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네?”
레이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하지만 진하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묘한 망설임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S급 게이트 보스, 시안은 SS급 헌터가 그리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잡혔어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체명 시안은 한국을 침공했던 비앙카라는 개체와 같은 S급 아닌가요? 제가 알기론 갓 SS급이 있는 한국도 잡았다고 들었는데 SS급의 끝이라 불리는 제가 시안을 빠르게 잡은 게 그렇게 말이 안 되나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거기다 게이트 보스라지만 게이트 밖에서의 시안은 분신이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분신이라도 이렇게 빨리 잡을 수 없다는 걸 저는 잘 알거든요.”
진하는 이슬라와 시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진하는 그 당시를 직접 본건 아니었지만, 이기수에게 들었다. 그날, 이슬라를 잡았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SS급이 된 그와 S급 여러 명이 달려들었음에도 이슬라의 심장에 전격을 꽂아 넣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들었다.
물론 처음 잡았을 때는 왜 S급 헌터 몇 명에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약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적어도 그런 놈이 시안이랑 동급인 건 맞았다. 그런데 그런 몬스터를 혼자,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잡았다? 말이 되지 않았다.
“일반 S급 몬스터조차 S급 헌터는 잡기 어려워요. 그런데 보스형 S급 몬스터라면 적어도 SS급 헌터 수준이라 판단할 수 있겠죠? 그런 몬스터를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잡는 게 가능할까요?”
“그 SS급 1위가 저입니다만?”
“뭐, 그렇게 말하신다면 할 말 없네요. 왜 숨기고 싶으신지는 모르지만 우선 이 부분은 그만할게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진하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미 확신했다. 그녀는 SSS급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기수보다 더 심하네.’
얼굴에서 다 드러났다. 물론 일반인이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작게 움찔거리는 거라든지, 동공이 떨리는 게 진하의 눈에는 잘 보였다. 회의 때는 단호한 모습을 그렇게 잘 보이더니 이런 점은 또 신선했다.
‘은근히 티 나는 성격이네.’
“뭐, 다음으로 넘어가서 싸우면서 혹시 시안이 뭐 말한 건 없나요?”
“없습니다.”
레이나의 대답에 진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혹시나 이슬라에 대한 단서 같은 걸 흘리지 않았으려나 했는데 그러진 않은 모양이었다.
‘내 생각엔 그냥 문답무용으로 레이나가 덤벼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 자리에 진하가 있었다면 요리조리 물어보면서 정보라도 이끌어 냈을 텐데 그녀가 그런 성격일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애초에 몬스터와 길게 대화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진하가 아닌 이상하기 힘들었다. 어쨌든 몬스터는 죽여야 하는 대상이니까.
“흠, 그럼 질문은 이게 끝이고 부탁이 두 개 있습니다.”
“어떤 부탁이죠?”
“이번 공략대에 저도 참여하고 싶은데 저를 배정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 부분은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레이나는 진하의 특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소환수는 변수가 생겼을 때 매우 좋은 이동용 소환수였다. 실제로 8층에서 1층까지 하루 만에 도달한 걸 생각하면 미친 듯한 빠르기였다.
물론 공략대 특성상 단체여서 느렸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매력적인 소환수였다. 가장 좋은 점은 공중 몬스터를 제외하곤 몬스터를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 소환수는 이름이 뭔가요?”
“아, 모태빠요?”
“모태빠? 뭐죠? 그 괴이한 이름은?”
“아, 임시 이름이에요. 아직 제대로 안정했거든요.”
진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모태빠의 이름을 새로 짓기는 해야 했다. 언제까지 그 이상한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부탁은 뭔가요?”
첫 번째 부탁은 쉽게 끝났기에 레이나가 곧바로 2번째 질문을 물어보았다. 질문에는 대답해 주지 못했지만 첫 번째와 비슷한 부탁이라면 두 번째 부탁 정도는 쉽게 들어줄 수 있을 듯했다.
“두 번째 부탁은 시안과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진하의 말에 레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도 시안이 대화가 통하는 지능을 가진 몬스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몇 마디 나눴으니까. 그렇다고 몬스터와 이야기한다는 걸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인류의 적인 몬스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일 뿐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는 거죠?”
“뭐, 별건 아니고 뱀파이어 대공 이슬라에 관해 물어보려고요.”
“이슬라? 뱀파이어 대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아, 간단하게 얘기해서 한국 제1 게이트의 12층 보스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진하의 말에 레이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제1 게이트의 공략 진척도는 겨우 10층이었다.
그런데 12층의 보스를 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걸 시안이 알 거라는 듯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하가 거짓말을 하냐 묻는다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아티팩트의 힘이라고 얘기할게요. 저한테 신기한 아티팩트가 많거든요.”
“예…… 뭐, 그렇게 얘기하신다면 믿겠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조금 재고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왜죠?”
“몬스터입니다. 애초에 물어본다 해서 그 정보를 신용할 순 없습니다. 차라리 안 듣는 게 낫죠.”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생각해 둔 방법이 있거든요. 그래서 안 되나요?”
어차피 무엇을 물어보든 진하에게는 회귀 전의 미래가 있었다. 그렇기에 뭘 얘기하든 대부분 걸러낼 자신이 있었다.
“아닙니다. 몬스터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가정하에 가능합니다.”
진하의 자신에 찬 표정을 본 레이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은 몬스터와 굳이 대화를 나눠야 하나 싶었지만, 진하가 원하는 게 실제로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었기에 수락했다.
“뭐, 그럼 제 이야기는 그게 끝입니다. 혹시 반대로 질문하실 거 있으세요?”
진하의 물음에 가만히 진하를 바라보던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앞에 두 질문은 왜 하신 거죠? 아니, 첫 번째 질문을 빼고는 대충 의도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첫 질문은 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떤 대답이든 당신에게 이득이 되는 질문은 아니지 않나요? 차라리 다른 생산적인 질문도 많았을 텐데요.”
“뭐, 그냥 궁금증이라고 해 두죠.”
레이나는 진하에게 이득이 되는 질문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 회귀 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진하이기에 정확한 전력의 평가는 꼭 필요한 요소였다.
그래야 미래를 바꾸는 것에 있어 요소요소 잘 써먹을 수 있으니까. 특히, 레이나는 진하에게 빚이 있는 이상 실제로도 어느 정도 써먹을 가능성이 큰 헌터였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이걸로 빚을 하나 더 지운 것도 있고.’
레이나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번 질문으로 SSS급이라는 걸 진하가 알게 되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진하는 그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묻지도 않았고, 넘어가 주었다. 즉, 심적으로 하나의 빚을 더 지운 셈이었다.
‘물론 적당히 해야겠지만.’
가장 쓸 만한 패지만 그만큼 양날의 검이기도 한 게 레이나였다. 그러니 아주 중요할 때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질문은 이걸로 끝인가요?”
“네, 끝입니다.”
“그럼, 공략 때 보죠.”
* * *
제2 게이트 12층.
“드디어 도착인가.”
진하는 휘파람을 불며 저 멀리 보이는 고성을 바라보았다. 회의가 끝난 이후로 게이트 공략은 정말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레이나를 필두로 다시 50여 명의 헌터를 뽑고, 진하의 주작을 이용해서 빠르게 층을 내려왔다.
“정말 12층이었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옆에 서 있던 레이나가 진하에게 감사를 전했다.
“뭐, 고마울 게 있나요? 저도 빨리 끝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나저나 왜 이리 조용할까요?”
12층에 내려왔는데 사방이 너무나 조용했다. 게이트 보스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런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고, 사방이 조용하기만 했다.
“2시 방향 몬스터 출현!”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걸까? 저 멀리서 뱀파이어 한 마리가 공략대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 헌터가 저격을 위해 활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기, 레이나? 뱀파이어가 백기를 들고 있는데요?”
그의 말대로 그들에게 다가오는 뱀파이어는 백기를 들고 있었다. 위협적인 기세도 뿜고 있지 않았고, 그저 백기를 천천히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대기할게요.”
레이나의 말에 헌터들은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게 경계심만 높인 채로 다가오는 뱀파이어를 바라봤다. 레이나는 다가오는 뱀파이어를 바라보다 근처까지 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손을 위로 뻗어 정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공격할 의도는 없다. 전달할 말이 있어서 왔다.”
레이나의 신호에 멈춰 선 뱀파이어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무슨 말이지?”
“우선 나는 서열 1위…….”
“본론.”
말을 끊는 레이나의 단답에 뱀파이어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
“대공님으로부터의 초대다.”
“대공?”
“시안 님 말이다.”
뱀파이어의 말에 헌터들이 술렁였다.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만?”
“우리 뱀파이어들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다!”
레이나의 말에 뱀파이어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것치곤 인간 사이로 잘만 파고들었잖아.”
“그, 그건…… 전쟁 중이지 않았나. 우리는 초대하는 자를 공격할 만큼 몰상식한 뱀파이어들이 아니다.”
뱀파이어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가도록 하죠.”
레이나의 말에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그녀를 말렸다.
“잠깐만, 함정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미 분신을 잡았어요. 본체에 타격도 입었을 거고, 어차피 싸워도 제가 이겨요.”
“다른 뱀파이어들이 같이 공격할 수 있잖아.”
“글쎄요…… 이 전력에 과연 덤벼들까요?”
레이나는 그 말과 함께 공략대를 바라봤다. 확실히 공략대는 처음 내려갔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많은 S급 이상의 헌터들이 존재했다.
“이제 됐죠? 그럼 가죠.”
레이나는 그 말을 마치고 앞선 뱀파이어의 안내에 따라 고성 쪽으로 이동했다. 다른 헌터들은 그녀의 모습에 잠시 멈칫하다 이내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공략대가 공략하지 못할 몬스터는 없었다. 그러니 굳이 극심한 경계를 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하려는 거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진하가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레이나는 진하를 보며 말했다.
“진하씨가 시안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 말을 하긴 했죠.”
“굳이 싸우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초대했을 때 가서 얘기하는 게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진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부탁을 한 것은 진하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들어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저 공략이 완료되기 직전 빈사 상태의 시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게 가죠. 그리고 그 이야기, 이왕이면 듣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거죠?”
레이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들어도 아주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소수일수록 좋았다.
“그럼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죠.”
그녀는 그 말을 마친 후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하는 그녀가 어떻게 그런 환경을 만들지 궁금해하며 빠르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약 30분 후.
“다 왔다.”
안내한 뱀파이어는 고성의 한 건물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저랑 김진하 헌터 둘만 들어가죠.”
레이나는 정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당연하게도 헌터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레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이번에는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잭조차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여러분도 헌터라면 아실 텐데요? 리더의 명령은 뭐다?”
“복종한다. 그래도 이건 얘기가 좀 틀리잖아.”
“걱정 마세요. 진짜로 함정이라면 신호를 보낼게요. 그럼 공략대 여러분이 뚫고 오시면 되잖아요. 설마 그 정도도 못 하는 건 아니겠죠?”
레이나의 약간 도발 섞인 말에 모든 헌터들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를 쫓아가자니 자존심이 걸렸고 그렇다고 안 쫓아가자니 그들이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대신 안에서의 모든 내용은 공유할 거지?”
“제 헌터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죠.”
그녀의 말에 잭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합의된 것을 느낀 레이나는 진하를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진하는 헌터들의 따가운 시선에 식은땀이 흐르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끼이익―
둘이 문 앞에 서자 나무로 이루어진 문이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이 상대했던 뱀파이어 대공 시안이 오만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