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8화 (68/202)

#068

진하가 내민 사진을 본 송준하가 덜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죠?”

“뭐긴 뭐예요. 보시는 그대로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것과 연극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겁니다.”

송준하의 물음에 진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영웅, 결국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영웅입니다.”

나빠진 협회의 이미지, 그리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쉬웠다. 바로 영웅. 이미 미래에서 확인되었던 사실이다. 단순히 고위험군이었던 헌터가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으로 급부상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회귀 전 미래와 비슷한 이 상황에서 똑같이 사용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다만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되지.’

비슷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완벽하게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협회의 이미지는 어떤 면에서는 더욱 나빠졌고, 또 사람들의 불안함은 회귀 전처럼 강하고 직접적으로 와닿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두 명, 두 명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이미지와 불안감을 해결시킬 생각입니다.”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뜻이 좋다는 건 저도 알겠어요. 영웅이라는 것도 확실히 있다면 좋은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을 우롱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주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솔직히 이건 누가 봐도 장난스럽게 볼 겁니다. 특히 협회의 이미지가 안 좋은 상황에서는 더욱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모두 협회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면?”

진하가 사진 중 하나를 스윽 치웠다.

“대립구조를 통한 인기의 양분화. 그리고 그를 통한 시선 돌리기. 딱 좋지 않아요?”

“그렇다곤 해도…… 정말 이걸로 하실 생각입니까?”

“결정은 협회장님이 하시는 거예요.”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진하가 쐐기를 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참고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 뭔지 아시나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도, 권력도 아닙니다. 바로 욕심과 ‘덕’이죠.”

진하가 펼쳐진 사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 * *

나른한 오후, 늦은 시간에 겨우 일어난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으…… 죽겠다.”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틀며 몸을 푼 남자는 핸드폰에 쌓인 문자를 확인했다.

<오성전자 서류전형…… 탈락.>

<진성공업 최종 면접…… 탈락…… 유감…….>

……

……

……

“하아, 젠장.”

지원했던 모든 회사에 떨어진 것을 확인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취직이 어려운 시대라지만 자신과 같은 인재를 떨어뜨린 사회가 너무나 야속했다.

“쯧, 밥이나 먹자.”

자주 시키는 중국집에 자장면을 시킨 남자는 곧바로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 협회>

<2위: 치유 헌터>

<3위: 의적>

.

.

.

“쯧, 협회에서 또 뭔 짓을 저질렀나?”

며칠 전에도 비리다 뭐다 미친 듯이 터졌는데 이번에도 또 뭔가 터진 듯했다. 듣기로는 최근에 수뇌부가 바뀌었다는 뉴스가 뜨긴 했지만 남자의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였다.

“보나 마나 또 새로 자리 잡은 놈들이 비리 저지른 거겠지.”

안 그래도 유럽 쪽에 게이트가 터진 것부터 저번의 뱀파이어 전투까지, 불안해 죽겠는데 정작 협회라는 족속들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협회가 가장 문제였다.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설립한 협회가 비리나 저지르니 사회가 불안해지고, 자신의 취업 또한 쉽게 되지 않는 거였다.

“아, 갑자기 빡치네.”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한 남자는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했다. 이번에 또 뭔 짓을 저질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개 같은 짓거리를 했다면 댓글로 한 바가지 욕이나 퍼부어 줄 생각이었다.

“어라?”

비리에 대한 뉴스로 가득할 거로 생각했던 남자의 생각과는 달리 검색어를 눌러 나타난 인터넷 창에는 이상한 이야기만이 가득했다.

<의문의 여성 헌터, 그녀는 누구인가?>

<새로운 영웅의 탄생?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웅>

<그녀는 누구인가?>

“이게 뭐야?”

뉴스의 제목들을 확인한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뉴스를 클릭해 훑어보았다. 내용은 협회에 등장한 의문의 헌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웅? 그딴 게 말이 돼?”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뉴스에 적혀 있는 링크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이어 헌터 북 사이트가 연결되더니 제일 상단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여러분도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단출한 제목의 영상, 남자는 멍하니 영상을 클릭해 보았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검은 화면에 서서히 떠오르는 하얀 글씨, 곧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몬스터들과 싸우는 헌터들이 나타났다.

―더 푸쉬해! 밀어내! 마법 공격은 멀었어?!

근접 헌터로 보이는 헌터가 다른 헌터들을 지휘하며 몬스터들을 죽이는 영상, 평소에도 협회가 홍보하던 영상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시점이 너무 뒤인데?

시점이 너무나 이상했다. 근접 헌터들의 격렬한 싸움을 보기 힘든 구도인 거는 물론, 원거리 헌터들의 모습을 담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매우 뒤에서 관찰하듯이 보이는 카메라의 시점은 전투에 참여하기보다는 멀리서 구경하는 느낌이 강했다.

‘뭐 하자는 거지?’

알 수 없는 구도에 인상이 점차 찌푸려지려는 찰나, 영상에 변화가 생겼다.

―후퇴해! 더 이상은 어려워!

점차 밀리는 헌터들, 근접 헌터들이 원거리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점차 후퇴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가 점차 멀어지며 기존의 카메라의 시점이었던 사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치유 헌터였다. 다친 헌터들을 뒤에서 치유하던 한 여성 헌터가 입술을 꽉 깨문 채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민아!

그 순간 한 헌터가 몬스터들 사이에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치유 헌터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무엇인가를 꺼내 펼쳤다.

촤라라락!

‘마법 봉?’

―달빛의 힘이여 나에게 힘을! 정의의 이름으로 변신!

번쩍!

화면이 갑자기 새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빛이 잦아들며 보이는 치유 헌터.

‘마법 소녀?’

홍보영상을 보던 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화면 속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법 소녀 같은 옷을 입은 치유 헌터가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페럴라이즈!

그녀의 외침과 함께 헌터 한 명을 둘러싸던 몬스터들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고립된 헌터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는 치유 헌터.

휘리릭!

고립된 헌터의 머리를 아래로 누른 그녀가 봉을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쓰러지는 몬스터들. 그다음 그녀는 곧바로 헌터의 뒷덜미를 붙잡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검게 변하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영웅과 같은 헌터들은 협회는 언제나 응원합니다.>

“이게…… 뭐야?”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협회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상황은 실제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혼란하다. 혼란해. 뭐냐 이 영상은?

―ㅆㅂㅋㅋㅋㅋ 마법 소녀라니 드디어 협회가 맛 간 듯?

└ 근데 저 헌터 예쁘지 않냐?

└ㅇㅈ, 오늘부터 나 저 헌터 팬 한다.

―예비 헌터입니다. 저분들 모두 B급이시고, 상대하는 몬스터 C급이네요. 주작 영상입니다.

└누가 그거 모르냐? 으휴, 저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 하고는.

└저 마법 봉은 진짠데? 협회 홈페이지에 진짜 아티팩트라고 설명 나옴.

―세상 미쳐 돌아간다. 아티팩트가 저번에는 로봇 장난감이더니 이번에는 마법 봉?

―치유 헌터였던 내가 게이트 안에서는 마법 소녀?

댓글을 읽던 남자는 어질어질함을 느꼈다. 새롭게 바뀌겠다고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협회가 제일 먼저 내놓은 홍보 영상이 이런 병맛 영상이라니…….

그런데 웃긴 건 대체로 댓글들이 호의적인 반응이 높았다는 것이다. 웃기다는 댓글에서부터 저 미모의 헌터가 누구냐는 댓글까지 화력이 장난 아니었다.

‘진짜 저게 아티팩트라고?’

남자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댓글에 달린 협회 홈페이지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그곳에는 홍보 영상에 나왔던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이 써져 있었다.

<마법 봉: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봉. 사용 시 매우 질기고 예쁜 전투복으로 변한다. 전체적인 능력이 매우 상승한다. 다만 변태가 아니라면 남자가 사용하는 건 좀……. 사용한 뒤의 자괴감은 아무도 책임지지 못한다. 시동어: 달빛의 힘이여 나에게 힘을! 정의의 이름으로 변신!>

“와…… 이게 진짜라고?”

이제는 황당함을 넘어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협회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실시간 검색어를 살펴보았다. 역시나 홍보물 속 치유 헌터에 관련된 검색어로 가득했다.

‘아니, 잠깐 의적은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3위와 5위에는 협회 홍보물이 아닌 다른 검색어가 올라와 있었다.

남자는 재빠르게 검색어를 클릭한 뒤 가장 상단에 있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제목: 마법 소녀니, 뭐니 다 허풍 아니냐?>

<내용: 마법 소녀고 뭐고 결국 협회의 띄워 주기 아니냐? 결국 이미지 좋게 하려는 거잖아. 그런 거에 선동당하는 얘들 이해 못 하겠더라. 진정한 영웅은 도적 소녀라고!>

―도적 소녀? 뭐냐? 그 이상한 단어는?

└ 요 며칠 떠다니는 소문인데 소문 나쁜 재벌들한테 예고장 보내고 털고 다니는 도둑이래.

└ 도둑을 칭송해? 세상 망할 징조냐?

└도적 소녀라고! 우리 도적 소녀 욕하지 마!

└응, 다음 도둑 소녀, 마법 소녀 미만 잡~

“도적 소녀는 또 뭐야?”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온 남자는 재빠르게 도적 소녀에 대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색을 하는 남자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협회에 대한 욕 따위는 잊힌 지 오래였다.

* * *

어두운 밤, 한 옥상 건물, 그 위에서 진하는 야경을 구경하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악! 난 시집 다 갔다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에이, 뭘 그리 또 심각하게 생각해. 인지도도 올라가고 좋잖아.”

―너 댓글 못 봤지! 지금 네가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지!

“에이, 설마 그러겠냐.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 아티팩트 자체는 좋았잖아, 아냐?”

―……성능이야 좋긴 했지.

“그거 하나만 있는 물품이야. 내가 널 생각해서 준 거라니까?”

―아니, 그래도…….

“나 도와준다며 거짓말이었어? 그리고 너도 그 아티팩트가 얼마나 좋은 건지 알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어? 미안 나 지금 엄청 바빠서 그런데 좀 이따 다시 전화할게! 미안해!”

뚝!

전화를 끊은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꼬셔서 시키긴 했는데 후폭풍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확실히 효과 자체는 진하가 예상한 대로 장난 아니었다. 협회의 우스꽝스러운 홍보부터 미모의 여성, 그리고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마법 소녀까지, 협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져, 아니 덮이고 있었다.

‘새롭게 탄생했으면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야지.’

기존의 협회는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인 면이 강했다. 거기에 비리까지 터졌으니 당연히 이미지는 나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출범한다고 말해 봐야 사람들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친근한 이미지와 어그로. 우스꽝스러운 홍보로 협회 자체의 권위적인 부분을 없애고, 마스코트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새롭게 바뀌었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엔 이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덕이니까.’

마법 소녀, 판타지에나 있는 일부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단어였다. 진하의 예상대로라면 그렇게 생긴 하예진의 팬들은 분명 협회의 방패가 되기에 좋았다.

‘뭐, 그에 반발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큭큭큭, 반발이야 다른 방법으로 억누르면 되는 거고.”

“그게 나란 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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