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88화 (88/202)

#088

곧이어 진하가 나가고 홀로 남은 하예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오늘은 새해고 진하의 말도 있어서 나름 재밌게 노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또 일이었다.

“이걸 뭐라 할 수도 없고…….”

진하가 가지고 있는 짐을 알기에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진하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기에 뭐라고 했다간 그건 투정이 되어 버리니까.

“가서 밥이나 준비하자.”

그래도 아마 밤에는 돌아올 것이다. 분위기도 보아하니 아주 긴급사태는 아닌 것 같았고, 저녁은 같이 못 먹어도 야식은 같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서운한 감정을 털어 낸 하예진은 곧바로 문방구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통삼겹살과 몇몇 야채들을 구매했다.

“오케이, 나머지는 배달로 시키자.”

사 먹는 것도 좋지만 새해인데 이왕이면 진하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었다. 배달도 좋지만 일하고 올 테니 그때까지 수육이라도 하면 좋을 듯싶었다. 배달 음식+집밥이면 나름 호화스러우니까.

“어라?”

드르륵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하예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다.

“어서 와. 좀 늦었네.”

그곳에는 송하나가 웃으면서 자리하고 있었다. 하예진은 그녀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그럴 거면 왜 불렀던 거야?”

“응? 너도 온 거야? 진하는?”

하예진의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되묻는 송하나. 하예진은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송하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데려갔잖아요.”

“내가? 언제?”

“30분 전에.”

“그런 적 없는데?”

송하나의 말에 하예진이 얼굴을 굳혔다. 송하나 역시 빠르게 상황을 눈치채고 물었다.

“난 부른 적 없어. 우리 길드원 중 누가 왔었지? 인상착의랑 이름 알아?”

“한 씨요.”

“뭐?! 아냐. 그럴 리 없잖아.”

하예진의 말에 송하나가 당황하며 재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건 핸드폰의 통화음은 끊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부른 거 아니에요? 당신 직속 부하잖아?”

“닥쳐 봐, 나도 이해 안 되니까.”

거친 말을 내뱉은 송하나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장 한의 위치 파악해. 그리고 길드원들 모조리 소집하고. 아, 그리고 길드랑 대기업들 현 동태도 바로 파악하고 보고해.”

송하나는 전화를 끊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한인가?’

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으로 모습을 꾸몄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싶었다.

‘어째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이라는 결론밖에 나지않았다. 현재 진하를 위협할 만한 단체는 없었다.

그나마 대기업이나 길드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들이 한을 흉내 낸다고 한들 진하까지 속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길드의 이인자인 한의 정보는 철저하게 말소시켜 놓은 상태여서 흉내를 내는 것 자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너 뭐 하는 거야?”

송하나가 진하의 방으로 들어가는 하예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 데다가 당장 길드로 가서 확인해서 시간이 모자랄 판에 딴짓이라니…….

“그렇게 찾다간 늦어.”

벌써 30분 넘게 시간이 지나간 상태였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벌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정보 길드에서 사람을 풀어 찾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띡! 띡! 띡! 띡! 띡! 철컥

진하의 방 안 구석에 있는 금고의 비번과 홍채를 인식시킨 하예진은 재빠르게 금고 안의 물품들을 뒤졌다.

‘분명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중요서류, 그리고 쓰고 남은 아티팩트는 안전하게 인챈트 된 금고에 보관하는 진하였다. 직접 연적은 없었지만 분명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분명 그것 또한 있을 게 분명했다.

“찾았다!”

일어선 그녀의 손에는 돋보기 하나가 들려있었다.

* * *

“흠…… 중요한 일이라 하지 않았어?”

차에서 내린 진하는 눈앞에 보이는 레스토랑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하가 알기론 송하나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이라니…….

“중요한 일 맞습니다. 이쪽으로.”

한이 무뚝뚝하게 손을 뻗어 안내했다. 진하는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일단 송하나를 보고 뭐라 해야 할 것 같아 그의 안내를 따라갔다.

들어간 레스토랑은 통으로 빌린 건지 정보 길드의 조직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레스토랑 안을 가득 메우는 고풍스러운 음악, 진하는 점차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한은 빠르게 진하를 안내한 뒤로 물러났다. 그가 안내한 테이블을 바라보는 진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 왜 당신이 여기 있어?”

“자리에 앉지 그러나.”

진하는 자신에게 자리를 권하는 송하나의 아버지를 보고 기가 찼다. 분명 그가 알기로 그녀의 아버지는 협회의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떡하니 앉아 있다니…….

“당신 혼수상태 아니었어? 아니, 그전에 이런 자리를 하나가 허락하던가?”

“송차석이라고 부르게.”

자리에 앉는 진하를 보며 송차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 말에 대답부터 하시지?”

“하나는 모를걸세. 그 애 모르게 자네를 부른 거니까.”

“그럼 더 뭐라고 해야겠네.”

조직의 보스는 송하나였다. 분명 송차석이 그녀의 아버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조직을 마음대로 휘두를 권리는 없었다. 즉, 그녀가 제대로 된 장악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소리였다.

‘한도 한통속인가?’

송하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 한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주도적으로 진하를 안내했다는 거는 한의 충성 대상이 송하나가 아니라 송차석이었다는 소리였다.

“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식사나 하지 그러나. 오늘은 한 아이의 아비로서 자네를 부른 거네.”

송차석이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갓 만들어진 음식 같았다.

“미안하지만 난 못 먹겠어.”

이미 한 번 속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무리 송하나의 아버지라지만 아군으로 판명되지 않은 사람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을 정도로 진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하아, 이렇게 불러서 미안하지만 경계는 풀었으면 좋겠네. 진짜 한 아이의 아비로서 자네를 부른 거니까.”

송차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하의 스테이크 일부를 잘라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병에 담긴 와인을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됐나? 내가 자네를 부른 용건은 딸아이와의 결혼 때문이네. 자세라도 똑바로 했으면 좋겠군.”

“하아…… 미치겠네.”

진하는 자세를 바로 했다. 분명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송하나의 아버지였기에 계속 뻗대는 자세를 취하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라리 이 상황이 어떤 면에서는 잘된 거기도 했다.

“그래, 말해 보자고. 우선 말해 두지만 난 송하나와 결혼할 생각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거지?”

“흐음, 우리 하나가 별로인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애초에 정보 길드와 엮일 생각이 없다고.”

“그렇다면 후계자 양성만 도와주는 건 어떤가?”

송차석의 말에 진하는 골이 아파 오는 걸 느꼈다.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하나만 묻지 왜 나지?”

굳이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 재능이 넘치는 사람도 많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진하가 가진 거라고는 애매한 권력과 아무것도 없는 재능이었다.

송하나야 진하에게 마음이 있어 그런 제스처를 취할 수 있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송차석까지 그럴 이유는 없었다.

“이왕이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엮였으면 하는 거지.”

“입발린 소리 하지 말고.”

“정확히는 배신을 당하기 싫다네. 계약에 의해 자네가 이미 모든 걸 쥐고 있지 않나? 그런 사람을 적으로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송차석의 말에 진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계약과 관련된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송하나와 진하 자신을 제외하고는 환영 능력자나 한 정도였다.

‘한이군.’

환영 능력자는 오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물론 그일 가능성도 있지만 한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나도 정보 길드를 적으로 둘 생각은 없어. 터치할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 것 같은데?”

진하가 그동안 송하나를 터치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믿어서였다. 알아서 조직을 잘 관리할 거라고 믿었고 진하를 배신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직을 장악하지도 못한다면 그런 믿음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세 달 정도 되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리 큰 길드라지만 장악하지 못했다는 건 그녀의 능력 부족이란 소리였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걸세.”

“믿을 수가 있어야지.”

“걱정 말게. 오늘을 끝으로 나는 완전히 은퇴할 거니까.”

송차석은 미소를 지으며 스테이크를 한 점 썰어 먹었다.

“그런데 안 먹나?”

“어.”

송차석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웠다. 음식을 권하는 것도 그렇고 송하나의 아비로서 그를 불렀다기엔 너무나 수상했다.

“흠, 그래? 안타깝군. 이 스테이크처럼 진귀한 음식은 없는데 말이야.”

“신변잡기나 얘기할 거면 나는 이만 가지.”

“허허, 성격이 급하기는. 죽기 전 늙은이의 얘기를 들어준다 생각하고 좀만 있게.”

송차석의 말에 진하는 짜증이 이는 걸 느꼈다. 도대체 이 자리가 왜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후, 참자…….’

어차피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조직원들이 그를 공격한다 해도 진하는 충분히 돌파할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어떤 것이든 통할 가능성은 없었다.

“자네, 유령 고기라고 아나?”

“유령 고기?”

“게이트 1층에서 나오는 스피릿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고기일세.”

송차석의 말에 진하는 겨우 흐릿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지나가듯이 배웠던 몬스터로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예 모르는 건 아닌가 보군.”

“설마 그게 스피릿을 고기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네. 미식가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고기이지.”

“개소리하지 마. 이미 8년 전에 1층에서 멸종한 종이야.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는 정보도 없었어.”

“아, 한국에서는 멸종한 게 맞네. 다만 외국에는 아주 조금이지만 남아 있지. 그럼 그 특성도 아는가?”

그의 말에 진하가 빠르게 기억을 훑었다. 그리고 곧이어 대략적인 특징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스피릿은 비 선공 몬스터로 반 유령계열 몬스터입니다.

―유령의 특성을 가져 물리적 타격에 강하나 면역은 아닙니다.

―1층 몬스터 답지 않게 매우 강력한 독을 몸에 가지고 있습니다.

“독?”

“절반의 정답이네. 유령 고기는 무색무취의 독을 내포하고 있지. 그래서 잘 조리해야 한다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진하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도대체 송차석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말했잖은가 절반의 정답이라고. 이 유령 고기가 특이한 게 생고기일 때는 괜찮은데 잘못 조리하면 요리가 끝난 후 끊임없이 독이 공기 중으로 퍼진다네.”

진하는 재빠르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문제는 없었다.

“아, 걱정하지 말게. 말했지 않은가. 특이하다고. 그 독은 불길에 직접 닿으면 폭발하면서 독성이 생기네.”

찰칵!

진하의 눈에 라이터를 쥔 송차석이 보였다. 진하는 다급히 주머니에 있던 삼각자를 라이터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촤아악! 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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