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왜 들어와!”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벤시와 스펙터를 보며 진하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분명 진하는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진하가 알기로 몬스터들은 포탈을 타고 던전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설마 게이트라서?!’
순식간에 회귀 전 상식과의 차이점을 찾아낸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설마 게이트라서 양방향 출입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이나 회귀 후에도 폭주 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건 항상 아래로만 향하는 공략대 형식이어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확인하려고 생각도 안 했다. 들어서면 보이는 건 몬스터뿐이라 어차피 죽이고 죽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었는데 누가 게이트 입구로 몬스터가 들어오는지 판단하겠는가. 들어와서 그들을 공격해도 그냥 앞으로 나아가며 뒤쪽으로 밀린 몬스터라고 판단하지.
스걱!
진하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낫을 피하며 곧바로 품 안에 있던 삼각자들을 날렸다. 아까처럼 밖이었으면 연결이 끊길까 봐 사용하지 못했겠지만 이미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상황이라 이제는 상관없었다.
꺄악!
비명 소리와 함께 벤시 한 마리가 머리가 뚫린 채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역시 유령 종답게 물리적인 공격을 제외하고 마법이나 아티팩트 공격에는 방어력이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좀 꺼져!”
진하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스펙터들을 연신 삼각자들로 없앴다. 하지만 그 수가 수인지라 아무리 삼각자로 없애고 공격을 피해 멀리 도망가려 해도 몬스터들은 진하를 끈질기게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도망치며 1층을 빙빙 돌아 겨우 2층으로 가는 통로 근처까지 도착한 진하는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골렘을 한 마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언 골렘!’
통로 앞을 가로막은 아이언 골렘은 진하를 보면서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진하는 이내 아이언 골렘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저놈은 안 비켜.’
지키는 것에 특화된 A급 몬스터였다. 애초에 지능이 떨어지지만 대신 그만큼 판단 자체가 AI와 비슷해서 실수나 어그로를 끈다는 개념은 버려야 했다.
후웅!
진하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아이언 골렘이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그대로 벤다!’
진하는 몸을 살짝 비틀며 환도를 역수로 잡은 채 한 손으로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진하를 향해 떨어지는 아이언 골렘의 주먹.
카가각! 카가가가각!
거친 쇳소리와 함께 아이언 골렘의 팔에 기다란 선이 그어졌다. 진하는 뒤에서 손톱을 휘두르는 벤시를 삼각자로 처리함과 동시에 그대로 발을 박찼다.
그극!
아이언 골렘의 얼굴을 향해 뛰어오르자 곧바로 반대 손을 내뻗는 아이언 골렘. 진하는 허공에 뜬 상태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봤다.
‘3, 2, 1!’
속으로 세던 숫자가 끝남과 동시에 다가오는 주먹을 향해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진하.
카앙!
청명한 소리와 함께 검이 주먹을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진하의 어깨 근육에서 으드득 소리가 남과 동시에 진하의 몸이 아이언 골렘의 반대쪽 방향 대각선 위로 튕겨져 올랐다.
콰직!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튕겨지기 전 진하가 있던 자리로 내리꽂히는 사이클롭스의 주먹, 아이언 골렘의 주먹에 주먹이 으깨진 사이클롭스가 고통의 괴성을 질렀다.
그사이 뻗어진 팔 위로 잠시 착지한 진하는 곧바로 아이언 골렘의 핵이 있는 얼굴을 향해 환도를 내던졌다.
깡!
쨍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막은 아이언 골렘의 손에 막힌 환도, 하지만 어느새 발을 박찬 진하는 아이언 골렘의 골반 쪽을 향해 대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후웅!
양팔을 쓸 수 없게 되자 다급히 발을 휘두르는 아이언 골렘. 하지만 급하게 날린 발치기인 만큼 정확도가 떨어졌고, 어느새 꺼낸 단검을 이용해 살짝 비껴 맞으며 다시 한번 각도를 아래쪽으로 비튼 진하가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촤아악!
몸을 한 바퀴 굴리며 착지한 진하는 구르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감과 동시에 구석진 곳에 있는 포탈 안으로 몸을 쏙 넣었다.
그러자 잠시 검어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시야. 밝아지며 보이는 것은 게이트 통로가 아닌 어떤 동굴의 입구였다. 포탈 안을 굴러들어 온 진하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 미친, 뒤지는 줄 알았네.”
파우치에서 홀리 포션 하나를 꺼내 한 모금 마신 진하는 곧바로 통증이 일어났던 어깨에서 시원한 느낌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여길 또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진하는 동굴 내부를 살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회귀 후 처음으로 들어왔던 화염 개구리의 던전에 이런 식으로 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었다.
“하아, 1층부터 피곤하네.”
키르륵! 퍼퍽!
침입자를 감지하고 입구로 다가오는 고블린 두 마리의 머리에 사이좋게 단검을 던져 꽂아 넣은 진하는 갈색의 망토를 살펴보았다.
기능이 다 한 것인지 여전히 투명하지 않고 갈색을 유지하고 있는 망토, 곧바로 아티팩트 감정을 해 보았다.
<마법의 망토: 흉터를 가진 마법 소년이 애용하던 망토를 본떠 만들었다. 설정에 충실한 편, 장난을 치거나 숨을 때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습을 가리는 능력에 치중되어 있어 만능은 아닌 듯? 현재는 힘을 다해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
끝에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다. 다행히도 일회용은 아닌지 충전이 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 들어 있기에 그저 기척 차단이나 이런 쪽으로 완전하지 않다고 받아들였다. 실제로 딱히 제한 시간을 언급하는 문구도 없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험 삼아 써 본 뒤에 왔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어쩔 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망토의 성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야 계획에 맞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빠르게 올라온 거지?’
분명 아이언 골렘은 7층 게이트 보스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발견되긴 하지만 일단 최저층은 7층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게이트가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1층에 올라와 있었다.
이는 진하가 알고 있는 게이트 폭주의 진행 속도보다 매우 빠른 경우였다. 거기다 더욱 문제점은 실제로 나온 몬스터의 양이 그만큼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1층부터 7층까지의 몬스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괜히 제2 게이트 폭주 당시 600만 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죽은 게 아니었다.
물론 대비도 하지 못했고 거의 다 C, D 같은 저위 헌터들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5,600만 명의 헌터들 중에 600만 명이나 죽은 사건이었다.
즉,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많았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몬스터가 섞인 건가?’
게이트 폭주 이후부터는 몬스터들이 섞여 출연한다. 그전의 층에 따라 점차 강해지는 구조가 아닌 1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몬스터가 랭크가 섞인 채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진하가 알기로는 게이트 폭주가 끝난 뒤에나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1차 게이트 폭주를 막았던 진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많이 나타났다는 걸.
“잠깐만.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데?”
게이트 폭주가 일어나면 모든 던전과 게이트는 리셋이 된다. 즉, 게이트 폭주로 인해 그 많은 몬스터들이 죽고도 게이트 안에 생태계를 유지할 정도의 몬스터들이 넘쳐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그 몬스터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게이트 폭주가 넘쳐나는 몬스터의 역류든, 이슬라에 의해 트리거로 발동되는 게이트의 일시적인 해제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많은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왔냐는 거였다.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물론 신적인 존재도 존재하고 시스템이라는 게임적인 말도 안 되는 것도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게임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몬스터가 다른 차원을 넘어온 것이든, 악마가 만들어 낸 것이든 확실한 건 그것들도 생명에 가까운 존재고, 나름의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나타난다? 만약 그게 악마가 만들어 낸 거라 해도 그렇다면 인류는 어째서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걸까?
마치 게임 속의 NPC라도 된 양 그런 사실을 아예 잊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이거 어디서 겪었는데?’
게이트를 향해 잠입하면서 생각했던 잡생각들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오래됐다. 분명 어디선가 이런 일을 겪었었다.
진하는 점차 아파 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생각해 냈다. 분명 어딘가에서 이런 일을 겪었었다.
키륵, 키르륵.
진하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고민하는 사이 저 멀리서 고블린 한 마리가 진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 잡생각이 가득 차고 두통까지 점차 강해지는 상황에서 진하는 고블린이 다가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내. 분명 어디선가 겪었던 일이야.’
회귀 전은 아니었다. 이미 되짚어 봤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한편, 진하가 뿜어내는 기이한 분위기에 다가오던 고블린이 잠시 멈춰 서서 주춤, 주춤거렸다. 분명 본능이 인간을 죽이라고 시켰지만 그와 동시에 진하에게는 뭔가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고블린은 이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진하를 향해 다가갔다. 다만 달려드는 게 아니라 마치 겁이라도 먹듯 천천히 다가가는 고블린. 천천히 걸어가 어느새 머리를 감싼 진하의 근처로 도착한 고블린이 낡은 단검 하나를 덜덜 떨며 치켜들었다.
키익!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단검을 내리치는 고블린. 단검은 곧바로 진하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쿡!
세게 내리쳐진 단검이 진하의 머리에 박혔다. 하지만 피부를 뚫지 못하고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단검. 고블린은 그 모습에 놀라 다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콰악!
하지만 그 순간 고블린의 머리를 잡아채는 진하.
“생각났다.”
콰직!
손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박살 낸 진하는 어느새 깨끗해진 머릿속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났다. 두통도 완전히 사라진 진하는 피를 대충 옷에 닦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어려웠던 거지?”
진하가 겪었던 일은 회귀에 관한 것, 모든 사람들이 진하의 회귀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지도, 읽지도 못했다.
마치 게임 시스템에 막힌 행동처럼, 이는 분명 완전히 같진 않지만 현 인류가 몬스터나 시스템 창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잊고 있는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정말 간단한 건데 어째서 이렇게 생각해 내는 게 어려웠던 걸까?
진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다시 복잡해지는 머릿속,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진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입과 정보의 확인이었다. 이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진하는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하가 사라진 던전 입구.
“후우…….”
그곳에서 한 남자의 작은 한숨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