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감찰과에서 단체로 움직인다는 첩보를 접했을 때 진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왜냐하면 이미 굴러 버린 스노우볼 상태에서 자신을 건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건드리더라도 이미 굴러버리는 스노우볼이라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하나는 아니었다.
―미리 대비해 놓자.
굳이 미리 대비해 놓자고 말하는 그녀를 진하는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말에서 그 어떤 때보다 단호함이 느껴졌으니까.
―무슨 방법을 쓸 건데?
이기수야 몸이 두 개가 아니니 몰래 대비해 놓는다는 취지에 안 맞았다. 그렇다고 믿지도 않는 항암 그룹이나 신후 그룹에게 부탁하기도 그랬고, 정보 길드 역시 협회에 마크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크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명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었다. 일을 맡긴 지 꽤 되기도 했고, 하준수가 아무 말이 없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일단 한번 확인해 보고.
그래서 일단 한번 확인해 봤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수완이 좋아도 큰 도움이 될 정도로 사람을 모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런 곳보단 게이트 폭주 때를 대비한다는 의미가 더 컸던 명령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탁한 대로 나를 포함한 30명 모두 도착했다.”
먼지구름이 완전히 사라지며 드러난 사람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도를 내뿜는 사람들을 보며 진하는 감탄했다.
“고생했어.”
3층 초반에서 여기까지 제시간 안에 달려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안녕! 네가 우리의 리더야?”
그때 한 명이 진하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글쎄요. 리더라기보단 동료라고 해 두죠.”
“그래? 그럼 우리 리더는 여전히 하준수네? 아, 노땅에서 젊은 사람으로 바뀌는가 했는데.”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여자.
“그 입 닥쳐라.”
하준수가 으르렁거렸다.
“닥쳐? 닭을 치면 죽지.”
그 소리에 아재 개그를 치는 남자. 그리고 그 아재 개그를 치는 사람의 머리를 때리는 남자를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진하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하하, 다 개성이 강하네.”
“하아…….”
하준수가 내뱉는 한숨에서 지금까지의 고생이 절로 느껴졌다. 하지만 진하가 그런 그들의 모습에 그들을 얕보진 않았다. 겉으로야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저들은 거의 다 A급 상위에 해당하는 인재들이었다. 특히, 몇몇은 미래에 진하가 이름을 들어 봤던 S급으로 성장할 헌터들이었다.
“이렇게까지 모으기 힘들었을 텐데 잘도 모았네.”
“글쎄 말도 말아요. 진짜 힘들었다니까요?”
진하의 말에 어느새 다가온 재희가 조잘거리며 달라붙었다.
“내가 진짜 저 무뚝뚝한 길드장이랑 이상한 팀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과장되게 눈물을 훔치며 말하는 재희를 진하가 토닥였다.
“고생하셨어요, 재희 씨도. 근데 쟤는 저기 왜 있어요?”
진하가 뒤쪽에서 크게 손을 흔드는 휘젠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기론 분명 휘젠은 B급 중위였고 이런 일에 참가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어…… 그게…….”
“B급이라고 무시하냐? 이래 봬도 이젠 B급 최상급이라고.”
어느새 달려온 휘젠이 양손을 허리에 얹으며 말했다.
“아니, 무시하진 않았어.”
휘젠 자체도 루키인 건 진하도 알고 있었다.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한 능력자였으니까. 다만 어딘가에 강하게 얽매이는 게 싫어서 거대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하준수의 길드에 들어간 거라 하지 않았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자유야 뭐 버리지.”
휘젠의 말에 진하는 잊고 있었던 그의 스킬이 생각났다.
‘아마 유대였지?’
패시브 능력으로 사람과의 연이 깊고 많을수록 능력이 강화되는 까다로운 스킬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하긴 성격을 생각하면 어울리긴 하지.’
“와줘서 고맙다.”
진하의 말에 휘젠이 코를 쓱 훔쳤다. 여전히 과장된 표현이었다.
―리저랙션.
그 순간 진하의 상처들이 급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하는 치료되는 몸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다가온 하예진이 진하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예진아.”
“몸은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 마.”
꾸욱.
그때, 한 여자가 진하의 팔을 붙잡았다. 당황한 진하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녀는 묵묵히 진하의 팔을 꼬옥 끌어안았다.
“하아, 쟤는 가장 최근에 들어온 엘리사라고 해요. 약간 애정결핍이 있는데 진하 씨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엘리사가 진하의 팔을 꼬옥 붙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근데 내가 좀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잠깐만 놔주면 안 될까?”
스륵.
진하의 부탁에 손을 놓는 엘리사. 그때, 그녀의 뒤에서 한 팀원이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진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엘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로롱거리며 좋아하는 엘리사.
‘개냥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엘리사라는 이름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김진하.”
정신없는 와중에 하준수가 진하를 불렀다.
“응.”
“일단 오기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너무 많지 않나?”
한준수가 쳐다보는 곳에는 무려 천여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가 생각해도 엄청 많기는 하지.”
“당연히 방법이 있겠지?”
“물론이지.”
그렇지 않으면 게이트에 가는걸 땡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혹시나 감당하지 못할 경우 또한 진하는 마련해 놨다. 정확히는 송하나가 마련하라 해서 마련했다.
“딱 5분만 버텨. 가능하지?”
“흠, 그거는 충분히 가능하지. 다들 들었나!”
“오케이! 5분!”
“5분이라면 빵을 구워야지!”
“5분…….”
각자 개성 있는 대답을 하며 진하를 에워쌌다. 그 사이 완전히 먼지가 가라앉고 그들을 에워싼 채 대치하던 협회원들 중 간부한 명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외쳤다.
“죽여!”
“아아악!”
“블레스트!”
각종 스킬이나 무기를 난사하며 달려드는 협회 직원들. 하지만 하준수의 팀원들은 그런 공격을 무난하게 막아 냈다.
“여전히 방어에 신경을 많이 쓰네.”
저번 던전에서도 말도 안 되게 무식한 방패를 소지하는 길드라는 점에서 감탄하긴 했지만, 어떻게 된 게 지금의 팀원들 또한 기계처럼 서로의 빈틈을 메워 주며 손쉽게 방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법이라는 게 뭔데?”
중앙에서 진하의 상처를 마저 치료하던 하예진이 물었다.
“그거? 이거지.”
진하가 주머니에서 고무줄에 묶인 카드 더미를 꺼냈다. 저번에 사용에 실패했던 카드 게임 뭉치가 이 위기의 돌파구였다.
“그거 저번에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치, 실패했지.”
하예진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너무나 까다로웠던 아티팩트였다. 랜덤 뽑기는 기본에 무조건 5분간 섞어야 하는 패널티, 그리고 40장 이하는 사용 불가까지. 그 밖에 다양한 페널티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비효율적인 아티팩트였다.
“근데 내가 하나 간과한 게 있더라고.”
분명, 이 카드의 아티팩트의 설명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었다.
<카드 최소 제한: 40장 이상.>
<1턴 간 자신의 공격 후, 1턴 간 강제적 공격 또는 페널티.>
밑장빼기. 전혀 진하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티팩트가 당당하게 밑장을 빼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하는 밑장을 빼기로 했다.
촥촥촥촥!
카드를 섞는 진하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설마 아티팩트 하나를 배우려고 밑장빼기까지 배울 줄은 몰랐다. 이 자식아 승부다, 듀얼 스타트.”
아무리 빠르게 섞어도 내가 원하는 카드를 나오게 한다는 게 그렇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이번에 알았다.
촥촥촥!
진하가 마지막 셔플을 했다. 그리고 그중 8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묽은 눈의 용>, <폭풍우>, <천공의 요새>, <달빛>, <슬라임>, <무한증식>, <치유>, <소생>
‘쯧, 아직 완벽하지 않네.’
100% 모두 진하가 원하는 8장의 카드를 뽑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니까.
‘이 중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총 4장.’
카드의 제한은 40장이었고, 39장이 되면 바로 게임이 해제된다. 그리고 저번 전투에서 사용한 카드는 모두 6장. 4장을 사용하면 39장으로 자동으로 전투가 중단된다.
“내 턴을 시작하지.”
진하가 저 멀리에 있는 간부 한 명을 전투 상대로 지목하고 카드를 내려놨다.
“카드 한 장을 뒤집어 놓고 천공의 요새를 발동한다.”
<천공의 요새: 천상을 수호했다고 알려진 요새. 웬만해선 그 어떤 것으로도 요새를 뚫을 수 없다.>
쿠구구구!
카드를 발동하자마자 진하를 중심으로 커다란 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들 안으로 들어와!”
진하의 외침에 모두들 올라가는 벽을 타고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협회의 다른 헌터들 또한 벽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지만 미리 들어가 있던 팀원들이 넘어오는 족족 적들을 밖으로 밀어 버렸다.
쿠궁!
그리고 완벽하게 올라와 버린 성벽. 성벽이 완벽하게 올라오면서 성벽을 둘러싸는 커다란 보호막이 씌워졌다.
챙! 채쟁! 챙! 콰앙!
협회 직원들이 작게 형성된 요새를 향해 수없이 많은 스킬들을 남발하며 보호막을 두드렸다.
“오……. 신기하다.”
콕콕.
“이거 안 깨지는 거 맞아?”
안으로 들어온 팀원들이 보호막을 찔러 보거나 약간은 불신하는 눈빛으로 보호막을 바라봤다.
“안 깨져.”
진하는 확신했다. 왜냐하면 이건 그가 사용하는 카드 게임에서 몇 없는 초 레어 카드라는 걸 인터넷에서 미리 확인했다. 일반 카드도 아니고 천공의 요새라고까지 표현되는 요새가 무너질 일은 없었다.
“그럼 이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야?”
누군가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엄연히 소환물이라 1, 2시간밖에 지속 안 돼.”
이 아티팩트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진하도 협회원들을 그냥 보내 줄 생각 따위 없었다.
“자, 이제 네 차례다.”
진하의 눈이 저 멀리 간부를 향했다.
―이게 뭐야!
갑작스럽게 생긴 창에 당황한 간부가 허공을 향해 스킬을 남발했다.
“오케이, 너 나한테 공격했네?”
상대의 공격을 가뿐히 넘긴 진하가 뒤집었던 카드를 발동했다.
“함정 발동 폭풍우.”
<폭풍우: 강력한 천둥을 동반하는 폭풍우가 몰아친다. 피아 구분 없이 전투 현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휩쓸어 버린다.>
쿠르르르!
휘이잉~
협회 직원들 위쪽으로 순식간에 생기는 구름, 그리고 동시에 주변이 온통 돌벽으로 이루어진 게이트 안에서 이상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상을 가장 먼저 느낀 협회원 한 명이 하늘을 바라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 뭐지?”
쿠르릉! 쿠릉!
어느새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한 구름이 빠르게 1층 대부분을 가득 채웠다.
쏴아아아!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는 소나기. 그 모습에 당황한 적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다들 공격해! 그래 봤자 바람이랑 비일 뿐이다!”
“전격 능력자는 능력 사용을 중지해!”
“물 계열 능력자들이 앞으로 나선다!”
중간중간에 있던 간부들이 부하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요새의 벽 위에서 바라보던 진하가 씨익 웃었다.
“잇츠 쑈 타임.”
따악!
쿠르릉, 쾅!
벼락 하나가 적들의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사방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벼락들.
쾅! 콰광! 콰르르 쾅!
게이트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벼락들이모든 걸 부수기 시작했다. 직접 벼락을 맞은 적은 흔적도 없이 타 버렸으며 그 주변에 존재하는 적들은 쏟아진 비를 타고 전달되는 전기에 감전되었다.
쾅!
벼락 하나가 요새 위로 직격했다. 팀원 중 하나가 아비규환이 된 밖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보호막을 바라봤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 이 카드가 한 단계 더 등급이 높아요.”
그러니 무너질 가능성은 없었다. 같은 등급이라면 조금 불안했겠지만 한 단계 더 높은 카드였기에 그런 불안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아비규환이 된 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준수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완전 지옥이군.”
“여기가 실내인 게 가장 큰 문제죠.”
아무리 넓다 해도 이곳은 실내였다. 한정된 공간 안에 폭풍우 카드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내야 했기에 비와 바람은 더욱 거셌고, 벼락의 밀도는 한없이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우리가 왔을 필요가 없던 거 아냐?”
팀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말에 동감하는지 몇몇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당신들이 있어서 사용 가능한 거예요.”
위치이동 불가 페널티부터, 턴 제한, 셔플 시간 등 제약이 많은 아티팩트였다. 심지어 벽 위로 올라온 것도 카드 효과 위에 있기에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예 한 발자국도 못 움직였을 것이다. 만약 진하 혼자였으면 이 아티팩트를 사용하기도 전에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자, 이제 내려갈까요?”
대화를 나눈 사이 어느새 모든 벼락이 떨어지고 폭풍우가 끝나 있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새 밖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새까맣게 타 버린 시체와 물만 가득할 뿐이었다.
띠링!
<전투에서 첫 승리를 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10만 점 획득.>
뜻밖의 횡재에 진하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휘젠이 하준수에게 속삭였다.
“길드장, 혹시 예전에 진하한테 뭐 실수한 거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