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아니 인간은 맞는 것 같아. 아니 사실 조금 긴가민가해.”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은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계속 관찰해봤는데 아무래도 느낌은 뱀파이어 같거든?”
“그런데?”
“근데 그럴만한 뱀파이어가 없다는 게 문제야. 거기다가 거의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도 걸리고.”
뱀파이어라는게 보기 쉬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김준태는 낮에 돌아다니는 걸 진하가 직접 목격했다. 그렇다는 건 분명 뱀파이어라고 해도 매우 고위급이라는 건데 진하가 알기론 그렇게 고위 뱀파이어를 만들려면 적어도 대공, 아니면 그 바로 아래여야 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지금 김준태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잠깐만, 근데 그 느낌이라는 거 정확한 거지?”
이기수의 질문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말이 느낌이라는 거지 거의 확신에 가까워. 둘 다 인천 전투 때 있던 일 기억하지?”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참여했으니까 모를리 없었다. 거기다가 진하가 겪었던 일도 그에게 직접 들었기에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근데 그때 내가 사용했던 물품이 흡혈귀 세트였어. 즉, 내가 잠깐 뱀파이어가 된 거지. 여기서 뱀파이어의 특징이 뭔지 알아?”
“피를 빤다는 거?”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맞긴 한데,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동족을 인식한다는 거야. 뱀파이어들은 뱀파이어를 알아봐.”
그래서 진하는 그 점을 이용해 비앙카를 속여 시간을 벌었었다. 반쯤 뱀파이어화가 돼 가고 있기에 이슬라의 파트너인 척 사기를 쳤다.
“물론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그때의 느낌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야. 아무튼 그 상황에서 김준태를 보니까 약간 동족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뱀파이어라고 말하는 거야?”
“정확히는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거나 정말로 강한 고위급 뱀파이어라는 거지.”
“그럼 그걸 다른 나라와 협회에 알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하준수가 물었다. 그의 말에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불가능해. 그가 뱀파이어 같다는 건 확실한 물증이 없거든. 그리고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면 겉과 속은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어. 즉, 티가 안나. 그 상태에서 함부로 움직이면 오히려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야.”
“그럼 어쩌자는 거지?”
“적어도 시안의 뱀파이어 중 서열 1위에 해당하는 뱀파이어가 지상에 나타나 있다는 가정하에 작전을 짜야지.”
“답이 없군.”
하준수가 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하 역시 그의 말에 동감했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말을 했을 때 웃음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근데 그가 진짜로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면 인간을 팔아넘겼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아무리 썩어도 인간이 몬스터와 거래하진 않겠지. 내 생각에는 뱀파이어의 최면이랑 뱀파이어화가 약간 진행되면서 생긴 지배력에 의해 조정 당하는 것 같아.”
“잠깐만 김준태 부협회장이잖아. 그렇다는건…….”
“어,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유럽 협회장이랑 다른 간부들도 조종 당하는 것 같아.”
유럽 협회에서 부협회장이 된다는 건 수많은 간부와 협회장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 소리는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김진태가 부협회장이 된 것에 유럽 협회 수뇌부의 동의가 있었다는 거였고, 결국 그들도 조종당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모두 뱀파이어일 가능성은?”
하준수의 질문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고위급 뱀파이어를 그렇게 쉽게 찍어낼 수 있었으면 인간은 이미 망했지. 내 생각에는 협회장하고 간부 몇 명정도? 그 정도만 반쯤 뱀파이어화 시켜서 최면으로 조종하는 것 같아. 애초에 지금 말하는 것도 꽤 많이 높게 잡고 말하는 거야.”
“그런데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의견을 제시하는 거지?”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공략대를 구성하는 건 뱀파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막으면 막았지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 거였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야.”
분명 뱀파이어화가 진행되는 것도 거의 확신이 들고 지금까지 예상하는 것들도 모두 맞는 것 같았다. 근데 아다리가 안 맞았다. 어째서 그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일을 진행하는 건지 이해가 안됐다.
“그나마 아주 낮지만 가능성 있는 건 시안의 뱀파이어가 아닐 경우밖에 없어.”
이기수에게 듣기로 S급 뱀파이어 한 마리를 잡았다고 했었다. 진하가 직접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리비카일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녀의 수하라면 사이가 나쁜 시안을 죽이기 위해 인간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종족인데 거기까지 할까?”
이기수의 의문에 진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진하의 입장에서도 그건 잘 모르는 거였다. 애초에 진하가 그 종족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나도 지금은 제대로 확답을 내릴 수 없어. 다만 하나 확실한 건 그가 뱀파이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거, 그리고 적어도 협회장과 간부 몇명 정도는 김준태와 비슷한 상태일 것 같다는 거야.”
“어렵네.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고.”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걸 찾아야지. 앞으로 있을 회의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목적이 뭔지, 뭘 원하는 건지 모두 예상하고 추측해야 해.”
“김진하.”
그때, 하준수가 진하를 불렀다.
“왜?”
“네가 말한 사실, 정말로 불변하는 규칙인 건가?”
“무슨 소리야?”
“유럽 게이트 폭주도 그렇고 네가 봤다는 미래 변경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뜻이다.”
하준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묻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네 말대로 우리가 미래를 바꿀수록 미래가 바뀌어. 당연히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어. 네 말대로 불변하는 규칙도 아니고. 다만 바뀌기 전 미래 속에서 봤던 규칙은 바뀔 리 없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밀가루로 빵을 만들다가 면을 만들더라도 결국 그 원료가 되는 건 밀가루잖아? 마찬가지로 미래가 바뀌어도 지식 자체가 변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잠깐만 그렇게 따지면 게이트 폭주도 불변하는 쪽에 가깝지 않아?”
이기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진하의 말대로라면 게이트 역시 현상에 가깝기 때문에 불변해야 하는 게 맞았다.
“아쉽게도 게이트는 변동적인 미래에 가까워. 내가 게이트 폭주 어떻게 일어났다고 했었지?”
“12층 게이트 보스를 죽이면서 갑자기 시작됐다고 했어.”
“맞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미래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걸 들은 것뿐이야.”
“그럼 그게 트리거가 아니라는 소리야?”
“응, 나도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뭔가 다른 게 있겠지. 그렇다고 치면 이미 많은 게 바뀐 미래니까 게이트가 일찍 터지는 것도 말이 되고.”
“잠깐만 그렇다 해도 동시에 터지지 않는 건 이상하잖아.”
이기수의 계속된 질문에 진하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그의 지적은 정확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대답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으니까.
‘분명 그 부분은 신적인 존재들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말이야.’
할머니부터 사서라고 칭하는 남자까지 진하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다만 사서가 남겨준 쪽지에서 미래가 변동할 거라는 부분이 아마 게이트의 폭주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대충 그렇다는 거야. 나라고 미래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니까.”
“그럼 게이트 보스가 지상에 올라올 가능성은?”
“없어.”
진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 동시에 게이트가 폭주했을 당시에 그것을 해결하기까지 매우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게이트 보스는 절대로 한 번도 지상은커녕 11층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확답하는 이유는? 미래에 모든 게이트 보스들이 12층에서 죽어서 그런 건가?”
하준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것 때문이야.”
“그럼 지식이나 규칙보단 그저 경험에 가까운 거 아닌가?”
“그것뿐이면 내가 그런 말 하지 않았겠지.”
공략 보고서 중에는 미국에서 12층을 공략하다가 후퇴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분명 그때 보스가 12층의 어느 부분까지는 따라왔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따라오지 않았고 전멸 위기였던 공략대가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즉 행동반경에 제약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튼 이제 이해됐어? 적어도 규칙은 안 바뀌어 미래는 바뀌더라도.”
둘은 진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일단은 가장 높은 확률인 시안의 수하가 유럽 협회의 간부 일부를 조종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작전을 세우자. 그리고 왜 게이트를 내려가게 만들려는 건지 알아내고 그걸 막아야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지?”
“진하 너는 뭐 생각해 둔 거 있어?”
으쓱.
“당연히 없지. 머리를 쓰는 건 내 분야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얘기 좀 해 보자.”
* * *
공략대 출발 당일.
“으…… 죽겠다.”
진하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방을 나왔다. 어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는 바람에 쪽잠을 자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괜찮냐?”
방에서 방어구를 챙겨 나온 이기수가 진하를 보며 물었다. 그는 어제 공략을 핑계로 어느정도 일찍 나왔지만 진하는 꽤 늦게까지 있었으니까.
“어, 괜찮아. 어차피 나는 공략대의 주 일원이 아니잖아.”
층을 내려가면서 진하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방관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공략대 자체가 S급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그가 할 일은 전혀 없는 게 당연했다.
“내가 진짜 공략대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개짓거리를 했는데.”
첫날 이기수와 진하, 하준수는 게이트 폭주 시 게이트 안의 환경이나 혹시 모를 변수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진하를 꼽았다. 그래서 정확한 의도를 모르는 상황이므로 게이트 안에서의 변수는 진하가 담당하고 그 외 밖은 이기수가 담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모든 게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는 간단했다. 회의 내내 김준태를 살피면서 진하가 들어갈 만한 구실을 만들어 공략대에 들어가기 위한 주장을 펼치는 거였다.
“설마 그것 때문에 어제까지 붙잡힐 줄이야…….”
진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분명 3일 전에 들어가기로 협의를 봐 놓고서 갑자기 출발 전날 태클을 걸어버린 일본과 중국 때문에 밤늦게까지 하듯 회의를 진행하고 말았다.
“그래도 들어갔으니 다행이지.”
이기수가 캔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나도 알아. 진짜 못 들어갔으면 큰일 날뻔했지.”
안 그래도 온갖 방법을 이용했지만 결국 김준태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게이트 안에서 대처할만한 사람까지 없었다면 정말로 위험할 뻔 했다.
치익― 꿀꺽, 꿀꺽
“크으, 역시 커피는 한국 믹스 커피가 제일이야.”
“그러냐? 나는 아메리카노가 제…….”
“브라더! 왜 나만 두고 나가!”
콰악!
순간 뒤에서 튀어나온 잭이 이기수를 콱 붙잡아 헤드록을 걸었다.
“아악! 진짜, 내가 이거 하지 말랬지!”
“그러게 나 혼자 두고 누가 도망가래?”
“네가 늦게 나와서 그런 거잖아!”
말다툼을 벌이는 둘. 진하는 그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역시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콤비란 말이지.’
“오? 미스터 킴! 잘 잤어?”
“네, 뭐 어느 정도는요?”
“에이, 반말하라니까, 반말? 기수의 친구면 내 친구기도 하지!”
“노력해 볼게요.”
진하는 잭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알기는 했지만 역시나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잭은 이기수에게 건 헤드락을 푼 뒤 자신의 방어구를 점거하며 진하에게 물었다.
“게이트 아래로 내려갈 텐데 체력 비축 잘해야지. 미스터 킴이 협회 대표로 내려간다며?”
“예, 뭐…….”
“우리 유럽 협회도 한국처럼 간부들이 대부분 각성자여야 하는데 왜 죄다 일반인인 줄 모르겠다니까?”
잭의 말에 진하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걸 굳이 협회 대표인 나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오! 근데 그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