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79화 (79/202)

#079

“너를 잡으면 끝나겠군.”

레이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나를 잡으면 끝이다.”

시안은 그 말과 함께 피로 이루어진 검을 하나 뽑았다. 레이나는 그런 시안을 보며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었다.

“빠르게 끝내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뽑아 든 검의 색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빨간색 그리고 점차 노랗게 변하다 이내 백색을 띠는 불꽃으로 변하였다.

“레이나였던가? 네가 인간 중 최강자군.”

“최강자는 모르겠지만 이름은 맞아.”

“너에게 풀네임을 직접 듣고 싶은데 말해 주겠나?”

“레이나 드레이크.”

“시안 지하크다.”

시안은 조용히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검게 물든 피의 검을 꽉 쥔 채 레이나를 겨누었다.

“흡!”

―블러드 엠페러.

핏빛 선을 그리며 레이나에게로 쏘아지는 그의 검, 레이나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그어지는 핏빛 선을 바라보며 가볍게 선을 그어 내렸다.

서걱―

땡그랑!

“쿨럭…….”

레이나를 향해 쏘아진 피의 검이 잘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춰버린 시안이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뭐지?”

“왜 힘을 숨기지? 여기에 있는 그 어떤 헌터보다도 강하면서 왜 다른 4명과 같은 척하는 거냐.”

인간들의 틈에서 뱀파이어를 늘리면서 시안은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었었다. 그리고 세계에 8명만 있다는 SS급 헌터들의 존재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들 중 4명은 시안보다 조금 더 강했다. 가장 최근에 합류했다던 이기수조차 그와 호각을 다투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 4명과도 달랐다. 다른 SS급 헌터들이 저수지라면 그녀는 호수였다. 아무리 큰 저수지라 해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호수.

“이해할 수 없어. 정말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이기수와 레이나, 그뿐만 아니라 뱀파이어가 되길 거부했던 다른 헌터까지 시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 같은 괴물이 언제까지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일 뿐이다.”

레이나는 시안의 말을 일축했다.

“뭐, 그거야 내 알 바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핵폭탄 덕에 길동무는 많이 데려가겠군.”

그 말을 끝으로 사르르 부서지는 시안. 레이나는 시안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는 빠르게 멀어지는 주작 한 마리와 그 위에 올라탄 두 사람이 보였다.

* * *

“이기수 느껴져?”

거친 바람을 뚫으며 진하의 목소리가 이기수에게 닿았다. 이기수는 진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더 올라가야 돼!”

현재 고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더 높이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현재 이기수가 전격을 이용해 인지할 수 있는 최대 범위는 20km에 가까웠다. 그나마 대략적으로 오는 방향을 알기에 그 정도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범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기수가 퍼뜨린 전격 내에는 핵폭탄이 감지되지 않았다.

끼악!

그 순간 올라가던 주작이 멈춰 섰다. 그리고는 한 곳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이기수의 물음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가 끝이야. 주작이 올라올 수 있는 상공의 끝.”

정확히는 진하가 버틸 수 있는 고도의 끝이었다. 지상으로부터 약 45km, 스킬까지 사용하며 강화된 신체가 버틸 수 있는 최대치였다.

이 이상은 진하가 버틸 수 없는 고도였다. 아니, 설사 이기수 혼자 있더라도 50km 이상은 넘기기 힘들었다.

“여기서 요격해야 돼.”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진하의 상태를 알아챈 이기수가 물었다. 진하는 대답 대신 손가락 3개를 펼쳐보았다.

3분, 이 고도에서 진하가 멀쩡하게 행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시간은 핵폭탄을 요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맞출 수 있겠어?”

“나도 몰라.”

진하의 물음에 이기수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떨어지는 핵폭탄의 예상 속도는 대략 초속 6km,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감지되는 순간부터 저격까지 아무리 늦어도 4초 이내에 성공시켜야 했다.

그리고 이기수에게 이런 저격은 처음이었다.

“쉽게 생각해. 내가 널 데려온 이유는 네가 전격 능력자라서야.”

전격 능력의 장점은 넓은 감지 범위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금속을 타겟으로 맞추기 쉽다는 것이다.

미사일이 금속으로 되어 있는 한 이기수의 전격은 아주 정확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사일을 맞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디로 떨어지는지도 모르잖아.”

이 넓은 공간에서 떨어지는 미사일이었다. 이기수는 도저히 감지 후 4초 이내로 움직이는 미사일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집중해.”

옆에 있는 진하는 이기수를 토닥이는 동시에 문방구 물품을 훑었다. 이대로라면 저격을 성공시키기 어렵다는 건 진하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기수를 도와줄 물품을 찾기 위해 지하는 문방구 물품을 끊임없이 훑었다.

‘찾아야 해.’

진하는 더욱 빠르게 카테고리를 훑었다. 분명 문방구 아티팩트 중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물품이 있을 게 분명했다.

“우선 이거.”

진하게 재빠르게 딱딱이를 꺼내 이기수에게 넘겼다. 순간적인 전력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가장 필요한 게 안 보여.’

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시간,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4초 안에 미친 듯이 빠른 미사일을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전격 망을 퍼뜨리기엔 위력이 부족해 제대로 요격이 안 될 가능성이 있었다.

‘뭐가 있지. 제발 좀 보여라.’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미사일의 속도를 느리게 하던 이기수의 인지 속도를 높이게 할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그때, 미친 듯이 아티팩트 목록을 뒤지던 진하의 눈에 한 물품이 들어왔다.

“온다!”

소리치는 이기수, 진하는 재빠르게 물품을 꺼내 발동시켰다.

<엘리스의 시계 토끼 인형: 동화 속에 나오는 토끼를 본떠 만든 인형, 항상 시간에 쫓겨 다니는 토끼는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는 소리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멈추면 숨도 못 쉬는 거 아닌가?>

째깍!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회색으로 변한 세상, 완전히 멈춰버린 세상에서 진하가 이기수의 어깨를 건드렸다.

‘읍!’

갑작스럽게 숨이 쉬어지지 않자 이기수가 당황했다. 진하는 재빠르게 손에 힘을 줘 이기수를 진정시켰다.

비록 세상이 정지되어 침착하라는 소리는 전달되지 않지만, 진하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이기수는 빠르게 당황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거워’

진하는 멈춰진 세상 속에서 몸이 몹시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공기 또한 멈춰서일까? 평소보다 몸이 10배 이상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톡, 톡.

그때, 이기수가 진하를 건드리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핵폭탄이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할 수 있지?’

진하의 손짓에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기수가 못 맞췄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빠르게 떨어지는 미사일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태라면 확률은 불가능의 영역에서 가능한 영역까지 떨어지게 된다.

따다닥! 파직―

딱딱이를 이용한 이기수의 손끝에 전격이 피어올랐다. 이기수는 신중하게 미사일을 조준한 채 전격을 발사했다.

하지만 채 절반도 가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전격, 이기수의 눈가가 순간 꿈틀했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문제점을 찾아낸 뒤 다시 손가락에 전격을 모았다.

‘더 강하게.’

멈춰선 세상에선 모든 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설사 그게 에너지 덩어리나 다름없는 전격이라 할지라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더욱 강하게 전격을 쏴야 했다.

이기수는 한 번 더 딱딱이를 이용해 전격을 모았다. 이번에는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압축하여 멀리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전격을 모두 모은 이기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지직.

진하의 손에 들린 인형의 목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둘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지직, 지지직.

순식간에 절반 이상 찢어지는 인형, 이기수는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 툭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 이기수가 돌아보자 김진하가 그를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릴렉스 해.’

어깨를 두드리며 뜻을 전달하는 진하, 그리고는 이기수에게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레이저 포인트: 원하는 목표를 향해 점이 찍히는 물품,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 쥐고 사용하면 집중력과 명중률이 상승한다.>

끄덕.

물건을 받아든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씩 인형이 찢어지고 있었지만 다급해선 안 됐다.

‘마음을 비우자.’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조준해야 했다. 아니, 조준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그저 손에 쥔 레이저 포인트로 미사일까지 그어진 빨간 선을 따라 전격을 쏘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지지직.

인형의 목이 4분의 1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진하와 이기수는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흥분하지 말고, 그저 보이는 곳을 향해 쏜다.’

파지직!

이기수의 손에서 더욱 압축되는 전격, 어느새 전투와 상황으로 인해 흥분했던 작은 떨림조차 사라져갔다.

‘지금!’

피잉―

지지지직!

이기수가 전격을 쏘아냄과 거의 동시에 풀리는 시간 정지.

둘은 쏘아냄과 동시에 시간 정지가 풀렸음을 알았지만 불안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번개의 속도는 빛이나 마찬가지니까.

퍼억!

파지직! 콰아앙!

전격이 미사일을 꿰뚫고 곧바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진하가 명령할 새도 없이 주작이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다. 하지만 폭발의 열기는 주작보다 빨랐다.

“크윽!”

“크으으…….”

순식간에 둘을 덮치는 폭발과 뜨거운 열기, 몇km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온몸을 익히는 열기에 둘은 이를 악물었다.

끼악!

잠시 후 폭발의 열기를 뚫고 튀어나오는 주작, 그 위에 올라타 있던 둘은 몸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후하…….”

“죽을 뻔했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진하가 쓰라린 피부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서 폭발했으면 화상으로 안 끝났을 듯했다.

“다시는 나한테 이런 일 시키지 마.”

옆에서 같이 숨을 몰아쉬던 이기수가 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서 하긴 했지만 전격을 쏘아내는 그 짧은 시간이 이기수에겐 억겁과도 같았다.

‘부담감이 장난 아니었구나.’

진하는 피곤에 절은 이기수를 보며 쓰게 웃었다.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이기수의 얼굴은 수 시간은 싸운 듯했다.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심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이제 끝이야.”

배리어를 한 번 더 부순 뒤 안으로 들어온 진하가 지상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이 상공에서 핵폭탄을 저격하는 사이 지상 또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상을 까맣게 물들였던 뱀파이어들은 어느새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또 실시간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펄럭. 끼악!

부드럽게 날갯짓을 하며 착지하는 주작, 진하는 가볍게 주작의 등에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펑! 삐약!

“엥?”

작은 병아리로 돌아온 주작을 보면 진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재빨리 병아리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하얀 병아리: 매우 건강한 상태이다. 모든 힘을 다 써 하루종일 쉬어야 할 것 같다.>

상태를 확인한 진하가 헛웃음을 지었다. 성장하면 계속해서 주작 상태로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 듯했다.

“뭐, 네가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일의 MVP였다. 공략대의 수송부터 핵폭탄 미사일의 요격까지 이놈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푹 쉬어라.”

자신의 앞주머니 안으로 병아리를 넣은 진하는 마무리되어가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빠르네.”

한국에서는 1만의 뱀파이어와 싸우는데 몇 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였었는데 10만이 넘는 이곳은 30분도 안 되서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50명에 달하는 S급 이상의 능력자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고맙다.”

누군가 멍하니 있던 진하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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