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뭐야 이게?’
몰래 훔쳐보던 잭은 그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협회가 깨끗한 곳이 아니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다.
‘강간, 방화, 살인, 심지어 투기장까지? 도대체 몇 개의 범죄를 저지른거야?’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당장 보이는 것만 봐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노예로 쓰고 물건으로 다룬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특히, 사람과 사람과의 살인을 보고 즐기는 투기장 같은 것은 생소함을 넘어 충격이기까지 했다.
탁
“후우…….”
이기수가 한숨과 함께 읽고 있던 서류를 덮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눈을 감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뜬 그는 3명의 임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똑바로 처벌해. 어설픈 이상향 집어넣지 말고.
송하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드디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왜 그곳에 가서 읽으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만약 미리 이걸 읽었다면 분명 그는 바로 이들을 죽였거나 한참 후 화를 삭힌 후에 그들을 만나러 갔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뭐가 됐든 좋은 쪽은 아니었겠지.’
이들에겐 편안한 죽음도, 감옥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벌을 주더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할까.’
“잭.”
“응?”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뭘 해야 할지는 너무나 잘 알았다. 이미 봐온 게 있으니까. 그저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물론 여전히 그런 일 자체는 여전히 싫었지만 지금 이곳에 이들을 벌할 자는 그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역할을 절대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너희들을 판결을 내릴 거야. 너희들은 감옥도 아까워. 그리고 바로 죽이는 것도 천국이지. 잭 미안한데 이곳에 방음처리 좀 해주고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줄 수 있어?”
“알았어.”
굳은 표정의 이기수를 보며 잭이 방 전체에 얼음벽을 여러 겹쳤다. 각 얼음들 사이는 진공으로 만들어 이기수가 원하는 대로 아무런 소리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 난 나가 있을게.”
잭은 그 말과 함께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기수와 세 명만 남게 되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고문을 당하면서 너희들의 죄를 직접 하나하나 말해야 할 거야.”
이기수의 말에 한 명이 자신의 손을 빠르게 자신의 심장을 향해 찔렀다.
덜컥!
“물론 너희들에게 몸의 자유란 없어.”
어느새 전격으로 그들의 몸을 장악한 이기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물론 이기수에 의해 신경계를 장악당한 세 명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채로 이기수를 바라봤다. 이기수는 자신의 심장을 내리 찌르려 했던 남자를 바라봤다.
“우선 너부터 시작하자.”
* * *
‘흠…… 장난 아니네.’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잭은 얼음을 통해 느껴지는 이기수의 행동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설마 고문을 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만 하루 동안 내내 고문을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에휴, 괜찮으려나.”
잭은 고문하고 있을 이기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 지 얼마 되지 않는 친구였지만 이기수에게 이런 고문은 맞지 않았다.
쨍그랑!
그 순간 문 앞에 세워놓은 얼음이 깨지며 이기수가 튀어나왔다. 하루 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기수 괜찮아?”
“어…….”
“놈들은?”
“죽었어.”
이기수의 말에 잭이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탄내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우웅, 부우웅!
그 순간 이기수의 핸드폰이 연신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기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정신도 없는지 멍하니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줘봐.”
잭이 이기수의 핸드폰을 빼앗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개새끼야! 너 꼭 죽여버리고 말겠어! 내가…….]
“끊어.”
핸드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기수가 재빠르게 핸드폰을 닫았다.
“이게 뭐야?”
“놈들의 가족들.”
“뭐?”
“자식들도 덜 하지만 죄를 지었어. 그래서 벌을 같이 줬어. 그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모두 영상으로 찍어서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그들의 가족에게 보냈어.”
잭은 이기수의 말에 넋이 나가버렸다. 고문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그 이상의 짓을 했을 줄이야…….
“가자.”
“어딜?”
“아침이잖아. 몬스터 잡으러 가야지.”
이기수의 말에 잭이 그를 붙잡았다.
“야, 야 그 상태로 어딜 간다는 거야? 내가 지휘관한테 말해둘 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아니, 가야지. 그게 내 할 일인데.”
“지금 그게 문제야? 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아니, 싸울 수 있어. 그리고 지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기수는 그 말과 함께 복도를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방과 이기수를 번갈아 보던 잭은 이내 멀어져가는 그를 빠르게 따라갔다.
* * *
―잠시 후, 독일, 뮌헨 국제공항에 우리 비행기 착륙합니다.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장의 안내문이 비행기 안에 울려 퍼졌다.
“으자자잣!”
진하가 기지개를 피며 굳은 몸을 풀어 주었다.
“드디어 도착인가?”
“도착이다.”
진하의 말에 하준수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쨔잔! 도착이다!”
“배고파…….”
그리고 하준수의 말에 하나, 둘 따라 대답하는 팀원들. 그런 팀원들을 보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없어.’
전력적인 측면에서는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어 같이 오긴 했지만, 너무 개성이 강해서 반대로 같이 있기에는 피곤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긴 그게 당연한 건가?’
적어도 스킬을 개화하기 위해 각자 신념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개성이 다양한 게 오히려 맞는 거기도 했다.
덜컹!
“자, 자, 내리죠.”
비행기의 속도가 거의 줄어든 것을 느낀 진하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그의 말에 하준수와 그 팀원들도 하나, 둘씩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안전벨트를 푼 진하는 가볍게 옷차림을 확인했다. 약간 가벼운 겉옷과 그 안에 입은 방어구, 완전히 봄에 입는 차림이었다.
“괜찮겠지?”
진하가 알기론 독일의 날씨는 한국보다 포근한 편이었다. 그걸 감안해서 가볍게 입고 나오긴 했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니 걱정됐다. 다행히도 비행기를 내리며 느껴지는 날씨는 진하의 예상처럼 포근한 편이었다.
“뭐야, 이 정도면 겉옷도 벗어도 되겠는데?”
능력자라는 특성상 이 정도 추위는 따뜻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겉옷 벗지 마라.”
그 순간 누군가가 진하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진하가 목소리가 들린 곳을 살펴보니 이기수가 서 있었다.
“마중 왔냐?”
“그래, 마중 왔다. 한국에서 지원군이 온다는데 내가 마중 나가야지.”
“고맙다. 근데 겉옷을 벗지 말라는 건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는 안전지대야. 물론 게이트로 싸우러 가는 건 맞지만 굳이 드러내지 말라는 거야. 안 그래도 여기 사람들 극도로 불안에 떨고 있는데 방어구를 낀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안 좋아.”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어구를 낀 사람이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불안해할 만했다.
“근데 방어구만 입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걱정 마, 이미 유럽 협회에서 방어구 위를 가릴 만한 겉옷을 준비했으니까.”
“그럼 됐고, 아마 다른 헌터들도 오늘 내로 도착할 거야.”
“총 몇 명이나 지원 왔는데?”
“5천 명. 너도 있고, 우리나라가 피해 입은 것도 있어서 최소로만 지원 왔어.”
“A급 5천 명?”
“B급 4천에 A급 천 명이야.”
대답을 마친 진하는 이기수를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보았을 때와 다르게 안색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거기다가 억지로 밝게 이야기를 하고 있긴 했지만 전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다른 헌터들은 유럽협회가 안내해 줄거야. 너는 나랑 바로 회담장으로 가면 되고.”
“알았어. 근데 가기 전에 나랑 단둘이 얘기 좀 하다 가자.”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는 이기수의 승낙에 대충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로 옆에 있는 격납고를 가리킨 뒤 그곳으로 향했다. 이기수도 진하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무슨 얘기하려는 건데? 회의 시작까지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아.”
“짧게 끝날 거야.”
진하는 그 말과 함께 격납고 안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단 둘만 있다는 것을 확인한 진하가 이기수를 바라봤다. 여전히 죽상인 상태였다.
“이기수.”
“왜?”
“이 악물어.”
진하는 곧바로 이기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기수는 그런 진하의 주먹을 가뿐하게 피했다.
“뭐 하자는 거지?”
“그냥 일단 한 대만 맞자.”
진하는 재빠르게 스킬까지 사용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기수는 이번에도 재빠르게 그의 주먹을 피해냈다.
“무슨 짓이냐고 묻잖아.”
“개 같은 놈, 좀 맞아주면 덧나나.”
욕을 내뱉은 진하는 주변에 있는 상자 하나에 그대로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이기수를 보며 말했다.
“야, 후회해?”
“뭐가?”
“오면서 자세한 이야기 모두 들었어. 네가 한 행동에 후회하냐고 묻는 거야.”
“아니, 후회하지 않아. 분명 그들은 잘못했고, 난 그저 그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내린 것뿐이야.”
“근데 지금 뭐 하냐?”
“뭔 소리야.”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그 면상은 도대체 뭐냐고.”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치고는 전혀 후회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너, 나랑 블랙 길드 잡을 때 기억해?”
“기억해.”
“그때 네가 뭐라고 했어?”
“…….”
이기수는 진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는 분명 진하처럼 고문을 하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걸 보기 좋게 어겼다.
“내가 지금 네 탓하려고 묻는 거 아닌 거 알잖아. 그거 기억하냐고 물은 거지.”
“기억나.”
“그때도 그렇게 얘기했던 네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분명 그만큼 고민 끝에 한 행동이겠지. 물론 그저 분노에 맡긴 행동일 수도 있고.”
진하의 말에 이기수는 아무 말 없이 진하를 바라보았다. 진하의 말대로 그는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일을 진행한 것이다.
“근데 왜 후회를 해? 왜 고통스러워해? 본인의 생각을 어겨서? 아니면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쓰레기들이 너한테 그만큼 중요해?”
“그런 거 아냐.”
“그럼 똑바로 행동해. 넌 지금 네 위치를 알고서 행동하는 거야?”
진하가 날을 세우며 말했다. 애초에 그는 이기수를 위로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위로를 진하가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건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걸 받는다고 이기수가 헤어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이럴 때는 차라리 그냥 아예 그런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게 나았다. 그의 위치를 자각시키고 그로 인해 잃을지도 모르는 걸 깨닫게 만들어서 덮어버리는 게 더 나았다.
“단 하나만 생각해. 네가 지금 그렇게 쓰레기들로 후회하다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동료보다 그들이 더 중요하면 후회하고 아니면 제대로 행동하고.”
“잔인한 새끼.”
“어차피 위로한다고 네가 들어먹을 놈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어차피 너나 나나 천국 가는 건 무리야. 이미 묻힌 피 더럽게 묻었다고 후회하지 마. 그냥 질러, 그게 주변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지키는 거니까.”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어느 정도 괴로움에서 벗어나긴 한 상태였다. 진하가 오기 전까지 잭이 그를 케어해 줬으니까.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과연 그때 자신이 한 행동이 맞는 건지, 감정에 휩쓸린 건 아닌지, 또 이러한 행동이 효율적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잭이 지우기 전까지 고문했던 영상을 돌려봤고, 또 계속해서 고민했었다.
“네 말이 맞다.”
진하의 말대로 이건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도 평생 고민하고 안고 가야 할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 생각에 침몰 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다간 미래와 현재에 다른 걸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생각 정리는 됐냐?”
“아니,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건 천천히 해라. 그거면 된 거야.”
진하는 아직도 안색이 어둡지만 조금은 밝아진 그를 보며 말했다. 애초에 이 문제는 누군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하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더 깊이 빠지지 않게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것뿐.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위로와 본인의 고민 속에서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대충 정리도 됐겠다. 가자. 회담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