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5화 (65/202)

#065

‘젠장.’

진하가 삼각자를 날리며 인상을 썼다. 벌써 1시간째였다. 계속해서 따돌리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감찰과는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확실히 준비했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가득했던 번화가에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문방구는 아예 철통같이 틀어막고 있었고. 안가로 숨으려 해도 일단 떼어 내고 숨어야 할 텐데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째쟁! 챙그랑!

또 하나의 삼각자가 부서졌다. 진하는 이를 악물며 원격 구매로 삼각자를 구매했다. 그리고 또다시 날렸다.

‘방법이 없어.’

혹시나 하고 문방구 물품 내역을 살펴봤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적당한 물품이 없었다.

휘익!

“또 그거다 피해!”

이제는 새알탄에도 익숙해진 건지 손쉽게 피하는 감찰과. 진하는 혀를 차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변신형 제품은 아웃.’

무력적으로 상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변신형을 겹친다 해도 비앙카 때와의 전투력을 보여 주긴 어려웠다. 애초에 그때 사용했던 물품들은 죄다 문방구에 하나씩만 있던 초고가 물품들이었으니까. 다른 물품들을 아무리 겹친다 해도 S급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여기서 죽이는 건 골치 아파져.’

사람들이 사는 대로였다. 뒷일을 감당할 것까지 생각하면 되도록 도망을 가는 게 가장 현명했다.

‘버프 아이템도 패스.’

‘즉발 형 아이템도 패스.’

‘섭취 형도 패스.’

“쯧.”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답이 없었다. 거기다 지금 감찰과는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진하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방향은 게이트.

‘게이트면 나도 땡큐긴 한데 말이야.’

보아하니 애초에 생포는 선택지에 들어 있지도 않은 듯했다. 게이트로 몰아간다는 건 조용히 죽이겠다는 뜻이니까. 진하의 입장에서도 어찌 보면 편한 선택이긴 했다. 다만.

‘문제는 뭐가 있을지 몰라.’

지금 이 상태도 꽤 과한 인원이었다. 근데 진하를 잡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고 몰아넣는다는 건 다른 함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다다다닥!

생각을 하며 달리는 사이 벌써 게이트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다른 곳을 뚫어 볼까 했지만 너무 두꺼웠다.

“젠장!”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하는 속도를 높여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기정사실이라면 최소한 적들의 의도라도 비틀어야 했다.

“과거의 후회.”

또 하나의 환영이 깃들며 진하의 속도가 더욱 높아졌다. 그 모습에 적들이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그들도 속도를 높여 진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없어.’

역시나 미리 배치해 둔 건지 게이트 입구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예 오늘 게이트 자체에 출입을 금한 것 같았다.

‘게이트 안에 헌터들이 있긴 하겠지만…….’

며칠 동안 공략하는 공략대라면 있길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깊은 층에 존재했고, 애초에 이 상황에서 나서 주길 바라는 것도 넌센스였다.

삑!삑!삑!삑!

무단으로 게이트를 넘자 경보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진하는 경보음을 무시한 채로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헌터 협회 직원들.

치이익―

진하가 걸음을 멈췄다.

“하, 하……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분명 감찰과에서 나섰다고 들었다. 근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감찰과만이 아니었다. 감찰, 집행, 정보과 등 전투가 가능한 과는 모조리 모여 있었다. 거기다 숨겨 놓은 힘인 건지 딱히 표식이 없는 직원들까지 모조리 1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숫자는 대충 봐도 천은 되는 듯했다. 진하의 뒤로 그를 쫓아왔던 감찰 직원들이 내려왔다.

“헌터 협회에서 할 일 없나 보네. B급 헌터 하나 처리하겠다고 여기까지 모이고.”

이 정도면 협회 내 반대파와 중도파를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 가까이가 모였다. 회귀 초 이기수라 해도 벅찬 수준이었다.

“다들 준비한다.”

촤르륵.

목소리에 맞춰 쇠사슬이 좌르륵 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티팩트?’

아니, 아티팩트는 아니었다. 아티팩트 중에 겹치는 물품이 존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냥 일회용으로 마법을 부여한 물품이었다.

“구매.”

진하가 시스템 창에서 물품을 구매했다. 지금 진하가 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정렬의 레드: 열정이 가득한 레드가 사용하던 변신 손목시계.>

<백수의 레드: 붉은 눈의 레드가 사용하던 변신 허리띠.>

순식간에 착용되는 물품들. 그 모습을 보자 누군가가 외쳤다.

“아티팩트다! 잡아!”

촤르륵!

사방에서 진하를 향해 수많은 쇠사슬이 쏟아졌다. 하지만 진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쇠사슬을 바라봤다.

티디딩!

붉은 빛이 빛나기 시작하며 튕겨 나오는 쇠사슬들.

“너희들은 주인공이 변신할 때 공격 안 하는 게 국룰이라는 거 모르냐?”

진하가 그들을 보며 비웃었다. 그리고 허리띠를 잡아챘다.

“변신!”

* * *

“잡아!”

촤르륵!

또 한 번 진하를 잡기 위해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피닉스 슬레쉬!”

빨간 옷의 진하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깔끔하게 잘리는 쇠사슬 무더기. 진하는 곧바로 검을 총으로 바꿔 적을 조준했다.

“피닉스 블레스트!”

화르륵!

불새 모양의 화염이 직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불 꺼!”

그러자 뒤에서 대기 중이던 물 계열 능력자들이 직원들에게 물을 뿌려 불을 꺼뜨렸다.

“놈도 점차 지쳐 간다!”

“계속해서 달려들어! 체력이 떨어진 놈은 뒤로 빠져!”

마치 보스몹 레이드를 하듯 차륜전으로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적들을 보며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촤장!

날아오는 검이 옷을 베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진하가 그 틈을 이용해 몇몇 적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챙!

빈틈을 메우는 또 다른 검. 진하가 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진하가 있던 자리로 암기들이 떨어졌다.

“훅, 훅!”

진하가 잠시 숨을 골랐다. 벌써 2시간째 이렇게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적의 사망자는 고작 20여 명뿐이었다.

“다친 놈은 빠져!”

“치유사!”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무조건 뒤로 빠져 치료를 감행하는 적들. 진하는 뼈저리게 보스몹의 입장에서 레이드라는 게 얼마나 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처는 없긴 한데 말이야.’

체력 향상, 보호, 회복, 강화 기능이 붙은 슈트였다. 덕분에 진하는 2시간 동안 쉼 없이 적들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차 한계가 다가왔다. 체력도 점차 떨어졌고, 변신 능력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감이 안 왔다.

‘저번에 해 봤을 때 유지 시간이 대략 3시간.’

격하게 움직이는 지금은 미정이었다.

“쯧.”

진하가 혀를 찼다. 이래서는 도저히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는 절대 답이 없었다.

“동료를 기다리나?”

호흡을 고르는 진하를 보며 직원을 이끌던 직원들 중 하나가 말했다.

“헛된 기대는 하지 마라. 여긴 완전히 봉쇄되어 있어. 외부에서 이곳을 들어오려면 아침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불가능해.”

“아주 준비 많이 했네.”

진하가 질린 표정으로 적들을 바라봤다.

“쉴 틈을 주지 마! 다시 공격해!”

촤르륵!

명령에 따라 다시 쇠사슬들이 날아들었다.

“이건 도대체 얼마나 준비한 거야!”

베어도, 베어도 계속 나오는 쇠사슬을 보며 진하가 소리쳤다.

“피닉스!”

피잉―

그 순간, 작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슈트.

촤르륵, 촤륵!

자르지 못한 쇠사슬들이 진하의 몸을 꽁꽁 에워쌌다.

“하.”

쇠사슬에 묶인 진하가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마지막에 이렇게 된통 당할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후, 이제 너만 없으면 끝이다.”

“설마 진짜 그러겠냐?”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진짜로 진하가 없으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막으려면 진작에 막았어야지.”

이미 진하가 계획했던 것들은 스노우볼이 되어 커진 지 오래였다. 진하를 죽인다고 해서 그들을 공격하는 모든 공격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닥쳐! 일단 너만 없으면 돼! 나머지는 협회장님이 처리하실 거라고!”

감찰 과장 중 한 명이 외쳤다.

“협회장?”

“그래 너를 이렇게 잡은 것도 다 협회장님의 계획이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남자. 진하는 그를 보며 비웃었다.

“그래, 협회장, 협회장이면 그럴 수 있어.”

진하가 예상하지 못하게 계획을 짜는 것 자체는 협회장이라면 가능했다. 어찌 됐든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니까.

“근데 협회장이 그걸 모를까?”

머리는 비상하지만 겁이 많은 사람. 이기수가 평가했던 협회장의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이미 굴러 버린 스노우볼을 모를 리 없었다.

“그 협회장이라는 사람은 어딨지?”

“협회장님은 이기수를 꾀어내기 위해 같이 외국으로 떠나셨다.”

남자의 말에 진하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 모습에 당황하던 직원들은 진하의 폭소가 이어질수록 점차 얼굴을 굳혔다.

“닥쳐!”

“큭큭큭, 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무 웃겨서 말이야.”

아무리 미래가 바뀌어도 확실히 안 바뀌는 것도 있었다.

“와, 이제야 생각났어. 이 상황이 뭔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1차 게이트 폭주가 끝나고 블랙 길드를 한창 정리하던 시점에 협회장이던 송준하가 습격당한 일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약간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전혀 효과가 없는 습격이었다.

그때 그 습격을 진행시켰던 건 외국으로 도망갔던 협회장이었었다. 이기수가 평하길 그 당시 도망간 협회장과 몇몇 간부들을 잡기 위해 조직을 구성하자는 말이 많이 나올 때였는데 절묘하게 사건이 터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이기수가 협회장을 그리 평했다.

―고슴도치

건들지 않는다면 상처 입을 일은 없지만 건들면 너도 상처를 입을 거라고 협박하는 고슴도치.

그 당시 결국 그들을 포기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로부터 얼마 되지 않는 과거였고.

“아마 네가 믿는 그 협회장이라는 사람 이미 튀었을걸?”

이기수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외국으로 탈출하다니 정말 머리가 좋은 양반이었다. 하긴 그러니 절대적이기까지 한 협회를 세웠겠지. 하지만 아무리 호랑이라도 배부른 채로 오랜 기간 길들여진 호랑이는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안위마을 채우게 된 협회장이 무너지는 협회를 고생하면서 잡을 리 없었다.

“닥쳐!”

퍼억!

진하의 얼굴이 크게 젖혀졌다.

주륵.

잘못 맞은 건지 찢어진 피부 사이로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네가 어떤 말을 하든 죽는 건 변하지 않아!”

“협회가 무너지는 것도 변하지 않고.”

퍽, 퍼억!

화가 난 남자가 연속해서 진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크으…… 주먹 좀 쓴다?”

진하가 이죽이며 남자를 도발했다.

“너, 너는 내가 쉽게 죽지 못 하게 해 주지.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 포를 떠서 죽이겠어.”

“그러면 나야 땡큐지.”

“칼 가져와!”

남자의 명령에 뒤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칼을 건넸다. 칼을 건네받은 남자가 진하의 얼굴에 길게 선을 그었다.

“어때, 두렵지?”

“그러네. 이렇게 천 명 앞에서 고문당하는 건 처음이네. 다들 뭘 그리 흥분하고 있어? 관음증 환자야?”

“닥쳐!”

푸욱!

칼이 진하의 손등에 박혔다.

“하나하나 포를 뜬다고 하지 않았어?”

“오냐,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아마도 계속?”

“뭐?”

퍼억!

남자의 머리를 뚫고 화살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서 터지는 굉음.

―리미트 브레이커 최대치.

우드득, 뚜둑!

콰앙!

진하가 서 있는 공터를 주변으로 커다란 충격파가 발생했다.

“적이다! 다들 전투 준비!”

“주변을 경계해!”

거대한 먼지구름에 모여있던 협회 직원들이 저마다 경계하며 뭉쳤다.

촤르륵!

“콜록, 콜록. 아 거참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미안하다, 우리가 좀 늦었다.”

“뭐, 아주 늦지는 않았어요.”

먼지가 걷히며 하준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0