다.
‘너무 조용해.’
심각하게 조용했다. 분명 다른 층에는 그래도 층을 올라가는 몬스터들이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그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이언 골렘이 가로막고 있는 덕분에 1층으로 올라가기 싫어하던 몬스터가 내뿜는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진하는 점차 찜찜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통로를 내려갔다. 그리고 완전히 통로를 내려간 뒤에 보이는 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메말라 노랗게 물든 풀, 간간이 보이는 나무는 삐쩍 말라 있었다.
“하늘이 왜 이래.”
메마른 풀이나 나무는 상관없었다. 그거야 회귀 전에도 진하가 겪었던 모습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하늘은 달랐다. 7층의 하늘은 원래 폭주 전이든 후이든 항상 푸른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먹구름에 잠겨 있었다.
“뱀파이어…….”
그놈들밖에 없었다. 이렇게 먹구름이 가득한 경우는 종족 자체가 구름을 몰고 다니는 뱀파이어가 수작 부린 경우뿐이었다.
뱀파이어들이 만드는 구름. 그것도 규모를 보면 꽤 많은 뱀파이어들이 있거나 꽤 고위 뱀파이어가 있는 듯했다.
“왜 갑자기 범위를 넓힌 거지?”
회귀 전과 같을 거라는 생각 자체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범위를 넓힌다고 뭔가 바뀌는 게 아니었으니까.
‘설마 공략대가 온다는 걸 아는 건가?’
진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7층까지 이런 걸 보면 애초에 게이트 폭주가 시작될 때부터 했다는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략대가 온다는 이유로 세력을 넓혔다고 생각하기엔 심하게 과장된 생각이었다.
“흠…….”
거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점 하나, 몬스터가 전혀 안 보였다. 강화계열인 진하의 시력은 현재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리 멀리 봐도 몬스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땅처럼.
“죽은 땅?”
진하가 바로 아래에 있는 흙을 만져 보았다.
푸스스…….
쉽게 바스러지는 흙. 생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예 생기가 없어.”
회귀 전에 가 본 12층에 있는 뱀파이어의 땅조차 이러지는 않았다. 물론 이 공간 자체가 뚝 떼어 놓은 듯 이상한 곳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생기가 없지는 않았다.
척박할지언정 항상 일정하게 생기를 유지하던 곳이 게이트였으니까.
지끈―
“으…….”
진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게이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조금씩 생기는 두통. 다행히 강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식이면 좋을 것도 없었다.
“하아, 이거 혼자서는 결론 못 내리겠는데.”
회귀 전과 너무 달라져 버려서 진하가 적용할 만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알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면 돌아가서 다 같이 내려오는 게 맞았지만 혼자서 빠르게 내려가야 하는 진하의 입장에선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어이, 잠깐 일어나 보죠?”
진하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심하다면서요. 할 거 없으면 나 좀 도와주세요.”
[…….]
“진짜 그럴 거예요? 도와주기로 했으면 좀 협조적이면 안 돼요?”
[하아…… 알겠네. 왜 부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