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7화 (67/202)

#067

―뭐, 그 뒤는 편했지. 뒤늦게 찾아온 송준하 씨가 모두 정리했거든.

“그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래, 잔당이 있을 순 있지만 그래 봐야 잔챙이야. 이번 일도 제대로 덮지 못했으니 말 다 했지.

“그거야 네가 협회원을 다 죽였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근데 뉴스에선 뭐라 안 해?”

―그것도 송준하 씨가 손써 뒀어. 애초에 내 신원이 드러날 일도 없을 거야.

“그래? 흠…… 하나만 물어볼게. 그럼 이제 협회를 뒤집어도 문제없어?”

―없어. 이미 협회는 거의 송준하의 손에 떨어졌다고 봐도 돼. 이제 곧 협회 임원들도 파직당할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그쪽 일 마무리 잘하고. 네가 하려던 일은 내가 할게.”

―그래도 괜찮아? 안 도와줘도 돼?

“여기는 걱정하지 마.”

―그래, 뭔 일 있으면 말하고.

삑!

“헤이 브라더, 뭔 큰일이야?”

이기수가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한 남자가 이기수에게 물었다.

“알 거 없어. 그리고 다 닦고 나오지?”

이기수가 투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이기수의 말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이기수에게 다가갔다.

“헤이, 그러지 말자고, 같은 룸메이트끼리 너무한 거 아냐?”

치근덕대는 남자, 이기수는 그의 행동에 목에 걸린 목걸이를 잡았다. 그러자 남자가 항복하는 자세로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이야, 항복. 와, 통역 목걸이를 끊는 건 반칙 아냐?”

“좀 조용하면 안 돼?”

“심심하니까 그렇지.”

남자의 말에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잭, 그렇게 심심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게이트로 달려가지, 그래.”

남자, 아니 잭은 이기수의 말에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우리 게이트에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하루라고!”

“그리고 너랑 알게 된 것도 겨우 이틀이고.”

“에이, 친구 사이에 하루, 이틀이 어딨어! 무엇보다 우리는 콤비 아니야, 콤비!”

잭의 말에 이기수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딱히 뭐라 반박할 순 없었다. 다른 걸 떠나서 합이 좋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빙결 능력자이자 SS급 헌터 잭, 그의 능력 스킬 중 하나인 소나기와 이기수는 전격은 대규모 공격에 있어 사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쉬는 거지.’

지금 잭과 이기수가 이렇게 쉴 수 있는 건 다 게이트에서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뛰쳐나오는 몬스터의 양이 줄어들어서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이기수는 도착하자마자 잭과 함께 24시간 만에 게이트에서 80%에 달하는 몬스터를 박멸했다.

‘성격적인 상성도 좋으면 참 좋은데.’

능력의 상성과는 달리 쉼 없이 떠드는 잭의 성격은 이기수로서는 피곤한 타입이었다. 특히, 전투 중에 떠드는 걸 참으면서 싸우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던지…….

“아무튼 다 씻었으면 어서 자기나 해. 우리 24시간 뒤에 다시 게이트로 가야 되니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른데?”

“그게 무슨 말이지?”

이기수의 물음에 잭이 어깨를 으쓱이며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마시며 말했다.

“벌써 게이트가 터진 지 꽤 오래 지났어.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몬스터가 나오는 숫자까지 확연하게 줄었고, 곧 있으면 끝날걸? 그때쯤이면 우리도 딱히 필요 없을 테고.”

“대신 나오는 등급이 올라갔지.”

“헤이, 헤이 기수 잘 생각해 봐. 처음에 나왔던 몬스터들 빼고는 그래 봐야 A등급 수준이라고, 거기다가 오늘 말 못 들었어?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뱀파이어를 잡았다고 했잖아.”

“진짜 보스 몬스터인지는 모르지.”

“SS급 헌터 둘이나 붙어서 잡았다고! 그런 존재가 보스 몬스터가 아님 뭔데!”

잭의 말에 이기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잭이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최근 들어 줄어드는 몬스터들의 수에 SS급 능력자와 호각을 다루는 몬스터, 거기다 그 몬스터를 잡고 나니 몬스터들의 수는 더욱 급감했다. 잭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현재의 전투가 거의 끝나 간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인데.’

이기수는 지금 이게 끝이 아니란 걸 알았다. 진하에게 출발 전 전해 들은 바로는 유럽에 존재하는 보스급 몬스터는 총 3마리. 그중 하나는 한국에서 잡았고, 한 마리는 오늘 잡혔다.

‘그래도 한 마리가 남아.’

그렇다면 분명 그 몬스터를 잡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그 몬스터는 우리가 들어가서 잡아야 한다 했어.’

미래에서 본 몬스터는 12층에 묶여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게이트를 빠져나온 몬스터는 절대 보스 몬스터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이기수에게는 거의 끝나 간다던 잭의 말이 웃기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서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믿어 주지도 않을 거고 사실로 밝혀지면 김진하의 신원에 문제가 생기기에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자신 혼자라도 대비하는 수밖에.

“됐고, 어서 가서 잠이나 자라.”

이기수는 어느새 TV를 키고 낄낄거리는 잭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헉, 헉!”

한 남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멀리 떨어진 전장을 바라봤다. 밤이라 그런지 소강상태인 게이트 앞.

“젠장!”

남자가 게이트 쪽을 바라보며 애꿎은 땅을 발로 찼다. 그러고는 근처 바위에 털썩 주저앉은 다음 숨을 골랐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숨을 몰아쉬는 남자, 협회장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가 어차피 무너지는 건 그도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무너졌다. 원래대로라면 김진하를 잡고 다른 세력들이 잠시 움츠러드는 사이 그는 국외에서 자리를 잡고 편하게 살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망했다. 죽어야 할 김진하는 죽지 않았고, 협회는 빠르게 새로운 세력에 의해 권력을 빼앗겨 버렸다. 그로 인해 한창 로비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도 모두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 먹잇감은 두고 왔으니 괜찮겠지.’

아직도 희희낙락한 이사진들을 모두 두고 왔으니 바로 자신을 잡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빠져나갔으리라고 생각도 못 하겠지. 당사자인 그조차 정말 운 좋게 상황을 빠르게 알아채고 탈출한 거니까.

‘우선 비자금을 찾아서 미국으로 넘어가자.’

미국은 독자적인 협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같은 세계 협회에 속해 있지만 간섭을 받지 않는 걸로 유명하니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부스럭!

“누구냐!”

갑작스런 기척에 협회장이 빠르게 칼을 빼 들었다. A급 헌터인 그에게서 기척을 숨길 정도라면 분명 위험한 사람일 게 뻔했다.

“흐음, 안 그래도 쥐새끼 한 마리가 필요해서 잠시 나왔는데 쓸 만하겠군.”

그 말과 함께 나타난 남자 하나. 달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뱀파이어!’

협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뱀파이어, 그것도 A급 이상의 몬스터였다.

‘분명 못 빠져나가게 결계를 쳤을 텐데?’

“설마 그 허접한 결계를 믿고 인상을 찌푸리는 건가?”

협회장의 표정을 알아챈 건지 뱀파이어가 말했다.

‘살아야 돼.’

협회장이 슬금슬금 허리춤에 있는 비상 신호기로 손을 가져다 댔다. 지금은 잡히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몬스터에게 살아남는 게 문제였다.

콰악!

“그건 안 되지.”

어느새 협회장 앞으로 다가온 뱀파이어가 허리춤에 닿았던 협회장의 손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협회장의 눈이 커졌다.

‘S급!’

“그럼 잘 먹지.”

콰악!

곧바로 협회장의 목을 물어 버리는 뱀파이어. 협회장은 온 힘을 다해 저항하려 했으나 이미 목이 물린 그의 몸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스윽.

“흐음, 생각보다 피가 별로군.”

목에서 입을 뗀 뱀파이어가 피를 훔치며 쓰러져 있는 협회장을 바라봤다.

“일어나라.”

“주인님을 뵙습니다.”

뱀파이어의 명령에 쓰러져 있던 협회장이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멍한 눈으로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은 채 말하는 협회장을 바라보며 뱀파이어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이름이 무엇이냐.”

“김준태라고 합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저의 영원한 주인이신 시안 님이십니다.”

김준태의 말에 시안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은 인간 세력에 침투해 나의 종을 몰래 늘리는 것이다. 할 수 있겠지?”

“예.”

“특별히 힘을 주었으니 태양 아래서도 돌아다닐 수 있을 거다. 자, 그럼 가라.”

시안의 말에 몸을 일으킨 김준태의 모습이 빠르게 사라졌다. 김준태가 사라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안이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달이 밝아서 좋군. 큭큭큭큭…… 아주 좋아. 인간들을 죽이기에도.”

* * *

“하암~”

“잠 잘 못 주무셨어요?”

송준하의 말에 김진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잔 건 아니고 그냥 잠을 설쳤어요.”

“그래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수면 걱정은 오히려 제가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진하가 송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하의 말처럼 그를 걱정했던 송준하의 상태가 오히려 더욱 심각했다.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충혈된 눈동자까지. 딱 봐도 며칠 밤은 꼴딱 샌 사람처럼 보였다.

“하하, 갑작스럽게 일이 몰리니까요. 그래도 협회를 정상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죠.”

송준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송준하 씨가 협회장을 맡는 건가요?”

“아뇨, 전 임시직입니다. 수습이 끝나면 제대로 뽑아야죠. 무엇보다 전 겨우 이제 B등급 헌터인 걸요?”

송준하의 말에 진하가 혀를 찼다. 겸손해도 너무 겸손했다. 지금 협회장을 그가 맡는다 해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상황인데도 공식적인 루트를 밟으려는 모습이 고지식한 거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그러니 협회장을 하는 거지.’

다만 의외인 점이 있다면 회귀 전에는 강한 리더십과 무력으로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오직 머리싸움과 리더십으로 된 거나 다름없었다.

‘설마 그 무력이 부가적이었던 걸 줄 누가 알았겠어.’

과거 협회장이었을 때는 영웅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어서 무력이 주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만큼 특별한 능력을 가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송준하의 능력은 고작해야 B급, 그것도 최근에 올라섰다. 그렇다는 건 회귀 전이든 현재든 결국 송준하에게 무력이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단 소리였다.

‘부족한 게 각오였다니…….’

저 능력으로 자존감이 바닥인 것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긴 그러니 정의 관철이란 능력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은 거겠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송준하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잠시 상념에 빠졌던 진하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 별건 아니고요. 지금 협회 상태 어렵죠?”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좋죠. 일손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잔당 처리에 이미 망해 버린 이미지 복구까지 할 일이 많네요.”

협회를 공격하기 위해 했던 일들이 이번엔 독으로 돌아왔다. 날뛰는 대기업과 길드를 붙잡아야 했으며, 떨어진 이미지를 복구해야 했다. 하지만 일손은 당연하게도 부족했고, 유럽에서 터진 게이트 폭주와 인천에서 터진 전투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은 높아져만 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연극 한번 하실 생각 없으세요?”

“연극이요?”

“네, 협회의 이미지 복구를 위한 연극이요.”

“연극이란 게 정확하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될까요? 이미지라는 게 쉽게 복구되지 않는 건데…….”

“가능해요. 이거라면.”

진하는 탁자 위에 두 장의 사진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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