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잭이 진하의 안주머니에서 자고있는 병아리를 가리켰다.
“얘요? 제 소환수예요.”
“소환수? 그냥 병아리 같은데? 작아서 싸울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이번 공략에 데려가려고?”
“그렇긴 한데 데려가야 해서요.”
진하 또한 마음 같아서는 이 병아리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외국으로 나갈 때 데려갈 마음도 없었다. 그냥 주변 사람한테 맡기고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직전에 확인했던 상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얀 병아리: 매우 건강한 판매용 병아리. 노랗던 병아리가 하얗게 변했다. 생각과는 달리 매우 건강하게 컸다. 이제 곧 성장을 마칠 수 있을 듯하다. 성장 제한: 주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워 죽을지도 모른다. 성장 완료: 3일.>
‘외롭기는 개뿔.’
진하가 기억하기론 그냥 밥만 담아두면 지가 알아서 잘 먹고 잘 놀았던 게 병아리였다. 머리도 똑똑해서 심지어 밥이 떨어지면 지가 진하에게 알아서 쪼르르 달려와서 밥 내놓으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병아리가 설마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래도 한 며칠만 같이 있으면 될 줄 알았더니.’
외국에 데려갈 때만 해도 그래도 며칠이면 되겠거니 했다. 설명에 곧 성장을 마친다고 되어 있었으니까 성장만 하면 이런 개떡 같은 성장 제한도 없어질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유럽을 넘어 공략대가 조정되고 출발하는 날까지 이놈의 제한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고 가기엔 지금까지 키운 게 아깝기도 하고 그냥 두면 죽는다고 하여 안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좋게 생각하자. 그래도 이제 곧이라니까.’
사실 오늘 아침에 생긴 성장 제한 맨 끝에 붙은 성장 완료까지의 날짜만 아니었다면 그냥 죽든 말든 때려치웠을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략에서 방해만 되고 신경만 써야 되는 병아리는 방해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도 게이트 안에선 써먹을 수 있겠지.’
삐약! 삐약!
“그래, 너 속 편해서 좋겠다.”
진하는 속 편하게 주머니에서 삐약거리는 병아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게이트 안에서 전투에 쓸 만한 놈으로 성장해야 할 텐데…….
“잭, 그나저나 다른 헌터들은 왜 안 보여요?”
“편하게 말하라니까?”
“잭, 왜 다른 사람들이 안 보여?”
진하는 집결 지역에 가까워졌음에도 보이지 않는 헌터들을 보며 물었다. 분명 공략대 규모를 생각하면 바글거려야 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편하게 얘기하면 좋잖아. 근데 못 들었었어? 공략대 축소한다고 했잖아.”
“네?”
처음 듣는 소리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전날 회의만 해도 인원 변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응? 뭐야 아침에 전달한 사항 전달했잖아.”
“못 들었어. 아니 애초에 회의에 그런 말은 나오지도 않았고요.”
“뭐지? 이번 공략대는 S급 이상 대부분을 넣기로 변경한다고 전해 들었는데? 기수도 내려갈 준비 마치고 같이 온 거 아니었어?”
“아니, 난 배웅하러 온 거였는데? 그리고 곧바로 게이트 밖에서 몬스터 잡으려고 했지.”
이기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잭을 바라봤다. 진하가 인상을 쓰며 잭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 게이트는 누가 지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네들이 정한 건데. 뭐 요즘 게이트에 나오는 몬스터 양이나 수준을 생각하면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야 기수야, 나 먼저 간다.”
진하는 잭과 이기수를 두고 빠르게 집결 장소 한가운데 설치된 곳으로 달려갔다.
펄럭!
천막을 걷으며 들어가자 유럽 연합의 부협회장인 김준태와 몇몇 대표들, 그리고 공략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S급 이상의 헌터들이 보였다.
“김준태! 이게 무슨 짓이야!”
진하가 갑작스런 소리치며 들어오자 김준태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진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던 김준태는 고개를 갸웃하며 진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시죠?”
“공략대를 왜 갑자기 상의도 없이 바꿨냐고!”
“본인이 참여를 안 해놓고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뭐?”
“오늘 아침에 긴급회의를 한다고 분명 전달하지 않았나요? 시간이 지나도록 안 나타난 건 한국 대표인 김진하 씨 입니다.”
김준태의 말에 진하는 어이없음을 느꼈다. 그는 전혀 그런 사실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방으로 아무도 온 적이 없었다.
“그런 소리 들은 적 없어. 애초에 아무도 안 왔다고.”
“그런가요?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군요. 하지만 어차피 왔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을 겁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찬성한 안건이거든요.”
“그게 무슨…….”
“아, 진하 씨는 게이트에 내려가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협회 대표로서 게이트 폭주의 원인을 직접 확인하는 건 진하 씨가 제격인 건 맞으니까요.”
“아니, 잠깐만, 이렇게 갑자기 인원을 줄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리고 S급이 다 내려가면 바깥은 어떻게 하고?”
“아예 모든 S급 들이 다 내려가는 건 아닙니다. 한두 명 정도는 남을 거예요. 그리고 흥분한 건 알겠지만 반말은 지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긴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리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까득!
“알겠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가는 건데요?”
“총 50명입니다.”
무려 4분의 1로 줄었다. 처음에 가려 했던 200명에서 50명이라니…….
“남는 S급들은요?”
“프랑스 쪽 S급 헌터 2명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고작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않나요? 혹시라도 보고서에 적혔던 S급 보스 몬스터나 S급 몬스터가 2마리 이상 튀어나온다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게이트 밖으로 나오려면 그전에 공략대와 마주쳐야 할테니까요.”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닌가요?”
“모든 나라들이 동의한 사안입니다만? 다들 안전하고 빠르게 끝내길 원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몬스터가 줄어든 상황에서 S급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도 적습니다. 애초에 지금까지 나온 S급 몬스터는 매우 적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한 번에 많이 나온 적도 없고요.”
“그렇다고 공략대를 이런 식으로 짜시면 안 되죠.”
‘당했어.’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S급들을 모두 게이트에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설마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하려 할 줄이야…….
‘설마 리비카 쪽 뱀파이어인가? 아니면 함정?’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미 출발 직전이 상황에서 더 이상 뭘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적들의 속셈을 완벽하게 알아차리지도 못하겠고 정말이지 답답했다.
‘지금은 이대로 진행해야 돼.’
여기서 공략대를 다시 짜자며 난리를 칠 수도 없었다. 다른 나라에게 밉보일 뿐만 아니라 명분도 없었다.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김준태에게 말했다.
“후, 알았어요. 대신 1시간만 미뤄줘요. 저희 쪽 SS급 헌터인 이기수 헌터도 이 소식을 못 들어서 적어도 장비 등을 챙겨야 하니까요.”
“그 정도는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가장 중요한 헌터 중 한 명인 이기수 씨의 준비인데.”
김준태의 승낙을 들은 진하는 곧바로 천막을 나왔다.
“뭐야? 어떻게 됐어?”
뒤늦게 도착한 이기수가 진하를 보며 물었다. 진하는 이기수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방 먹었어. 아마 S급들만 모아서 출발할 것 같아. 너도 어서 빨리 준비해.”
“그럼 우리가 준비한 것들은?”
“뭐, 가장 처음에 세웠던 가설은 폐기해야지. 그래도 기본 골조나 준비 부분은 바꿀 거 크게 없잖아? 2안이나 3안으로 갈 거야. 뭔 소린지 알겠지?”
“알겠어. 그나저나 그럼 결국 바깥을 노리는 거 거나 복수라는 거네.”
“응. 리비카 소속이거나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바깥에 뭔가를 노리는 걸 거야.”
“그러니까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야. 빠르게 준비하자.”
“넌?”
“공략 가지 않는 사람에게도 일단 알리긴 해야지. 한국 협회에도 알려야 하고.”
* * *
“다들 준비됐나요?”
SS급 헌터 레이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S급 이상의 헌터니까 알아서들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좀 이따가 폭격이 떨어질 거예요. 우리는 폭격이 떨어진 직후 폭연을 뚫고 게이트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갑니다.”
레이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전투기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는 그 소리에 하던 말을 멈추고 곧바로 무기를 고쳐 잡으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고, 다른 헌터들 또한 달려갈 준비를 했다.
콰앙! 쾅!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게이트에서 폭발음과 함께 붉은 구름이 퍼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헌터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게이트를 향해 뛰어갔다.
쾅! 콰쾅!
지원은 비행기뿐만 아니었던 건지 저 멀리서도 탱크에 의해 폭격이 가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헌터들이 게이트에 가까워질 때쯤 폭격은 그치고 먼지구름들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끼에엑!
취릭! 췩!
그리고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먼지구름을 뚫고 진하 일행을 향해 뛰어들었다.
“속도 늦추지 마.”
그 말과 함께 양쪽에서 화염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뽑아내는 레이나.
―홍염의 날개.
레이나의 날개가 전방을 향해 크게 휘저어졌다. 그러자 거대한 화염이 날개로부터 뻗어 나와 몬스터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화르륵!
‘미친!’
진하는 화염에 닿자마자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몬스터들을 보며 기가 차는 걸 느꼈다.
아무리 폭탄을 맞았다지만 저 폭발을 뚫고 나왔다는 건 하나같이 A급 이상의 몬스터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하얀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순간 화력에선 전 세계 1등이라더니.’
SS급 중에 순간 화력 면에서 그녀를 이길 수 없다더니 정말인 듯싶었다. 가장 파괴적인 전격 능력을 가진 이기수조차 저런 파괴력을 내려면 1분 이상의 힘을 모아야 했다. 물론 이기수의 경우에는 화력적인 부분과 관련된 스킬이 없긴 했지만.
“진입한다!”
레이나와 헌터들은 그 말을 끝으로 먼지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 * *
그렇게 2일 후…….
“클리어! 10분간 휴식한다.”
레이나의 명령에 따라 몬스터를 사냥한 헌터들이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사냥을 하지 않았던 헌터들이 전투를 진행한 헌터들을 대신하여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후우…… 빡세네.”
진하는 뻐근한 몸을 주무르며 레이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강해.”
“누가?”
옆에 있던 이기수가 진하에게 물었다.
“누구겠어. 레이나지. 확실히 같은 SS급이지만 다른 헌터들에 비해 급이 높아.”
“그런가?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조금 질투 나네.”
“아서라. 네가 건들 만한 사람이 아냐. 그나저나 결국 아무 일도 없는 건가?”
만약 밖에서 일을 벌인다면 12층과 1층의 중간 지점에서 일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조차 없었다.
“흐음, 이제 곧 7층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7층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곧장 연락도 되지 않는다. 만약 그걸 노린 거라면……. 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레이나에게 다가갔다.
“흠, 무슨 일이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레이나가 진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하는 그런 레이나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 팀을 나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