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70화 (70/202)

#070

“방해가 된다고요?”

“네.”

진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송준하를 바라보았다.

“제가요? 어째서요?”

“방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보단 이대로라면 진하씨가 원하는대로 계획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죠? 이해가 조금 되지 않네요. 이미 모든 게 완료된 상황아닌가요? 그런데 계획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진하가 알기로 이미 계획은 모두 진행된 상태였다. 아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그가 처음 세웠던 계획은 모두 완료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진행이 되지 않는다니, 그 부분을 진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권력이 삼등분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진하씨와 송하나, 그리고 저로요.”

“아니, 어째서요? 제가 권력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진하가 이번 일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힘도 없었고, 권력도 딱히 없었다. 물론 정보 길드가 그의 산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부분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었다.

“진하씨가 암중에 있다는 거, 그게 문제에요. 아예 암중에 있거나 밖에 나와있거나 둘 중 하나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 당신의 위치는 너무 애매해요.”

“그게...문제가 되나요?”

“네, 사실 협회와 정보 길드가 싸우는 건 문제가 안 돼요. 결국에는 음지와 양지니까요. 서로 협력하더라도 그저 대등한 관계에서의 임시적인 동맹으로 보이죠. 다만, 그걸 진하씨가 망치고 있어요.”

차라리 진하가 완전히 한쪽이면 나았을 텐데 그것조차 아니었다. 그 덕에 정보 길드에서는 진하를 협회쪽 사람으로 보고 있고, 협회에서는 진하를 정보 길드 소속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각 단체의 꼭대기에 해당하는 송준하와 송하나는 거의 진하를 존중하고 저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각 단체에서 불만 어린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거였다.

“차라리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예 알려지지 않은 상태거나 완전히 협회장이나 정보 길드의 수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 상관이 없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위치는 그냥 일반 헌터인데 각 수장들이 저자세를 취하는 이상한 상황, 그게 문제가 되어버린거죠.”

“그로 인해 양쪽 세력에서 불만 세력들이 생겨났다?”

“네, 그리고 당신이 실세라는 걸 알고 그를 이용하려는 제3의 세력까지 생기려는 판이고요.”

“전, 그런 걸 원하지 않았는데요? 지시한 적도 없고요.”

“알고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송준하가 한숨을 내쉬며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지금껏 진하 일행이 해 왔던 작전들을 마인드맵으로 그려 놓은 일종의 작전도였다.

“여길 보세요. 지금 여기에서 모든 선들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죠?”

“저요.”

“진하씨가 이 단체들의 실세가 맞든 아니든 확실한 건 진하씨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들은 생각하겠죠. 당신만 있으면 언제든지 이 단체들이 힘을 합칠 수 있다.”

“나를 이용해서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모든 세력을 지배하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호랑이가 있다면 그걸 이용하는 여우가 나타나는 거죠.”

송준하의 말에 진하가 머리를 감쌌다. 설마 지금까지 진행해온 일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 올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당신이 협회장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거절하죠. 그럴 능력도 안되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국외로 가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진하씨가 겉으로나마 저와 송하나에 의해 국외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실세가 아닐 수 있다.”

“맞아요. 그거에요.”

진하가 명령에 의해 국외로 나가게 되면, 진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어버린다. ‘진짜 이 사람이 실세가 맞을까? 그냥 앞세워둔 허수아비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고 제3의 세력은 알아서 자멸하게 돼버린다.

“그리고 또 진하씨가 나가 있는 동안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송하나씨의 정보 길드와와 새 협회가 불만 세력들을 없애는 시간이 되겠죠.”

송준하의 말에 진하가 마른세수를 했다. 확실히, 모든 작전들의 초반은 진하가 주도했다. 정확히는 계기만을 만들어 줬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후, 알겠어요. 그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그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그것 때문에 국외로 보낸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맞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뿐 피를 흘린다면 차선책도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국외로 보내는 이유는요?”

“첫째, 저는 피를 흘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을 두고 굳이 되돌아 갈 필요는 없죠. 둘째, 지금 이기수씨를 도울 사람은 진하씨 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현재 이기수씨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심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위로해 줄 사람은 진하씨 밖에 없고요.”

“아무리 이기수라지만 그정도로 힘들어 할리는 없을 텐데요?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제가 가는 건 좀....”

“진하씨.”

“네.”

송준하의 부름에 진하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압니다. 그럼 하나만 물을게요. 미래에는 우리가 그 게이트 폭주를 막지 못했나요?”

“아뇨, 막았어요.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런데 뭘 걱정하시죠? 우리는 지금 미래를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고요.”

“그렇긴 한데…….”

“진하 씨, 제가 생각하는 건데 진하씨는 지금 짐을 너무 많이 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미 게이트는 항시 헌터들을 상주시켜 폭주의 조짐을 감시하고 있었다. 진하가 뭘 걱정하는지는 송준하도 알고 있었다. 만약 송준하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 역시 진하처럼 막대한 부담을 가졌을 테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진하가 한 일은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미래를 안다고 해서 여기까지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그로 인해 지금 진하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바꿔야 한다.’라는 틀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제 진하씨가 아는 미래는 혼자만 아는 미래가 아니에요. 물론 자세한 것은 진하씨가 알겠지만 적어도 대략적인 건 진하씨가 모두 공유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우리를 믿고 짐을 내려놔 주세요. ”

그의 말에 진하는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진하는 계속 긴장하고 두려워 했으니까.

아무리 과거를 겪고 경험이 많다 해도 그는 과거 B급 헌터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여유를 가장하면서 항상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기위해 노력해왔다.

‘내가 너무 과했던 걸까?’

송준하의 말대로 너무 과한걸지도 몰랐다. 적어도 이제는 다들 어느 정도 미래를 알고 있고 진하에 뜻에 동조해서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다. 즉, 진하가 할 일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녀오세요. 진하씨가 다녀올 동안 정리를 끝낼 테니까. 그리고 지금 진하씨가 할 일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이기수씨를 안정시키고, 유렵 게이트를 끝낸 다음 빠르게 돌아오는 겁니다.”

송준하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는 굳은 그의 표정을 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알겠어요. 다녀오도록 하죠.”

* * *

다음 날 오전.

“그렇게 됐으니까. 잘 부탁할게.”

-여긴 걱정 말고, 당신이나 잘 다녀오라고. 이기수도 잘 위로해주고.

“아, 나 없다고 하던 일 멈추지 말고, 그리고 예진이도 좀 서포트 해 줘.”

-하아…… 알았어.

“그럼 잘 부탁해.”

진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설마 바로 다음 날 출발하는 거로 예약했을 줄이야…….

‘쯧, 아무리 그래도 좀 준비할 시간은 주지.’

심지어 진하가 유럽에서 생활할 동안 쓸 생필품도 미리 준비를 맞춰놨다. 빨라서 좋긴 했지만 가면 적어도 몇 달 동안 있어야 할지 모르는 진하의 입장에선 개인적인 물품을 챙길 시간조차 부족해서 너무나 빡셌었다.

‘뭔가 능글맞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비행기 표를 넘겨준 걸 생각하면 미리 준비했다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처음의 이미지와는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여기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아, 감사합니다.”

진하는 이신혜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였다.

“아까 통화 얼핏 들렸는데 어디 가세요?”

“아, 이번에 유럽 게이트에 지원 가게 됐네요.”

진하의 말에 이신혜가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 전쟁터 아닌가요? 꼭 가야 되는 건가요?”

“헌터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죠. 이신혜 씨도 원래 헌터였다면서요.”

“하아, 알죠. 그래서 제가 헌터를 그만둔 거고요.”

이신혜의 한숨에 진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 마세요. 그리 위험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하 씨인걸요.”

“그 맘 알아요. 이렇게 잘 맞는 ‘친구’는 세상에 없으니까요. 저라도 걱정할 거예요. 하지만 이래 봬도 저 튼튼합니다.”

진하의 말에도 이신혜의 인상을 펴질 줄 몰랐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대신 저 돌아오면 맛있는 커피나 한잔 대접해 줄 준비나 해 주시죠?”

“쿡, 네, 돌아오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 드리죠.”

“그럼 빠르게 다녀오긴 해야겠네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타 주는 제일 맛있는 커피 마시려면요.”

진하는 실없는 농담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커피 마시러 왔어요. 그럼 저는 비행기 시간이 있어서 이만.”진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카페를 나섰다. 밖으로 나온 진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여기 적당히 와야겠네.’

과거의 향수에 젖어 너무 자주 와 버렸다. 거기다 이걸 운명이라 해야 할지 이신혜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 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지나갔다고 하기엔 타의적으로 중단된 사랑이었기에 그녀를 진하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어져서는 안 됐다. 어찌됐든 이미 진하에겐 맘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아직 그녀에 대한 미련과 사랑이 많이 남아 있지만 ‘친구’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에휴, 이게 뭔…….”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예진에, 송하나, 이신혜까지 3명이나 되는 여자에게 둘러싸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평생 사귀었던 여자가 한 번에 몰려와서 그런 것뿐이지 진하가 인기가 있는 것도, 바람둥이인 것도 아니었다.

“너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과거처럼 던전에서 쓸쓸하게 죽는 게 아닌, 행복한 사람과 만났으면 했다. 자신과 같은 맛이 간 사람이 아니라…….

* * *

독일의 어느 한 호텔, 그곳에서 이기수는 소파에 드러누워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기수, 정말로 밥 안먹어?”

“됐어. 입맛 없어.”

“그러지 말고 좀 먹어. 너 지금 며칠째 밥을 안 먹는 건지 알고 있어? 그러다 몸 상해.”

“전투력에 지장 안 가게 영양분 충분히 챙겨 먹고 있으니까 걱정마.”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잭은 멍하니 대답하는 이기수를 보며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분명 이기수의 말대로 그가 몸이 상하진 않을 것이다.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압축 칼로리 바를 먹고 있으니까.

그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전투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행동하고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칼로리 바는 음식이 아니잖아! 그리고 너 지금 엄청 피폐한 거 알고 있어?”

압축 칼로리 바는 말이 좋아 칼로리 바였지 그냥 돌이었다. 맛도 모래 씹는 맛을 가진 말 그대로 전투용 식량이었다. 거기다가 이기수가 전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 상황이라지만 같이 싸우는 잭은 알고 있었다.

‘너무 거칠어.’

기존의 이기수의 전투 스타일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기수는 오로지 거친 느낌만이 가득했다. 즉,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기수 일어나봐.”

하지만 이기수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잭이 일어나 이기수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팔이 땅겨지며 눈이 드러난 이기수가 서늘한 눈빛으로 잭을 바라봤다.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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