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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9화 (69/202)

#069

뒤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진하는 싱긋 웃으며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잔뜩 짜증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하나가 서 있었다.

“당연히 네가 그 키 카드지.”

“키 카드고 나발이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건데…….”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니었어?”

“몇 번만이라며! 으…… 정보 길드의 수장이나 돼서 이런 쪽팔린 짓을 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너와 나는 공동 운명체잖아. 안 그래?”

진하의 뻔뻔한 말에 송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너도 뻔뻔하다. 원래 이런 캐릭터였냐? 그리고 마법 봉은 왜 하나만 있다고 거짓말 치는 건데?”

“진짜 하나인데 예진이 거는 마법 봉, 네 거는 목걸이.”

“하아,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놈이랑 계약을 해서는…….”

“에이, 그러지 말고 좀만 더 도와줘. 협회의 이미지가 좋아져야 정보 길드도 좋지.”

“그전에 이 방법이 진짜 쓸모가 있는 건 맞아? 영웅을 만들겠다는 건 좋지만, 너무 노골적이고 또, 이 복장들은 뭐냐고…….”

진하가 혀를 차며 송하나에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요즘은 어설프게 숨기고 아닌 척하는 것보단 그냥 대놓고 하는 게 나아. 차라리 뻔뻔한 게 더 웃기고 친근하지.”

“근데 왜 하필 이런 아티팩트냐고.”

“그거야. 아티팩트가 쓸 만한 게 그것뿐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쓸모 있잖아.”

“그런 의미 아닌 거 아니까 진실이나 말해 봐.”

“팬덤을 만드는 거지. 한쪽은 협회가 대놓고 밀어 주는 아이돌 헌터, 한쪽은 스르륵 나타난 어둠의 의적. 하지만 알고 보니 협회의 소속이었다? 이런 거지.”

“고작 그런 거로? 그리고 나 협회 소속 아닌데.”

“소속 부분은 넘어갑시다, 어차피 한편인데.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미모의, 그것도 몸매 좋고 강한 헌터가 마스코트인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팬덤 무시하지 마라? 팬이라는 건 결국 우리 편이라는 소리야. 이미지 면에서 그것만큼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없어.”

송하나는 진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가 확인한 결과에서도 하예진과 송하나 자신이 나온 뒤부터 이미지가 미미하지만 좋은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미녀 의적님.”

까드득!

“내가 이번 일은 꼭 배로 받아 낸다.”

“뭐, 일만 잘해 준다면야 어떤 거 든지 해 줄 수 있지.”

“그 말 잊지 마. 그래서 오늘은 저곳을 털면 되는 거지?”

송하나가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가리켰다.

“응, 저기야. 당연하게도 훔친 재산의 80%는 불우이웃을 도와야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건 알고 있지? 저번처럼 삥땅 치려 하지 말아라.”

“칫.”

진하를 째려본 뒤 허공을 향해 점프하는 송하나. 허공을 활강하며 목걸이를 잡은 그녀의 왼쪽 귀는 부끄러움에 미친 듯이 까딱였다.

“주인님, 오늘도 정의로운 의적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와 동시에 어둠에 휩싸였다가 허공에 나타나는 송하나. 검은색의 타이트한 옷과 가면을 착용한 채 나타난 그녀는 순식간에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흠, 역시 하나씩만 있는 물품은 사기라니까.”

<도둑 소녀의 목걸이: 몸짓이 매우 민첩해지는 도둑이 된다.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시동어: 주인님, 오늘도 정의로운 의적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진하는 송하나의 목표인 저택을 바라보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송하나는 이미 저 저택에 들어섰거나, 가는 중일 것이다.

“진짜 복장만 아니라면 저건 내가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야.”

진하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사실 하예진에게 준 마법 봉도 탐나기는 했다. 능력치가 올라가는 폭이 매우 높으니까. 그래도 그건 적어도 대체품인 전대물 변신 세트가 있었다. 능력치 폭이 좀 더 낮긴 해도 나쁘지 않은 아티팩트이기에 그쪽은 아쉬움이 덜 했다.

하지만 도둑 소녀의 목걸이는 달랐다. 신체 능력의 상승은 전대물 아티팩트보다 낮은 편이었지만 기척을 없애거나 숨는 것에 한해서는 이걸 넘어서는 물품은 적어도 진하가 알기론 없었다.

‘A급 헌터들도 거의 눈치채지 못했으니 말 다 한 거지.’

바로 눈앞에서 움직여도 A급 헌터들이 잘 감지 못 한 걸 생각하면 말을 다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아, 진짜 복장만 아니면 내가 입는데.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입을 수도 없고.”

진하는 잠시 마법소녀 복장이나 도둑 소녀 복장을 입은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으…… 괜히 생각했어. 그나저나 협회도 이제 거의 마무리됐고, 이제부터는 진짜 몬스터들만 남은 건가?”

협회의 권력 구도는 바뀌었고, 블랙 길드 중 가장 큰 길드에 속하는 정보 길드도 자신의 편이었다.

아직은 불안정하고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 등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점차 해결될 요소였다. 길드야 아무리 날뛰어도 헌터 기반인 이상 협회를 넘어설 수 없고, 대기업도 항암 그룹과 신후 그룹만 잘 넘기면 나머진 아직 목줄이 있기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한국이랑 미국 게이트 폭주인데…….”

도저히 언제 터질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미 미래가 너무나 바뀐 상태라 유럽처럼 빠르게 터질 가능성도 있었고, 반대로 똑같은 시기에 터질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진하는 불안했다.

‘유럽이 먼저 터진 건 어떤 면에선 다행이야.’

유럽 쪽 게이트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진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들었다. 그럼 추후에 미국과 한국이 동시에 터지더라도 이미 안전한 유럽 쪽에서 지원을 올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갑작스럽게 너무 빨리 터져서 생각지 못한 피해가 생겼다는 점에서 안 좋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거처럼 동시에 터진 것보단 이게 나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 순간 울리는 전화벨, 진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송준하입니다.

“아, 무슨 일이시죠?”

―한번 뵈었으면 해서요. 전화로는 말하기 좀 그런 사항이라…….

“예, 찾아뵐게요. 언제가 좋으세요?”

―그럼 내일 아침 10시에 보도록 하죠.

“네.”

진하가 전화를 끊었다.

“흠…… 뭐지?”

송준하가 전화로 말하기 그런 사항이라 할 정도면 뭔가 큰일이라는 소리였다. 근데 또 바로 만나자 하진 않았으니 시간적 이유가 있는 큰일이란 건데…….

“근데 그런 거에 날 부르는 것도 이상한데?”

진하는 어디까지나 암중에서 활약했을 뿐이었다. 권력도 사실 거의 개뿔도 없다시피 했다. 있는 건 오직 권력자들과의 친분 정도?

“정보 길드와 뭐 협업할 게 있나?”

어쩌면 그거일지도 몰랐다. 정보 길드와 협회는 물과 기름까진 아니더라도 서로 껄끄러운 관계인 건 맞으니까. 송준하는 어쩌면 둘 사이에 중재를 맡기려는 걸지도 몰랐다.

“에휴, 모르겠다. 일단 집에나 가자.”

* * *

“네?”

“말씀한 그대로입니다.”

아침부터 진하는 뒷골이 당기는 걸 느꼈다. 송준하가 만나자 해서 오전에 시간을 내서 협회로 왔더니만 처음 듣는 말이 가관이었다.

“아니, 그걸 내가 왜 해요?”

“적임자는 김진하 씨 당신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난 아직 겨우 B급 헌터인데?”

“능력치만 보면 이미 A급 헌터 상위거나 순위권에 들어가 있으시잖아요.”

“저기 미안한데, 이런 건 명망 있는 헌터가 대표로 가야 되는 거 아닌가요? 대표적으로 이기수요.”

“그 이기수 헌터는 이미 가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왜 내가 유럽에 가야 되냐고요, 그것도 파견을!”

진하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송준하를 바라봤다.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유럽 게이트로 파견을 가야 되는 이유를 진하는 납득할 수 없었다. 현재 유럽 게이트는 이미 조금씩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사람을 차출해 내서 가야 되는 이유를 진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저기 우리는 이미 피해를 크게 봤는데 지원이라니 그게 말이 돼요? 인천에 쳐들어왔던 몬스터 기억 안 나요? 심지어 유럽 게이트에서 출발한 몬스터인데?”

“그걸 왜 모르겠어요. 지금 몬스터에 대한 피해는 유럽 게이트 폭주를 막고 있는 나라들과 그 몬스터 중 일부가 쳐들어온 한국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왜 우리가 가야 한다는 건데요? 다른 국가들한테 가라 하면 되잖아요. 중국이나 일본 걔들도 있잖아요.”

유럽을 지원해 줄 국가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도 지원을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래, 지원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솔직히 게이트가 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유럽이 터졌는데 나머지 게이트가 있는 미국이나 한국은 안 터질 것 같아요? 그런데도 지원을 요청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거기다 이미 유럽에 이기수가 가 있잖아요.”

“그건 저도 압니다. 문제는 이미 지원을 보낸다는 서류에 전 수뇌부가 서명을 했다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이기수가 갔잖아요.”

“그래서 당신도 가야 합니다.”

도돌이표와 같은 말이 반복됐다. 진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살짝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힌 뒤 말했다.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핵심만 말해 주세요. 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정확히 나여야만 하는 이유까지 정확히 말해 줘요.”

진하의 말에 송준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아까까지 말한 건 사실입니다. 다만 거기서 추가로 2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그게 뭔데요.”

“첫 번째로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기수를 파견 보내긴 했지만, 그는 혼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수천, 수만 명씩 파견 보낸다는데 아무리 등급이 높다지만 이기수 혼자 보내고 끝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게 SS급 헌터인데도?”

“그 SS급 헌터가 사고를 쳐서 문제가 생겼죠. 현 협회 수뇌부들은 세계 협회입장에선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 상태에서 아직 현상금을 걸기도 전임에도 바로 이기수 씨가 전 수뇌부 이사들을 모조리 죽였어요.”

“뭐라고요?”

진하가 송준하에게 되물었다. 그가 아는 이기수라면 절대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임원들이 눈치를 채고 도주하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기수 씨가 그냥 모조리 죽였다 합니다.”

“아이고, 이 화상…… 분명 현상금 걸릴 때까지만 참으라고 했었는데.”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지금까지 참은 것만 해도 많이 참은 거긴 하죠.”

“그건 그렇지만…….”

그들이 저질렀던 일은 쓰레기를 넘어 인간이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극악의 것들이 넘쳐났다.

당연하게도 그 내용은 진하뿐만 아니라 이기수 또한 일부는 알고 있었으니, 죽인 것까진 의외이긴 했지만 이기수의 성격을 생각하면 많이 참은 거기는 했다.

“에휴, 그래서 세계 협회의 인정 겸, 이기수가 저지른 일 뒷수습 등이 필요하다?”

“네,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파견을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수 많은 타국 헌터들 사이에서 이기수 씨 혼자만 있는 것도 좀 그렇고요.”

“오케이, 그건 이해 갔어요. 그럼 나머지 하나는요?”

분명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우선 지금까지 설명한 걸로만 들어선 확실히 파견을 보내는 이유는 납득했다. 송준하의 생각대로 현 상황에선 세계 협회나 타국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보내는 게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 하나, 진하가 유럽에 가야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설마, 내가 이기수랑 친해서 가라 하는 건 아니겠죠? 그것도 대표 자리로 가는 건데.”

“물론 아닙니다. 진하 씨가 가야 할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그게 뭐죠?”

진하의 물음에 송준하는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봐요. 뭔데요.”

진하의 말에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은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진하 씨가 한국에 있는 건 협회에게 방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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