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지금 상황이 어떻죠?”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진하가 다급히 물었다. 미리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기수와 하준수, 송준하 중 송준하가 빠르게 상황을 전달했다.
“다행히 미리 안 덕에 헌터들은 대부분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위 몬스터부터 나오고 있어 미리 주둔시켜 둔 군대를 이용해 처리하고 있고요.”
“민간인 대피는요?”
“그것 역시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다.”
송준하의 말에 진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준비한 덕에 과거와는 달리 큰 피해 없이 게이트 폭주를 막아 내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이리 얼굴이 어두워요?”
상황은 꽤 나쁘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3명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그게…… 공략에 차질이 생길 것 같습니다.”
“네?”
“타국에서 S급 헌터의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이 왔어요.”
송준하의 말에 진하는 얼척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지원이 안 된단 말인가?
“지원을 안 해 준다고요?”
“지원을 안 해 주는 건 아닙니다. A급까지의 헌터는 제대로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다만 각국의 S급 헌터는 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요?”
“뭐긴 뭐겠어. 견제지.”
진하의 물음에 이기수가 대답했다. 그는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SS급을 가지고 있는 게 한국이야. 거기다 아직 S급 랭크만 못 받았지 스킬이 2개인 예비 S급들이 있는 건 너도 알지?”
“그런데?”
“그게 아니꼬운 거야. 한국의 국력이 커지는 게 싫은 거지.”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이를 갈았다. 고작 그딴 이유로 지원을 못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고작 그딴 이유로?”
“뭐, 예전부터 그래 왔으니까.”
“게이트 폭주는 남 일이 아닐 텐데?”
자칫 잘못했다간 유럽 때처럼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탈출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됐다간 당연하게도 피해를 보는 건 그 주위의 나라였다. 생각이 있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A급까지는 어느 정도 지원한다는 거야. 딱 유럽 때처럼 우리나라 헌터들이 적당히 죽을 때까지.”
“우리 입장에서는 게이트를 꼭 막아야 한다는 점을 이용한 거지요.”
이기수와 송준하의 말에 진하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그럼 유럽은? 유럽에는 얘기했어요?”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시간 먼저 터진 미국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S급은 거절했어요.”
“독일은?”
레이나의 성격상 분명 거절할 리 없었다. 분명 그쪽은 지원이 올 게 분명했다.
“잭이랑 S급을 한 명 보내겠대. 미안하지만 그게 최선이래. 너도 알다시피 독일은 현재 헌터들 숫자가 말이 아니잖아.”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고작 SS급 둘에 S급 한 명으로는 공략이 너무나 어려웠다.
‘거기다 이슬라의 특성은 두 개의 목숨이야.’
그렇다는 건 잭과 이기수가 온전하게 이슬라에게 붙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그 외 S급 몬스터를 상대할 헌터들이 없었다.
“미치겠네. 언론을 이용하면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언론에 호도해도 지원 자체는 오기 때문에 애매해요.”
송준하의 말에 진하는 답답함을 느꼈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지원 올 때까지 틀어막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개새끼들.’
회귀 전과 너무나 달라진 상황에 진하가 욕을 했다. 고작 견제 하나에 헌터들을 소모하다니…….
이래서는 다음 2차 게이트 폭주를 막아 내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방법이 없어요?”
진하의 물음에 세 명은 고개를 저었다. 진하가 오기 전까지 이미 한참이나 얘기를 나눴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헌터들은 소집시켰고, 혹시 몰라 배리어도 3중으로 쳐 뒀어요. 한동안은 군대와 헌터들로 거의 피해 없이 막아 낼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진하 씨 혹시 방법 없나요?”
“네?”
송준하의 물음에 진하가 되물었다. 세 명조차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판에 자신에게 답을 물어본들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너의 아티팩트나 미래에 대한 지식 중에 돌파할 방법이 없냐는 거다. 결국 우리가 아는 정보는 네가 말해 준 게 다니까. 혹시나 얘기하지 않았던 부분 중에 없냐는 소리다.”
“맞아. 그리고 혹시 비앙카 때의 그 아티팩트 사용 못 해?”
하준수와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 명이 그에게 뭘 바라는지는 알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미래의 지식 중에는 해결할 만한 지식이 없었으며 아티팩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쓸 만한 건 거의 다 썼어.’
사기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아티팩트는 거의 다 사용했다. 일부가 남아 있긴 했지만 그걸 이용한다 해도 공략 자체를 큰 피해 없이 마무리 짓기는 어려웠다.
진하의 표정을 읽은 세 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하조차 방법이 없으면 이대로 당해야 했으니까.
“잠깐만.”
진하는 세명에게 그 말을 한 뒤 근처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에 있던 일을 다시 상기해 냈다.
[작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웬만하면 게이트를 내려갈 때 혼자 행동하세요.]
‘왜 그런 말을 했지?’
그가 알기론 사서는 미래를 아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자였다. 그런 자가 진하에게 뭔가 도움을 줬다. 그리고 혼자 내려가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분명 해결은 된다는 소리였다. 아니, 그걸 떠나서 애초에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어떤 적을 상대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 내려가라 했어.’
원래 진하의 계획은 유럽 때와 같이 수많은 S급과 SS급들을 지원받아 내려가는 거였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계획이니까.
‘내가 혼자 내려가야 하는 이유가 뭐지?’
사서의 판단으로는 나중에 다 같이 내려가는 것보다 진하 혼자 내려가는 게 낫다고 판단을 했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그가 말했던 자격까지. 진하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방법이 없냐?”
점차 어두워지는 진하의 표정을 보며 이기수가 물었다. 진하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게 해결책인지는 모르기에 일단은 그리 대답했다.
“너 그 카드 아티팩트 중에 협회원들한테 썼던 거 같은 거 없어?”
“폭풍우?”
“어.”
“미안하지만 없어. 아니, 있긴 한데 100%도 아니고, 우리를 보호할 수단도 없어.”
이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겨우 2장이었다. 심지어 대형 공격이 가능한 카드만 있지, 천공의 요새같이 아군을 보호하는 카드는 없었다.
“젠장, 인천에서 그렇게 막 사용하는 게 아닌데.”
그때 사용했던 보호막 카드가 아쉬웠다. 그 카드만 있었어도, 나름 써먹을 만할 것 같았다.
‘어라? 잠깐만.’
순간 진하는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기억해 냈다. 그러고는 뭔가를 하나 깨달았다.
그가 혼자 내려가야 하는 이유까지는 몰랐지만 어쩌면 이 방법을 쓰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송준하 씨 다른 헌터들 지원 언제 와요?”
“약 이틀 뒤에 옵니다.”
“가용시간 창.”
진하가 문방구 가용시간 창을 열어 보았다.
<가용시간/체류시간= 18일/1분.>
“기수야, 만약 현재 인원으로 공략대를 꾸린다면 12층까지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아? 내가 대략적인 구조도를 그려 준다 치면.”
“넉넉잡고 12층까지 약 14일. 6층까지 2일, 나머지 12층까지 12일.”
“이것저것 생각하면 될 것도 같은데…….”
“뭐가?”
“지금부터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봐.”
진하는 세 사람을 모은 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전달했다. 잠자코 설명을 듣던 세 사람은 이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난 반대야.”
“나도 반대다.”
“너무 위험합니다.”
“아니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어.”
어쩌면 헌터들의 희생이 가장 적은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좋아.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 근데 혼자서 내려가는 건 절대로 반대야. 차라리 같이 내려가.”
“기각.”
“어째서?”
“이유는 말해 줬잖아.”
“그 존재 믿을 수 있나?”
하준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째서 그 악마인지 신일지도 모르는 존재를 믿고 행동해야 하지?”
“적어도 적은 아니야.”
일단 문방구 할머니랑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적이었다면 문방구에서 진하를 살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지만 적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존재였다.
“내가 죽으러 가는 게 아니잖아.”
“그게 함정일 수도 있어.”
“함정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어.”
심지어 과거처럼 무력하게 당할 수준도 아니었다. 지금 수준이라면 적어도 아무것도 없는 맨몸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버티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내가 아예 혼자 간대? 1시간 간격을 두고 들어가자는 거잖아.”
그저 진하가 먼저 앞서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11층에서 만나 12층에 1시간 정도 먼저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함정 같다고. 아무리 너라지만 11층까지 혼자 가는 건 좀 그래. 그리고 아무리 네 계획대로라도 1시간 먼저 들어가는 것도 별로고.”
“나도다. 그냥 같이 들어가는 게 어떤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니, 11층까지는 혼자 내려간다 해도 12층은 같이 들어가는 게 맞아요.”
하준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분명 맞는 말들이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 역시 확신이 없었다.
“다들 알잖아요.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어쩌면 같은 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거.”
“그렇다고 너를 희생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숙이고 들어가서 타국에 이익을 많이 주게 해 보겠습니다. 그게 나아요.”
“아니요.”
진하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애초에 이건 그를 희생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길드장, 이건 나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리고 송준하 씨 1차 게이트 폭주부터 그렇게 굽히고 들어가면 2차 때는 어떻게 할 거죠? 그렇다고 미래를 안다고 말한다고 그들이 믿어 줄 것 같아요?”
“그래도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적어도 죽는 건 아니잖아요. 계산해 봤는데 확실하게 가능한 방법이고요.”
“네가 부담을 많이 지니까 싫다는 거다.”
이기수가 이를 갈며 말했다. 사실 진하의 방법이 얼토당토않은 건 아니었다. 확실히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그 뭔지 모를 존재도 믿기 힘들었고, 이런 일을 한 명에게 지우는 것도 싫었다.
“이기수. 똑바로 생각해. 고작 한 사람한테 부담을 주는 거랑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랑 저울질하지 마.”
진하는 3명을 주욱 둘러보았다.
“이건 제 독단입니다. 불만 많은 거 아는데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에요. 물론 독일 쪽에서 응해야만 가능한 방법이지만 그쪽에서 응한다면 바로 실행합니다.”
* * *
3일 후, 게이트 최후 방어선.
“정지! 정지!”
경계 근무를 서던 일병이 다가오는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탑승자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통과! 뭐 해, 이 자식아!”
그 순간 병장이 빠르게 튀어나와 바리케이드를 치운 뒤 차량을 보냈다. 차량이 지나가고, 처음 차량을 정지시켰던 일병이 병장에게 물었다.
“저 차량 뭔데 그냥 통과시킵니까?”
“한국 협회장 차량.”
“그럼 바로 통과시키면 안 되지 않습니까?”
“너 아까 낮에 소대장 얘기 제대로 안 들었지?”
병장의 말에 일병이 입을 다물었다.
“후, 잘 좀 하자. 나 조용히 멀쩡히 살아 돌아가고 싶다.”
말년에 전쟁터로 끌려온 병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일이라곤 안전한 곳에서 민간인 출입만 통제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쟁터는 전쟁터였다.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굳이 높은 사람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문 닫아라.”
병장이 일병에게 말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 차량 안에서 저 멀리 바리케이드를 닫는 병사들을 보던 진하가 물었다.
“이렇게 바로 통과해도 돼요?”
“안 되죠, 전시상황인데. 안 그래도 도착하면 여기 지휘관한테 한마디 하려 합니다.”
“아뇨, 그건 넘어가죠. 뭐 왜 그런지 대충 이해는 되니까.”
군대를 다녀왔기에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아는 진하가 말렸지만 마찬가지로 이미 군대를 다녀온 송준하 또한 그 이유를 알기에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쯧, 불쌍하네.’
하필, 송준하에게 걸려 봉변을 당하게 된 두 병사의 명복을 빈 진하는 곧이어 차량이 점차 멈춰서는 걸 느끼며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막사에서 삼삼오오 등유 난로를 켜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헌터들이 보였다.
“지휘관은 만나시고 갈 겁니까?”
송준하의 질문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바로 출발하려고요. 전 여기서 내릴 테니까. 나머지는 잘 부탁드릴게요.”
“그런데 진짜 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